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파노 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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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대 성 하드리아노 3세

'''제110대 스테파노 5세'''

제111대 포르모소
  • 생몰년: ? ~ 891년 9월 14일
  • 재위기간: 885년 9월 ~ 891년 9월 14일
로마 귀족의 자제로 태어난 스테파노는 마리노 1세에게 추기경으로 서임받았고, 하드리아노 3세가 사망한지 4달여만에 교황으로 선출된다. 재임 후 이탈리아 전역에 기근 피해가 심했고 백성들을 구휼하기 위해 많은 재정을 사용해서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독일인 주교들의 반발을 의식해 슬라브어 전례를 금지시켰고 이에 반발한 일부 주교들이 불가리아로 이동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후 불가리아는 동방 교회로 기울어지면서 로마 교회와 멀어진다.
한편 이탈리아 왕국의 최대 실권자였던 귀도 3세를 양자로 받아들이고 루이 3세를 프로방스 왕국의 국왕으로 인정하는 등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하였다. 바실리오스 1세의 비호 아래 오랫동안 교황들과 대립각을 세운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포티오스와 경쟁도 이어갔는데 바실리오스 1세가 죽고 포티오스와 사이가 안 좋았던 레온 6세가 즉위하자 포티오스를 실각시킬 것을 건의하였고, 레온 6세가 이를 받아드려 포티오스는 최종적으로 실각하게 된다. 동로마 제국 황제와의 관계가 개성 됨에 따라 사라센의 침입을 막아줄 함대를 요청하기도 했다.
스테파노 5세는 891년 가을에 사망했고, 유해는 성 베드로 대성당에 안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