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트레일리아
'''Centralia'''
[clearfix]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콜럼비아 카운티에 위치한 탄광촌. 이 도시의 타이틀이 무척이나 화려한데 '''무려 62년간 불타고 있는 도시'''이다. 정확하게는 도시 자체가 불타고 있는 게 아닌 지하 탄광에서 화재가 일어나고 있다. 호러 게임인 사일런트 힐 시리즈의 주 무대인 사일런트 힐의 모티브가 된 곳으로 매우 유명하다.
[image]
1828년 무연탄에 불을 붙이는 방법이 개발되면서 센트레일리아에 사람들이 모여 탄광촌이 형성된다. 그 후 센트레일리아의 주인이 여러 번 바뀌고 1842년 센트레일리아의 땅은 로커스트 광산 회사와 광산 기술자였던 알렉산더 래이에게 팔린다. 래는 그의 가족을 그 땅에 이주시키면서 도로를 만드는 등 개발한 뒤 그 땅을 Centreville이라 이름지었으나 1865년 오늘날의 지명인 Centralia로 바꾸는데, 그 이유는 이미 Centreville이란 지명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1854년 센트레일리아에서 생산되는 석탄을 실어나르기 위한 철도가 완공되고 최초의 광산이 1856년 열렸다. 또한 1865년에 또 다른 철도가 석탄을 수송하기 위해서 센트레일리아에 들어오면서 작은 소도시가 급격하게 발전하게 되었고 광산이 급격하게 증가했으며 1890년에는 인구수가 2761명에 이르게 된다. 센트레일리아가 가장 잘나가던 시절에는 교회가 7개, 호텔이 5개가 있었고 27개의 주점과 2개의 극장이 있었으며, 그 외에도 은행이나 우체국 등 있을 건 다 있었다고 한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광부들이 군대에 입대하고, 1929년에는 대공황으로 센트레일리아는 점차 쇠퇴하며 버려지는 탄광이 늘어갔다. 그럼에도 1960년대까지만 해도 채굴은 계속되고 있었고, 이전만큼은 못 하더라도 여전히 꽤나 잘나가는 소도시였다. 하지만 1962년, 센트레일리아의 운명을 바꾸는 화재가 발생하게 된다.
1962년 5월 27일, 지방정부에서 고용한 소각회사 직원들이 센트레일리아 쓰레기 매립장의 쓰레기를 소각하기 위해서 쓰레기에 불을 붙이고 어느 정도까지 타도록 내버려뒀다. 그 후 소방관들이 불을 진압했지만 불은 완전히 꺼진 것이 아니었다. 남은 불씨가 매립장이 위치해있던 버려진 탄광 구덩이의 석탄에 옮겨 붙으면서 지하의 버려진 탄광에 불이 옮겨 붙기 시작했다.
센트레일리아에서 주로 생산되던 석탄은 무연탄이었는데, 한 번 불이 붙으면 끄기가 어렵다는 특성이 있다[1] . 그해 2번의 진화 시도가 있었으나 실패하고, 다음 해 한 번 더 진화 시도가 계획됐지만 주에서 이를 포기했다.
그러나 지역주민들은 1979년까지도 탄광에서 일어나고 있는 화재의 규모가 엄청나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1979년, 센트레일리아의 주유소 주인이었던 존 코딩턴은 주유소 연료 저장고의 연료량을 측정하기 위해서 저장고에 긴 막대를 넣어보았다. 그런데 저장고는 몹시 뜨겁게 느껴졌다. 이를 이상하게 여기며 저장고에 온도계를 매달아 넣어 보고서는 그 결과에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장고 안 가솔린의 온도는 무려 172°F(약 77.8°C)에 달했다. 심지어 탱크 10m 밑에서는 999°F(약 537°C)라는 경이로운 측정값이 나왔다. 보통 온도계가 3자리까지만 표시하는 것을 생각하면 실제 온도는 이보다 높은데 측정기의 여백이 모자라서 999라고 표시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이 사태로 펜실베이니아주 전체에서 센트레일리아의 화재가 주목받게 되었다. 지하 온도는 점점 높아졌고, 도로마저 갈라져 차량 운행이 불가능해지자 소방관들은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애썼으나 상황은 더 나빠져갔다. 1981년에는 한 12세 소년이 뒷마당에 생긴 직경 1.2m, 깊이 46m(!)의 싱크홀에 빠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소년 밑의 땅이 갑자기 꺼졌고 소년은 튀어나온 나무뿌리에 간신히 매달렸다. 다행히 그의 사촌이 달려와 그를 끌어 올려 구조하였다. 불타던 탄광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설상가상으로 유독가스마저 뿜어져 나오기 시작하자 연방정부 차원에서 1984년부터 4200만 달러를 들여 주민들을 강제이주시키기에 이른다.
