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본위제도
1. 개요
'''금본위제도'''(金本位制度, Gold standard)는 화폐 단위의 가치와 금의 일정량의 가치가 등가관계(等價關係)를 유지하는 본위제도를 말한다. 비슷한 제도로 은본위제도가 있다.
2. 원리
금을 직접적으로 화폐로 이용한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또한 안정적이고 가치가 높은 금화의 유통은 국가의 경제를 떠받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다음은 그중 유명한 것들이다.
근현대에는 대영제국이나 미국과 같은 패권국가의 화폐를 일정량의 금으로 바꿀 수 있도록 교환 비율을 정하고, 다른 나라들이 자국의 화폐를 그 강대국의 화폐와 연동하는 식으로 펼쳐졌다. 간단히 말하자면 중앙은행이 통화량과 같은 금을 보유하고 있고, 지폐를 가져오면 일정 비율을 금으로 바꿔주는 것이다. 예컨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71년까지 유지되었던 브레튼우즈 시스템의 경우, 35 미국 달러를 중앙 은행에 주면 금 1온스를 얻는다. 물론 일반인이 금을 가져간다고 해서 받아 주는 것은 아니다.
금이 귀금속의 일종으로서 공급이 상당히 제한되어 있었기에[1] 패권 국가가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개방 경제 체제 하에서 금본위제는 세계 경제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제도가 된다. 19세기 중엽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영국 중심의 고전적 금본위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70년대 초반까지 유지되었던 미국 중심의 고정 환율제(브레튼 우즈 체제)가 그 좋은 예이다.
금본위제 시행 이전엔 금과 은을 동시에 사용하는 복본위제가 운영되었다. 즉 금과 은, 혹은 은과 동을 법정화폐로 동시에 인정하는 것이다. 유럽에서 경제력이 강한 영국과 프랑스는 금은복본위제. 금이 부족하거나 동이 풍족한 스웨덴과 러시아는 은동복본위제를 운영했다. 이 경우 시장에 통화가 부족한 일이 일어나기 어렵지만 대신 국제시장에서 금은 시장가격과 해당국가 법정 교환비가 다른 경우가 생겨난다. 이 경우 차익거래를 통해 가치가 올라간 화폐를 녹여서 상품으로 전환하거나 가치가 내려간 화폐만 시장에 도는 상황이 생긴다. 이를 발견한 것이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는 그레샴의 법칙이다
3. 종류
- 금화 금본위 제도: 금화 자체가 화폐로서 시장에 유통되는 제도다. 금화의 주조와 융해가 가능하기에 금의 가치가 곧 화폐의 가치가 된다.
- 금핵 금본위 제도: 중앙 은행에 금을 비축해 두고, 금의 가치만큼 지폐로 된 화폐를 발행하여 시장에 유통시키는 제도이다. 태환의 형태에 따라 금지금 본위 제도와 금환 본위 제도로 나뉜다.
- 금지금 본위 제도: 은행이 보유한 금괴와 화폐를 교환해주는 제도이다.
- 금환 본위 제도: 금본위제를 시행하는 국제 금융 중심지(e.g. 영국)의 화폐를 보유함으로써, 금 보유와 같은 효과를 내는 것이다. 금환 본위제를 시행하는 각국은 금을 보유한 국가가 발행하는 금환을 중앙 은행에서 발행한다. 따라서 이 나라의 화폐는 불태환 화폐라 할 수 있다.
4. 장단점
4.1. 장점
- 금본위제에 기반한 안정적 통화 수급은 물가를 크게 안정시켰다.[2]
- 금본위제에서 기반한 고정 환율 제도는 환리스크를 크게 감소시켰다.
- 자유 무역 체제 하에서 시행되는 금본위제는 각국에 무역 수지와 재정 수지의 균형을 담보하였다.
- 외부에서 오는 경제적 충격에 영향을 덜 받는다.[3]
4.2. 단점
- (기술 발전 등의 이유로) 생산성이 향상되어 금의 채굴속도를 상회할수록 디플레이션을 유발하게 된다. 즉 금의 채굴 속도가 통화 공급량을 조절하게 된다. 그리고, 이 금의 채굴량을 급격하게 늘리거나 줄이는 것이 매우 어렵다. 따라서 통화 정책이 사실상 불가능해지고, 화폐 공급 또한 불안정하며 경기와 전혀 상관 없게 된다. 즉, 경제 변동에 대해 신속히 대응할 방법이 거의 없게 된다.
