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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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작가 '살만 루시디'의 소설. 1988년에 처음 출판됐다.
작가 루시디의 네번째 소설이다. 루시디의 소설이 대부분 그렇듯이 산문 형식으로 쓰여져 있으며 '마술적 사실주의'가 깊게 스며들어 있다.
제목은 무함마드가 쿠란에 넣었다가 뺀 고대 아라비아 토속신앙 관련 구절을 이른다고 한다.
밑에서 기술하는 각종 종교 논쟁 때문에 이 소설의 주제의식이 되려 묻히는 경향이 있다. 소설의 진정한 의미보다는 소설의 일부분에서 파생된 종교적 논란이 전세계적으로 더 주목 받았기 때문이다. 과거 블랙 사바스, 슬레이어(밴드) 같은 메탈 밴드들이 반기독교 관련 음악을 한다며 일부 소매상들이 판매 거부를 하다가 오히려 인지도가 늘어난 정도로만 그친 것과 다르게, 이번에도 인지도와 판매량은 증가했으나 대신 번역가가 살해당하고 이란 이슬람 신정 공화국의 호메이니가 살만 루시디를 처형하라는 명령을 공개적으로 선포하는 등 논란이 훨씬 심했다.
살만 루시디 또한 이런 종교적 이슈에만 집중하는 기현상을 자신의 자서전에서 격정적으로 토로한바 있다. 자신은 기본적으로 이슬람교를 믿는 가정에서 자랐으며 소설 내에서 이슬람을 부정적으로 묘사할 의도도 없었으며, 이슬람교에 대한 비판은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는 전혀 무관하며 비판을 하지도 않았는데 상당수 무슬림들은 자신의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소설의 일부분만을 보고 자신과 자신의 책을 불경죄로 매도 한다고 항변하였다.[1] 반면 평생 서먹서먹 했던 자신의 아버지가 편지를 통해 이 소설이 갖고 있는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는 모습을 보며 크게 감동했다고 언급하기도 한다. 다만 살만 루시디가 일부러 노이즈 마케팅을 노리고 서술을 한 듯한 내용도 일부 있으며, 해당 해명은 논란이 생각보다 훨씬 심각해지자 내세운 해명에 가깝다.
소설은 영국으로 이민온 인도인 이민자의 혼란스러운 삶을 풍자적으로 묘사했다고 볼 수 있다. 인도인 이민자들이 영국에 와 새로운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오는 각종 혼란을 묘사했으며 반대로 영국으로 몰려오는 낯선 이민자들과 그들의 문화를 배척하기도 하지만 받아들이기도 하는 영국인들의 혼란스러운 모습 또한 잘 묘사되어 있다. 이런 이민자와 외래문화에 대한 거부와 수용이라는 정반합은 소설 속 무함마드 에피소드에서도 잘 들어나는데 아랍 세계가 초기 무지의 시대에는 무함마드와 신생 종교였던 이슬람을 배척하려 했으나 혼란 끝에 받아들이는 과정이 묘사된다. 반면 무함마드 또한 자신을 배척하는 아랍 위정자들 의해 크게 좌절을 느끼고 인간적으로 고뇌[2] 를 하는 모습이 묘사된다. 무함마드는 타협[3] 이라는 쉬운 길에 빠질 뻔 했으나 결국 타협하지 않고 자신이 믿는 바를 따르며 마침내 이슬람의 유일신 사상을 지켜낸다. 반면 인도인 이민자인 살라딘 또한 영국에서 적응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거의 잃어 버리고 현실과 타협하여 우스꽝스럽게 영국인 행세를 하며 친영주의자로서 살아가나 자신을 악마[4] 취급하는 영국인들에 의해 좌절하게 되고 온갖 고난을 겪지만 마침내 자아를 찾게 되며 자아를 포용하고 혼란을 극복하게 된다.
이민자의 정체성 혼란, 고난의 극복, 자아의 포용이라는 주제의식은 살만 루시디의 다른 소설에서도 공통적으로 들어난다. 예를 들어 소설 ‘분노(Fury)’는 뉴욕으로 이민간 인도계 영국인 화자의 또다른 혼란을 담고 있다.
소설은 두명의 인도인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걸로 시작한다.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납치당한 비행기는 사고 때문에 공중에서 폭발했고, 그 사고에서 살아남은 단 두사람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생존자 중 한명인 지브릴 파리쉬타는 힌두교의 각종 신들을 연기하는 입냄새가 심한(...) 무신론자 배우이며, 다른 한명인 살라딘 참차[5] 는 자신의 근본을 멸시하고 거부하며 완벽한 영국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친영파 아부꾼 성우이다.
공중폭발에 의해 하늘에서 떨어지나 기적적으로 살아난 후에 지브릴은 이름 그대로 이슬람교의 대천사 지브릴의 성격과 후광을 지니게 되었고, 살라딘은 그 반대인 악마[6] 의 모습으로 변한다.[7]
해변에 살던 어느 노파에게 구출된 후에 살라딘은 이민국 직원들에게 잡혀 끌려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살라딘은 지브릴에게 도와달라고 소리치지만, 지브릴은 천사가 되면서 보기 시작한 환상에 홀려있던 터라 친구의 도움 요청을 못 듣고, 살라딘은 결국 끌려가면서 이민국 직원들에게 모진 수난을 당하다가[8] 결국엔 집으로 돌아오지만 그의 친구가 그의 아내와 함께 살고 있는걸 보게 된다.[9]
그 뒤 '''지브릴은 꿈 속에서 대천사 지브릴의 입장에서 많은 환영을 보며'''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묘사가 나온다. 자신이 사랑하던 산악인 알리 콘과 동거하다가 환상 속에서 해매던 그를 살짝 차로 친 영화업계인에 의해 다시 영화계로 돌아오게 된다. 살라딘으로 말할 것 같으면 문제의 친구가 소개해준 하숙집에서 짱박혀 있다가 결국은 인간으로 돌아오게 된다. 살라딘은 자신을 쌩깐 지브릴에게 복수하려 들지만, 지브릴은 오히려 자신을 해하려 한 살라딘을 용서해주고 목숨을 구해주기까지 한다.