6분 30초에 2016년에 열려야 했던 타임캡슐이 나온다. 참고로 타임캡슐은 2년 이른 2014년에 개봉되었다고 한다. 개봉되는 모습
현재는 유령도시이다. 1981년 때까지만 해도 1000명에 이르던 주민들이 강제이주 정책과 더불어 지속적으로 도시를 떠나면서 2007년에는 9명, 2013년에는 8명이 남아있었다. 2014년 센트레일리아의 마지막 시장으로 재직했으며 마을에 남아 집을 지키던 Carl Womer가 세상을 떠나고 2016년 그의 자손 역시 이주를 결정하면서 2017년 기준으로 남은 인구는 4명으로 추정된다.[4]
도시 내의 건물 또한 거의 모두 무너져 내렸으며 빈 주택들은 주에 의해 철거되었다. 2002년에는 센트레일리아의 우편번호인 17927이 말소되었다. 현재는 도시에 남아있는 주민들에 대한 이주금 지원 정책이 끝난 상태인지라 이제는 주민들이 이주를 하더라도 지원금을 받을 수 없다. 2013년에 이루어진 주민들과 주정부 간의 합의에 따라 몇몇 남아있는 주민들은 계속 그곳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 다만 그들이 사망하면 그들의 재산은 펜실베이니아 주로 귀속되며, 다른 곳으로 이사할 경우에도 살던 주택은 펜실베니이니아 주로 귀속된다.
센트레일리아 남쪽 몇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한 번즈빌(Byrnesville)이라는 도시 밑으로도 불이 번져 번즈빌 또한 폐쇄되었다. 여기는 주민이 모두 다 이주해서 사는 사람이 없고, 반파된 집 한 채만 남아 있을 뿐이다.
탄광은 지금도 불타고 있으며 과학자들에 말에 따르면 250년 동안은 더 불탈 거라고 한다.
2017년 기준으로 유독가스가 새어나오는 일은 없어졌지만 성당을 제외한 거의 모든 건물이 붕괴되고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나 얼핏 본다면 한때 마을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조차 몰라보게 바뀌었다. 다만, 기적적으로 우크라이나 가톨릭 성당[5] 이 있는 자리는 불과 무관하여, 이 마을에 살았었던 사람들이 찾아와 계속 예배를 드리고 있고 그 종파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성지로 받들어지고 있다.
센트레일리아로 가는 도로에는 스프레이로 그려진 음경[6] (...)이 엄청나게 많다.
[clearfix]
1. 개요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콜럼비아 카운티에 위치한 탄광촌. 이 도시의 타이틀이 무척이나 화려한데 '''무려 62년간 불타고 있는 도시'''이다. 정확하게는 도시 자체가 불타고 있는 게 아닌 지하 탄광에서 화재가 일어나고 있다. 호러 게임인 사일런트 힐 시리즈의 주 무대인 사일런트 힐의 모티브가 된 곳으로 매우 유명하다.