- 여러 나라가 금본위제를 시행할 경우, 그 중 하나의 나라에서 내부적인 경제 충격이 오게 되면 그 충격은 그대로 다른 나라에까지 전달된다. 충격이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가는 셈이다.
- 중앙은행들은 물가를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금을 확보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즉 금본위제 국가 사이에서는 제한된 자원을 누가 더 많이 갖느냐 하는 게임이 되며, 이는 필요 없는 국제 갈등을 불러온다.
- 경제 규모의 성장 속도에 비해 금의 매장량이 턱 없이 부족하다.[4]
- 참고: 연준의 기원과 목적에 대한 버냉키의 강의 중에서 제 7강 '금본위제'
5. 역사
5.1. 19세기 열강의 금본위제 도입
1867년 유럽 통화 회의에서 주요 열강들은 자국 통화에 대한 금본위제를 도입하기로 약정하였고, 1890년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금본위제 전환을 마지막으로 이는 현실화되었다. 일본의 경우, 청일전쟁과 삼국간섭의 결과 획득한 막대한 보상금으로 1897년 금본위제를 실시하였다.[5]
5.2. 제1차 세계 대전과 대공황
제1차 세계 대전으로 막대한 통화량이 필요해지자 각국은 금태환을 일시 정지하고 통화증발에 나섰다. 이는 실물과 통화량을 연동시키던 금본위제에 대한 상당한 타격이었다. 게다가 1920년대 전후 복구 과정에서 금본위제로 복귀하던 와중 대공황 발발로 구 파운드 중심의 금본위제는 결정적으로 무너져 버렸다. 영국은 1925년 금본위제로 복귀했다가, 1931년 금본위제를 포기하였다.
일본은 열강 중 가장 늦은 1930년 금해금을 통해 금본위제로 복귀하였으나 대공황이 한창이던 시기였던지라 대실패. 쇼와 공황을 불러오면서 경제가 거의 붕괴 위기에 직면한다. 결국 1931년 다시 금본위제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엔화 가치를 안정시키기 위해 금을 끌어모았다.[6]
명나라 이래로 은본위제도를 채택하고 있던 중화민국 국민정부는 1934년에 실시된 미국의 은 구입법으로 경제 위기가 발생하자 은본위제를 폐기하고 금본위제를 실시하고자 했으나 미국 측에서 미국의 금을 은으로 사고 싶다는 중화민국의 요구를 거절하면서 금본위제 전환을 포기하고 1935년 11월 4일 법폐개혁을 단행함으로 관리 통화제를 실시했다.
대공황 당시의 상황은 기존 패권국이었던 영국의 무능력과 새로이 패권국으로써 리더십을 발휘했어야 할 미국의 의지부족과 방관이 겹쳐지면서 일어난 것이었다. 즉 패권교체 시기, 과도기의 혼란으로 볼 수 있다.
5.3. 브레튼 우즈 체제(1944~1971)
[image]
2차대전에서 연합국의 승리가 확실해지자, 미국은 전후 세계의 금융질서를 세우기 위한 회의를 개최했다. 미국의 해리 덱스터 화이트(Harry Dexter White)와 영국의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가 거의 3년 동안 머리를 맞대고 준비한 끝에 1944년 7월 1일, 44개 동맹국과 이들의 식민지에서 온 730명의 대표단이 미국 뉴햄프셔 주, '''브레튼 우즈'''(Bretton Woods)라는 스키 휴양지에 있는 마운트 워싱턴 호텔에 모였다.
소련을 포함한 전세계 44개 국가와 정부를 비공식으로 대표하는 전문가들이 모인 회의 석상에서 신통화제도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는데 케인즈는 어느 국가의 통화도 아닌 국제 통화인 방코르(Bancor)를 도입할 것을 지지하였으나, 해리 덱스터 화이트[7] 는 패권국이 된 미국의 USD를 통용할 것을 주장하였다. 결국 미국의 입장이 받아들여져 미국 달러를 기축통화로 한 금본위제를 채택하기로 결정하였고, 이것을 브레튼 우즈 체제(Bretton Woods system, BWS)라고 부르게 된다.
