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링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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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스프링이 달려있는 막대기이다. 콩글리쉬로 러그(lug)에 끼우는 봉(棒)이라고 해서 '러그 봉(lug棒)', 일어에서 파생된 '바네 봉' 또는 '바넷 봉' 이란 표현도 쓰인다.일어로는 ばね棒 (바네보-)이다. 바네는 스프링이란 뜻이고, 보는 국어의 봉에 해당한다.
손목시계의 스트랩이나 브레이슬릿을 케이스에 고정시켜주는 도구이다. 손목시계에서는 필수적인 장치라 할 수 있다. 형태는 긴 쇠막대에 양 끝에 스프링이 달려있어 힘을 주면 원래의 크기보다 스프링만큼 끝부분이 줄어든다. 그래서 스트랩이나 브레이슬릿을 고정시킬때는 고정대 역할을 하고 스트랩부분을 교체해야 할때는 힘을 주어 스프링 바의 크기를 줄여 스트랩을 떼낼수 있게 되어 있다.
5,000원 짜리 싸구려시계도 1억짜리 초고가 시계에도 반드시 있어야 하고 중요한 부분이지만 보통 그 중요성이 간과되는 부분이라고 할 수있다. 시계는 신경써도 스프링 바를 신경쓰는 사람은 거의 없고 그러다 보니 고가시계라고 고가 스프링 바를 쓰는 사람도 거의 없으며 고가 스프링 바 자체가 드물다. 대부분 거의 대동소이한걸 쓴다. 그러나 러그의 홀과 스프링 바의 끝부분이 비슷해 보이지만 약간 달라서 체결되는 양이 적을 경우도 있을 뿐더러, 메탈인 경우 엔드피스의 구멍과 스프링 바가 제치가 아닌 경우 살짝 흔들거리거나 뜨는 현상도 보인다고 한다. 가격에 따른 품질 차도 분명 존재하며 품질도 품질이지만 무엇보다. 시계의 너비와 잘 맞는 걸 써야한다. 안 그러면 착용 중 분리현상을 볼 수 있다. 또한 스프링바 안의 스프링 소재가 저질이라면 녹이 슨다던지, 스프링의 장력이 다했다던지 하면 시계에 좋지 않다.
단 고가시계는 하나에 만원이상 되는 고급스프링 바도 있긴 하다고 한다.[1] 또 통금시계에는 금으로 된 스프링 바를 쓰기도 한다.
보통 케이스에 나는 큰 상처는 줄질을 하려고 스프링 바를 빼려다가 스프링바 툴로 인해서 생기는 경우가 많다. 스프링바 툴 끝부분이 날카롭고 스프링 바가 잘 안빠지다 보니 상처가 크게나서 왠간한 폴리싱으로도 상처가 없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고가시계라면 피눈물 나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스프링 바의 역사는 손목시계의 역사와 같이한다. 19세기 말엽부터 손목시계가 그 필요로 인해 나타나기 시작했고 회중시계에서 손목시계로 시계의 형태가 변화되면서 손목에 감아서 고정시켜주는 시계의 스트랩(또는 브레이슬릿)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시계 케이스와 시계밴드 부분을연결해주는 장치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생활 양식이 그렇듯 손목시계가 나왔다고 갑자기 회중시계에서 손목시계로 확 바뀐게 아니라 몇 십년동안 점진적으로 휴대용시계의 양상이 변화했기 때문에 손목시계는 현재의 형태가 일반화 되기까지 과도기적인 시기가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여성용 장신구정도로 여겨지거나 특수한 상황에서만 쓰이는 시계로 여겨졌다. 이를테면 전쟁중의 병사나 비행중의 파일럿등과 같이말이다. 그 때문에 현재 대부분의 손목시계는 엔드피스 부분에 길쭉한 러그가 존재하고 그 끝부분에 구멍이 달려 그 구멍에 스프링 바를 달 수 있는 구조이지만 초창기의 손목시계는 회중시계가 손목시계로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시기로서 회중시계를 손목에 올려놓는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팔찌위에 붙이거나 가죽으로 된 포켓워치 스트랩에 회중시계를 넣어서 손에 차고 다닌달지 아님 회중시계 양 끝에 얇은 와이어 러그를 달아 놓아 스트랩을 꿰메서 쓰는 형태였기 때문에 스프링 바가 필요가 없는 형태였다. 메탈 브레이슬릿 같은 경우에는 케이스에 직접납땜하는 형태가 많았다. 1920년대 중반쯤에는 손목시계가 점점 대중화 되자 시계 케이스에 밴드부분을 붙이려는 여러가지 시도가 있었다고 한다. 초창기의 회중-손목시계과도기가 점점 지나면서 케이스와 밴드 부분에 또 다른 물건을 통해 둘을 이으려는 시도가 생기게 되었고 그것이 스프링 바의 기원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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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August Beuke의 시계고정장치
초창기의 스프링 바 역시도 인류의 많은 발명이 그렇듯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것은 아니었다. 최초의 막대기들은 비교적 조악해서 스트랩을 요즘의 스프링 바처럼 쉽게 탈 부착 할 수 없었다. 단순하게 긴 원통형 쇠막대를 러그 사이에 용접하거나 스크류를 부착하여 고정시키는 수준이었다. 이런 방식의 이음새는 나토밴드를 사용하거나 아님 스트랩을 꿰메서 사용해야만 하는 구조가 된다.