2. 역사
[image]
- 사고 전 시가지 모습
1828년 무연탄에 불을 붙이는 방법이 개발되면서 센트레일리아에 사람들이 모여 탄광촌이 형성된다. 그 후 센트레일리아의 주인이 여러 번 바뀌고 1842년 센트레일리아의 땅은 로커스트 광산 회사와 광산 기술자였던 알렉산더 래이에게 팔린다. 래는 그의 가족을 그 땅에 이주시키면서 도로를 만드는 등 개발한 뒤 그 땅을 Centreville이라 이름지었으나 1865년 오늘날의 지명인 Centralia로 바꾸는데, 그 이유는 이미 Centreville이란 지명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1854년 센트레일리아에서 생산되는 석탄을 실어나르기 위한 철도가 완공되고 최초의 광산이 1856년 열렸다. 또한 1865년에 또 다른 철도가 석탄을 수송하기 위해서 센트레일리아에 들어오면서 작은 소도시가 급격하게 발전하게 되었고 광산이 급격하게 증가했으며 1890년에는 인구수가 2761명에 이르게 된다. 센트레일리아가 가장 잘나가던 시절에는 교회가 7개, 호텔이 5개가 있었고 27개의 주점과 2개의 극장이 있었으며, 그 외에도 은행이나 우체국 등 있을 건 다 있었다고 한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광부들이 군대에 입대하고, 1929년에는 대공황으로 센트레일리아는 점차 쇠퇴하며 버려지는 탄광이 늘어갔다. 그럼에도 1960년대까지만 해도 채굴은 계속되고 있었고, 이전만큼은 못 하더라도 여전히 꽤나 잘나가는 소도시였다. 하지만 1962년, 센트레일리아의 운명을 바꾸는 화재가 발생하게 된다.
3. 사고 발생
1962년 5월 27일, 지방정부에서 고용한 소각회사 직원들이 센트레일리아 쓰레기 매립장의 쓰레기를 소각하기 위해서 쓰레기에 불을 붙이고 어느 정도까지 타도록 내버려뒀다. 그 후 소방관들이 불을 진압했지만 불은 완전히 꺼진 것이 아니었다. 남은 불씨가 매립장이 위치해있던 버려진 탄광 구덩이의 석탄에 옮겨 붙으면서 지하의 버려진 탄광에 불이 옮겨 붙기 시작했다.
센트레일리아에서 주로 생산되던 석탄은 무연탄이었는데, 한 번 불이 붙으면 끄기가 어렵다는 특성이 있다[1] . 그해 2번의 진화 시도가 있었으나 실패하고, 다음 해 한 번 더 진화 시도가 계획됐지만 주에서 이를 포기했다.
그러나 지역주민들은 1979년까지도 탄광에서 일어나고 있는 화재의 규모가 엄청나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1979년, 센트레일리아의 주유소 주인이었던 존 코딩턴은 주유소 연료 저장고의 연료량을 측정하기 위해서 저장고에 긴 막대를 넣어보았다. 그런데 저장고는 몹시 뜨겁게 느껴졌다. 이를 이상하게 여기며 저장고에 온도계를 매달아 넣어 보고서는 그 결과에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장고 안 가솔린의 온도는 무려 172°F(약 77.8°C)에 달했다. 심지어 탱크 10m 밑에서는 999°F(약 537°C)라는 경이로운 측정값이 나왔다. 보통 온도계가 3자리까지만 표시하는 것을 생각하면 실제 온도는 이보다 높은데 측정기의 여백이 모자라서 999라고 표시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이 사태로 펜실베이니아주 전체에서 센트레일리아의 화재가 주목받게 되었다. 지하 온도는 점점 높아졌고, 도로마저 갈라져 차량 운행이 불가능해지자 소방관들은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애썼으나 상황은 더 나빠져갔다. 1981년에는 한 12세 소년이 뒷마당에 생긴 직경 1.2m, 깊이 46m(!)의 싱크홀에 빠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소년 밑의 땅이 갑자기 꺼졌고 소년은 튀어나온 나무뿌리에 간신히 매달렸다. 다행히 그의 사촌이 달려와 그를 끌어 올려 구조하였다. 불타던 탄광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설상가상으로 유독가스마저 뿜어져 나오기 시작하자 연방정부 차원에서 1984년부터 4200만 달러를 들여 주민들을 강제이주시키기에 이른다.
