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 손택

 


1. 개요
2. 생애
3. 사회 운동
4. 비판


1. 개요


'''Susan Sontag'''
1933.01.16 ~ 2004.12.28
20세기 후반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이며, 철학적 성격의 문예 및 예술평론, 영화감독 등 다양한 문화계 활동을 한 인물이다. 사회문제 및 인권활동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고, 거침없는 투쟁과 비판으로 권력에 저항하는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해박한 지식과 특유의 감수성으로 '''뉴욕 지성계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1966년 평론집 ''해석에 반대한다''로 미국 문화계의 중심으로 떠올랐으며 소설보다 평론, 사회비평, 에세이에서 더 많은 활약을 보였다.

2. 생애


1933년 뉴욕에서 태어났으나 성장기는 대부분 애리조나 주 투산과 로스엔젤레스에서 보냈다. 1년 동안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교를 다닌 뒤 시카고대학교로 옮겨 1951년에 졸업했다. 1954~1955년 하버드대학교에서 영문학 석사와 철학 석사 과정을 밟았다.
1963년 첫 소설 ''은인(The Benefactor)''을 출판하기 전까지, 손택은 여러 대학교에서 철학을 강의했다.
1960년대 초에 몇 편의 수필과 서평을 썻으며, 그 중 대부분이 ''뉴욕 리뷰 오브 북스'', ''코멘터리'', ''파르티잔 리뷰'' 같은 정기 간행물에 실렸다. 여기에 연재됐던 글은 후에 그녀의 주저인 ''해석에 반대한다(Against Inter-pretation and Other Essays)''에 포함되었다.
이 작품에서 손택은 '''해석은 지식인이 예술과 세계에 가하는 복수다'''라는 도발적인 문제 제기를 담았다. 그녀는 예술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애쓰기보다는 예술을 예술 자체로 경험해야 함을 역설했다.
1967년 두번째 소설인 ''Death Kit''(국내 미번역)을 집필했고, 이후 평론집 ''Styles of Radical Will(1969)''을 발표했다.
그녀의 중요한 후기 작품으로는 ''사진 이야기(On Photography, 1977)'', ''은유로서의 병(Illness as Metaphor, 1979)'', ''사투르누스의 별자리(Under the Sign of Saturn, 1980)'', ''에이즈와 그 은유들(AIDS and Its Metaphors, 1988)'' 등이 있다.
2003년에는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인 ''타인의 고통''을 집필했다.
이 책은 우리가 이미지를 통해서 본 '''재현된''' 현실과 '''실제 일어난''' 현실의 참담함 사이에 얼마나 큰 간극이 있는지를 폭로한 책으로 유명하며, 이미지가 주는 폭력의 지속적 노출, 저널리즘의 의도적 편집이 대중으로 하여금 실제 현장의 비극을 무감각하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폭력적, 비극적 이미지 자체가 흘러 넘치는 문제와 그것을 소비하는 세태에 관하여 경고한다.
나아가 그녀는 매체에서 넘쳐나는 비극과 죽음의 이미지가 오히려 그것을 보는 이로 하여금 '''우리는 안전한 곳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도록 만드는 안도감을 준다고도 비판한다.

사방팔방이 모조리 이미지로 뒤덮인 세계에서는 우리에게 중요할 수밖에 없는 그 무엇인가의 영향력이 점점 떨어져 간다. 예컨대 우리는 완전히 무감각해져 버리는 셈이다 - 158쪽, ''타인의 고통'', 도서 출판 이후

손택의 평론에 나타나는 특징은 현대 문화의 다양한 면과 성격에 대해 진지하고 철학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이다. 1964년 '''캠프'에 관하여''라는 평론을 발표하면서 처음으로 대중의 관심을 끌었는데, 이 평론에서는 특정사회집단이 보여주는 각기 다른 취향의 특성을 다루었다. 영화, 사진, 연극 등과 같은 주제와 타날리 사로트, 로버트 브레슨, 프랜시스 베이컨 같은 인물에 대해 글을 썼다.
평론과 소설 이외에 영화 대본, 극 대본도 직접 집필하였으며 롤랑 바르트, 앙토냉 아르토의 작품을 편집하기도 했다.
''사진에 관하여(1977)''는 1977년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소설 ''인 아메리카(1999)''는 1999년 전미도서상 소설부문에서 수상했으며 2004년 12월 28일 뉴욕슬론-키터링 기념 암센터에서 골수성 백혈병으로 71세에 생을 마감했다. 유해는 파리의 몽파르나스 공동묘지에 안장됐다.