고전적 금본위제와의 결정적인 차이는 각국의 중앙은행이 금 태환을 독자적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만이 독점적으로 금 태환을 실시'''하는 것으로써, 타국 통화는 모두 USD와의 환전을 통해 간접적으로 금과 연결되었다. 세계 각국의 화폐가 (주기적으로 변경되는) 고정 환율로 달러와 고정되고, 달러는 35달러당 1온스로 교환할 수 있게 고정한 것이다. 이 제도를 시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제2차 세계 대전동안 유럽의 각국이 미국의 물자를 금으로 구입하고 패전국들이 전쟁 배상금을 금으로 지불하면서, 종전 당시 미국이 전 세계 금의 무려 70%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링크
전후 서유럽 국가들은 재건을 위해 막대한 양의 돈을 찍어 유통시켜야 했는데, 자체적으로 금본위 제도나 은본위제도를 실행할 만큼의 금은이 국고에 없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신용 화폐'에 대한 개념이 없었으므로, 전시도 아닌 평상시에조차 금이나 은으로 태환이 안 되는 화폐가 신용을 얻으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당시 경제활동 인구, 특히 투자 / 고용을 주도할 장년층들은 두 번의 세계 대전과 전간기 독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직접 경험 / 목격한 세대였다. 지금(2010년대)이야 정부의 신용을 담보로 발행하는 화폐를 의심하는 것이 이상하지만, 당시는 오히려 믿는 쪽이 이상했던 시절이다.
전쟁 직후 이들이 발행한 지폐는 '''사실상 미국이 대리로 보증을 서준 셈'''. 미국은 미국대로 서유럽의 동맹국들을 쑥대밭으로 내버려두면 당시 떠오르는 강자였던 소련에 의해 전 유럽이 공산화될 위험이 있었고, 어느 국가의 통화도 아닌 방코르는 위험했기 때문에[8] 미국 달러를 기축 통화로 민 것이다.
한편 브레튼우즈 회의에서 결정한 것은 단지 기축통화뿐만은 아니었다. 대표단은 화이트와 케인즈가 제시한 의제 검토에 착수했고 3주에 걸친 다자간 협상을 한 끝에 세계은행(The World Bank), 국제 통화 기금(The International Monetary Fund), 국제부흥개발은행(The International Bank for Reconstruction and Development)을 설립하기로 했다. 이 기구들은 전쟁으로 초토화된 유럽을 회생시키고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자유무역이 지배하는 세계 경제 체제의 근간을 마련했다.
동시에 이 회의 석상에서 미국 대표단은 막강한 미국의 해군력으로 전세계의 모든 해상무역로를 보호할 것이며, 동시에 세계적으로 가장 거대한 미국 시장을 외국에 개방할 것임을 약속하였다. 미국이 전적으로 비용을 부담하고 모든 해상 무역을 철저히 보호하는 동시에 인류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소비 시장인 미국에 대해 무제한의 접근 기회를 부여했고, 미국이 제시한 이 체제에 동참하는 국가들이 자국의 시장을 미국 상품에 개방하리라는 기대는 크게하지 않겠다고 했다. 미국은 사실상 회의에 참석한 모든 나라의 경제를 간접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셈이었다. 즉 브레튼우즈 회의에서 결정된 것은 앞으로 세계경제는 막강한 미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에 바탕을 둔 자유무역체제로 굴러갈 것이라는 사실이다.[9]
5.4. 브레튼 우즈 체제의 종말
1971년 8월 15일 리처드 닉슨이 금태환 정지를 선언(닉슨쇼크)하며 금본위제는 사실상 막을 내렸으며, 이후 세계 화폐 시장은 기본적으로 변동 환율제에 의해 굴러가게 되었다.
5.4.1. 문제점
대략 30년 정도 굴러갔던 브레튼우즈 체제의 금본위제도에는 결정적인 문제점이 내포되어 있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금본위제하의 주요국들의 정치적, 경제적 충격에 따라 경제 불안이 가중되면, 사람들의 기대도 부정적인 방향으로 형성된다.
