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미산
1. 개요
수미산(須彌山)은 인도 신화에서 언급하는 상상 속의 성산(聖山)이다. 문헌상으로는 대서사시 <마하바라타>에서 수미산이 최초로 언급되었지만, 아마 <마하바라타> 이전부터 수미산 개념은 있었을 것이다. 힌두교나 불교 등 인도에서 유래한 종교들은 저마다 수미산 개념을 받아들였다.
종교마다 수미산, 그리고 수미산이 있는 세계를 두고 세부적인 묘사가 다른데, 이 항목에서는 주로 불교의 묘사를 설명하였다.
2. 특징
바다 밑으로 8만 유순, 바다 위로 8만 유순으로 높이가 도합 16만 유순이라고 한다.[1][2]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세계의 중앙에 있는 우주산으로, 인간에게 정복된 적이 없는 산이자 선성불(Dhyani Budha)의 성소라고 한다. 힌두교의 경우엔 시바신의 거주지로 받아들여진다. 산스크리어로는 수메루(Sumeru). 어원에 의하면 산의 이름은 Meru이고, Sumeru는 '훌륭한 Meru' 라는 의미라고 한다. 힌두교의 전설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힌두교에서도 비슷한 개념의 메루Meru 산이 등장한다. 수미산이라는 명칭은 중국에서 번역한 명칭이라고 보면 되겠다.[3]
티베트 불교에서는 티베트 고원 서쪽에 존재하는 카일라스산이 바로 수미산이라고 생각한다. 힌두교나 자이나교, 본 교 등의 그 지역의 종교에서도 카일라스산을 거룩한 곳으로 받아들인다. 신화나 종교에서 묘사되는 수메루는 현존하는 산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카일라스산과 동일시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지만[4] 티베트 불교의 영향력이 세계 불교계에서 점차 커짐에 따라, 카일라스산을 수미산으로 보는 티베트 불교의 전승도 덩달아 퍼졌다.
한편 우리나라 조계종 승려 자현은 2011년 석사논문 <불교의 수미산 우주론에 관한 공간성 연구>에서, 불경에 따라 고증하면 카일라스산은 (건달바들의 왕이 사는) 향산(香山)일 뿐 수미산이 될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힌두교와 자이나교, 본교 등의 교세가 미미하거나 없다시피한 국내에서는 불교의 경전 등을 통해서 이 산의 명칭을 듣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수미산을 언급하는 창작물도 거의 대부분 불경에서 언급하는 수미산에서 모티브를 따 온 것이다.
현재는 불자들 중에서도 수미산 우주론을 부정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대표적으로 달라이 라마 14세가 그 예시.
3. 구조
불교의 우주관인 '삼천대천세계' 중 이 수미산 일대를 '''1수미세계'''라고 지칭한다. 수미산을 중심으로 한 아홉 산과 여덟 바다가 세상을 이루는데, 이를 구산팔해라고 한다. 산 주위에는 칠금산(七金山)이라는, 수미산의 둘레를 일곱 겹으로 싸고 있는 일곱 산[5] 이 둘러서 있다. 이들은 모두 금빛을 띠고 있기에 칠금산이라 불린다.
- 지쌍산(持雙山): 수미산의 둘레를 첫 번째로 둘러싸고 있는 산. 두 산이 서로 나란히 있다고 하는 데서 이 이름이 유래한다. 높이와 넓이가 각각 420 유순이라고 한다.
- 지축산(持軸山): 두 번째로 둘러싸고 있는 산. 산의 꼭대기가 차축(車軸)과 같이 생겼다고 한다.
- 담목산(擔木山/澹木山): 셋째 산. 높이와 넓이가 각각 1만 5백 유순이라고 한다. 첫 글자를 잘못 읽어 '첨목산'이라고 하는 사례도 있지만 오류이다.[6]
- 선견산(善見山): 넷째 산. 이름 때문에 곧잘 수미산 정상에 있다는 선견성이 여기 있는 줄 착각하곤 한다.
- 마이산(馬耳山): 다섯째 산.
- 상비산(象鼻山): 여섯째 산. 마이산을 둘러싸고 있으며, 코끼리의 코같이 생겼다고 한다. 상이산(象耳山) 혹은 장애산(障礙山)이라고도 한다.
