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초

 


孫楚
(? ~ 293)
삼국시대 위나라, 서진의 인물. 자는 자형(子荊). 손자손자.
태원군 중도현 사람으로 재능이 탁월하고 성품이 시원해 무리에서 벗어났으며, 그래서 남을 업신여기고 거만해 시골 사람들 사이에서는 평판이 좋지 않았다. 손초는 40여세에 들어서 진동군사가 되었다가 사마소의 지시로 손호에게 항복 권고문을 보냈다.
이후 좌저작랑이 되었다가 석포의 표기군사로 참가했고 손초는 자신의 재능에 자부심을 가져 석포를 얕보았는데, 손초와 갈등한 석포가 손초가 오나라 사람인 손세산(孫世山)과 함께 진나라를 비판한다는 상주를 했다. 손초는 이에 맞서 몇 년 동안 논리를 갖춰 상주했지만 결말이 나지 않았다.
고향 사람인 곽혁과도 분쟁을 일으켰고 손초는 정서장군이 되었다가 사마준의 참군, 양의 현령, 위장군의 사마 등을 역임했으며, 양의 현령으로 있을 때 무기고의 우물 속에서 용이 목격되자 군신이 축하를 했고 손초는 이 징조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작은 잘못을 용서하고 풍속을 바로잡아 선정을 펼치라는 상주를 했다.
아내가 죽고 상을 치루다가 상을 벗을 때가 되자 시를 지어 왕제에게 보여줬는데, 왕제가 문장을 칭찬하면서 시를 보고 서글픈 마음에 배우자를 존중하는 마음이 더 생겼다고 말했다. 자신의 재주에 자부심이 강해 존경하는 인물은 적었지만, 왕제 만은 인정했고 왕제가 죽자 눈물을 흘렸다가 왕제가 나귀 울음소리 흉내내는 것을 좋아했기에 흉내냈다.
사람들이 모두 웃자 손초는 그대들을 살아남게 했기에 이 사람이 죽게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290년에 풍익태수가 되었다가 293년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