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 4: 최강의 적

 

'''슈퍼맨 4: 최강의 적''' (1987)
''SUPERMAN 4: THE QUEST FOR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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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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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포스터
디럭스 에디션 포스터

'''장르'''
슈퍼히어로
'''상영시간'''
90 분
'''개봉일시'''
1987년 6월 24일 (미국) / 1990년 12월 15일 (한국)
'''감독'''
시드니 J 퓨리
'''스토리'''
로렌스 커널, 마크 로젠탈, 크리스토퍼 리브
'''출연'''
크리스토퍼 리브, 진 해크먼, 마고 키더, 마크 맥 클루어, 재키 쿠퍼, 존 클라이어, 샘 워너메이커 외
'''음악'''
존 윌리엄스
'''원작'''
제리 시겔, 조 슈스터
'''각본'''
로렌스 커널, 마크 로젠탈
'''박스 오피스'''
$36.7 million
'''영상물 등급 제도'''
PG
1. 개요
2. 평가
3. 사운드 트랙
4. 관련 항목


1. 개요



1987년 개봉. 부제는 The Quest for Peace(국내에선 최강의 적). 《슈퍼맨 3》이 의붓딸과 결혼하려는 빌런이 나오는 원안을 수정한 뒤 어느 정도 흥행했으나 《슈퍼걸》에서 북미 흥행이 감소한 뒤 솔카인드 부자는 슈퍼맨 시리즈에서 손을 뗀다. 우여곡절 끝에 《슈퍼맨 4》는 B급 영화사였던 캐논 영화사에서 제작되었는데, 캐논 영화사는 워너처럼 70년대에도 제작비 지원을 5000만 달러 이상 투자할 상황은 안 되어 이보다 적은 액수로 정했으나 당시 리브가 아닌 슈퍼맨을 상상할 수도 없었기에 출연을 거절했던 크리스토퍼 리브를 설득해[2] 결국 출연시킨다. 리브가 캐스팅된 후에 2편에서 리차드 레스터 감독과의 불화로 아예 캐스팅에서 제외되거나 분량이 대폭 줄었던 진 해크만과 마곳 키더도 출연을 결정하였고, 이렇게 《슈퍼맨 4》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다.
리브는 이 영화에서 작가로 관여하였는데, 시나리오 과정에서 '핵 인간(Nuclear Man)'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슈퍼맨의 불완전한 복제 인간이면서 안티 슈퍼맨인 '비자로(Bizarro)'를 내세워 자신이 슈퍼맨과 비자로의 1인 2역을 하겠다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이는 3편에서 나온 악한 슈퍼맨과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꽤나 매력적인 내용이었다. 그러나 캐논 영화사는 당시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그로 인해 슈퍼맨 영화를 위해 책정되었던 제작비가, 이미 제작비가 감소한 3편 및 슈퍼걸의 반토막도 안 되는 1700만 달러로 줄어들게 되었다. 또한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제일 중요한 CG 기술 팀 또한 급여 문제로 대거 이탈하고 말았다. 결국 리브의 제안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영화 감독도 전 편들에서 감독을 맡았던 리차드 도너 감독과 리차드 레스터 감독 모두 거절하면서 오락 영화로 주목 받았던 시드니 J. 퓨리(1933~)가 맡게 된다.
내용은 전편에 등장하지 않았던 렉스 루터와 뉴클리어 맨이라는 빌런 캐릭터를 내세웠음에도 불구하고, 개봉 당시에는 액션신 포함 최소 40분 이상 삭제되어서[3] 온전한 내용으로 보려면 미국판 이외 판본으로 보거나, 당시 DC 코믹스에서 영화 내용을 코믹스로 만든 코믹스판을 통해야 볼 수 있다. 원래 계획은 1, 2편처럼 4편과 함께 5편의 액션 장면을 촬영하고 5편 내용 분량을 리브가 감독을 하는 것이었다. 허나 후술할 상황으로 캐논이 배급 분야에서의 활동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겪었고, 속편 제작에 알버트 푼 감독을 영입해 제목을 《슈퍼맨 5》로 하고 크립톤 도시인 캔도어를 배경으로 슈퍼맨의 죽음과 부활을 다루려는 계획이 무산되자 캐논 영화사는 판권을 솔카인드 부자에게 다시 줬다.
북미 흥행 성적은 1500만 달러 정도로 그나마 해외흥행까지 3600만 달러 정도를 벌고 2차 매체 수익도 추가해 흑자를 냈으나 캐논은 이 작품이 나오기 전부터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4000만 달러 영화 해적 (1986)이 634만 달러를 버는데 그쳐 손실을 보는 등 # 일부 작품들의 소소한 성공으로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었기에 이후 직접 투자, 배급을 하는 대신 다른 배급사로부터 투자 받아 제작하는 Cannon Films로 전환되었다.
한국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은데 1988년 개봉예정이었으나 역시 무기한 보류되었다가 1990년 12월 15일에서야 비로소 개봉할 수 있었다. 서울관객 2만 8천여명으로 한 달만에 소리없이 막을 내렸으며 당시 캐논의 공식비디오 수입사인 세경에서 비디오로 출시된다.
리브는 그의 자서전에서 《슈퍼맨 4》에 대해 "Superman IV was a catastrophe from start to finish. That failure was a huge blow to my career.(《슈퍼맨 4》는 처음부터 끝까지 재앙이었다. 그 영화의 실패는 내 커리어에 커다란 타격을 입혔다.)"라고 언급했으나 사실 리브의 커리어에선 평론 및 흥행 양쪽 다 같은 저예산에 드라마 장르의 영화인 배반의 계절이 더 부진했다.
리브의 슈퍼맨 시리즈 이후 슈퍼맨은 80년대의 슈퍼보이, 90년대의 로이스 앤 클라크, 슈퍼맨 TAS, 2000년대의 스몰빌 등의 TV 드라마들이 지속적으로 대중들의 인기를 얻었으며, 영화로는 90년대에 팀 버튼의 슈퍼맨 리브스를 내려다 비용 및 각본 문제로 무산되어서 리브의 시리즈 이후 무려 19년 만에 《슈퍼맨 리턴즈》가 제작됐다. 평은 좋았으나 흥행은 부진했고, 애니메이션 영화 수퍼맨 둠스데이가 성공한 이후 2010년대에 리부트 영화인 《맨 오브 스틸》도 제작되어 마찬가지로 성공을 거둔다.

