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리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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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이미지는 콘스탄티누스 2세 시대의 것이다.
라틴어: solidus
그리스어: νόμισμα
솔리두스는 로마 제국에서 통용되었던 금화이다. 기존의 아우레우스 금화를 대체하여 콘스탄티누스 1세 시대에 도입되어 이후 1000여 년간 사용되었다. 금 함유량은 4.48 그램으로, 원칙적으로 순금이었지만 당대 정제기술의 한계로 순도는 95.8 퍼센트이다.
이 금화를 제국 동방의 그리스어권에서는 '돈'이라는 뜻의 노미스마nómisma(νόμισμα)라고 불렀고, 동로마 제국 시기에는 솔리두스와 노미스마가 같은 뜻으로 쓰였다. 지중해권에서는 비잔티움에서 유래한 베잔트(bezant)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회계단위이자 일종의 기축 통화로서 널리 사용되었다.
10세기 말이 되면 재원조달을 위한 경량금화인 테타르테론Tetarteron(τεταρτηρόν)이 생겨나면서 점차 소량으로 생산되어 희귀해졌고, 11세기 중엽부터는 순도 하락이 시작되어 두카스 왕조 시기에 이르면 금화의 순도가 1/4로 떨어지는 등 가치가 결정적으로 폭락하였다. 이에 알렉시오스 1세는 1092년에 화폐개혁을 단행하였고, 구 노미스마가 지니던 최고액 금화의 지위를 대략 '고도로 정련된 화폐'라는 의미의 신(新) 노미스마인 노미스마 '''히피르피론hypérpyron'''(νόμισμα ὑπέρπυρον)로 대체하였다. 하지만 히피르피론은 구 노미스마만큼 대량으로 주조되진 않았으며, 납세용 화폐도 좀더 저렴한 합금인 금동, 은동화로 바뀌었다. 이러한 식으로 제국 정부는 소액화를 통해 현금화율을 일정 이상으로 유지하려 노력하였으며, 때문에 제국의 경제권은 노미스마로 상징되는 금본위제도에서 은본위제도로 점차 옮겨갔다.
이렇게 11세기 말 시작된 제국의 화폐 질서 혼란기를 종식시킨 신 화폐체제의 대표주자인 히피르피론은 구 노미스마의 7/8의 순도를 지녀 콤니노스-앙겔로스 시대가 끝나는 1204년 이전까지 대략 7할 이상의 순도를 가지며 안정된 가치를 유지하였다. 통일 제국 경제권이 붕괴하는 라틴 제국 시기, 망명 정권하 하위 화폐들의 가치 하락에도 불구하고 5할이상의 순도를 유지하였다. 팔레올로고스 왕조 시대 제국의 상황이 악화되며 완전히 은본위 사회로 접어들었음에도 제국의 자존심으로서 소량이나마 유통되던 히피르피론은 14세기 말에 이르러 제국의 금 수급이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자 장부상의 단어로만 남게 되었으며, 1453년 제국이 멸망하면서 명맥이 끊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