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를 기다리며
1. 개요
원제는 'En attendant Godot'.
영문 'Waiting for Godot'.
사뮈엘 베케트의 연극. 1953년 1월 5일 파리의 바빌론 극장(Théâtre de Babylone)에서 초연된 이래, 베케트의 대표작이자 부조리극의 대명사로 자리잡고 있다.
2. 상세
부조리극의 '부조리'라는 낱말은 인간 존재의 의미와 무의미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부조리극이 이 문제의 해답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부조리극 작품들은 깊은 나락의 염세주의와 기괴한 유머가 독특하게 뒤섞인 형태로 나타난다. 이 작품에서는 그러한 요소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연극이 처음 상연되었을 때에는 일반 대중은 물론이고 연극 평론가들에게까지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안 된다'는 혹평에 시달렸다. 반면에 캘리포니아 산 퀜틴 교도소의 죄수들은 이 연극을 보고 기립박수를 치며 눈물을 흘리는 등 그야말로 열렬한 반응을 보였다 한다. 당시 〈고도를 기다리며〉가 교도소에서 상연된 이유는 단지 여성 출연자가 없었기 때문이었는데, 연출자는 이런 힘빠지는 부조리극을 보여주면 죄수들이 열받아 폭동을 일으킬 것을 걱정했다고 한다.[1]
이 작품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혹은 고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는 수많은 견해들이 등장했다. 어떤 이는 고도가 바로 신(神)이라고 주장하기도 했고, 교도소에 수감된 이들에게는 '자유'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베케트는 자신조차도 고도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고도라는 단어가 신을 의미하는 영어와 프랑스어 단어인 God과 Dieu의 합성어라는 주장도 널리 퍼져 있는데, 베케트는 "이 작품에서 신을 찾으려 하지 말라"는 부정에 가까운 뉘앙스의 발언을 남겼다.
작가 사뮈엘 베케트는 이 작품 집필 이후, 196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김세영 글, 허영만 그림인 사랑해에서는 이 작품이 '별거 없이 고도를 기다렸더니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 언급하는데, 이는 본 작품의 문학사적 가치에 대한 무지에 불과하다. 이 작품은 부조리극이라는, 과거에는 없었던 장르를 새로이 만들어낸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또한 노벨문학상은 작품이 아니라 작가에게 주는 상이므로 사뮈엘 베케트는 자신의 수많은 작품을 포함해 노벨상을 받은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고도를 기다리며>가 그의 대표작이라고는 할 수 있어도, 그가 이 작품 하나만으로 노벨상을 받았다고 할 수는 없다.
3. 줄거리
〈고도를 기다리며〉의 줄거리는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데, 바로 '기다림'이다. 이 작품은 희곡의 거의 모든 관습적인 기대를 깨버린다. 〈고도를 기다리며〉에서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우스꽝스러운 인물들이 등장해 이해할 수 없는 허튼소리를 내뱉는 것이 전부이다. 심지어 두 주인공끼리 나누는 대화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쪽에서 밥은 먹었냐고 물어보면 다른 쪽은 난 술이 싫다고 동문서답하는 식이다.[2]
두 남자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3] 은 한 국도의 작은 나무 옆에서 '고도'라는 이름의 사람을 기다린다. 그들은 고도가 누구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고도에게 뭘 원하는지도 모른채 고도를 기다린다. 심지어 고도가 실존하는지도 확신하지 못한다. 둘은 이야기를 하지만 상호적인 대화로 이어지지 못한 채 마치 서로 벽에 외치는 것과 같이 피상적이 되어간다. 그러던 중 그들은 포조와 그의 짐꾼 럭키를 만나 대화를 나누지만, 역시 두서없고 무의미한 대화뿐이다. 밤이 되자 심부름을 하는 양치기 소년이 나타나 그들에게 '고도 씨는 내일 온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제2막(다음 날)도 비슷한 내용이 그대로 반복되는데, 등장인물들의 변화로 더 괴이한 느낌을 준다. 마지막엔 역시 양치기 소년이 등장하는데, 둘의 대화는 도무지 맞물리지 않는다. 결국 블라디미르는 양치기 소년에게 화를 내며 쫓아버리고, 잠을 자다 깬 에스트라공이 고도가 왔었는지 묻는다. 그는 차라리 멀리 떠나자고 하지만 블라디미르는 내일 고도를 만나러 여기 와야 한다고 상기시켜준다. 둘은 나무를 쳐다보며 목이나 맬까 하지만 끈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내일 끈을 챙겨와 고도가 안 오면 매자고 다짐한다. 두 사람은 입으로는 떠나자고 하면서도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다.
