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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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3. 여담

Soissons

1. 개요


프랑스 북부 오드프랑스 지역의 도시. 파리에서 북동쪽으로 98km, 떨어져 있는 평야에 위치한, 인구 2만 9천 명의 중소 도시이다. 랭스에서는 서쪽으로 40km, 콩피에뉴에서는 동쪽으로 30km 떨어져 있는데, 도시 규모에 비해 교통이 편리하며 동북쪽으로 80여km 가면 독일과의 국경이 나온다. 시가지는 엔 강이 굽이치는 곳에 위치하여 동, 북 두 면으로 강과 접한다.

2. 역사


중세 초기 (5 - 8세기)의 프랑스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였는데, 서로마의 마지막 불꽃이라고 불리는 아이기디우스와 그의 아들 시아그리우스가 프랑스 북부의 로마인들과 게르만 세력과 항쟁할 때에 (일명 수아송 왕국) 거점으로 삼은 도시이다. 486/488년에 도시 근교에서 시아그리우스를 패배시킨 프랑크 족의 클로비스 1세에 의해 수아송은 게르만화되었고, 살리카 법에 의거하여 4개로 갈라진 프랑크 왕국의 영토 중 하나의 중심지가 되었다. 752년에 카롤링거 왕조의 개창자인 피핀 3세가 교황의 주임하에 대관식을 치른 곳도 바로 이곳 수아송에서였다.
하지만 프랑크 제국의 분열 이후 서프랑크의 중심지는 파리로 굳어졌다. 다만 923년 6월 12일에 여자 문제로 귀족들과 대립하게 된 샤를 3세가 국왕군과 (자신이 허가해준) 노르망디 공국군을 이끌고 수아송 인근에서 귀족군과 싸웠으나 패배하고 감옥에 갇힌 채로 929년에 옥사하기도 하였다. 12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신학자인 조슬랭 드 수아송이 도시의 주교였는데, 그는 스콜라 철학자들, 특히 피에르 아벨라르와 논쟁하며 유명해졌다. 또한, 조슬랭 주교는 중세 작곡가이기도 하였다. https://youtu.be/2e55kHFBPk4 들어보자
1918년 7월에 프랑스 - 미국의 연합군이 철도 거점인 수아송을 점거한 독일군괴 크게 싸우기도 하였다. 이렇듯 수아송은 독일의 파리 진격로에 위치하여 양차 세계대전 시에 크게 파괴되었으나 대부분 복구되어 현재에 이른다. 프랑스의 건축가인 장 미셸 빌모트가 이곳 출신이다.

3. 여담


도시 방문을 위해서는 파리 북역에서 시작하는 것이 편하다. 교통비는 왕복 대략 30유로 정도 든다. 8세기경이 지어졌고 이후 증축된 유서깊은 수도원이 인상적인 관광지인데, 현재는 파사드와 입구의 높은 첨탑만 남아 있다. 베르사이유의 장미알랭 드 수아송이라는 등장 인물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