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운나
殊雲那
(?~?)
1. 개요
11세기 탐라국의 왕자로, 배융교위 고물(古物)의 아버지다.
2. 이름
수운나라는 이름은 한국 고유의 이름으로 보인다. 성씨에 대해서는 아들 고물이 고(高)씨가 아닌가 하는 의견이 있다. 초기의 탐라 성주는 이름 첫글자가 '고(高)'와 같거나 비슷한 발음의 다른 한자인 경우가 많다. 비슷한 시기에 고몰(高沒)[1] 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고몰과 고물은 같은 이름을 다르게 적었다는 것이다.
3. 생애
수운나는 고려사 정종 9년(1043) 12월조에[2] 새로 왕자가 된 호잉(號仍) 이후 10년만에 사서에 등장하는 왕자다. 문종 7년(1053) 아들 배융교위 고물을 고려 본국에 보내 우황(牛黃)·쇠뿔(牛角)·쇠가죽(牛皮)·소라 고기(螺肉)·비자(榧子)·해조(海藻)·귀갑(龜甲) 등을 바친다. 그리고 문종으로부터 중호장군(中虎將軍)의 관직과 공복(公服)·은 허리띠(銀帶)·채단(彩段)·약물(藥物) 등을 받는다.
탐라는 공부(貢賦)로서 매년 바치는 귤 외에 여러 차례 방물을 바쳤는데, 수운나의 조공 기사를 통해 그 자세한 품목을 파악할 수 있다. 채집한 해산물이나 열매 외에 소의 여러 부위를 바친 것에서 제주도에서 소 사육이 원간섭기에 몽골이 목장을 세우기 전부터 이뤄졌다는 것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