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준

 

1. 서진의 황족 부풍왕 사마준
2. 사마유의 둘째 맏손자 화용왕 사마준(司馬遵)
3. 사마의의 할아버지 사마준(司馬雋)


1. 서진의 황족 부풍왕 사마준




司馬駿
(232년? ~ 286년 음력 9월 29일)
서진의 황족. 사마의의 7남으로[1], 어머니는 복부인. 자는 자장(子臧)으로 시호는 무(武). 시호를 따 부풍 무왕이라고도 부르며, 사마량, 사마주, 사마경, 사마간의 동복 형제이며 아들로는 사마창, 사마흠을 두었다.
어려서부터 학문으로 이름을 날렸는데, 대여섯 살에는 글과 경전을 떼고 여덟 살에는 산기상시가 되어 조방에게 글을 강론했을 정도였다. 장성해서도 비뚤어지지 않고 도를 지켰기에 '''서진 종실 내 최고의 준걸'''로 기대를 받았다. 이 평은 결과적으로 사마준의 행보에 딱 맞아떨어지게 되었다.
위 경초 연간[2]에 평양정후(平陽亭侯)로 봉해졌다가 이후 보병교위, 둔기교위 등을 역임했다가 다시 상시가 되었으며, 작위가 향후(鄕侯)로 오른 뒤에는 평남장군, 가절, 도독회북제군사가 되면서 평수후로 고쳐 봉해 안동장군으로 옮겨졌고 대오 전선을 책임졌다. 264년에는 동무후로 봉해졌고 안동대장군으로 옮겨 허창을 지켰으며, 265년에 서진이 건국되자 여음왕에 봉해졌고 식읍 1만호가 되었다.
도독예주제군사가 되어 대오 전선의 사령관으로서 사마준은 작피를 공격한 정봉의 군세를 격퇴했으며, 또한 합비에서 정봉, 제갈정의 공세를 막아냈고 사지절, 도독양주제군사가 되어 석포를 대신해 수춘을 지켰다. 자세한 사항은 석포 항목을 참조. 이 때의 활약으로 서진 조정은 사마준의 능력에 주목하게 되어 이는 그가 독발수기능의 난에 투입되는 밑바탕이 되었다.
다시 도독예주제군사로 복귀해 허창을 지키다가 진서대장군, 사지절, 도독옹양등주제군사로 옮겨져 사마량을 대신해 관중을 지키고 곤면, 시중의 옷 등을 더했다. 사마준은 선정을 베풀어 위엄이 있었고 농사, 양잠 등을 권하고 노역을 함께 했으며, 관리, 병사 등도 사인과 같이 밭을 10무로 제한하고 표문을 올렸으며, 이에 사마소가 진나라의 주, 현들에게 사람을 보내 관리들이 농사에 힘쓰도록 했다.
그리고 대망의 270년에 '''독발수기능의 난'''이 일어났으며, 호열이 전사하고 석감이 사고를 터뜨린 뒤 사마준은 진서대장군으로 옹주, 양주의 모든 군사를 총괄했다. 첫 1년은 독발수기능과 대치하며 전선의 소강 상태를 이끌어냈지만 이후 관중 지역의 기근과 견홍의 전사로 진주와 옹주의 약탈을 허용하고 말았으며, 사마준은 결국 패전의 책임을 지고 경질되는 굴욕을 맛보았지만 문제는 그 다음 사령관이 가충이라...
결국 1년도 채 지나기 전에 사령관으로 복귀했고 이 때 사마준은 전번의 기근을 교훈삼아 각지에 둔전을 설치했는데, 이 정책은 매우 효과적이어서 사실상 파탄난 관중의 인프라 복구에 공헌했다. 이후 274년 사마준은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으며, 4년에 걸친 그의 공세에 독발수기능은 엄청난 피해를 입고 퇴각했다. 이 때의 전공을 대강 정리해 보자면.
  • 274년에 금성군을 침공한 오랑캐를 격퇴하고 그 수령 걸문니(乞文泥)를 참살.
  • 275년에 독발수기능을 격파하고 삼천여 명을 참살해 정서대장군으로 진급하고 의동삼사가 되어 지절, 도독은 예전과 같이 함.
  • 275년에 서역무기교위 마순을 보내 배반한 선비족을 토벌.