- 세계 경제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가 "우리는 수출만 하고 수입은 안 함 ㅇㅇ"과 같은 정책을 견지하거나 자기 세력권 내에서 블록을 형성하여 자기네끼리만 무역을 할 경우, 협력 시스템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여러 강대국을 중심으로 한 제살깎아먹기 폐쇄 경제 시스템으로 추락할 가능성이 있다. 대공황 시기 미국 등 주요 국가들의 삽질이 대표적이었다.
- 트리핀의 딜레마(Triffin's dilemma)
>달러를 국제 거래에서 사용하려면 그만큼 달러를 많이 찍어내서 전 세계에 공급해줘야 한다. 그런데 달러를 많이 찍어내면 달러의 가치가 떨어져서 아무도 달러를 받으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달러 가치를 유지하려고 달러를 조금만 찍어내면 국제 거래에서 달러가 부족해진다.
국제 정치학 및 경제학에서 중요한 개념이다. 미국의 35달러를 금 1온스와 연동하고 다른 나라의 화폐를 달러와 연동함으로써 형성된 환율 제도로 서구권의 붕괴는 일단 막았다. 그 다음 스텝으로 세계 경제가 활발히 돌아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이 끊임없이 달러를 세계 시장에 공급하는 것이었다. 세계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국가 간의 거래도 늘어나는데, 이에 필요한 화폐는 세계의 표준 화폐인 달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국이 달러를 세계 시장에 공급할수록 1달러의 상대적인 가치는 떨어지게 된다. 그렇지만 명목상으로 달러는 여전히 35달러당 금 1온스의 가치를 보증하게끔 되어 있다. 따라서 미국이 보유한 금보다 달러 발행을 지나치게 많이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다른 나라에서는 달러를 모두 미국에 주고 금을 요구하면 개이득이 된다. 이것이 실제로 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 골의 정책이다.
당연히 드 골이라고 깽판치고 싶어서 이런 것은 아니고, 프랑스 경제가 68운동이라는 정치적 위기에 처해서 침체할 것으로 예측한 환투기 세력이 프랑스 프랑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베팅한 것이 원인이었다. 고정 환율제하에서는 프랑화 가치를 유지해야 했으므로 계속 외환 시장에 개입했는데, 막상 싸우다보니 영국보다도 풍족했던 금 보유량이 겨우 14일 만에 모조리 소진되고 말았다. 프랑스가 고정 환율제를 포기할 게 아닌 이상에야 어디선가 금을 계속 구해와야 했고, 가장 확실한 수급처는 미국의 금 태환이었던 것이다. 달러를 갖다주고 금을 가져와서 프랑화를 계속 방어해야 했던 것. 프랑스로서는 고정 환율제라는 약속을 어기지 않기 위한 대응이었으나, 이 행동이 금본위제라는 더 근본적인 약속을 깨트릴 도화선이 될 거라는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금 1온스 = 35달러"의 원칙에 대한 신뢰는 바닥을 치게 되고, 이걸 가만히 내버려두면 세계 경제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즉, 금의 보유량이 일정하다는 가정 하에서, 통화 가치와 통화량은 반비례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안정된 가치와 증가된 통화량 둘 다를 가져가고 싶은 것이 바로 트리핀의 딜레마.
국제 정치학 및 경제학에서 중요한 개념이다. 미국의 35달러를 금 1온스와 연동하고 다른 나라의 화폐를 달러와 연동함으로써 형성된 환율 제도로 서구권의 붕괴는 일단 막았다. 그 다음 스텝으로 세계 경제가 활발히 돌아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이 끊임없이 달러를 세계 시장에 공급하는 것이었다. 세계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국가 간의 거래도 늘어나는데, 이에 필요한 화폐는 세계의 표준 화폐인 달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국이 달러를 세계 시장에 공급할수록 1달러의 상대적인 가치는 떨어지게 된다. 그렇지만 명목상으로 달러는 여전히 35달러당 금 1온스의 가치를 보증하게끔 되어 있다. 따라서 미국이 보유한 금보다 달러 발행을 지나치게 많이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다른 나라에서는 달러를 모두 미국에 주고 금을 요구하면 개이득이 된다. 이것이 실제로 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 골의 정책이다.
