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이

 


宣居怡
1550년(명종 5년) ~ 1598년(선조 31년)
1. 개요
2. 생애


1. 개요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보성(寶城)이며, 자는 사신(思愼), 호는 친친재(親親齋)이다. 보성 선씨 시조 선윤지(宣允祉)의 8세손이다.

2. 생애


1569년에 선전관으로 등용되고 1570년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1586년에 함경도 병마절도사 이일의 계청군관으로 있다가 다음 해에 이순신과 함께 녹둔도에서 여진족을 막는 공을 세운다. 류성룡은 선거이를 범장이(호랑이 장수) 조선 땅에 나타난 것과 같아 든든하다고 하였다. 1588년에는 거제현령, 진도군수를 역임하였다. 1591년에는 전라도 수군절도사가 되었다. 1592년에는 전라도 병마절도사가 되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후 한산도대첩에 참전하였고, 동년 12월 독성산성 전투에서는 전투 중 크게 부상을 당했다. 다음 해에는 부원수로서 참전하여 도원수 권율과 함께 행주대첩에서 공을 세웠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선거이 장군이 있었기 때문에 행주대첩이 가능했다'고 하였다. 동년 9월에 함안에서 왜군을 상대하다가 부상을 당했다. 이후 충청 병사(충청도 병마절도사)가 되었다. 전쟁이 한동안 교착상태에 빠져있을 때에는 한산도에 내려와 이순신을 도왔고 장문포 해전에도 참전하였다. 충청 병사에서 보직이 바뀔때 이순신이 매우 아쉬워하며 이별주를 함께 나눴고, 직접 지어준 이별시가 난중일기에 남아있다.

북쪽에 갔을 때에 같이 힘써 일하더니

남쪽에 와서도 죽고 삶을 함께 했네

오늘밤 달빛 아래 한잔 술 나누고 나면

내일은 우리 서로 헤어지는 일만 남았네

- 이순신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남해, 상주 등지에서 활약하다가 1598년 2월에 7도 병마절도사로서 참전한 울산성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예조에서 내린 금석문에는 '바다에는 이순신, 육지에는 선거이'라고 기록하였다. 사후 1605년에 선무원종공신일등(宣武原從功臣一等)에 추봉되고, 보성의 오충사(五忠祠)에 제향되었다.
임진왜란 중에 벌어진 굵직굵직한 큰 싸움들에 참전했고(3대 대첩 중 2개인 한산도 대첩과 행주대첩에 참전) 부상을 입은 후에도 계속 공을 세우다 장렬히 전사했으나 어째선지 인지도는 안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