4. 현재
- 센트레일리아의 경고 표지판 [2]
- 갈라진 도로, 유독가스가 새어나오는 게 보인다. 이 도로는 남쪽에서 센트레일리아로 진입하는 61번 도로였는데, 도로 밑의 석탄층이 타들어가면서 지형이 변형되고 아스팔트가 녹으며 쪼개지는 바람에 이렇게 되었다. 당연히 이 도로는 폐쇄되었고, 남쪽으로 우회하는 도로를 새로 냈다. 폐쇄된 도로에는 현재 매우 빼곡하게 그래피티가 그려져 있는데[3] 이게 센트레일리아를 찾는 사람들에게는 나름대로의 관광명소인 모양.
- 오늘날 센트레일리아의 스트리트 뷰#
6분 30초에 2016년에 열려야 했던 타임캡슐이 나온다. 참고로 타임캡슐은 2년 이른 2014년에 개봉되었다고 한다. 개봉되는 모습
현재는 유령도시이다. 1981년 때까지만 해도 1000명에 이르던 주민들이 강제이주 정책과 더불어 지속적으로 도시를 떠나면서 2007년에는 9명, 2013년에는 8명이 남아있었다. 2014년 센트레일리아의 마지막 시장으로 재직했으며 마을에 남아 집을 지키던 Carl Womer가 세상을 떠나고 2016년 그의 자손 역시 이주를 결정하면서 2017년 기준으로 남은 인구는 4명으로 추정된다.[4]
도시 내의 건물 또한 거의 모두 무너져 내렸으며 빈 주택들은 주에 의해 철거되었다. 2002년에는 센트레일리아의 우편번호인 17927이 말소되었다. 현재는 도시에 남아있는 주민들에 대한 이주금 지원 정책이 끝난 상태인지라 이제는 주민들이 이주를 하더라도 지원금을 받을 수 없다. 2013년에 이루어진 주민들과 주정부 간의 합의에 따라 몇몇 남아있는 주민들은 계속 그곳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 다만 그들이 사망하면 그들의 재산은 펜실베이니아 주로 귀속되며, 다른 곳으로 이사할 경우에도 살던 주택은 펜실베니이니아 주로 귀속된다.
센트레일리아 남쪽 몇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한 번즈빌(Byrnesville)이라는 도시 밑으로도 불이 번져 번즈빌 또한 폐쇄되었다. 여기는 주민이 모두 다 이주해서 사는 사람이 없고, 반파된 집 한 채만 남아 있을 뿐이다.
탄광은 지금도 불타고 있으며 과학자들에 말에 따르면 250년 동안은 더 불탈 거라고 한다.
2017년 기준으로 유독가스가 새어나오는 일은 없어졌지만 성당을 제외한 거의 모든 건물이 붕괴되고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나 얼핏 본다면 한때 마을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조차 몰라보게 바뀌었다. 다만, 기적적으로 우크라이나 가톨릭 성당[5] 이 있는 자리는 불과 무관하여, 이 마을에 살았었던 사람들이 찾아와 계속 예배를 드리고 있고 그 종파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성지로 받들어지고 있다.
센트레일리아로 가는 도로에는 스프레이로 그려진 음경[6] (...)이 엄청나게 많다.
[1] 연탄이 잘 안 꺼지고 오래도록 타는 이유와 같다. 연탄도 무연탄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2] 센트레일리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란 개드립을 쳐놓고 간 것, 후술하겠지만 낙서장이 된 지 오래인지라...[3] 그래피티 하면 흔히 생각나는 멋진 그림이나 레터링이 아니라, 상스럽고 저질스러운 그림이 그려진 사전적 의미로서의 반달리즘에 매우 충실한 그래피티이다. 현재도 계속 그려지는 중.[4] 출처: 공식 센트레일리아 사이트 기사[5] 즉 이 동네에는 주로 우크라이나계 이민자들이 살았던 것을 증명한다.[6] ol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