석지
[clearfix]
1. 개요
중국 오호십육국시대 후조(後趙)의 제7대 황제이자, 마지막 황제. 석호(후조)의 아들.
2. 생애
양국(襄國)에서 군사를 진수하다가, 349년에 석민(石閔)이 석감(石鑒)을 꼭두각시로 세워서 실권을 장악하자 요익중(姚弋仲), 포홍(蒲洪)과 함께 안팎으로 군사를 연결하여 격문을 전하였고, 석민, 이농(李農)이 석곤, 장거, 호연성 등에게 7만의 군사를 보내 상대하게 했다.
350년에 양국에서 황제의 자리에 올라 연호를 고쳐 영녕(永寧)이라 했으며, 석곤을 상국으로 삼았고 흉노, 갈, 저, 강, 단씨, 파만 중에서 주군을 점거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에 호응했다, 요익중을 우승상, 친조왕으로 특별히 대우했고 요양을 표기장군, 예주자사, 신창공으로 봉하고, 부건을 도독하남제군사, 진남대장군, 개부의동삼사, 연주목, 약양군공으로 봉했다.
여름 4월에 석곤을 파견해 군사 10만 명을 이끌고 위를 공격하게 했는데, 11월에 염민이 10만 명을 이끌고 양국을 공격해 100여 일간 포위하자, 351년에 황제의 칭호를 버리고 조왕(趙王)이라 하면서 장거를 파견해 전연(前燕)에 군사를 보내도록 요청했으며, 석곤, 요양(姚襄), 전연의 장군인 열관의 구원을 받아 염민의 군사를 포위해 공격해 격파했다.
석지는 유현(劉顯)을 시켜서 7만의 군사를 보내서 염민을 치게 했지만 도리어 유현이 패배하여 양평까지 추격받았는데, 유현이 염민에게 편지를 보내 항복을 요청하면서 석지를 죽여 보답하기로 하면서 석지는 유현의 공격으로 석병(石炳), 조서(趙庶) 등 10여 명과 함께 살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