시초를 보자면 1882년 T.R.Boone이란 사람이 출원한 특허 “커프와 옷깃 지지대”는 시계에 쓰는 용도의 스프링 바는 아니지만 스프링 바와 구조적으로는 차이가 크지 않은 물건을 만들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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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Charles Depollier라는 미국인은 회중시계에 시곗줄을 장착하여 손목시계로 사용하고, 필요 시 탈착하여 다시 회중시계로 되돌릴 수 있게 하는 장치를 만들어서 특허출원 하였다. 본격적인 손목시계는 아니고 회중시계에 러그 만 붙인 형태의 시계를 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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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Fred Gruen이란 사람은 양끝에 스프링이 달린것이 아닌 클립같은 구조물이 막대를 고정시켜주는 것을 특허 출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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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형태로 시계의 케이스와 밴드부분을 연결해 주는 방식은 스프링 바에 비하면 대중적이진 않지만 현재에도 쓰이는 방식이다. 다만 이런형태의 고정핀 내지는 나사형태는 시계러그 부분의 구멍이 롤렉스구형의 러그 구멍처럼 관통형이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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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인 손목시계모양에 쓰는 스프링 바는 1929년 Isidor Dintsman이란 사람이 스프링을 이용한 스트랩 고정장치를 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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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1931년에는 엘진이 스프링 바와 유사한 원리로 시계에 스트랩을 장착하는 부품를 출원하였으며
1946년에는 Robert Konikoff란 사람과1950년에 Nunzio Guarneri란 사람도 스프링 바 관련 특허를 출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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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882년의 사례를 보듯 이런 물건은 쉽게 생각해 내거나 사람의 필요가 있는 물건이었으며 기록에 남아있는 특허출원을 하지 않고 공방에서 개인적으로 만들거나 쓰인 물건들도 많았을 것이다. 당시에는 대량생산이나 기술적 표준화가 지금에 비해 고도화 되지 않았던점, 20세기 전반기 이전에는 시계회사에서는 무브먼트만 만들어 납품하고 케이스는 여러 쥬얼리 업체에서 만드는것이 매우 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1. 개요
말 그대로 스프링이 달려있는 막대기이다. 콩글리쉬로 러그(lug)에 끼우는 봉(棒)이라고 해서 '러그 봉(lug棒)', 일어에서 파생된 '바네 봉' 또는 '바넷 봉' 이란 표현도 쓰인다.일어로는 ばね棒 (바네보-)이다. 바네는 스프링이란 뜻이고, 보는 국어의 봉에 해당한다.
손목시계의 스트랩이나 브레이슬릿을 케이스에 고정시켜주는 도구이다. 손목시계에서는 필수적인 장치라 할 수 있다. 형태는 긴 쇠막대에 양 끝에 스프링이 달려있어 힘을 주면 원래의 크기보다 스프링만큼 끝부분이 줄어든다. 그래서 스트랩이나 브레이슬릿을 고정시킬때는 고정대 역할을 하고 스트랩부분을 교체해야 할때는 힘을 주어 스프링 바의 크기를 줄여 스트랩을 떼낼수 있게 되어 있다.
5,000원 짜리 싸구려시계도 1억짜리 초고가 시계에도 반드시 있어야 하고 중요한 부분이지만 보통 그 중요성이 간과되는 부분이라고 할 수있다. 시계는 신경써도 스프링 바를 신경쓰는 사람은 거의 없고 그러다 보니 고가시계라고 고가 스프링 바를 쓰는 사람도 거의 없으며 고가 스프링 바 자체가 드물다. 대부분 거의 대동소이한걸 쓴다. 그러나 러그의 홀과 스프링 바의 끝부분이 비슷해 보이지만 약간 달라서 체결되는 양이 적을 경우도 있을 뿐더러, 메탈인 경우 엔드피스의 구멍과 스프링 바가 제치가 아닌 경우 살짝 흔들거리거나 뜨는 현상도 보인다고 한다. 가격에 따른 품질 차도 분명 존재하며 품질도 품질이지만 무엇보다. 시계의 너비와 잘 맞는 걸 써야한다. 안 그러면 착용 중 분리현상을 볼 수 있다. 또한 스프링바 안의 스프링 소재가 저질이라면 녹이 슨다던지, 스프링의 장력이 다했다던지 하면 시계에 좋지 않다.
단 고가시계는 하나에 만원이상 되는 고급스프링 바도 있긴 하다고 한다.[1] 또 통금시계에는 금으로 된 스프링 바를 쓰기도 한다.