  • 276년에 서역무기교위 마순을 보내 변경을 침범한 오랑캐를 격파.
  • 277년에 문앙을 보내 독발수기능 외 오랑캐들을 위협. 이 때의 투항자 수만 무려 이십여 만.
'''... 사실상 독발수기능의 몰락은 이 사람 대에 이뤄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다만 변방의 약소 군세로 몰락한 독발수기능은 끝내 재기에 성공해서 양주를 점거하는 초유의 사태를 벌인다. 양주의 상실로 근심에 빠진 사마염은 서방으로 마륭을 파견보내서 독발수기능을 끝장낸다.
공으로 부풍왕에 봉해지고, 280년에 표기장군으로 진급했다. 사마유를 쫓아내려 한 순욱, 풍담에 맞서 그를 산동으로 보내는 걸 반대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햇고 286년 9월 29일에 병사했다.
사후에 대사마로 추증되고 시중, 황월이 더해졌으며, 서방의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듣고 슬퍼하는 자들이 많았고 백성들은 그 비석을 세워 장로들이 그 비석을 보면 절했다. 나중의 역사를 보면 험한 꼴 보기 전에 잘 도망간 셈이다.
아버지큰형에 비교해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 인물로 평가된다.[3] 특히 군사적 실적은 사마의의 아들들 중 제일이라서 아버지의 군재를 가장 잘 이어받은 아들이라고 봐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효행이 있어 어머니 복부인이 형 사마량이 임관할 때 따르자 이를 사모하면서 눈물을 흘렸고 병이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언제나 걱정했으며, 때에 따라 관지을 위임하고 아침 저녁으로 문안했다고 한다. 또한 저술, 이론에 능해 순의와 인효의 선후에 대해 논했고 문장은 칭찬을 받았다.
여담으로 서진 태시 6년(270년) 이래 진서대장군 도독옹량주등제군사(都督雍凉等州諸軍事)로 관중에 진을 치고 있었을때 여러 사대부들이 제갈량에 대해 논했는데 다수는 제갈량을 비웃었다. 이에 금성 사람 곽충이 이에 대해서 반박하여 관중안영보다 뛰어나다고 다섯가지 일화를 제시하니 제갈량을 비웃던 사대부들은 반박할 말을 꺼내지 못했고 이를 사람들이 곽충 오사라고 했다. 사마준은 곽충의 말이 옳다고 했다고 한다.
삼국전투기에서는 형들이 청의 엑소시스트으로 패러디로 되면서 자연스럽게 패러디는 아서 A 엔젤.

2. 사마유의 둘째 맏손자 화용왕 사마준(司馬遵)


사마소의 둘째이자 사마사의 양자로 들어간 사마유(司馬攸)의 손자.
사마유의 맏아들 요동왕 사마유(司馬蕤, 아버지와 한자 다름)의 둘째 아들이다.
사마유의 맏아들 제왕 사마유지(司馬柔之)가 형.
별거 없고 그냥 1과 이름이 같아서 작성되었다(...)

3. 사마의의 할아버지 사마준(司馬雋)


사마의의 할아버지, 사마방의 아버지로 위 두 인물들에게는 각각 증조부와 6대조가 된다.
예장태수 사마량(司馬亮)의 아들로 태어났고, 영천태수를 지냈다.

4. 유희왕 듀얼몬스터즈의 캐릭터


유희왕의 등장인물 인섹터 하가의 한국판 명칭. 인섹터 하가 항목 참조.

[1] 세설신어에 따르면 17남이라고 한다.[2] 237 ~ 239년이다.[3] 사실 큰형과는 아버지뻘, 아버지와는 할아버지뻘의 나이 차이다. 큰조카인 사마염하고 나이차이가 고작 3살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