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야구

 


實業野球

1. 개요


원래 실업야구는 프로야구과 달리 아마추어 야구 중 학생야구를 제외한 사회인야구 전체를 지칭한다. 즉, 전문 선수건 직장 다니다 야구를 시작한 비전문 선수건 직장인들의 야구라면 상관없이 죄다 실업야구라는 셈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실업야구는 직장을 다니는 전문선수들의 야구를 지칭하고, 사회인야구는 직장을 다니는 비전문 선수들의 야구로 구분한다. 반대로 도하 아시안 게임에 나온 일본 사회인야구 대표팀은 한국과 비교하면 일반 사회인야구가 아니라 실업야구 대표팀에 가깝다. 요컨대 그 선수들 모두 학생 때 야구를 했던 것이다.[1] 일본의 사회인야구 항목 참고.
프로야구와 달리 이들 실업 야구선수들은 해당 기업의 직원 신분이고 '명목상'으로는 아마추어 운동선수이다. 이들의 급여는 개념상 경기에 출전하는 반대급부가 아니라 기업에 '근무'하는 대가로서 지불되는 것이며, 경기 출전은 특수한 형태의 회사 근무인 것이다.(즉, 직무가 야구 경기인 셈.) 쉽게 말하면 그 기업들은 직원을 채용할 때, '직장 대항 야구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 일부 인원을 야구 능력자로 뽑은 것이라는 말이다. 반면 프로야구는 선수가 구단이나 모기업의 직원이 아니라 자영업자로 분류되며, 구단과 선수는 서로 계약을 맺은 관계일 뿐이다. 이들이 받는 연봉은 정확히 경기 출전을 목적으로 하는 계약의 댓가로 지불된다. 실업야구는 비시즌 기간이나 은퇴 후에는 해당 기업에서 직원으로 일한다.[2] 소속팀에서 방출되면 갈 길 없는 프로선수들과 달리 이 쪽은 운동을 포기한다고 해도 해당 기업에서 직원으로 계속 일하면 되기에 좀 더 안정적인 편이다. 그 대신 보수는 프로야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다. 프로야구 출범 이전까지 고교선수들은 실업팀으로 가는 것이 목표였고, 프로야구 초창기만 해도 퇴직 후가 안정적이라는 이유로 실업야구를 선호하는 선수도 있었다.
1997년 이전에는 프로야구에 몸 담았던 사람들이 아마야구와 관련된 일에 종사할 수 없었다. 프로-아마추어의 극한 대립이 벌어지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2. 한국실업야구


한국의 실업야구는 한국실업야구 참고. 한국 프로야구의 시발점은 실업야구라서 소외할 수 없으나 2000년대 들어 실업팀의 잇따른 해체로 2002년을 끝으로 명맥이 끊겼다. 2010년대에 들어서 다시 조금씩 부활의 조짐을 보일뻔 했으나 성사되지 못하고, 2017년 12월 13일이 돼서야 김응용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회장에 의해 프로 미지명 선수 등을 위한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리그 부활을 약속하면서 부활이 발표된다.
2019년 54개의 팀으로 리그를 출범시킬 계획이라고 한다. 대체적인 반응은 '의도는 좋지만, 제대로 될까?'로 귀결되고 있다. 실업야구단 창단을 비밀리에 준비 중에 있으며 이미 2018년 12월 기준으로 지난달 초 2개 팀의 창단이 확정 되었고 4개팀은 대기 중 인 것으로 밝혀졌다. 공기업도 은행이 아닌 일반 기업이고, 창단 발표일을 조율 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미 프로 출신 선수도 몇몇 선발해 놓은 상태이다.
문제는 4개 팀 창단이 아직 최종 확정되지 않아 내년 4월 실업야구리그 출범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른바 사회공헌 개념으로 야구팀을 운영하더라도 연간 30억원 가량의 예산이 필요한데 피부로 느끼는 체감경기가 정부 발표 수준보다 훨씬 심각하다보니 기업 내에서도 반대하는 목소리가 강해 실업야구 부활의 발걸음이 더딜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한 창단 되더라도 팀당 30경기를 치르는 연간 계획표 작성, 도시 연고지 정착과 후원사 유치 등 해결해야 점도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미 창단을 확정한 2~3개 팀을 먼저 공개해 분위기를 띄우면 수면 아래에서 눈치보던 팀들도 결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1] 일본프로야구에는 사회인야구 출신 선수들이 제법 있다. 후쿠도메 코스케는 일본생명, 후루타 아쓰야토요타자동차, 노모 히데오는 신일본제철, 코사카 마코토JR 히가시니혼, 스기우치 토시야는 미쓰비시 중공업, 초노 히사요시혼다 사회인 야구단에서 뛰고 프로에 입문했다.[2] 은행팀에서 뛰던 선수들은 은행원으로 근무했다. 김응룡 감독이 이 당시 돈 세는 업무 담당이라 돈 세는데는 도가 텄다고 농담삼아 이야기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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