결말에는 지브릴에게서 무언가를 깨달은 살라딘이 자신이 그토록 거부하던 자신의 근본과 화합하고 인도에 돌아가서 산다. 지브릴은 환영과 질투 속에 살다가 알리를 옥상에서 떨어트려 죽이고 자신도 살라딘의 저택에서 권총으로 자살하고 만다.
이 책의 출간 후, 이슬람 세계는 '''그야말로 분노로 폭발했다.''' 책 한 권 때문에 파키스탄과 북인도부터 중동에 이르는 지역에서 반미시위와 폭동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 난장판에 개입한 것이 바로 호메이니였다. 호메이니는 처음에는 악마의 시를 읽고 격분하였으나 미친놈들에게 일일이 신경 쓸 필요는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무시하기로 하였으나''' 이슬람 세계의 분노가 폭발하는 것을 보고 이를 잘 이용하면 정치적 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하여 1989년 2월 14일 살만 루시디와 그 출판에 관여된 모든 사람들에게 사형을 내리는 파트와를 선포했다.[10]
위의 줄거리 요약만 보면 왜 이 소설을 가지고 이슬람계가 그렇게 흥분했는지 감이 안 잡히지만, 선동하는 성직자들은 특히 세 가지를 강조했다. 지브릴은 소설 속에서 총 세 가지의 환영을 겪는데, 그 중 처음 두 환영이 문제가 되었다. 특히 첫번째.
결국 루시디는 조지프 안톤[15] 이라는 예명을 쓰며 영국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은둔 생활을 하고 있고, 출판에 관여한 사람들 역시 몸을 사려야 했다. 밑에서 설명하겠지만 실제로 번역자들이 공격을 당하거나 죽임을 당했다.
심지어 영국 내에서도 여러 이슬람 단체의 높으신 분들과 다수의 무슬림은 사형선고 파트와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지지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이슬람 근본주의가 과연 근본주의자들만의 문제인가라는 비판을 피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됐다. Muslim Parliament of Great Britain의 경우 초대 장부터 이 파트와를 열성적으로 지지했고 그가 물러난 지금도 그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 훗날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까지 받은(!) 영국 이슬람 업무 활동 위원회의 이크발 사크라니(Iqbal Sacranie)는 "아마도 죽음은 루시디에게는 좀 너무 쉬운 방식이다.(...) 그가 전능하신 알라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는 이상 루시디는 남은 삶 내내 고통(torment)받아야 한다."라는 무시무시한 말을 남겼다. 브래드퍼드 모스크 의회의 사이드 압둘 쿠두스는 "나는 호메이니가 대중에게 한 말들에 완전히 동의한다. 모든 무슬림들은 살만 루시디를 탓해야 한다. 그 어느 무슬림이라도 기회가 생긴다면 놓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기회를 놓치지 않는게 좋다."고 했다. 기독교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한 캣 스티븐스마저 살만 루시디에 대한 공격적인 발언으로 음악계를 충격에 빠트렸다. [16]
악마의 시의 번역에 관여한 사람들도 최소한 네명은 좋은 꼴을 보지 못했다. 악마의 시 번역자 피살사건 참조. 그외엔 1991년 7월 이탈리아어로 번역한 번역가 에토레 카를리올리가 습격당했고 터키어로 번역한 터키 번역자 아지즈 네신이 1993년 7월 투숙하고 있던 호텔에 방화를 당하여 봉변을 당했다.[17] 그외에 노르웨이 번역자도 습격당한 적도 있다 한다. 하지만 2000년대 와서 한국이나 여러 나라에서 정식으로 번역되어 나왔을 땐 번역자 누구도 별다른 일이 없었다. 아무래도 다소 잊혀진 사건이라 그런 것으로 보인다.
결국 쿨타임이 다 찼는지 1998년 9월 22일 이란의 하타미 대통령이 53차 유엔총회에 참석하여 루시디 사건은 끝났다고 하였고 9월 24일 카말 하라지 외무장관도 이란 정부가 루시디에게 걸었던 현상금을 철회한단 발언을 했다. 지친 루시디도 "나는 더 이상 숨어살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몸을 사리고 거진 반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루시디의 사형 선고는 아직까지 안 풀렸다.''' 여기에는 웃지 못할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데, 이슬람의 법에 의하면 파트와는 오로지 해당 파트와를 내린 사람만이 풀 수 있다. 호메이니는 그 파트와를 철회하기 전에 죽어서 이란 정부가 풀고 싶어도 풀지 못한다고. 즉 루시디는 엄밀히 말하면 아직까지 사형선고를 받은 몸이다.[18] 그러더니 2008년에 루시디가 기사 작위를 받자 또 악마의 시를 가지고 이슬람 세계가 들썩거렸고 그 뒤에 갑자기 루시디를 죽이면 또 돈을 준단 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편 탈레반이나 오사마 빈 라덴을 두고 왜 이슬람 개망신시키는 저 쓰레기들은 파트와는 안 내리냐? 라고 비아냥거리는 무슬림도 있을 지경. 2000년 초반에 국내에 나온 이슬람권 기행 책자에서 언급되던 일인데 쿠웨이트 신학 대학교수가 수업 도중
여담으로 살만 루시디는 원래부터 자상하고 알고 보면 따뜻한 사람 이미지[19] 보다는 사생활이 화끈한(이슬람 근본주의 입장에서 보면 난잡한) 그리고 얍삽한 이미지가 있었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살만 루시디 사진 중 인상이 더러운 사진을 주로 들고다니며(...) 사람들에게 "살만 루시디는 사탄의 친구답게 생긴데로 논다."(...)라고 선동하고, 논란 당시 백인우월주의자 및 기독교 근본주의 단체에서도 살만 루시디의 사진과 분노한 무슬림 군중들의 사진을 대조하여 보여주며 추악한 파키(인도/파키스탄계 이민자들에 대한 혐칭)들의 어리석은 싸움이라고 인종차별적으로 조소하는데 이르렀다.