4. 등장인물
- 블라디미르 (디디)
극의 두 주인공 중 한명. '디디'라고 불린다. '다리를 벌려 종종걸음으로 걷는다'고 한다. 작중에서 명확하게 명시되어있지는 않지만, 관습적으로 블라디미르는 키가 크고 홀쭉한 반면에 에스트라공은 땅딸막한 이미지로 연출된다. 지적이고 말이 많은 성격으로 종종 철학자에 비유되기도 한다. 고도가 올 것이라고 믿고 있는 낙천주의자다.[4] 모자를 벗어 두드리는 행동을 반복한다. 웃는 와중에 멈추고 소변을 보러 가는 장면에서 성병이 있음을 짐작케 한다.
이 역할을 맡았던 유명 배우로는 스티브 마틴, 패트릭 스튜어트 등이 있다.
이 역할을 맡았던 유명 배우로는 스티브 마틴, 패트릭 스튜어트 등이 있다.
- 에스트라공 (고고)
극의 두 주인공 중 한명. '고고'라고 불린다. 작중에서 묘사되는 바에 따르면 누더기 옷에 모자를 쓰고 있다. 블라디미르와는 반대로 단순하고 감정적인 비관론자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듯, 어제에 일어난 일이나 만났던 사람 등에 대해서조차 전혀 기억하지 못하며 블라디미르에게 물어보기 일쑤이다.[5] 자신의 신발과 자주 씨름하는 모양인데, 그 때문인지 다리를 저는 것으로 연출되기도 한다.
명대사로는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Nothing to be done)." 가 있다. 극의 가장 첫 대사이기도 하면서 극중에서 계속해서 반복된다.
이 역할을 맡았던 유명한 배우들로는 이안 맥켈런[6] , 로빈 윌리엄스 등이 있다.
명대사로는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Nothing to be done)." 가 있다. 극의 가장 첫 대사이기도 하면서 극중에서 계속해서 반복된다.
이 역할을 맡았던 유명한 배우들로는 이안 맥켈런[6] , 로빈 윌리엄스 등이 있다.
- 포조
지주. 짐꾼 럭키와 함께 등장하여 고고, 디디와 함께 대화를 나눈다. 권위적이고 멋부리기 좋아하며 짐꾼 럭키를 노예 부리듯이 하는 잔인한 인물이다. 자신의 짐과 트렁크를 잔뜩 들고있는 럭키를 목줄로 끌고 다닌다. 주로 뚱뚱한 모습으로 묘사되는듯 하다.
2막에서 다시 등장할때는 장님이 되어서 돌아온다.
2막에서 다시 등장할때는 장님이 되어서 돌아온다.
- 럭키
포조의 짐꾼...이라기보다는 노예에 가깝다. 포조의 짐을 잔뜩 지고 목줄에 매여 끌려다닌다. 역시 모자를 쓰고 있으며 백발이다. 거의 백치인 것처럼 보이며, 포조의 명령에 무조건적으로 순응한다. 작 중에서 대사가 많지 않은데, 작 중에서 딱 두번만 대사를 한다.
가장 유명한 장면은 역시 1막에서의 '생각' 장면. 포조가 '생각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가히 충공깽스러운 연설을 늘어놓기 시작하는데, 흡사 다음 블로그 등지에서 매크로로 생성되어 있는, 무작위 단어로 이루어진 의미 없는 장문의 뻘글들을 연상케한다. 이 장면의 대사가 앞서 말한 두 문장 중 하나인데, 단어수만 해도 700개에 이른다.