당연히 드 골이라고 깽판치고 싶어서 이런 것은 아니고, 프랑스 경제가 68운동이라는 정치적 위기에 처해서 침체할 것으로 예측한 환투기 세력이 프랑스 프랑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베팅한 것이 원인이었다. 고정 환율제하에서는 프랑화 가치를 유지해야 했으므로 계속 외환 시장에 개입했는데, 막상 싸우다보니 영국보다도 풍족했던 금 보유량이 겨우 14일 만에 모조리 소진되고 말았다. 프랑스가 고정 환율제를 포기할 게 아닌 이상에야 어디선가 금을 계속 구해와야 했고, 가장 확실한 수급처는 미국의 금 태환이었던 것이다. 달러를 갖다주고 금을 가져와서 프랑화를 계속 방어해야 했던 것. 프랑스로서는 고정 환율제라는 약속을 어기지 않기 위한 대응이었으나, 이 행동이 금본위제라는 더 근본적인 약속을 깨트릴 도화선이 될 거라는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금 1온스 = 35달러"의 원칙에 대한 신뢰는 바닥을 치게 되고, 이걸 가만히 내버려두면 세계 경제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즉, 금의 보유량이 일정하다는 가정 하에서, 통화 가치와 통화량은 반비례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안정된 가치와 증가된 통화량 둘 다를 가져가고 싶은 것이 바로 트리핀의 딜레마.
- 트리핀의 딜레마보다 더한 것은 미국의 국제 수지 적자라 할 수 있다. 미국은 1940년대까지는 무역 수지 흑자국이었으나, 1950년대 들어 유럽, 일본 등의 추격으로 국제 수지는 적자가 되었다. 그에 따라 외국의 달러 보유고는 늘어난 반면, 미국의 금은 지속적으로 유출되어 달러화의 가치는 계속 추락하게 되었다. 더욱이, 존슨 행정부의 '위대한 사회' 계획이라는 대규모 복지 프로그램과 베트남 전쟁 전비로 정부 지출이 폭증했고 이는 무역 수지 적자를 심화시켰다. [10]
- 불가능의 삼각정리
옵스펠드, 크루그먼 등에 따르면 '고정 환율', '자유로운 자본 이동 보장', '자주적인 통화 정책' 세 가지를 동시에 충족하는 것은 불가능하고[11] 기껏해야 두 개 정도만 충족할 수 있다. 금본위제는 고정 환율 제도라 볼 수 있는데, 이 경우 한 나라의 통화 정책은 그 통화 가치 유지에만 쓰이므로 자본 이동을 제한하지 않고서는 자주적인 통화 정책을 사용하기가 어렵다.[12]
- 금광이 많은 국가들은 다른 나라에 비해 금 보유 측면에서 유리하므로 국제적인 부의 분배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물론 해당국들이 좋아할 수도 있겠지만, 자원의 저주라는 현상 때문에 장담은 못한다. 특히 그 옛날 에스파냐 제국이라든가.
5.4.2. 대처법
브레튼 우즈 체제를 유지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 미국의 공식적인 달러 가치 절하
미국은 선진국들과 합의하여 이를 어느 정도 실천하기는 했으나(스미소니언 협정), 그 정도는 너무 더뎠을 뿐만 아니라 상기한 미국의 쌍둥이 적자가 지속되어 스미소니언 협정은 파기되고 아래와 같이 변동 환율제로 이행하게 된다.
- 달러의 대대적인 긴축
미국내의 경제불황을 야기시키며 가뜩이나 심각한 국제 수지 적자를 심화시킬 수 있었다.
- 미국 중앙은행이 금 보유를 늘리는 것
자산 비중 조정 등 방법은 무관. 자원이 많은 소련이 좋아했다.
5.5. 이후
지금은 '''전 세계 GDP가 전 세계 금 매장 추정량의 가치보다 크고''' 거기에다가 생산된 금의 10%는 원자재로 쓰이기 때문에[13] 금본위제를 다시 하고 싶어도 도저히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6. 금본위제 이후 변동 환율제의 문제점
1971년을 끝으로 세계 경제는 변동 환율제를 채택할 수밖에 없었다.
