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키시마급 전함
1. 제원
2. 개요
일본 제국 해군의 전드레드노트급 전함 '''시키시마급 전함(敷島型戦艦)'''.
3. 등장배경
청일전쟁 후 일본은 러시아와의 긴장관계가 높아지자 당시 최강의 러시아 함대에 대항하기 위하여 66 함대 계획을 세워 전함 6척, 장갑순양함 6척의 건조 및 보유에 나섰다. 그러나 이러한 함선의 건조에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는데 청일전쟁 이전부터 계속된 해군의 필사적인 예산증편 요구는 청일전쟁의 승리 후에도 그다지 이루어지지 못했다.
때문에 함선건조를 추진하기 위해선 헌법에 위반한 예산불법 유용이라는 길 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하여 66 함대계획의 고안자인 야마모토 곤베(山本權兵衛)는 협력자이던 사이고 주도(西鄕從道)와 상담했는데 그 때 사이고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이리하여 예산의 불법유용으로 시키시마형 전함 4척의 발주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에 영국의 각 조선소에서 일본을 위한 전함의 기공에 들어갔는데 그렇게 하여 확보된 전함이 시키시마(敷島), 아사히(朝日), 하츠세(初瀨), 미카사(三笠)였다. 1번함 시키시마는 영국 템즈 철공소에서 1897년 3월 29일 기공해 1898년 11월 1일 진수 후 1900년 1월 26일에 완공되었다.야마모토씨, 그것은(군함) 분명히 사지 않으면 안됩니다. 예산을 유용합시다. 물론 위헌입니다. 의회에서 만약 이를 헌법위반이라 추궁한다면 황궁 앞에서 할복합시다. 우리 둘이 죽어도 군함만 만들어진다면 뜻을 이루는 거 아닙니까.
4. 상세
시키시마형 전함은 영국의 <마제스틱>형 전함의 개량형이었다. 주포와 부포는 후지형(富士型) 전함과 동일한 40구경의 30.5cm포와 15.2cm포였다. 속력은 18노트로 후지형보다는 약간 저하했다. 시키시마, 아사히, 하츠세의 3척은 충격에 강한 니켈합금강이 사용되어 후지형의 장갑두께보다 절반 정도 얇아졌지만 방어력은 올라갔다.
4번함 미카사는 크룹강(독일 크룹사가 개발한 니켈합금 철강재)이 사용되어 앞서 세 함보다 방어력은 더욱 높았다. 또 시키시마와 하츠세는 동형구조로 만들어졌지만 아사히 및 미카사는 연통 및 크레인 부분의 형상이 약간 달라 일부에선 따로 구분하기도 한다.
5. 활동
시키시마는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제 1함대 제 1전대 소속으로 출격해 뤼순항 포위전, 황해해전, 쓰시마 해전에 참가했다. 그 후 해방함(海防艦)으로 함종이 변경된 시키시마는 제 1차 세계대전 후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에 의해 무장과 장갑이 모두 철거되어 연습특무함으로 사세보에 계류되어 제 2차 세계대전 중에도 사용되었다.
종전시 사세보 해병단 소속의 연습함으로 아무런 손상없이 계류되었던 시키시마는 1945년 11월 20일에 함적에서 제적된 후 1947년부터 사세보 선박공업사에 의해 해체공사에 들어가 1948년에 오랜 함력을 마쳤다.
아사히는 러일전쟁에 참가한 이후 시키시마와 마찬가지로 워싱턴 군축조약 준수를 위해 연습함으로 돌려졌다. 1937년 개장을 받고 공작함이 되었고 태평양 전쟁에도 아카시와 더불어 공작함으로 활동했으나, 1942년 5월 새먼급 잠수함 새먼의 뇌격으로 침몰했다.
하츠세는 러일전쟁에 참가해 활동하던 중 뤼순항 근방에서 기뢰에 접촉해 침몰했다.
미카사의 자세한 함생은 해당 문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