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왕(주)

 




'''주 제15대 국군
주 초대 국왕
문왕
文王
'''

'''묘호'''
'''시조(始祖)'''[1]
'''시호'''
문왕(文王) / 문황제(文皇帝)
'''작위'''
서백(西伯)
''''''
(姬)
''''''
(昌)
'''할아버지'''
주태왕(周太王) 희단보(姬亶父)
'''아버지'''
주왕(周王) 희계력(始季歷)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1152년 ~ 기원전 1056년
''' 고향'''
기산(岐山)
1. 소개
2. 생애
3. 가족
4. 기타
5. 대중 매체에서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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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주나라 무왕의 아버지이다. 고공단보의 손자. 벼슬은 서백(西伯), 이름이 희창(姬昌)이었기 때문에 서백 창이라고 불릴 때가 많다. 원래 상나라의 조공국이던 주나라를 다스렸다. 당시 주나라는 현재 섬서성 기산현인 기산(岐山)에 있는 작은 나라였는데, 이 지역은 현 인구도 40만 명밖에 안 되는 깡촌(...)이다.

2. 생애


사기에 따르면 재위기간만 50년에 수명은 90살이 넘었다고 하지만, 사실이 아니라 과장된 듯하다. 어쨌든 오래 살면서 다남(多男)했는데. 둘째 아들이 주무왕이고 넷째 아들이 주문공이다. 황제(黃帝)의 후손이라고 한다.
첫째 아들 백읍고(伯邑考)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왕위를 계승하지 않았는데, 사기의 주석에 의하면 상나라에 인질로 끌려왔다가 폭군 주왕(紂王)에게 죽임을 당했다. 서백은 자기 나라에서 선정을 펼쳐서 성인으로 불렸는데, 폭군 주왕이 이를 시기하여 문왕을 상나라 수도로 소환하여 가두고 백읍고를 죽여 쑨 죽을 먹게 했다고 한다. 문왕이 그 죽을 먹자, "성인(聖人)은 사람을 안 먹는다는데, 네가 그러고도 성인이냐?"하고 놀렸다고.
이후에 주나라에서 주왕에게 미녀와 보물을 바쳐 문왕이 풀려나오게 했다. 이때 문왕은 주나라 영지에서 가장 비옥한 낙서 지역을 바치는 조건으로 포락지형을 폐해달라고 했다. 주왕은 문왕의 의도를 알았지만 낙서가 탐이 났기 때문에 조건을 받아들였다.
이후에는 주변 이민족을 평정하고, 태공망 강상(姜尙)을 등용하였으나 나이가 들어서 사망하였다. 후에 아들 주무왕이 상나라를 정벌하고 천자가 되자 아버지 서백 창에게 '문왕'이란 시호를 추증했다.

3. 가족


  • 아버지: 계력
  • 어머니: 태임[2]
  • 아내: 태사
이하는 적자.
  • 장남: 희고. 일명 백읍고
  • 차남: 희발. 주무왕
  • 삼남: 희선. 관숙선. 관나라에 봉해졌으나 삼감의 난 이후 봉지를 박탈당했다. 후손도 남기지 못했다.
  • 사남: 희단. 주공단. 노나라의 시조.
  • 오남: 희도. 채숙도. 채나라의 시조.
  • 육남: 희진탁. 조숙진탁. 조나라의 시조.
  • 칠남: 희무. 성숙무. 성나라의 시조였으나 춘추시대 초중반기에 제나라에게 멸망해 후손을 알 수 없다고 한다. 주나라에서 주성왕의 섭정기에 역할을 했다.
  • 팔남: 희거. 곽숙거. 나라의 시조. 삼감의 난 이후 3년간 봉지를 박탈당했다가 복귀했다.
  • 구남: 희봉. 강숙봉. 위나라의 시조. 주나라에서 사도를 맡았다.
  • 십남: 희재. 염계재.[3] 염나라의 시조이나 후손을 알 수 없다고 기록할 정도로 약했다. 주나라에서 사공을 맡았다. 노나라 염씨 가문이 후손이라고 하나 근거는 없다.
이하는 서자.
  • 희석. 소공석. 연나라의 시조.
  • 희고. 필공고. 주나라에서 태사를 지냈다. 필나라의 시조이나 오래 가지는 못한 듯 하며, 아들은 반나라의 시조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오래가지는 못하였으나 반씨의 시조로 인정받는다. 훗날 후손인 필만이 진나라에서 벼슬을 하였고 그의 손자인 필주가 진문공의 즉위에 공을 세워 위 땅에 봉해져 위나라의 시조가 된다.
  • [4]

4. 기타


  • 문왕이 감옥에 갇혀있을 당시 감옥에서 역경을 지었는데, 이를 주역이라고 한다.
  • 문왕의 일곱째 아들 성숙무는 창녕 성씨의 시조, 열두째 아들 진탁은 창녕 조씨의 시조, 열다섯째 아들 필공고는 거제 반씨의 시조라고 한다.

5. 대중 매체에서의 등장


봉신연의에서는 서백이 아니라 한 단계 높은 벼슬인 서후(西候)로 나온다. 자세한 것은 희창(봉신연의) 참조.
[1] 무주 성신황제 추존.[2] 훗날 태임을 본받겠다는 의미에서 지은 호가 사임당. 즉 신사임당이란 이름의 모티브가 된 사람이다.[3] 담계재라고도 한다. 뒤에 나오는 염나라도 담나라로 불리기도 한다.[4] 봉신연의에서는 100번째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