이와 비슷한 일이 2006년에 일어났다. 덴마크 한 신문사에서 2005년 9월에 무함마드를 그린 12가지의 만평을 신문에 인쇄했는데 2006년에 그걸 안 이슬람계가 말 그대로 발칵 뒤집어졌다. 하지만 여기서 대다수는 원리주의신자들이었다.[20] 원래 이슬람교의 교리는 무함마드의 그림을 그리지 말라고 지시하고 있는데 자신들의 교리를 깨버렸다고 화낸 것[21] . 그 만화를 그린 사람이 이슬람교도라면 문제가 되었겠지만 이슬람교도가 아니라면 문제가 아니다. 본래 종교의 교리는 그 종교를 믿는 사람에게만 적용할 수 있다.[22]
이슬람교를 믿는 나라들이 덴마크에게 집단으로 항의[23] 했고, 심지어 인도의 어느 높으신 분은 12명의 만화가 중 한 명이라도 살해해서 데려오는 자에겐 '''천만 달러의 보상금과 함께 죽인 사람의 무게만큼의 금을 주겠다'''고 현상금까지 걸었다! 원리주의 이슬람 교인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데모를 했으며 덴마크의 국기를 불태우는 등 난리도 아니었다. 당연히 이번에도 해당 만화가들을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숨어 살아야 했다고.
각국의 정부와 유럽연합은 이슬람교의 편을 들었으나 사람들, 특히 미국 사람들은 언론의 자유를 탄압하지 말라는 목소리를 냈다.[24] 빡친 만화가들은 해당 사건을 풍자하는 만평들을 쏟아냈다.[25] 프랑스 어느 시사만화가는 무함마드, 부처, 야훼, 예수를 그려놓고 "우리는 신을 그릴 자유가 있다!" 라고 큰 글씨를 쓴 만화를 기재했는데, 며칠 뒤 신문사에서 해고당했다. 그는 당연히 자유 훼손이라고 반발했지만 신문사 측은 "남의 문화를 훼손하는 게 결국은 자유가 아니라 오만이다."라는 답변을 했다고 한다.[26] 더불어 이 신문에 이 만화 기재를 허용한 편집부도 감봉 및 징계 조치를 당했다.
위에 설명한 데모 중에서 심심치 않게 '''"아메리카에게 죽음을!"'''이라는 외침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다고. 정작 미국은 아무것도 안 했는데. 미국의 만평가들이 그린 만평 때문이라면 또 모르지만.
또 다른 해프닝이 2010년에 벌어졌다. 사우스 파크에 나온 무함마드에 대해 이슬람계가 항의한 적이 있다. 그러자 아예 '''"이럴 거면 우리 모두 무함마드를 그리는 게 어떨까요? 모든 사람들이 무함마드를 그리면 저들도 우리 모두를 죽이진 못할 것 아닙니까ㅋ"'''라는 취지에서 나온 '''"무함마드 그리는 날"'''이라는 이벤트도 개최했다. 자세한 건 여길 참조. 단 영어가 좀 되어야 한다.
결국 샤를리 엡도 총격 테러가 일어나고 나서야 그때까지 해온 옹호가 얼마나 무의미한것이었는지를 깨달은 이들이 이슬람 원리주의를 비판하기에 이르렀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물론 이런 논란은 마릴린 맨슨에게 총기 난사 사건의 잘못을 뒤집어 씌우던 미국 보수 기독교계라던지, 극렬 반기독교 데스메탈 밴드 디어사이드 밴드 리더 글랜 벤튼에게 폭발물 소포가 온다던지 등등 기독교계에도 있긴 했다. '''다만 논란의 경도가 차원이 달랐다 뿐이다.'''
결국 이런 문제들은 서구 문화의 중심이 되는 개인의 권리와 자유와 (특히 표현의 자유) 이슬람교의 교리가 충돌하며 생기는 일이라고 볼수 있다. 물론 다른 종교, 이를테면 가톨릭 같은 경우도 세속화와 자유주의의 물결에 적당히 타협하고 변화를 시도해서 지금처럼 된 거지, 근대 이전까지만 해도 종교적 교리는 개인의 권리와 자유보다 우선한다는 것이 당연한 사실이었다. 지금 우리가 최고의 가치로 놓는 것들의 위치에 종교적 교리가 들어가 있으니 그 논리대로라면 당연한 일. 종교 집단이 세속 권력을 잃지 않았으면 아직도 바뀌지 않았겠지만 단순히 특정 종교나 혹은 종교 전반 vs 세속적 인본주의의 대립적 구도로 보는 것만에도 한계가 있고, 결국 '표현의 자유'와 인권 자체를 둘러싼 해석론으로 귀결된다.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취존의 범위에 대한 문제다. 그리고 취존을 하지 않으면서 (폭력이라는 극단적 방법으로) 남들 보고 우리 취존 안 한다고 주장하는 극단주의자들이 있는 것이 문제이고. 사실 종교가 광적인 모습을 자주 보이기는 하지만 그것보다는 이성적인 척 하면서 더 무시무시한 결과를 가져오는 극단주의는 한둘이 아니다. 제노포비아를 비롯한 각종 포비아, 이념적 극단성, 그 이면에 숨겨진 탐욕스러운 착취와 억압을 통해 세상을 지배하는 자들 등.