가장 유명한 장면은 역시 1막에서의 '생각' 장면. 포조가 '생각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가히 충공깽스러운 연설을 늘어놓기 시작하는데, 흡사 다음 블로그 등지에서 매크로로 생성되어 있는, 무작위 단어로 이루어진 의미 없는 장문의 뻘글들을 연상케한다. 이 장면의 대사가 앞서 말한 두 문장 중 하나인데, 단어수만 해도 700개에 이른다.
- 소년
'고도'의 심부름꾼으로 양치기 소년이다. 1막과 2막 후반부에 등장하여 고도 씨가 오늘은 오지 않고 내일 올 것이라는 전갈을 전하고 간다. 1막에서 처음 등장했을때 블라디미르에게 어제는 온 적이 없다고 말하는데, 2막에서도 지난날 왔음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대답을 한다. [7] 또한 고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수염이 하얀 것 같다는' 정보를 제공한다.
- 고도
두 주인공이 항상 기다리고 있는 사람. 실제로 등장하지 않지만, 작품 안에서 그를 기다려야한다는 말은 계속 언급되며 두 주인공에게 기다림의 당위성을 부여한다.
5. 해석
워낙에 모호하게 표현된데다가 멘붕오는 내용 때문에 해석도 보는 제눈에 안경 식으로 백 명이 보면 백 명 다 다른 소리한다.
가령 포조와 럭키의 비참하리 만큼 잔인한 주종관계를 놓고, 아일랜드의 영국을 등에 업고 지배하던 상류층을 꼬집는 내용이라 하기도 하고, 프로이트적 해석으로 고고가 에고이고 디디가 이드라고 하는가 하면, 극중 많이 등장하는 성경 드립을 보고 이것은 본격 기독교 까는 내용이라 하기도 한다.
물론 가장 다양한 건 고도의 정체다. 등장하지 않지만 하염없이 기다리는 고도는 보는 사람마다 그 사람의 처지를 따라 여러가지로 갈린다.
철학 아카데미 대표인 김진영 인문학자가 내놓은 해설
6. 명대사
7. 기타등등
- 한국에서도 대학로나 동숭아트홀 등의 연극 무대에서 약간 한국식으로 각색을 거쳐[8] 공연된 적이 있고, 임영웅 연출 버전은 1969년 초연 이래 거의 매해 산울림 소극장에서 장기 공연을 갖는다. 심각한 상황을 우스꽝스럽게 연출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가슴 아프게 와닿는 것이 특징.
- AI 기기 간에 서로를 대화시키는 것으로 화제를 모은 유튜브 영상에서, AI 들의 이름을 이 작품에서 따왔다.
- 게임 엔진인 Godot Engine의 명칭 역시 이 극의 주인공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8. 같이 보기
[1] 산 퀜틴 교도소에서의 상연에 대해서는 다음 글들을 참조하면 좋다. 클래식 정원 2013년 4월 고도를 기다리는 죄수들 Nothing But Time: When ‘Godot’ Came to San Quentin[2] 그래서 이 이야기의 주제는 '사람은 같이 있어도 결국은 혼자'라는 뜻이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3] 작 중에서 둘은 ''디디'와 '고고'라는 별명으로만 불릴 뿐 대본상의 본명은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 점이 포인트. 연극만 볼 경우 관객이 둘의 본명을 알 길이 없다.[4] 에스트라공이 '가자'고 할때마다 고도를 기다려야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5] 흥미롭게도 항상 가자고 재촉하는 것은 에스트라공이지만, 극의 마지막에서 가자고 하는 사람은 블라디미르이다.[6] 상대역 블라디미르가 패트릭 스튜어트. [7] 형이 있다는 대사로 동일인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떡밥을 흘리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은듯[8] 저 위의 양치기 소년이 약간 허름한 한복을 입고 나온다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