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시스 베이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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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잉글랜드의 대법관, 철학자, 과학자로 과학혁명의 시조이다. 기존에 사실이라고 믿었던 모든 권위를 부정하고, 자연에 대한 관찰, 가설, 실험을 통해 새롭게 증명된 사실만 '지식'으로 인정해야 된다는 과학적 방법론을 구체적으로 제시[1] 하였기에 경험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유명한 명언인 '아는 것이 힘'이라고 말했던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다.
국새관[2] 이자 대법관인 니콜라스 베이컨 경[3] 의 아들로 태어나 제임스 1세시절에 국새관과 대법관을 지냈다. 1621년에 뇌물을 받은 혐의로 공직에서 물러났으나, 그 뒤로도 학문은 계속해서 연구하였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냉동 닭이라는 유명한 일화를 남기며 마지막까지 학문을 연구하다 죽었다.
19세기~20세기 초에는 배근(培根)으로 음차했었다.
2. 학문적 업적
베이컨은 1620년 실로 비범한 역작인 '신기관'(Novum Organum)을 집필해 귀납법철학을 제시하였고, 그런 면에서 이후 '''경험주의''' 철학의 모범이 되었다. 기존에 서양철학계를 주름잡았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저서 「오르가논」(Organum)[4] 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학에서 흔히 삼단논법으로 알려진 연역법을 정립했다. 연역법의 장점은 전제가 참일 경우, 결론은 100퍼센트의 참을 보장해 준다는 것에 있다. 이 연역법에 대해서 베이컨은 아리스토텔레스를 비판한다. 연역법은 확정되는 100프로의 참이란, 다른 사람들과의 협력 없이 혼자서 완성하는 학문, 책상머리에 앉아서 사고, 추리, 공상하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새로운 방법인 귀납법은 100퍼센트의 참은 아니지만, 우리에게 새로운 지식을 제공해준다는 장점이 있다. 베이컨의 저작은 아리스토텔레스로 대표할 수 있는 절대진리에서 벗어나, 인간을 과학과 집단지성으로 이끌겠다는 하나의 선언이었다.[5] [6] 즉, 많은 사람들이 협력하며, 실제로 실험하고 관찰하는 과학을 통해 새로운 참을 완성해 나가겠다는 것. 신기관은 이와 같은 선언이자, 이 선언을 실행하는 방법론인 셈.
책의 1부에서 인간이 버리고 고쳐야할 우상(Idol)을 제시하고 2부에서는 우상에서 벗어나는 과학적 방법론 귀납을 제시했다. 우상은 4가지로 나뉜다. 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극장의 우상이다. 앞의 둘은 개인의 내적 문제와, 뒤의 두 개는 사회적 조건과 관련이 있다.
- 종족의 우상(The idols of the tribe)
인간은 어떤 것을 한번 믿으면 이와 일치하는 사실만 받아들이고 어긋나는 사실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믿음에는 인간이 가진 생물학적 특징이나 사회적 정서 및 편견들이 포함된다. 베이컨 시대의 사람들이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 생각하거나 또한 자연을 의인화하여(꽃이 활짝 피어난 것을 긍정적인 의미로 간주하는 등의 행동) 본다거나 혹은 인간 자신이 목적적 행위를 한다는 이유로 자연에서도 목적을 찾는것이 종족의 우상이다.
- 동굴의 우상(The idols of the cave)
인간은 개개인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성향이 다르다. 이러한 성향들은 사람들이 지식을 받아들일때 자신이 원하는 것만 걸러 듣게 만든다. 이는 빛(진리)을 차단하는 동굴과도 같아 동굴의 우상이라 한다.
- 시장의 우상(The idols of the marketplace)
사람들은 운명이나 실체라는 단어로 논쟁을 벌인다. 하지만 이런 단어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붙인 단어일 뿐이므로 쓸데없는 논쟁이다. 이것은 마치 사람이 서로 교역하며 관련을 짓는 시장에서 사물들에게 적합치 못한 단어나 이름을 붙여 사용하는 모양이라 시장의 우상이라 부른다.
- 극장의 우상(The idols of the theater)
자신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고 기존 학문의 권위만 따라서 생겨나는 편견을 말한다. 관련 없는 내용에 플라톤의 이데아같은걸 운운하는 철학들이 이에 속한다. 베이컨이 살던 시절은 극장은 권위를 상징하는 곳이었다.[7] 그래서 이런것을 극장의 우상이라 부른다.
이런 우상들을 버리기 위해서는 귀납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새로운 사실에 대한 폭넓은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다.구체적으로 첫째 단계는 발견 목록을 작성하는 일이다. 발견 목록은 존재 사례 목록, 부재 사례 목록, 비교 사례 목록으로 나누어진다. 어떤 현상에 대한 법칙을 발견하려 한다면 실험과 관찰로 그 현상이 발생하는 경우를 존재 사례 목록에 쓴다. 부재 사례 목록에는 현상이 발생하지 않는 경우들을 써야 하지만 그 종류는 무한이 많으므로 존재 사례와 관련된 부분만을 쓴다. 그리고 존재 사례와 부재 사례를 비교한 내용이나 현상이 움직이는(증가하거나 감소하는) 경우를 비교 사례 목록에 적는다.
두 번째 단계는 작성한 목록을 바탕으로 제거 목록을 작성하는 일이다. 존재 사례에 있는 유형이라도 부재 사례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일반적인 법칙이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목록을 바탕으로 펼칠 수 없는 주장들을 제거 목록에 적는다.
세 번째 단계는 목록의 내용을 토대로 가설을 작성하는 일이다. 가설을 작성하는 것은 실험과 관찰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여기에는 반드시 인간의 이성을 사용해야 한다.
