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복
'''官服'''
1. 개요
대한민국, 중국, 일본, 베트남에서 고대부터 근대 왕정시대까지 관료들이 정무를 볼 때 입었던 의복.
한국은 삼국시대 때까지 각자 고유의 관복을 입었으나, 신라 진덕여왕 때 김춘추가 당나라에 사신으로 넘어가서 당태종과 만나 회담할 때 관복인 복두와 단령을 도입하여 문무백관의 정복으로 삼은 이후, 고려 ~ 조선시대 때까지 복두→사모가 갖추어진 중국식 단령을 관복으로 채택하여 입었다. 성종 7년(1476년)에 완성된 경국대전에 의하면 정 1품∼정 3품은 홍색, 종 3품∼종 6품은 청색, 정 7품∼종 9품은 녹색을 입도록 규정했다.
중국은 현재까지 확인되는 자국 내 최초의 국가인 상나라 때부터 관복과 비슷한 복식이 있었으리라 추정된다. 공식적인 관복이 확인되는 것은 전국의 도량형과 문물이 통일화된 진나라 때일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수많은 왕조가 명멸하면서 많은 스타일의 관복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가장 마지막 왕조였던 청나라의 관복은 원래 만주족의 예복에서 유래된 것이다.
일본은 마찬가지로 당나라에서 복두와 단령을 들여와 관복으로 삼았으나, 이후 일본 국내실정에 맞게 개조되어 소쿠타이(束帶)라는 관복을 제정하여 입게 되었다. 머리에 쓰는 관모는 복두였다가 형태가 변형되어 칸무리(冠)를 쓰는 것으로 바뀌었다.
베트남은 중국에서 관복 복식을 들여왔으며 대체적으로 중국과 유사한 관복을 입었다. 하지만 19세기부터 관복에 금실을 수놓는등 디자인이 기존 관복에 비해 굉장히 화려해졌다.
요즈음에는 관복이 거의 사라졌으나 정장 차림의 군 장성, 경찰 간부, 국회의원이나 장,차관이나 총리, 고위관료나 공무원, 판,검사, 청와대 비서진, 국정원 고위관료들을 관복을 입은 관료에 비유하기도 한다.
한편 서구권에서는 법복과 군복은 있었지만, 19세기까지는 관료들이 일괄적으로 통일된 제복을 갖춰입는 경우는 찾기 힘들었으며, 당시 유행하던 정장을 차려입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19세기 말에 와서야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 등에서 관료들이 군복 스타일의 제복을 입는 문화가 생겨났으며, 이 때를 기점으로 일반 공무원들도 육군 정복과 유사한 제복이 규정되어 공식 행사에서는 제복을 입었다.참조 당시의 기록 사진들을 보면 외교관이나 장관들도 군복같은 견장 달린 제복을 입고 스몰 소드를 허리에 찬 모습이 자주 보인다. 러시아의 경우는 21세기 현재도 실제로 입는 경우는 드물지만 공무원도 육군 정복과 유사한 정복과 계급장이 규정되어 있다.[1] 영국도 현재 가장 공식적인 외교 행사에 한해서 외교관들이 제복을 입는 전통이 남아있다.
2. 관복의 변천사
2.1. 대한민국
2.1.1. 삼국시대 초반기
삼국시대 때는 고유의 관복을 입었는데 전통적으로 삼국(고구려, 백제, 신라) 모두가 단령을 제정하기 전까지는 주로 재상들이나 최고 고관들은 흑홍관복이나 보라색 관복을 입었고, 그 밑의 고관들은 빨간색 관복을 입었으며, 하급 관료들은 파란색 관복을 입었던 전통이 있었다. 왕족의 경우는 보라색 관복이나 흑홍관복을 입었다.
2.1.2. 삼국시대 후반기 ~ 남북국 시대
신라 진덕여왕 때 단령이 생기고 신라부터 단령을 입기 시작했는데 재상이나 최고 고관들은 흑홍단령이나 보라색 단령을 입었고, 그 밑의 고관들은 홍단령을 입었으며 그 밑의 중간관료들은 청단령을 입었으며, 하급관료들은 흑녹단령을 입었다. 발해 역시 당나라 체제를 일부 수용한 뒤로 그렇게 했다. 사모 역시 삼국식 문라건 형태에서 복두로 바뀐다.
2.1.3. 후삼국 시대 ~ 고려 초반기
후삼국 시대 때도 역시 그 전통은 이어져서 후백제, 후고구려, 신라 모두 재상들이나 최고 고관들은 흑홍단령을, 그 밑의 고관들은 홍단령을, 그 밑의 하급관료들은 청단령을 입었다. 이는 고려 건국 후에도 이어졌으며, 삼국통일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2.1.4. 고려 중반기
광종 이후 고려 관복은 다시 변화하는데 송나라식 체제를 받아들여서 이후 1품에서 3품은 흑홍단령이나 보라색 단령을 입었고, 4품에서 6품은 홍단령을 입었으며, 7품에서 9품은 흑녹단령을 입었다. 여전히 고려 때도 삼국 시대 때의 관복 전통이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2.1.5. 고려 후반기
원나라 지배를 받으면서 고려 관복은 다시 변화하는데 원나라식 관복을 입었으며 발립을 쓰게 된다.
2.1.6. 고려 말 ~ 조선 초
공민왕 이후에 송나라식 관복을 다시 착용하다가 우왕 때에 명나라식 관복을 하사받는데 대신 삼국 때의 전통은 크게 유지되어 1품에서 3품은 흑홍단령, 4품에서 6품은 홍단령, 7품에서 9품은 청단령을 입는다. 이는 조선 건국 후 태조 때에도 계속 이어졌다.
2.1.7. 조선 태종 ~ 조선 단종 말기
조선 태종 때 관복은 또다시 변화를 맞는데 여전히 흉배 도입은 안했지만 삼국의 전통과 중국식 색깔을 버리고 독자적으로 당상관은 홍단령, 당하관과 참상관은 청단령, 참하관은 흑녹단령을 입는다.
2.1.8. 조선 단종 말기 ~ 조선 성종 초
드디어 관복에 흉배가 도입된다. 하지만 그 때는 당상관만 흉배를 착용했는데 삼정승과 좌우찬성 등의 1품은 공작을, 좌우참찬, 육조판서, 대제학, 한성판윤, 육조참판, 한성 좌우윤, 제학, 관찰사 등의 2품은 운안을, 승지 및 육조참의, 대사간, 부제학, 대사성, 목사, 대도호부사 등의 3품은 백한을, 병조, 공조의 판서 및 도총관, 의금부 판사,지사, 부총관, 동지사, 병조, 공조의 참판, 훈련대장, 병마절도사 등 무관 2품은 호표를, 병조참지, 병조, 공조의 참의, 수군절도사, 중군, 병마사 등의 3품은 웅비를 착용했다. 4품부터 6품은 청단령을, 7품부터 9품은 흑녹단령을 착용했다.
2.1.9. 조선 성종 초 ~ 조선 연산군 후반기
사모가 개량되었는데, 여전히 1품부터 3품까지만 흉배를 착용했고 4품부터 9품은 흉배를 착용하지 않았다.
더 자세한 것은 단령과 사모 항목 참조.
[1] 나탈리야 포클론스카야 항목을 보면 러시아 검사 제복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