상대의 종교에 어느정도의 존중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근거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는 걸 기억하자. 마지막으로 그간 이슬람권의 악행을 다룬 기사. 따지고 보면 이슬람의 잘못이다가 아니고 이슬람과 종교 비하,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논쟁과 테러에 대한 기사이다. 참조
1. 개요
인도 작가 '살만 루시디'의 소설. 1988년에 처음 출판됐다.
작가 루시디의 네번째 소설이다. 루시디의 소설이 대부분 그렇듯이 산문 형식으로 쓰여져 있으며 '마술적 사실주의'가 깊게 스며들어 있다.
제목은 무함마드가 쿠란에 넣었다가 뺀 고대 아라비아 토속신앙 관련 구절을 이른다고 한다.
밑에서 기술하는 각종 종교 논쟁 때문에 이 소설의 주제의식이 되려 묻히는 경향이 있다. 소설의 진정한 의미보다는 소설의 일부분에서 파생된 종교적 논란이 전세계적으로 더 주목 받았기 때문이다. 과거 블랙 사바스, 슬레이어(밴드) 같은 메탈 밴드들이 반기독교 관련 음악을 한다며 일부 소매상들이 판매 거부를 하다가 오히려 인지도가 늘어난 정도로만 그친 것과 다르게, 이번에도 인지도와 판매량은 증가했으나 대신 번역가가 살해당하고 이란 이슬람 신정 공화국의 호메이니가 살만 루시디를 처형하라는 명령을 공개적으로 선포하는 등 논란이 훨씬 심했다.
살만 루시디 또한 이런 종교적 이슈에만 집중하는 기현상을 자신의 자서전에서 격정적으로 토로한바 있다. 자신은 기본적으로 이슬람교를 믿는 가정에서 자랐으며 소설 내에서 이슬람을 부정적으로 묘사할 의도도 없었으며, 이슬람교에 대한 비판은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는 전혀 무관하며 비판을 하지도 않았는데 상당수 무슬림들은 자신의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소설의 일부분만을 보고 자신과 자신의 책을 불경죄로 매도 한다고 항변하였다.[1] 반면 평생 서먹서먹 했던 자신의 아버지가 편지를 통해 이 소설이 갖고 있는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는 모습을 보며 크게 감동했다고 언급하기도 한다. 다만 살만 루시디가 일부러 노이즈 마케팅을 노리고 서술을 한 듯한 내용도 일부 있으며, 해당 해명은 논란이 생각보다 훨씬 심각해지자 내세운 해명에 가깝다.
소설은 영국으로 이민온 인도인 이민자의 혼란스러운 삶을 풍자적으로 묘사했다고 볼 수 있다. 인도인 이민자들이 영국에 와 새로운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오는 각종 혼란을 묘사했으며 반대로 영국으로 몰려오는 낯선 이민자들과 그들의 문화를 배척하기도 하지만 받아들이기도 하는 영국인들의 혼란스러운 모습 또한 잘 묘사되어 있다. 이런 이민자와 외래문화에 대한 거부와 수용이라는 정반합은 소설 속 무함마드 에피소드에서도 잘 들어나는데 아랍 세계가 초기 무지의 시대에는 무함마드와 신생 종교였던 이슬람을 배척하려 했으나 혼란 끝에 받아들이는 과정이 묘사된다. 반면 무함마드 또한 자신을 배척하는 아랍 위정자들 의해 크게 좌절을 느끼고 인간적으로 고뇌[2] 를 하는 모습이 묘사된다. 무함마드는 타협[3] 이라는 쉬운 길에 빠질 뻔 했으나 결국 타협하지 않고 자신이 믿는 바를 따르며 마침내 이슬람의 유일신 사상을 지켜낸다. 반면 인도인 이민자인 살라딘 또한 영국에서 적응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거의 잃어 버리고 현실과 타협하여 우스꽝스럽게 영국인 행세를 하며 친영주의자로서 살아가나 자신을 악마[4] 취급하는 영국인들에 의해 좌절하게 되고 온갖 고난을 겪지만 마침내 자아를 찾게 되며 자아를 포용하고 혼란을 극복하게 된다.
이민자의 정체성 혼란, 고난의 극복, 자아의 포용이라는 주제의식은 살만 루시디의 다른 소설에서도 공통적으로 들어난다. 예를 들어 소설 ‘분노(Fury)’는 뉴욕으로 이민간 인도계 영국인 화자의 또다른 혼란을 담고 있다.
2. 간단한 줄거리 요약
소설은 두명의 인도인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걸로 시작한다.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납치당한 비행기는 사고 때문에 공중에서 폭발했고, 그 사고에서 살아남은 단 두사람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생존자 중 한명인 지브릴 파리쉬타는 힌두교의 각종 신들을 연기하는 입냄새가 심한(...) 무신론자 배우이며, 다른 한명인 살라딘 참차[5] 는 자신의 근본을 멸시하고 거부하며 완벽한 영국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친영파 아부꾼 성우이다.