1990년대부터 이상한 조짐이 여기저기서(동아시아, 러시아) 보이기 시작하더니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가 세계를 휩쓴 후 '''변동 환율제의 근본적 문제인 세계적 불균형'''(global imbalance)이 가장 심각하다.
어느 국가가 돈을 찍어서 의도적으로 자국 화폐의 가치를 낮추면, 그 국가의 상품이 국제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이 강화돼서 수출이 늘어난다.[14] 자국 화폐를 절하시켜서 떨이에 팔아서 번 돈이니 제살 깎아먹기 같지만, 그렇게 벌어온 수입으로 인한 경제 성장이 수입 물가 상승으로 인한 타격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고, 수입 물가의 상승은 수입품보다는 자국산의 메리트를 높이므로 내수시장도 활성화 시킨다. 즉 손해나 부작용은 거의 없고 이득만 있는 꿀정책. 문제는 너도 나도 이 짓을 했다가는 상대적 경쟁력이나 경제는 제자리걸음일 뿐인데 물가 / 자산 가격만 잔뜩 올라서 저축했던 사람들, 채권에 투자했던 사람들만 피를 보고 양극화는 더 심화된다.
아직 이 문제에 '''완벽한 답은 없다.''' 사실 짧게 보면 100년, 길게 보면 수백 년 넘게 금본위의 땜빵에 땜방으로 버티던 세계 자본주의의 경제 문제를 체제 안에서 해결하는 셈이니 만약에 그것을 찾는다면 그 사람은 노벨경제학상을 받고도 남을 것이다.
위에 거창하게 써놨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재 부자들의 고통 분담이 요구될 뿐... 폭증한 통화량 덕에 자산 가격이 오른 것이 문제이므로 자산 자체에 대한 세금을 거두면 된다. 현재 미국에서도 논의가 나오고 있고, 세계 최고의 갑부 중 하나인 빌 게이츠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연 3-4% 정도의 자산세라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듯. 이것은 빌 게이츠가 자기 재산을 버리고 싶어하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양극화가 심해져서 자본주의 시스템이 무너져 버리면 '''빌 게이츠 자신의 자산 가치도 모두 소멸'''해버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자산 규모가 워낙 어마어마하다보니 세계적 규모가 되어버린 빌 게이츠는 자기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세계의 자본주의가 유지되도록 할 수 밖에 없는 것.
그게 싫으면 '''금값을 대폭 올려버리고''' 금태환으로 돌아가는 방법도 있다. 현재 금값으로는 현존하는 금의 양이 현재 세계의 경제 규모를 효과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므로 세계 경제의 사이즈에 맞게 그냥 금값을 대폭 올려버리면 된다. 대신 금을 재료로 하는 제품들의 가격은 훨씬 비싸지겠지만, 양극화는 멈추고 물가와 환율은 안정된다. 다만, 이것만으로는 이미 진행된 양극화를 되돌릴수는 없다. 양극화를 완화하려면 자산세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7. 여담
1944년 브레튼우즈에서 열린 회의는 2차대전 이후 세계경제체제를 규정한 아주 중요한 행사였지만, 사전 준비는 엉망진창이었다고 한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대표단은 뉴저지 주 애틀랜틱 시에서 야간 열차를 타고 이 곳에 도착했는 데, 휴양 시설은 엉망이어서 수돗물도 공급되지 않는 호텔 방이 태반이었고, 얼음이나 코카콜라도 모자랐다. 심지어 호텔 종업원이 부족해서 근처에 사는 보이스카우트들이 차출되었다. 호텔지배인이 위스키를 상자째 갖고 자기 집무실에 들어앉아 문을 걸어 잠그고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해프닝도 있었다.
