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죄법
1. 개요
試罪法, Ordeal
중세와 근세 유럽에서 죄인 혹은 위증자를 가려내기 위해 사용했던 일련의 여러가지 방법 들. 오늘날 학계에서는 '''신명재판'''이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한다.
유럽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제대로 된 사법체계가 발달하지 않았거나 과학적인 수사방법이 부족하거나 사회적인 후진성이 심각한다면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일례로 아랍권의 일부 시골에서는 간통한 여성의 무죄여부를 시죄법으로 판결하는 경우도 있다. 일례로 소개된 것이 달군 쇠공을 혀로 핥아 상처가 없으면 무죄로 치는 것이었다.
2. 방법
- 끓는 물에 손을 담그거나 달군 쇠막대기를 집는다.[1] 하루나 이틀 정도 시간을 준 뒤에 손이 멀쩡하면 무죄, 화상의 흔적이 나온다면 유죄.
만일 그 사람이 결백하다면 신이 상처를 치유할 것이라는 믿음에서 온 것이다. 일부 성인들의 기록에서 이와 같은 기적을 통해 이교도들을 개종시킨 사례가 존재한다고 한다. 후대에 마녀사냥 시기에는 그런 거 없고 그냥 전부 마녀라고 잡아넣었다. 나았으면 뭔가 마술 을 사용했을 테니까.[2]
- 물에 사람을 집어던진다. 가라앉으면 무죄, 떠오르면 유죄.
대표적인 마녀 판결법. 가장 악질적인 시죄법 중 하나이다. 떠오르면 마녀니까 사형, 가라앉으면 그냥 죽음. 초기에는 다른 시죄법과 마찬가지로 반대로 떠오르면 무죄, 가라앉으면 유죄로 판결했다고 한다. 그러나 후대로 가면서 마녀는 하늘을 날려면 가벼워야 하니까 물에 뜬다는 생각으로 이런 판결을 내리게 되었다. 몬티 파이선과 성배에서 패러디해 용의자가 물에 뜨는 오리와 무게가 같으면 마녀일 것이라는 논리적(...)인 결론에 따라 오리와 저울에 매달아 보았고, 용의자는 오리와 무게가 똑같아서 진짜 마녀임이 판명나(...) 화형에 처해진다 했다.
- 끓는 기름에 물건을 넣어 둔 후, 손으로 꺼낸다. 화상을 입거나 물건에 이상이 있으면 유죄, 아무런 부상도 화상도 없으면 무죄.
- 알칼로이드 계열의 독이 함유된 칼라바르 콩(Physostigma berenosum) 추출액을 먹여서 살아남으면 무죄, 이상이 생기면 유죄.
- 결투 재판
2.1. 시죄법과 비견될만한 전근대 수사 기법
시죄법이 아니더라도 전근대라는 시대적 한계상 괴악한 방법이 사용된 경우는 많다. 대표적으로 중국에서 생쌀을 씹은 뒤 뱉어보고 그 결과로 위증 여부를 가리는 기법인데, 위증을 하면서 속이 타들어가는 사람은 입에 침이 고이지 않으므로 생쌀을 씹었다가 뱉었을 때 티가 난다는 논리의 전근대 방식의 거짓말 탐지기 기법이다.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시죄법과 똑같이 황당하기 짝이 없는 논리다. 속이 타들어간다거나 침이 마르는 원인은 정말 수없이 많다.
비슷한 방식으로 달군 쇠를 핥게 하는 것도 있었는데, 긴장하면 침이 말라 혀가 탔을 거라나?
3. 배경
중세 유럽은 범죄는 빈번했던 반면 그것을 해결할 만한 사법체계나 행정능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중세도 생각만큼 막장은 아니라서 확실한 증거가 존재하거나 증인이 나타난다면 그에 따라 판결을 내리려고 했으나, 살인과 같은 중범죄는 무죄를 입증할 증거를 확보하기도 쉽지 않고 설령 증거가 있다고 해도 그것이 또 받아들여질지는 알 수 없었다. 결국 비교적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종교적 권위를 빌어서 이를 해결하려 했다. 그 결과가 위와 같은 막장인 게 문제지만. 중세 이후 관료체계와 사법제도가 발달하면서 법학적인 관점에서의 시죄법은 사라졌지만 도리어 종교갈등이 심화되면서 마녀사냥에서 쓰이게 되었으니 아이러니.
다만 극단적인 시죄법을 단순히 의심가는 사람에게 마구잡이로 적용한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시죄법[3] 은 심증이 매우 뚜렷한데 물증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경우, 혹은 정치적인 의도가 명확해서 고의적으로 처벌하려는 경우(마녀나 이교도)가 아니면 적용되지 않았다. 시죄법 자체가 진실을 가리기 위해서 쓰인 우매한 미신적 법이 아니라, "아무리 봐도 너 유죄인데 명백한 물증이 없네? 만의 하나 네 말대로 정말 무죄면 신께서 구해주시겠지?" or "네가 구원받을 만한 사람이면 신께서 구해주시겠지?"하고 시행한 법이다. 즉, 시죄법을 적용하는 케이스는 "사실상 유죄"를 의미했으며, 당대인들도 시죄법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다(...). 마녀나 이교도에게 적용한 것도 마찬가지. 시죄법이 적용되는 것 자체가 "너 마녀, 너 이교도, 고로 사형"을 의미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시죄법은 애초부터 죽으라고 하는 법이었다.
시죄법의 경우 도시나 농촌 가릴 것 없이 일어나는 편이었고 영주들도 영지의 소유권 같은 것을 놓고 다툴 때 많이 애용했다.[4] 오늘날로 이야기하자면 민사에서나 형사에서나 가리지 않고 사용한 셈. 그런데 사제들의 경우는 "신께 맹세코 나는 결백하고 진실만을 이야기했습니다."란 식으로 퉁치고 넘어갈 수 있는 제도가 있어서 사제들이 면피용으로 자주 사용하기도 했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이 봐도 매우 불공평했기 때문에 역시 사라졌다.
한국의 전래동화에서 도둑을 잡기 위해 항아리 안에 두꺼비를 넣어두고 손을 넣게 한 이야기가 있다. 이것도 일종의 시죄법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