- 지변산(持邊山): 칠금산의 가장 바깥에 있어 지변이라고 하며,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장애산을 둘러싸고 있다고 한다. 경전에 따라 니민달라산(尼民達羅山)이라고도 한다.
수미산 중턱에는 사천왕이 사는 사왕천이[10] , 정상에는 도리천이 있다. 한편 도리천을 33천이라고도 부르는데, 제석천을 비롯하여 OO天이라 불리는 신들 33위가 살기 때문이다. 도리천, 즉 수미산 정상은 네모꼴인데, 중심에는 제석천이 머무는 천궁(天宮) 선견성이 있고, 그 외에도 신들이 사는 궁전이 곳곳에 있다. 일부 불경에 따르면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뒤 죽은 모친 마야부인을 생각하여 도리천에 올라와 선견성에서 석 달간 설법했다고 한다. 마야부인이 석가모니를 낳은 지 7일 만에 죽어 도리천에서 환생했기 때문이었다.
수미산 정상은 모양이 네모나고, 각 모서리마다 작은 산이 하나씩 있다. 막상 수미산 몸체의 정확한 모양은 불경마다 묘사, 또는 암시하는 바가 조금씩 다르다. 보통 산처럼 생겼으되 정상만 네모나다고도 하고, 정육면체, 혹은 직육면체처럼 묘사하기도 하며, 모래시계처럼 가운데가 가늘다고도 하고, 심지어 피라미드를 거꾸로 뒤집은 듯 산 아래가 제일 좁고 정상으로 갈수록 넓어진다고도 한다. 북쪽은 황금, 동쪽은 은, 남쪽은 유리(청금석을 뜻한다), 서쪽은 파리(玻璃, 수정)로 되어 있고, 해와 달(일천과 월천)이 그 주위를 돌며 보광(寶光)[11] 을 반영하여 사방의 허공을 비춘다. 해와 달도 모양이 네모나지만 빛 때문에 우리 눈에는 둥글게 보인다고 한다.
사왕천과 도리천의 '''그 위에'''는 다시 야마천, 도솔천, 낙변화천, 타화자재천이 있는데, 이 여섯 세계를 다시 육욕천(六欲天)이라 지칭한다. 이 중 사왕천과 도리천은 수미산에 걸쳐 있기 때문에 지거천(地居天)이라고도 한다. 반면에 야마천, 도솔천, 낙변화천, 타화자재천은 땅에 걸치지 아니하고 완전히 허공에 있기 때문에 공거천(空居天)이라고도 한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 사왕천(四王天): 첫째 하늘. 수미산 중턱에 있는, 사천왕과 그 권속들이 사는 곳이다. 지국천, 증장천, 광목천, 다문천이 있어 위로는 제석천을 섬기고 아래로는 팔부중을 지배하여 불법에 귀의한 중생을 보호한다. 이곳에서의 하루는 인간세계의 50년이다. 사천왕천이라고도 한다.
- 도리천(忉利天): 둘째 하늘. 해면 위로 8만 유순 되는 수미산 꼭대기에 있는 곳으로, 가운데에 제석천이 사는 선견성(善見城)이 있는, 그 사방에 권속되는 하늘 사람들이 사는 성이 8개씩 있다. 도리라고도 하고 33천이라고도 한다. 이곳에서의 하루는 인간세계 기준으로는 100년이다. 여기까지가 지거천.
- 야마천(夜摩天): 셋째 하늘. 밤낮의 구분이 없고 시간에 따라 여러 가지 환락을 누리는 곳으로, 여기서의 하루는 인간 세상의 200년에 맞먹는다. 염라대왕은 이 하늘이 전승되면서 바뀐 것이다. 야마라고도 한다. 여기서부터는 완전한 허공에 있기 때문에 공거천이라고도 한다.
- 도솔천(兜率天): 넷째 하늘. 수미산의 꼭대기에서 12만 유순 되는 곳에 있는, 미륵보살이 사는 곳으로, 내외 두 원(院)이 있는데, 내원은 미륵보살의 정토이며, 외원은 천계 대중이 환락하는 장소라고 한다. 이곳에서의 하루는 인간세계 기준으로는 400년에 해당한다. 비슷한 말은 도솔ㆍ도솔타천.