빅토리아 2는 철저히 금본위제를 채택하고 있는 게임이며, 게임 전체의 화폐 총량을 늘리는 유일한 방법이 귀금속 RGO의 산출이 화폐로 변환되는 것 뿐이기 때문에, 금본위제도의 치명적 허점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그중에서 제일 흔한 문제는 '''화폐 부족'''. 화폐 공급은 부족한대, 화폐 증발 요소는 매우 많기 때문에 '''유동성 위기'''로 인해 공황이 올 수 있다. (그렇다고 모딩으로 인위적으로 화폐 공급을 늘리면 바로 인플레이션이 생긴다.) 이 모든 현상은 금본위제의 치명적 약점을 그대로 반영한다. (그나마, 수요와 공급이 안정적으로 맞춰저 있는 바닐라 빅토의 경우 단기 공황으로 끝나지만, 대부분의 모드들이 어떤 식으로든 유동성 위기가 발생하면서 수요는 넘치는대 공급이 부족하거나, 공급이 넘처 가격이 폭락하는대, 화폐가 돌지 않아 구매가 되지 않는 심각한 대공황이 터지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QAnon을 비롯한 음모론 신봉자는 금본위제도를 버린 것을 로스차일드 가문 같은 유대 자본과 딥 스테이트가 경제를 지배하기 위함이라며 금본위제도의 부활을 염원하고 있다. 이것에 대해서는 NESARA 문서 참조.
[1] 그렇다고 다이아몬드처럼 지극히 제한되어 있지도 않다.[2] 금은 실물이므로, 특정 상품의 가격에 비정상적인 변동이 있을 경우 금의 가치를 이용한 차익을 노린 거래들이 해당 상품의 가격 변동을 완충할 수 있다.[3] 대신 화폐 유동성에 관한 충격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4] 이 때문에 이제는 금본위제를 실시하고 싶어도 실시할 수 조차 없다. 금 매장량에 비해 경제규모가 턱 없이 커졌기 때문.[5] 조선에서는 1883년 당오전 논쟁 당시 김옥균이 금본위제를 주장한 적이 있었으나 당시 동아시아 최강국이던 일본조차 도입하지 못한 상황에서 조선에서 금본위제를 도입한다는 것은 현실성이 없었다.[6] 그 결과가 조선에서의 금광 붐이었다.[7] 현대적 자유교역시장과 US달러를 기반으로한 기축통화 시스템의 입안자이자 주요 설계자인 재무관료였다. 그는 자본주의적 경제기반을 지지하던 케인지언임과 동시에 소련에 호의을 표하며 소련 정보당국에 협조하던 스파이였는데 그가 신념적으로 소련의 볼셰비키 정권을 지지했는지, 아니면 브레튼우즈 체제에 소련을 완전히 통합시킬 수 있다는 개인적 믿음으로 월권을 저질렀는지에 대해선 미국 역사학계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그의 가족들은 오늘날까지 화이트가 볼셰비키 추종자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일부 일본의 우익학자들과 넷우익은 화이트가 스탈린의 지령을 받고 미일관계를 배후에서 사보타주하며 최종적으로 헐 노트 작성에 개입해 일본제국을 어쩔 수 없이 전쟁으로 끌어드였다는 괴랄한 음모론(...)을 주장하기도 한다.[8] 무역 불균형 때문에 오래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았다. 경쟁력 있는 나라가 끊임없이 무역 흑자를 내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약한 나라는 끊임없는 무역 적자 + 경제 제재의 이중고를 겪다가 방코르를 포기하거나 몰락할지도 모른다는 위협. 현재 유로가 겪고 있는 어려움과 비슷하다.[9] 하지만 구 소련과 공산권은 결국 마셜플랜을 거부하고 코메콘이라는 독자적인 경제블록을 형성하면서, 미국 주도의 전세계적인 자본주의 시장질서 바깥에 놓이게 된다. 바로 냉전의 시작이다.[10] 이는 위의 트리핀의 딜레마와도 연계된다. 달러화가 풀릴려면 미국이 국제수지에서 적자를 보아야 하는데, 국제수지 적자가 심화되면 달러의 신뢰도가 무너지면서 달러의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11] n개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n개의 수단을 써야 한다는 틴버겐의 법칙, 혹은 IS-LM 모형을 확장한 먼델-플레밍 모형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12] 이 문제는 굳이 브레튼우즈 체제나 금본위제에만 적용되는 것도 아니고, 최근 유로존 위기에도 적용된다.[13] 연성이 뛰어나서 전자 회로 제작에 투입된다.[14] 일본이 아베노믹스로 엔화의 환율을 낮춰서 전세계에 수출을 늘리려는게 바로 이 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