공중폭발에 의해 하늘에서 떨어지나 기적적으로 살아난 후에 지브릴은 이름 그대로 이슬람교의 대천사 지브릴의 성격과 후광을 지니게 되었고, 살라딘은 그 반대인 악마[6] 의 모습으로 변한다.[7]
해변에 살던 어느 노파에게 구출된 후에 살라딘은 이민국 직원들에게 잡혀 끌려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살라딘은 지브릴에게 도와달라고 소리치지만, 지브릴은 천사가 되면서 보기 시작한 환상에 홀려있던 터라 친구의 도움 요청을 못 듣고, 살라딘은 결국 끌려가면서 이민국 직원들에게 모진 수난을 당하다가[8] 결국엔 집으로 돌아오지만 그의 친구가 그의 아내와 함께 살고 있는걸 보게 된다.[9]
그 뒤 '''지브릴은 꿈 속에서 대천사 지브릴의 입장에서 많은 환영을 보며'''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묘사가 나온다. 자신이 사랑하던 산악인 알리 콘과 동거하다가 환상 속에서 해매던 그를 살짝 차로 친 영화업계인에 의해 다시 영화계로 돌아오게 된다. 살라딘으로 말할 것 같으면 문제의 친구가 소개해준 하숙집에서 짱박혀 있다가 결국은 인간으로 돌아오게 된다. 살라딘은 자신을 쌩깐 지브릴에게 복수하려 들지만, 지브릴은 오히려 자신을 해하려 한 살라딘을 용서해주고 목숨을 구해주기까지 한다.
결말에는 지브릴에게서 무언가를 깨달은 살라딘이 자신이 그토록 거부하던 자신의 근본과 화합하고 인도에 돌아가서 산다. 지브릴은 환영과 질투 속에 살다가 알리를 옥상에서 떨어트려 죽이고 자신도 살라딘의 저택에서 권총으로 자살하고 만다.
3. 이슬람계의 극렬한 반발
이 책의 출간 후, 이슬람 세계는 '''그야말로 분노로 폭발했다.''' 책 한 권 때문에 파키스탄과 북인도부터 중동에 이르는 지역에서 반미시위와 폭동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 난장판에 개입한 것이 바로 호메이니였다. 호메이니는 처음에는 악마의 시를 읽고 격분하였으나 미친놈들에게 일일이 신경 쓸 필요는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무시하기로 하였으나''' 이슬람 세계의 분노가 폭발하는 것을 보고 이를 잘 이용하면 정치적 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하여 1989년 2월 14일 살만 루시디와 그 출판에 관여된 모든 사람들에게 사형을 내리는 파트와를 선포했다.[10]
그리고 2월 15일은 이란의 애도의 국경일로 선포되었다. 하지만 다음날인 2월 16일, 이란 정부는 루시디에게 협상을 제시했다. 대통령 하메네이[11] 의 명의로 만약 루시디가 깊이 뉘우치고 악마의 시와의 관계를 부정한다면 파트와를 철회해주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2월 18일, 루시디는 자신의 작품이 큰 논란을 초래한 것이 유감이긴 하지만 서로 다른 감수성을 알아야 한다고 대답함으로 사죄를 거부했다. 이에 더 빡쳐버린 호메이니는 이제 루시디가 사죄하던 말던 죽은 목숨이라고 선포하기에 이르렀다."전지전능한 신의 이름으로, 우리는 신 안에 있으며 신께로 돌아갈 것이다. 나는 이슬람, 예언자, 그리고 쿠란에 반대하는 악마의 시 작가와 출판자에게 사형선고를 내린다. 나는 모든 열정적인 무슬림들에게 그들을 신속하게 찾아서 집행할 것을 요구한다. 어느 누구도 이슬람의 존엄성을 모욕할 수 없다. 신의 의지에 따라서 이 길에서 죽는 자는 순교자로 간주될 것이다. 루홀라 호메이니."
1989년 2월 14일,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의 파트와.
위의 줄거리 요약만 보면 왜 이 소설을 가지고 이슬람계가 그렇게 흥분했는지 감이 안 잡히지만, 선동하는 성직자들은 특히 세 가지를 강조했다. 지브릴은 소설 속에서 총 세 가지의 환영을 겪는데, 그 중 처음 두 환영이 문제가 되었다. 특히 첫번째.
- "마혼드(Mahound)"[12] 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무함마드가 다신교의 신들을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가 나중에는 신의 계시인 줄 알았던 게 사실은 샤이탄의 훼방이었다며 그 발언을 번복하고,[13]
- 추방 상태인, 광신적 종교 지도자 "이맘"[14] 이 지브릴 자신을 이용해서 그의 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여제이자 마하운드가 끝내는 거부한 이교의 여신인 알-랏을 죽이는 것과,
- 아이샤라는 인도의 한 소녀가 환영에 빠져서 그녀가 살던 마을 전체를 이끌고 메카로 향한 순례를 떠나는 것.
결국 루시디는 조지프 안톤[15] 이라는 예명을 쓰며 영국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은둔 생활을 하고 있고, 출판에 관여한 사람들 역시 몸을 사려야 했다. 밑에서 설명하겠지만 실제로 번역자들이 공격을 당하거나 죽임을 당했다.
심지어 영국 내에서도 여러 이슬람 단체의 높으신 분들과 다수의 무슬림은 사형선고 파트와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지지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이슬람 근본주의가 과연 근본주의자들만의 문제인가라는 비판을 피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됐다. Muslim Parliament of Great Britain의 경우 초대 장부터 이 파트와를 열성적으로 지지했고 그가 물러난 지금도 그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 훗날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까지 받은(!) 영국 이슬람 업무 활동 위원회의 이크발 사크라니(Iqbal Sacranie)는 "아마도 죽음은 루시디에게는 좀 너무 쉬운 방식이다.(...) 그가 전능하신 알라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는 이상 루시디는 남은 삶 내내 고통(torment)받아야 한다."라는 무시무시한 말을 남겼다. 브래드퍼드 모스크 의회의 사이드 압둘 쿠두스는 "나는 호메이니가 대중에게 한 말들에 완전히 동의한다. 모든 무슬림들은 살만 루시디를 탓해야 한다. 그 어느 무슬림이라도 기회가 생긴다면 놓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기회를 놓치지 않는게 좋다."고 했다. 기독교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한 캣 스티븐스마저 살만 루시디에 대한 공격적인 발언으로 음악계를 충격에 빠트렸다. [16]
악마의 시의 번역에 관여한 사람들도 최소한 네명은 좋은 꼴을 보지 못했다. 악마의 시 번역자 피살사건 참조. 그외엔 1991년 7월 이탈리아어로 번역한 번역가 에토레 카를리올리가 습격당했고 터키어로 번역한 터키 번역자 아지즈 네신이 1993년 7월 투숙하고 있던 호텔에 방화를 당하여 봉변을 당했다.[17] 그외에 노르웨이 번역자도 습격당한 적도 있다 한다. 하지만 2000년대 와서 한국이나 여러 나라에서 정식으로 번역되어 나왔을 땐 번역자 누구도 별다른 일이 없었다. 아무래도 다소 잊혀진 사건이라 그런 것으로 보인다.