- 낙변화천(樂變化天): 다섯째 하늘. 이 하늘에서 태어나면 모든 대상을 마음대로 변하게 하여 즐겁게 할 수 있다. 이곳에서의 하루는 인간세계에서는 800년이다. 화천, 화락천(化樂天)이라고도 한다.
-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여섯째 하늘. 욕계(欲界)에서 가장 높은 하늘로 마왕이 살며, 여기에 태어난 이는 다른 이의 즐거움을 자유로이 자기의 즐거움으로 만들어 즐길 수 있다고 한다. 화타천(化他天)이라고도 부른다. 이곳에서의 하루는 인간세계의 1600년이다.
삼계의 나머지 둘은 색계, 무색계이다. 색계란 욕계에서 벗어난 깨끗한 물질의 세계를 이른다. 선정(禪定)[12] 을 닦는 사람이 가는 곳으로, 욕계와 무색계의 중간 세계이다. 무색계란 육체와 물질의 속박을 벗어난 정신적인 사유(思惟)의 세계를 이른다. 색계와 무색계는 경전에 따라서 천(天)의 숫자가 적게는 색계의 경우 17천에서 22천까지, 무색계의 경우 4천이지만 부르는 명칭이 제각기 다르다. 다만 가장 대중적인 육도, 육욕천, 색계 18천, 무색계 4천을 주장하는 천태사교의(天台四敎儀)를 따른다면 타화자재천 위에 색계 18천, 색계 위에 무색계 4천이 존재한다.
앞서 말한 수미산 바깥의 사대주가 육도(六道) 중 인도(人道)이며 지거천, 공거천의 육욕천(六欲天)은 천도(天道) 가운데 일부를 이룬다. 나머지 4도는 지옥도, 아귀도, 축생도, 수라도를 말한다.
지옥도는 흔히 말하는 지옥으로, 악업을 쌓은 이들이 사후에 고통받는 곳이다. 그런데 지옥의 위치는 불경에서도 이야기가 나뉜다. 고층의 경전에서는 철위산을 두 겹으로 상정하여 대철위산과 소철위산이 있고, 그 사이 골짜기에 지옥이 있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설명하는 경전에서는 철위산의 높이가 무려 680만 유순으로 심지어 수미산보다도 더 높기 때문에, 그 사이 골짜기에는 빛이 조금도 들어오지 않는 암흑의 공간이고, 철위산이 금강(金剛)이라고 설명한다. 다른 산맥들은 수미산에서 멀어질수록 높이가 낮아지지만, 철위산만큼은 세계를 두르는 산맥이자 지옥이 있다는 특수성 때문에 예외가 된다. 또한 철위산이 금강이기 때문에, 지옥이 금강으로 이루어졌다고 설명할 수도 있다. 그래서 염불에서도 아래와 같은 구절이 나온다.
철위산 사이에 무간지옥이 있다는 구절이다. 무간지옥에 5가지 특징이 있어서 '오무간지옥'이라 한다고 한다.철위산간(鐵圍山間) 오무간지옥(五無間地獄)
한편 서력기원 이후로는 불경에서도 지옥이 섬부주의 땅 밑에 있다고 설명한다. 지옥이 철위산에 있지 않기 때문에, 철위산의 높이도 겨우 3백 유순에 불과하다. 지옥의 위쪽, 즉 섬주부의 지표와 가까워질수록 좁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넓어지는 피라미드형 구조라고 한다. 십대지옥이 있고, 이 외에 사실상 지옥의 최종단계인 팔열지옥(八熱地獄)과 팔한지옥(八寒地獄)이 따로 존재한다. 흔히 말하는 가장 악랄하고 악독한 죄인이 가는 무간지옥이 바로 팔열지옥의 마지막 층이다. 지옥의 제일 밑바닥이 바로 무간지옥이라는 것.
