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영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7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심영신은 1882년 7월 20일 황해도 송화군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교회 예배에 전부 참석할 정도로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으나, 젊은 나이에 어린 아들 하나를 둔 과부가 되었다. 그러던 1916년 하와이에 이주했떤 조문칠과 사진신부로 맞선을 보고 아들과 함께 하와이로 이주했다. 당시 그녀는 34살이었고 한 번 결혼한 경험이 있는데다 어린 아들까지 딸렸지만, 남편이 될 조문칠은 심영신을 선뜻 신부로 맞이했다.
이후 그녀는 낯선 곳에서 적응하는데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대한인부인회와 재미한족연합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대한인부인회는 자녀의 국어교육 장려, 일제용품 구매 거부운동, 교회와 사회단체 후원, 재난동포 구제를 주요 행동지침으로 삼았다. 그러던 1919년 3.1 운동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접한 심영신은 국내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하와이 각 지방의 부녀대표자를 소집하는 부녀공동대회 개최에 앞장섰다. 그들은 이 대회에서 조국 독립운동에 대한 후원을 결의하였다.
또한 심영신 지사는 1920년대 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김구 주석으로부터 재정부족을 호소하는 편지를 받고 하와이의 동포들에게 이런 사실을 알리는 한편 자금모집에 앞장섰다. 김구는 이에 대해 백범일지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1941년 4월 그는 하와이에서 개최된 해외한족대회(海外韓族大會)에 대한부인구제회 대표로 참석, 동대회에서 조직된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의사부 위원으로 활동하며, 임시정부 후원과 대미외교 및 선전사업을 통해 독립운동에 봉사하였다. 이후 하와이에서 평범하게 살다가 1975년 2월 16일에 사망했다.나의 통신(하와이 동포들에게 쓴 편지)이 진실성이 있는데서 점차 믿음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하와이의 안창호, 가와이, 현순, 김상호, 이홍기, 임성우, 박종수, 문인화, 조병요, 김현구, 안원규, 황인환, 김윤배, 박신애, 심영신 등 제씨가 나와 (임시)정부에 정성을 보내주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7년 심영신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