결국 쿨타임이 다 찼는지 1998년 9월 22일 이란의 하타미 대통령이 53차 유엔총회에 참석하여 루시디 사건은 끝났다고 하였고 9월 24일 카말 하라지 외무장관도 이란 정부가 루시디에게 걸었던 현상금을 철회한단 발언을 했다. 지친 루시디도 "나는 더 이상 숨어살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몸을 사리고 거진 반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루시디의 사형 선고는 아직까지 안 풀렸다.''' 여기에는 웃지 못할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데, 이슬람의 법에 의하면 파트와는 오로지 해당 파트와를 내린 사람만이 풀 수 있다. 호메이니는 그 파트와를 철회하기 전에 죽어서 이란 정부가 풀고 싶어도 풀지 못한다고. 즉 루시디는 엄밀히 말하면 아직까지 사형선고를 받은 몸이다.[18] 그러더니 2008년에 루시디가 기사 작위를 받자 또 악마의 시를 가지고 이슬람 세계가 들썩거렸고 그 뒤에 갑자기 루시디를 죽이면 또 돈을 준단 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편 탈레반이나 오사마 빈 라덴을 두고 왜 이슬람 개망신시키는 저 쓰레기들은 파트와는 안 내리냐? 라고 비아냥거리는 무슬림도 있을 지경. 2000년 초반에 국내에 나온 이슬람권 기행 책자에서 언급되던 일인데 쿠웨이트 신학 대학교수가 수업 도중
이런 말을 했다고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란에서는 우리더러 쓰레기라는 거냐 울컥했으나 그렇게 더 큰 논란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파트와를 남발하는 것들은 정작 이슬람을 세계적으로 망신시키는 것들에게 빼놓으니 문제다, 비난받을만 하지만 그렇다고 파트와까진 아니라고 볼 수도 있는 작가에게는 파트와 내리고 큰 소리치던 주제에 이것들이 눈치를 보는지 아니면 민간인을 학살하는 테러를 저지르는 것들을 동감한다는 건지? 이래놓고 이슬람 이름을 내세우며 큰 소리칠건지 너희들은 저런 쓰레기들처럼 되지 말도록 해라.
여담으로 살만 루시디는 원래부터 자상하고 알고 보면 따뜻한 사람 이미지[19] 보다는 사생활이 화끈한(이슬람 근본주의 입장에서 보면 난잡한) 그리고 얍삽한 이미지가 있었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살만 루시디 사진 중 인상이 더러운 사진을 주로 들고다니며(...) 사람들에게 "살만 루시디는 사탄의 친구답게 생긴데로 논다."(...)라고 선동하고, 논란 당시 백인우월주의자 및 기독교 근본주의 단체에서도 살만 루시디의 사진과 분노한 무슬림 군중들의 사진을 대조하여 보여주며 추악한 파키(인도/파키스탄계 이민자들에 대한 혐칭)들의 어리석은 싸움이라고 인종차별적으로 조소하는데 이르렀다.
4. 뒷이야기
이와 비슷한 일이 2006년에 일어났다. 덴마크 한 신문사에서 2005년 9월에 무함마드를 그린 12가지의 만평을 신문에 인쇄했는데 2006년에 그걸 안 이슬람계가 말 그대로 발칵 뒤집어졌다. 하지만 여기서 대다수는 원리주의신자들이었다.[20] 원래 이슬람교의 교리는 무함마드의 그림을 그리지 말라고 지시하고 있는데 자신들의 교리를 깨버렸다고 화낸 것[21] . 그 만화를 그린 사람이 이슬람교도라면 문제가 되었겠지만 이슬람교도가 아니라면 문제가 아니다. 본래 종교의 교리는 그 종교를 믿는 사람에게만 적용할 수 있다.[22]
이슬람교를 믿는 나라들이 덴마크에게 집단으로 항의[23] 했고, 심지어 인도의 어느 높으신 분은 12명의 만화가 중 한 명이라도 살해해서 데려오는 자에겐 '''천만 달러의 보상금과 함께 죽인 사람의 무게만큼의 금을 주겠다'''고 현상금까지 걸었다! 원리주의 이슬람 교인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데모를 했으며 덴마크의 국기를 불태우는 등 난리도 아니었다. 당연히 이번에도 해당 만화가들을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숨어 살아야 했다고.
각국의 정부와 유럽연합은 이슬람교의 편을 들었으나 사람들, 특히 미국 사람들은 언론의 자유를 탄압하지 말라는 목소리를 냈다.[24] 빡친 만화가들은 해당 사건을 풍자하는 만평들을 쏟아냈다.[25] 프랑스 어느 시사만화가는 무함마드, 부처, 야훼, 예수를 그려놓고 "우리는 신을 그릴 자유가 있다!" 라고 큰 글씨를 쓴 만화를 기재했는데, 며칠 뒤 신문사에서 해고당했다. 그는 당연히 자유 훼손이라고 반발했지만 신문사 측은 "남의 문화를 훼손하는 게 결국은 자유가 아니라 오만이다."라는 답변을 했다고 한다.[26] 더불어 이 신문에 이 만화 기재를 허용한 편집부도 감봉 및 징계 조치를 당했다.