네 번째 단계는 가설을 검증하는 것이다. 가설을 바탕으로 실험을 반복하여 가설이 맞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여기서 오류가 나타난다면 그 가설은 반드시 포기해야 한다.[8]
베이컨은 자신의 저술에 정리한 귀납법이 올바른 과학적 방법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실제 과학 법칙이 발견되는 과정은 공식화하기 힘든 비약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에 베이컨의 방법론이 효과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시작되는 논리학에서 귀납법의 위상을 확고히 했으며, 과학적 세계관과 방법론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베이컨의 저작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 위대함을 더하고 있다.
1627년 '새로운 아틀란티스'(The New Atlantis)에서 과학자들이 모여 귀납적인 방법으로 학문을 연구하는 과학 단체를 만들자고 주장했다.[9] 이 구상은 훗날 영국 왕립학회와 프랑스 과학아카데미로 실현되었고 이는 과학 혁명의 요람이 되었다.
1626년 3월에 베이컨은 자신의 귀납적 방법으로 눈이 부패 과정을 얼마나 늦추는지 알기 위해 어느 실험을 하다 폐렴에 걸려 4월에 사망했다. 이를 두고 '근대 과학의 순교자' 같은 별칭이 붙기도 했다. 자신의 연구 방법론을 온몸으로 실천하다 생을 마감한 셈.
3. 여담
- "Knowledge is power"(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로 유명하다.
그런데 레딧의 한 유저는 "Knowledge is power - Francis Bacon"을 "Knowledge is power, France is bacon"으로 듣고서 10년이 넘도록 대체 왜 프랑스가 베이컨인지 모른 채로 살아온 일이 있었다.[10][11] 번역본.
- 나중에 당연하게도 밈으로 발전하였고, 프랑스 모양 베이컨 짤이 나오기도 하였다.
- 정복지향적 자연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윤리와 사상 교과를 공부하는 학생들은 베이컨이 '인간은 자연의 하인이요, ...'라고 한 적도 있어서 헷갈릴 수 있다. 이것은 '자연을 정복하기는 위해서 하인 같은 마인드로 자연을 귀납적으로 관찰해야 한다'는 말이다.
- 현대 동명이인 화가인 프랜시스 베이컨과는 살짝 혈연적으로 연관이 있다.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은 본 문서의 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의 이복형제의 먼 후손이라고 한다.
[1] 구체적인 방법론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과학적 방법'을 통해 사실을 발견한 사례는 프랜시스 베이컨 이전에도 있었다. 그 한 예시로,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실험 등은 '과학적 방법'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다만, 갈릴레오가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하지 않았을 뿐이다.[2] 왕실의 국새를 담당하는 관리.[3] 아버지인 니콜라스 베이컨 경은 엘리자베스 1세의 국새관이자 대법관이었다.[4] 오르가논은 기관(器官)이라는 뜻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저작 전체를 가리키는 명칭이다. 오르가논은 흔히 논리학으로 옮겨지며,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의 결정적 차이를 보여주는 서양철학계의 커다란 역작이다.[5] 아리스토텔레스는 두 말할 나위 없는 위대한 철학자이며 세계 지성에 있어서 커다란 공헌자라 할 수 있다. 그의 사상은 위대한 것이고 소크라테스, 플라톤으로 이어지는 사상적 계보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고대 아테네에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주적인 소피스트들은 대단히 현대적인 주장을 했다. 그들에 따르면 진리나 진실은 상대적, 인간 나름의 것이다. 그리고 아테네는 토론과 토의와 집단지성을 중시하며, 아테네인들은 이를 통해서 재치와 임기응변에 능하고 모험적이며 진취적인 인간으로 성장해 다른 폴리스 출신들보다 위대한 일을 이룩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6] 이 풍조에 힘입어 고대 그리스 세계 전체에서 공부, 토론, 토의 좀 한다 하는 인간들이 소피스트로서 아테네에 몰려든 것이다. 이들은 진리가 상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돈 받고 공부와 지식을 사고 팔았으며, 재판정에서까지 활약했다. 똑같은 행동을 했다 하더라도 말을 잘 한 사람은 승소, 말을 못한 사람은 패소했다. 불변의 진리가 없으니 눈앞의 사익에 집중하게 되어 공공의 이익에 대한 관념이나 관심이 희박해졌고, 이 때문에 아테네 사회는 대단히 혼란해졌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이런 현상을 타파하고자, 불변의 진리가 있음을 입증하고자 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불변의 진리, 개념, 정의에 대한 의식은 확고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비교적 과학적으로, 세밀하게, 불변의 진리가 있음을 보여주려 했다. 무조건적인 참을 확정하는 삼단논법은 이와 같은 아리스토텔레스 작업의 산물이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은 상당한 완성도를 지니고 있었다. 그 이후의 학문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교화, 혹은 세부 사항에 있어서의 오류 수정 등을 담당하는 성향이 있었다.[7] 한편으로 그의 시대는 크리스토퍼 말로, 윌리엄 셰익스피어 등의 극작가들이 활발히 활동하는 시대기도 했다.[8] 이상 김용규,'설득의 논리학',웅진지식하우스,2007,p122[9] 이 책은 베이컨 사후에 출판되었다. 그래서 결말 부분까지 나와있지 않다.[10] 그 밑에 어떤 유저가 실제로 닉네임을 "France_is_Bacon"으로 바꾸고 그렇게 하지 못한 유저들이 절규한 로그들이 있다.[11] 댓글에는 유사 사례에 대한 증언들이 이어졌다. 어느 유저의 학교 기념비에는 'Francis'가 빠져 "Knowledge is power - Bacon"으로 적혀 있었다고 했다. 학생들은 파워 베이컨이 대체 무엇인지, 어떻게 구할 수 있는지 궁금해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