아귀도는 인간세계와 겹치지만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으며, 인색했던 이들이 귀신이 되어 살아가는 곳이다. 축생도는 인간세계와 겹치며, 온갖 동물들이 사는 곳을 말한다. 수라도는 아수라가 사는 곳이며, 전쟁과 싸움이 끊이지 않는 세계이다. 인간세계와 겹치지만 명확한 장소가 어디인지는 경전마다 다르다.[13]
그리고 지금까지 말한, 수미산을 중심으로 해ㆍ달ㆍ4대주ㆍ육욕천ㆍ범천 등 3계(三界, 욕계, 색계, 무색계의 세 세계) 6도(六道)를 합한 것이 하나의 세계, '1수미세계'가 되는데 이 하나의 세계가 1천 개 모인 것이 1소천세계이고, 소천세계가 1천 개 모인 것이 1중천세계이며, 중천세계 1천 개가 모인 것이 1대천세계가 된다. 이러한 대천세계, 즉 1000의 3제곱인 10억 개 세계가 3천 개 모인 것이 곧 불교의 세계관에서 말하는 우주인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이다.[14][15] 이처럼 광대 무량한 세계가 일불교화(一佛敎化), 즉 한 부처가 교화하는 범위가 된다고 한다.
[1] 바다 밑으로 8만 4천 유순, 바다 위로 8만 4천 유순 높이라고도 한다.[2] 참고로 고대 인도에서 도량형이 통일되지 않아 자세하지는 않지만 1유순은 약 7~15 km 남짓이다. 계산의 편의를 위해 1유순을 10 km로 잡는다면, 수미산은 해발고도 80만 km, 총 높이 160만 km에 달한다. 지구에서 달까지 거리의 4배가 넘는다.[3] 불교의 전파과정을 생각하면 삼국시대에 중국을 거쳐서 전파되었고 그 과정에서 불교 용어들은 중국에서 번역된 내용이 많고 그 내용이 한국에도 전파되었다 보니 불교계에선 산스크리트어를 그대로 음역해서 쓰는 경우도 있지만, 중국에서 번역된 내용을 쓰는 경우도 만만치 않게 많다.[4] 불교의 세계관에서 수미산은 세상과 우주의 중심에 존재한다. 우주관 자체가 수미산을 중심으로 묘사하는데, 수미산 남쪽에 있는 거대한 섬 '남섬부주'가 우리 인간들이 사는 세상이기 때문에, 불교적 세계관에서 보더라도 우리 세상에는 수미산이 있을 수가 없다.[5] 산이라고 하지만 내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수미산을 제외하면 모두 산맥이다.[6] 擔과 澹은 모두 한국식 한자음이 '담' 또는 '섬'밖에 없다. 첨이라고 읽는 경우는 없는데, 우방에 있는 詹(이를 첨)자만 보고 한자의 음을 '첨'이라고 착각한 사람들이 있다.[7] 우주 성립의 최초와 최후에 비람풍(毘藍風)이라는 큰 폭풍이 철위산 밖에서 불어온다고 한다. 경우에 따라 이 철위산을 수미산을 둘러싸는 '''아홉''' 산 가운데 끝에서 두 번째에 두기도 한다. 왜 그런지는 지옥의 위치에 관한 각주 참조.[8] 하지만 불법을 접하기 어려운 여덟 가지 사유를 가리키는 '불법팔난'이라는 개념에 따르면 사주 가운데 부처가 나타나지 않는 곳은 오직 (북)구로주뿐이라고 하기도 한다.[9] 고대 인도의 거리 단위. 소달구지가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로서 80리인 대유순, 60리인 중유순, 40리인 소유순의 세 가지가 있다. 한편으로 1유순이 7~15 km라는 말도 있다. 왜 이렇게 제각각이냐면 고대 인도에서 도량형이 통일된 적이 없기 때문.[10] 정확히는 수미산 중턱에 건타라(犍陀羅)라는 산이 있고 그 산에 봉우리가 네 개 있어 각 봉우리마다 사천왕이 하나씩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11] 보배에서 반사되는 찬란한 빛.[12] 한마음으로 사물을 생각하여 마음이 하나의 경지에 정지하여 흐트러짐이 없음.[13] 일설에는 수미산과 지쌍산 사이의 바다 밑에 있다고도 한다.[14] 삼천을 숫자 3000이 아니라 소천ㆍ중천ㆍ대천을 아우르는 개념으로 보기도 한다. 이에 따르면 1대천세계가 곧 삼천대천세계인 셈.[15] 현대 과학과 대비해 보면 지구ㆍ태양계ㆍ은하계ㆍ우주계 전체를 다 말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