위에 설명한 데모 중에서 심심치 않게 '''"아메리카에게 죽음을!"'''이라는 외침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다고. 정작 미국은 아무것도 안 했는데. 미국의 만평가들이 그린 만평 때문이라면 또 모르지만.
또 다른 해프닝이 2010년에 벌어졌다. 사우스 파크에 나온 무함마드에 대해 이슬람계가 항의한 적이 있다. 그러자 아예 '''"이럴 거면 우리 모두 무함마드를 그리는 게 어떨까요? 모든 사람들이 무함마드를 그리면 저들도 우리 모두를 죽이진 못할 것 아닙니까ㅋ"'''라는 취지에서 나온 '''"무함마드 그리는 날"'''이라는 이벤트도 개최했다. 자세한 건 여길 참조. 단 영어가 좀 되어야 한다.
결국 샤를리 엡도 총격 테러가 일어나고 나서야 그때까지 해온 옹호가 얼마나 무의미한것이었는지를 깨달은 이들이 이슬람 원리주의를 비판하기에 이르렀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물론 이런 논란은 마릴린 맨슨에게 총기 난사 사건의 잘못을 뒤집어 씌우던 미국 보수 기독교계라던지, 극렬 반기독교 데스메탈 밴드 디어사이드 밴드 리더 글랜 벤튼에게 폭발물 소포가 온다던지 등등 기독교계에도 있긴 했다. '''다만 논란의 경도가 차원이 달랐다 뿐이다.'''
결국 이런 문제들은 서구 문화의 중심이 되는 개인의 권리와 자유와 (특히 표현의 자유) 이슬람교의 교리가 충돌하며 생기는 일이라고 볼수 있다. 물론 다른 종교, 이를테면 가톨릭 같은 경우도 세속화와 자유주의의 물결에 적당히 타협하고 변화를 시도해서 지금처럼 된 거지, 근대 이전까지만 해도 종교적 교리는 개인의 권리와 자유보다 우선한다는 것이 당연한 사실이었다. 지금 우리가 최고의 가치로 놓는 것들의 위치에 종교적 교리가 들어가 있으니 그 논리대로라면 당연한 일. 종교 집단이 세속 권력을 잃지 않았으면 아직도 바뀌지 않았겠지만 단순히 특정 종교나 혹은 종교 전반 vs 세속적 인본주의의 대립적 구도로 보는 것만에도 한계가 있고, 결국 '표현의 자유'와 인권 자체를 둘러싼 해석론으로 귀결된다.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취존의 범위에 대한 문제다. 그리고 취존을 하지 않으면서 (폭력이라는 극단적 방법으로) 남들 보고 우리 취존 안 한다고 주장하는 극단주의자들이 있는 것이 문제이고. 사실 종교가 광적인 모습을 자주 보이기는 하지만 그것보다는 이성적인 척 하면서 더 무시무시한 결과를 가져오는 극단주의는 한둘이 아니다. 제노포비아를 비롯한 각종 포비아, 이념적 극단성, 그 이면에 숨겨진 탐욕스러운 착취와 억압을 통해 세상을 지배하는 자들 등.
상대의 종교에 어느정도의 존중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근거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는 걸 기억하자. 마지막으로 그간 이슬람권의 악행을 다룬 기사. 따지고 보면 이슬람의 잘못이다가 아니고 이슬람과 종교 비하,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논쟁과 테러에 대한 기사이다. 참조
5. 같이 보기
[1] 다만 그 묘사가 풍자적이고 우스꽝스럽다. 이를테면 무슬림 인물 이름이 (실제로 인명으로는 쓰이지 않는) 우르두어로 숟가락을 의미하는 "짬짜"라던가[2] 아랍 위정자들은 이슬람교로 개종하는 조건으로 무함마드에게 쿠란에 악마의 시를 포함하라는 요구를 한다. 이 악마의 시에는 기존 아랍인들이 믿고 있던 세자매 여신을 이슬람교의 일부로 받아들인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슬람은 유일신을 믿으므로 세자매 여신을 또다른 신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요구사항이었다. 무함마드는 이 요구사항이 자신의 종교에 대한 모순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나 이 요구사항을 받아들이면 더럽게 말안 듣는 아랍 위정자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 수 있게되고 이슬람을 대중적으로 포교할 수 있는 기회라도 생각하게 된다. 이에 쉬운 길을 택할까 고뇌하게 되며 요구사항을 일시적으로 받아들이는 듯 하나 결국 그 요구사항은 악마의 꼬드김이었다고 선언하고 악마의 시의 수용을 번복한다. 이런 무함마드의 인간적인 고뇌에 대한 묘사 때문에 많은 무슬림들이 분노하게 되며 많은 이들이 이슬람교의 최후의 선지자를 모독했다고 믿게 된다.[3] 제목인 ‘악마의 시’에는 여러 복합적인 의미가 담겨 있지만 이질적인 개인이 집단 내에서 겪는 좌절에서 오는 타협과 그 타협에서 오는 자아상실이야 말로 ‘악마의 시’가 의미하는 바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겠다. [4] 살라딘이 비행기에서 추락한 후 악마의 형태를 띄게 되는 묘사는 이민자를 악마로 매도하는 사회에 대한 풍자라 볼 수 있다.[5] 짬짜는 우르두어/힌디어로 숟가락이라는 뜻으로 실제 인명이나 가문명으로는 쓰이지 않는 이름이다. 왜 주인공 이름을 살라딘+숟가락이라 지었는지 생각해보자.[6] 염소의 다리에 온몸에 털이 수북하게 나고 '''대물'''이 되었다고. 아, 물론 뿔도 있다. 묘사를 보면 사탄 그 자체지만 일단 악마라고 해두자.[7] 나중에 가면 악마의 권능까지 일부 사용할 수 있게된다. [8] 심지어는 '''자신이 싼 똥을 먹게 하는 것'''도 있다.