보통 케이스에 나는 큰 상처는 줄질을 하려고 스프링 바를 빼려다가 스프링바 툴로 인해서 생기는 경우가 많다. 스프링바 툴 끝부분이 날카롭고 스프링 바가 잘 안빠지다 보니 상처가 크게나서 왠간한 폴리싱으로도 상처가 없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고가시계라면 피눈물 나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2. 역사
스프링 바의 역사는 손목시계의 역사와 같이한다. 19세기 말엽부터 손목시계가 그 필요로 인해 나타나기 시작했고 회중시계에서 손목시계로 시계의 형태가 변화되면서 손목에 감아서 고정시켜주는 시계의 스트랩(또는 브레이슬릿)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시계 케이스와 시계밴드 부분을연결해주는 장치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생활 양식이 그렇듯 손목시계가 나왔다고 갑자기 회중시계에서 손목시계로 확 바뀐게 아니라 몇 십년동안 점진적으로 휴대용시계의 양상이 변화했기 때문에 손목시계는 현재의 형태가 일반화 되기까지 과도기적인 시기가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여성용 장신구정도로 여겨지거나 특수한 상황에서만 쓰이는 시계로 여겨졌다. 이를테면 전쟁중의 병사나 비행중의 파일럿등과 같이말이다. 그 때문에 현재 대부분의 손목시계는 엔드피스 부분에 길쭉한 러그가 존재하고 그 끝부분에 구멍이 달려 그 구멍에 스프링 바를 달 수 있는 구조이지만 초창기의 손목시계는 회중시계가 손목시계로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시기로서 회중시계를 손목에 올려놓는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팔찌위에 붙이거나 가죽으로 된 포켓워치 스트랩에 회중시계를 넣어서 손에 차고 다닌달지 아님 회중시계 양 끝에 얇은 와이어 러그를 달아 놓아 스트랩을 꿰메서 쓰는 형태였기 때문에 스프링 바가 필요가 없는 형태였다. 메탈 브레이슬릿 같은 경우에는 케이스에 직접납땜하는 형태가 많았다. 1920년대 중반쯤에는 손목시계가 점점 대중화 되자 시계 케이스에 밴드부분을 붙이려는 여러가지 시도가 있었다고 한다. 초창기의 회중-손목시계과도기가 점점 지나면서 케이스와 밴드 부분에 또 다른 물건을 통해 둘을 이으려는 시도가 생기게 되었고 그것이 스프링 바의 기원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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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August Beuke의 시계고정장치
초창기의 스프링 바 역시도 인류의 많은 발명이 그렇듯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것은 아니었다. 최초의 막대기들은 비교적 조악해서 스트랩을 요즘의 스프링 바처럼 쉽게 탈 부착 할 수 없었다. 단순하게 긴 원통형 쇠막대를 러그 사이에 용접하거나 스크류를 부착하여 고정시키는 수준이었다. 이런 방식의 이음새는 나토밴드를 사용하거나 아님 스트랩을 꿰메서 사용해야만 하는 구조가 된다.
시초를 보자면 1882년 T.R.Boone이란 사람이 출원한 특허 “커프와 옷깃 지지대”는 시계에 쓰는 용도의 스프링 바는 아니지만 스프링 바와 구조적으로는 차이가 크지 않은 물건을 만들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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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Charles Depollier라는 미국인은 회중시계에 시곗줄을 장착하여 손목시계로 사용하고, 필요 시 탈착하여 다시 회중시계로 되돌릴 수 있게 하는 장치를 만들어서 특허출원 하였다. 본격적인 손목시계는 아니고 회중시계에 러그 만 붙인 형태의 시계를 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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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Fred Gruen이란 사람은 양끝에 스프링이 달린것이 아닌 클립같은 구조물이 막대를 고정시켜주는 것을 특허 출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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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형태로 시계의 케이스와 밴드부분을 연결해 주는 방식은 스프링 바에 비하면 대중적이진 않지만 현재에도 쓰이는 방식이다. 다만 이런형태의 고정핀 내지는 나사형태는 시계러그 부분의 구멍이 롤렉스구형의 러그 구멍처럼 관통형이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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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인 손목시계모양에 쓰는 스프링 바는 1929년 Isidor Dintsman이란 사람이 스프링을 이용한 스트랩 고정장치를 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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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1931년에는 엘진이 스프링 바와 유사한 원리로 시계에 스트랩을 장착하는 부품를 출원하였으며
1946년에는 Robert Konikoff란 사람과1950년에 Nunzio Guarneri란 사람도 스프링 바 관련 특허를 출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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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882년의 사례를 보듯 이런 물건은 쉽게 생각해 내거나 사람의 필요가 있는 물건이었으며 기록에 남아있는 특허출원을 하지 않고 공방에서 개인적으로 만들거나 쓰인 물건들도 많았을 것이다. 당시에는 대량생산이나 기술적 표준화가 지금에 비해 고도화 되지 않았던점, 20세기 전반기 이전에는 시계회사에서는 무브먼트만 만들어 납품하고 케이스는 여러 쥬얼리 업체에서 만드는것이 매우 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