2. 평가


2020년 기준으로 평론가들 평가는 로튼 지수 11에 머물러서 그나마 두 자리 수는 유지한 것에 만족해야 된 상황. # 의외로 소문과 달리 최악이 되는 건 면했는데, 극장용 DC 영화 중에선 2000년대에 제작비 1억 달러를 지원받은 캣우먼, 다른 극장 개봉용 히어로 영화 중에선 슈퍼베이비즈, 마스크의 아들, 리부트판 판타스틱 4 등이 평가도 로튼 지수 0 내지 한자리 수에, 흥행 대비 효율도 더 저조한 모습을 보인 것과 대조되는 차악의 영역에 머무르고 있다.
DC 코믹스 측에선 당시 비용 한계로 삭제되거나, 간략화된 내용을 복원한 코믹스판을 별도로 내주었으며, 이 작품에 나온 뉴클리어맨은 이후 메인 코믹스에서도 카메오 역할로 깜짝 등장했다.


3. 사운드 트랙


'''《Disc One》'''
"Prologue & Main Title" (5:31)
"The Planet Krypton" (4:35)
"The Destruction of Krypton" (5:27)
"Trip to Earth" (2:38)
"Growing Up" (2:05)
"Jonathan's Death" (4:09)
"Leaving Home" (4:46)
"The Fortress of Solitude" (8:22)
'''《Disc Two》'''
"Helicopter Rescue" (6:16)
"The Penthouse" (1:50)
"The Flying Sequence" (4:16)
"The Truck Convoy" (1:54)
"To The Lair" (2:18)
"March of the Villains" (3:56)
"Chasing Rockets" (5:12)
"Pushing Boulders" (2:24)
"Flying to Lois" (2:58)
"Turning Back the World" (2:01)
"The Prison Yard and End Title" (6:27)
"Love Theme from Superman" (5:01)

4. 관련 항목



[1] 북미 티저 포스터[2] 리브는 4편 제작을 원하지 않았지만 5편의 감독 자리와 자신의 다른 영화인 《스트리트 스마트》 제작 지원을 내걸자 다시 출연하기로 하였다고 한다.[3] 4편에서 뉴클리어 맨이 두 명이 나오기로 했다가 한 명으로 줄어들면서 한 명분의 영화 촬영분을 다 잘라냈기 때문에 영화 분량이 대폭 줄어든 것이다. 나머지 한 명을 5편 빌런으로 활용하려 했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