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공석

 

'''소나라의 역대 군주'''
소나라 건국

'''초대 소강공'''
(召康公)
희석(姬奭)

??대
소유백(召幽伯)[1]

'''{{{#ece5b6 소나라 초대 국군
연나라 초대 국군
소강공
召康公}}}'''
''''''
(姬)
''''''
석(奭)
'''아버지'''
주문왕(周文王) 희창(姬昌)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996년
'''재위 기간'''
음력
기원전 1046년 ~ 기원전 996년
1. 개요
2. 생애

[clearfix]

1. 개요


주나라 때의 소(召)나라의 제1대 군주이자 연(燕)나라의 초대 군주. 주문왕의 아들. 주무왕, 주공 단의 동생. 연후 극의 아버지. 그는 주 무왕을 따르며 상나라를 멸해 계(薊) 땅[2]에 봉 받아 연나라의 초대 군주가 되었지만, 연나라가 주나라의 수도인 호경에서 굉장히 멀기도 하고 자신이 맡았던 주 왕실의 재상 일을 등한시할 수 없어, 자신의 아들인 공자 극(克)을 보내 연나라를 다스리게 했다. 그리고 자신은 채읍인 소 땅에 머물러 소공 석이라고 불리게 된다. 주 무왕 사후 형인 주공 단과 함께 조카인 성왕을 모시며 나라를 잘 다스려 성강지치를 이룩했다.

2. 생애


주 무왕 원년(기원전 1046년), 소공 석은 주 무왕을 따라 목야대전에서 상나라를 쳐서 이기고 주왕달기와 함께 분신자살했다. 그리하여 주나라가 천하의 패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주 무왕은 정권 안정을 위해 공신과 종실의 성현의 자손들을 분봉했다. 그리하여 소공 석은 계 땅에 봉받아 연나라가 세워졌다. 그러나 소 강공은 주나라의 정사를 돌봐야 했으므로 연나라를 다스릴 여력이 없어 아들인 극에게 연나라를 맡기고 주나라의 내정을 돌보는데 전념했다. 그리하여 주 무왕은 소공 석을 소읍에 봉해 소공이 된 것이다.
주 무왕이 죽고 아들인 태자 송(誦)이 즉위하니 그가 바로 주 성왕이다. 이때 소공 석은 삼공 중 하나인 태보가 되었다. 주 성왕이 어려 주공 단이 섭정하자 소공 석은 그것을 불쾌히 여겼는데, 이에 주공 단이 군석이라는 글을 지어 주었다.
"상나라 탕왕 대에는 이윤, 태무 때에는 이척, 신호, 무함, 조을 때에는 무현, 무정 대에는 간빈 등이 상나라를 다스렸는데, 이들은 현자로서 국정을 잘 이끌었다네."
소공 석이 그 말을 듣고 불쾌한 감정이 누그러졌다.
소공 석이 섬서 지역을 다스릴 때 친히 송사를 봐주며 정사를 돌봤다고 한다.
그가 죽고 연나라는 아들인 공자 극이 다스렸다.[3]
[1] 아들의 기록이 없어 후손인 소유백으로 표기.[2] 현 북경 즉 베이징시.[3] 소나라는 아들인 누가 다스렸는지 기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