[9] 살라딘은 완벽한 영국인이 되고자하는 열망에 영국인 아내와 결혼하지만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 이는 이민자인 살라딘이 아무리 애써봤자 완벽한 영국인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며 두 이질적인 문화가 완전히 융합되는 과정은 어렵다는 사실을 암시한다[10] 한가지 알아야 할 것은 파트와 = 사형 선고가 아니다! 파트와는 이슬람의 학자가 내놓는 이슬람적 법적 판결로서 코란과 샤리아에 입각한다. 일반적으로 극단주의 이슬람 국가가 아닌 이상 이 파트와는 법적인 구속력은 없다. 따라서 파트와를 어길 경우 동네 단위의 린치를 당할 수는 있어도 진짜로 국가가 운영하는 감옥에 가는 건 아니다. 문제는, 호메이니는 정치지도자인 동시에 종교 지도자였기 때문에 사형 선고인 파트와를 내리는게 가능했고 그것이 효력까지 가졌던 것이다.[11] 21세기에도 여전히 이란의 최고 종교 지도자이자 독재자로 군림하고 있는 그 사람 맞다. 1981년 부터 대통령을 역임하다가 89년에 호메이니가 죽자 최고 종교 지도자로 선출되어 지금까지 재임하고 있는 것.[12] 마호메트(Mahomet)처럼 무함마드를 유럽식으로 잘못 부른 이름인데, 하운드(hound, 개)라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무함마드를 모욕하는 말이다. IS는 물론 선량한 무슬림 앞에서라도 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말이다![13] 이 해프닝은 무슬림의 역사가들이 기록해 놓은 일이기 때문에 진위성은 넘어간다고 치더라도 개종 후의 메카에 살던 사람들이 예전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기방에 출입하거나 돼지고기를 먹고, 평생 지켜온 신앙을 차마 완전히 버리지 못해 마호메트 이전에 모시던 여신들의 이름을 몰래 부르거나, 마혼드에게 반항하던 음유시인이 기방의 12명의 창녀들에게 마하운드의 아내들의 이름을 붙여주고 자신은 마혼드의 역할을 수행하는 장면이 나오고 알라라는 이름은 특별히 개성적인 뜻도 없는 재미없는 이름이라 조롱하는 등, 무슬림들이 보면 분노할만한 내용들이 많다.[14] 이건 어딜 봐도 당시 억압을 피해서 파리로 도망쳐 있던 상태인 루홀라 호메이니 본인의 묘사다. 거기다 이 이맘이 작중에 정의로운 모습으로 그려졌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15] 자기가 좋아하는 작가인 안톤 체호프와 조지프 콘래드에서 이름을 따왔다.[16] 참고로 본인은 언론의 왜곡 날조였다고 억울해하고 있다.[17] 덧붙여 아지즈 네신의 작품은 이 논란 때문에 모조리 교과서에서 빠졌다. 터키의 모 소설가에 의하면 평생 책을 한 번만 읽어본 터키 사람이 있으면 그 책은 아지즈 네신 책일 거라고. 그 정도로 대중적인 작가인데도 이런 일을 겪었단 말이다![18] 비슷한 이유로 이란의 팔라비 왕조 가 사람들도 혁명으로 축출 후 호메이니 시절에 내려진 궐석재판의 사형 판결로 인해 이란 귀국이나 방문을 못 하고 있다.[19] 이를테면 중세 이란 시를 재해석해서 루바이야트를 편역한 에드워드 피츠제럴드의 경우에 해당한다.[20] 자유주의적인 이슬람교도들은 원리주의신자의 눈을 피해서 돌려보기도 했다고한다.[21] 웃기게도 똑같은 이슬람교인 시아파는 무함마드가 신이 아니니 그리든 말든 신경 안 쓰는 분위기다. 오히려 이란에서는 무함마드의 얼굴이 그려진 우표까지 판매하고 있다.[22] 이원복이 가로세로 세계사를 그릴때 무함마드를 그렸는데 '''이슬람교에서 무함마드의 얼굴을 그리는건 큰 실례지만 이해해달라'''라고 주의내용을 삽입했던 이유다. 우리에겐 별 일도 아니지만, 그쪽에서는 실례가 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23] 와 더불어 덴마크산 유제품 불매를 벌였다. 이게 제법 타격이 커서(아랍권에선 유제품을 많이 먹기에 덴마크산을 많이 수출했다) 덴마크 농림부 장관이 아랍 티브이에서 나와 사과 방송을 하며 불매 운동을 줄여달라고 하소연했다. 그 밖에 레고나 여러 덴마크 유명 제품 불매도 벌이려 했는데 꽤 인구 시장성이 큰(아랍권 및 이슬람권은 인구 증가률이 엄청나며 부유층에서 레고같은 제품을 많이 사주기 때문)터라 해당 업체들은 덴마크 그 신문사에게 손해 배상을 하겠다고 반발했을 정도이다.[24] 그리고 일부 철학자들은 유럽연합의 이러한 행동은 원리주의신자들의 기세를 올려주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하기도 하였으며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25] 출처: The Best Political Cartoons of the Year 2007 Edition by Daryl Cagle.[26] 근데 단순히 그림을 그린 것을 가지고 훼손이라고 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원리주의신자들(주로 원리주의 신자들이 항의를 했다.)에게 겁을 먹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무함마드가 신이냐는 비아냥도 받아야 했기에 무함마드와 알라를 구별 못한 그 만화가의 무지는 비판받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