3. 사회 운동


손택은 인권과 사회 문제에도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내 국내외에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현실 참여는 베트남 전쟁이 한창 중이던 1966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는 ''파르티잔 리뷰''에 ''지금 미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기고해 미국의 은폐된 역사와 베트남 전쟁의 허위, 아메리칸 드림의 실상을 폭로했다. 손택이 국제 펜클럽 미국지부 회장을 맡았을 당시인 1988년에는 서울을 방문해 한국 정부에 구속 문인의 석방을 촉구했고, 인도 출신 작가 ''살만 루시디(Salman Rushdie)''가 악마의 시이란 종교 당국으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자 미국 문학계의 항의 운동을 주도했다.
보스니아 전쟁이 일어나고 있던 1993년에는 전쟁터인 사라예보로 가서 죽음의 공포에 맞서 겁에 질린 사라예보 사람들에게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공연하여 전쟁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예술을 창조하고 감상할 수 있는 인간임을 일깨웠다. 또한 9.11 세계무역센터 폭파 사건에 대한 미국 정부의 태도를 날카롭게 비판해 미국 내에서 격렬한 찬반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으며, 이라크 전쟁 당시에는 '''사이비 전쟁을 위한 사이비 선전 포고'''를 그만두라고 부시 행정부를 공격하는 등 행동하는 지식인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2003년 독일출판협회는 제55회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거짓 이미지와 뒤틀린 진실로 둘러싸인 세계에서 사상의 자유를 굳건히 수호해 온''' 공로로 손택에게 평화상을 시상했다.

4. 비판


대부분의 사회운동가가 그러하듯, 수전 손택도 신자유주의와 책임감 없는 금융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다. 이 과정에서 수전 손택은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와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가 '''금융 업계에서 일을 했던 금융 공학자'''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그와의 대화를 중단하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심 탈레브 역시, 현장에서의 '''책임감'''을 중시하는 인물이라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있어서 금융계의 책임 떠넘기기 문제를 강렬히 비판했던 인물이었다. [1] 그는 금융업계에 몸을 담고 있는 인물임에도, 금융업계에서 활개치고 있는 가짜, 사기꾼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으로 책임이 동반되지 않은 금융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이런 성향을 알아 볼 생각도 하지 않고 단지 그가 금융 업계에 몸을 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수전 손택은 고정 관념에 휩싸여 대화를 거부한 것이다. 이는 그녀의 신념에 따른 지나친 속단이 드러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탈레브는 이 때의 감정을 담아두고 있다가, 최근의 저서인 ''스킨 인 더 게임''에서 수전 손택의 뒷모습과 모순을 거침없이 까발렸다.
그는 수전 손택도 실제 현장에 몸을 담그지 않고서 그저 말만 앞서 자신이 누리고 있는 사회 체제를 비판하는 인물, 즉 '''캐비어 좌파'''에 불과하다고 평가했으며 금융시장 시스템을 도덕적인 혐오감을 가지고 반대하는 입장을 평생 고수했지만, 사실 미국 출판 업계에서는 탐욕스럽기로 유명했으며 30억에 달하는 뉴욕의 고급 맨션에서 생활하기도 하는 등 자본 친화적인 행보를 보였다고 했다.

바몬트나 아프가니스탄 북서부 같은 곳에 있는 오두막이나 동굴에 거주한다거나 시장 시스템과 동떨어진 삶을 사는 것도 아니면서 시장 시스템을 반대한다고 말하는 것은 부도덕하다.

자신이 도덕적이라고 말하는 삶의 방식을 온전하게 따르지 않으면서 도덕을 말하는 것이 훨씬 더 부도덕하다.[출처]

[1] 수전 손택은 서브프라임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작고했다.[출처] '스킨 인 더 게임' 한역본 30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