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린 워노스
[image]
Aileen Wuornos
1956년 2월 29일 ~ 2002년 10월 9일
1. 소개
미국의 연쇄살인마.'''뭐가 됐건, 나는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으니 잘 지낼 겁니다.'''
2. 어린 시절
1956년 2월 29일, 미시간 주 로체스터라는 디트로이트 북쪽에 있는 작은 도시에서 에일린 캐롤 피트먼(Aileen Carol Pittman)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사실 대부분의 연쇄살인범이 그렇지만, 에일린 또한 가정환경이 매우 좋지 못했다. 에일린의 어머니 다이앤 워노스는 핀란드계 미국인이며 1954년에 14세의 나이로 리오 피트먼과 결혼하였다. 아버지 레오 피트먼은 정신분열증 환자였으며, 경범죄 때문에 체포된 뒤 군대에 보내졌고, 그 틈을 타 다이앤은 이혼을 했는데, 이 때는 에일린이 태어나기 2개월 전이라 아일린은 아버지를 평생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아버지 피트먼은 제대하고 이혼한 이후 계속된 범죄로 체포되기를 반복하여 감옥을 수없이 들락날락했는데 끝내는 8살 여자아이를 강간한 혐의로 체포되어 교도소에 수감되었고 1969년 32세에 감옥에서 목을 매달아 자살했다.
1960년에 다이앤은 1955년에 먼저 태어난 아들 키스와 딸 에일린을 더 이상 감당하지 못했다. 결국 아일린은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에게 맡겨졌는데, 외할아버지는 지독한 알코올 중독자에 성미가 급하며 아이들을 폭행하고 구타하는 일이 빈번했다고 한다.[1][2] 이런 환경에서 자란 에일린은 '''11살''' 때부터 담배, 마약이나 군것질거리를 위해 학교 남학생들과 성적인 행위를 했으며, 심지어 오빠와 근친상간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70년에는 14살 나이에 임신을 했는데, 할아버지의 친구한테 강간당했기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그녀는 미혼모 시설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출산했고 이후 태어난 남자 아이는 곧바로 입양됐다. 이를 계기로 아일린은 걷잡을 수 없이 방황하였고, 재학중이던 트로이 하이 스쿨을 중퇴하게 되지만, 외할아버지는 함부로 임신했다고 에일린을 싫어하여 15살이 되었을 때 집에서 쫓아내었다.[3] 두 남매는 위탁가정으로 보내지게 되지만 아일린은 그곳에서도 가출했다. 이때 잘 곳이 없어 차 안에서 자기도 하고 어쩔 땐 눈 속에서 자기도 했다고 한다. 빈털털이가 된 에일린은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고향 근처의 숲에서 매춘을 하였는데, 음주운전과 군총 발사로 체포되기도 했다. 이렇게 청소년기를 완전히 엉망으로 보낸 에일린은 몇 년 뒤 플로리다로 떠난다.
3. 성인기
이후에도 에일린은 성인이 된 뒤에도 불법적인 무기소지, 강도, 위조 등의 온갖 범죄에 연루되어 경찰서를 들락날락했다. 그 와중에 오빠 키스는 1976년, 식도암으로 요절했다. 에일린은 오빠의 보험금으로 상당한 액수를 수령받지만, 문제는 이를 모두 탕진해버린다. 이때 에일린은 플로리다에서 69세의 부유한 요트 클럽 회장 루이스 그라츠 펠과 만나 결혼했으나, 결혼한지 얼마 안되어 그녀의 낭비벽과 성격 문제로 남편과 사이가 나빠져 심하게 갈등하다가[4] 이를 질책하는 남편을 지팡이로 두들겨패는 바람에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에일린은 집에서 쫓겨났고 얼마 가지 않아 남편한테 이혼당한다. 하지만 에일린은 이후로도 계속 범죄를 저지르다가 체포되고 감옥을 들락거렸다.
1986년에는 타이리아 무어(Tyria Moore)라는 게이 바 호텔 메이드와 만나 사귀었는데, 이 둘은 얼마 후부터 연쇄살인과 강도를 저질렀다. 1989년부터 1990년까지 에일린은 22구경 리볼버로 중년 이상 남자 7명을 플로리다에서 여러 번 쏘아 죽이고는 시신과 차량을 버렸다. 계속된 범죄에 경찰도 가만있지 않아 추적에 나섰으며 권총 기종이 모두 같았기에 경찰은 여러 증언과 지문을 통해 에일린이 범인임을 알아내었다. 그래서 에일린은 1991년 1월 9일에 술집에서 경찰에 체포된다. 애인 무어가 경찰들이 여동생을 취조하는 등 가족이 무너질 것 같다며 감정에 호소하여 에일린에게 자백하도록 설득했다. 그리고 1991년 1월 10일 에일린은 연인 무어를 위해 자백을 한다.
에일린은 재판에서 피해자들이 모두 자신을 강간하거나 물건을 훔치려고 했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동안 저지른 살인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에일린은 항소했으나 기각되자 나중에는 항소를 포기하고 사형을 받아들였다. 한편 심리학자들은 에일린에게 경계선 성격장애와 반사회적 인격장애가 있음을 알아냈다. 법정에서 판사와 검사에게 욕설을 하며 사형이 선고되었을때는 아일린은 "당신 부인이랑 아이들이 강간당하기를 빈다." 라고 중얼거렸고, 욕설을 하면서 퇴장한것이다. 사이코패스 체크리스트(PCL)에서 에일린은 40점 만점에 32점을 받을 정도로 심각하여 엄격한 감시를 받아야 하는 사이코패스로 진단받았다.
에일린의 재판에서 동성연인인 타이리아는 에일린을 위하는 태도를 보이기는커녕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애초에 타이리아는 동거를 하던 시절에도 매춘과 같은 힘든 일은 모두 에일린에게 맡기는 등 그닥 에일린을 배려하는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다. 에일린이 자신의 살인 행각을 경찰에 '자백'한 것도 수사 당국에 이미 포섭된 연인 타이리아를 위한 결정이었다. 타이리아가 여러 차례 에일린에게 자백을 애원하다시피 했고, 에일린이 결국 체념하듯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라'며 범행을 시인한 것이다.
또한 알린 프릴이라는 여자는 에일린이 나온 뉴스를 보고 만나본 적도 없는 에일린에게 "신이 나에게 말해줬다." 라는 괴상한 이유로 편지를 보내거나 면회를 신청했다. 실제로 만남이 이루어진 후 알린은 에일린의 옹호자를 자처하며 에일린을 뜬금없이 입양(?)한다. 이후 알린은 뉴스나 인터뷰에 출연하면서 꽤 많은 돈을 벌었는데 알린 역시 처음부터 금전적 목적으로 접근했을 가능성이 높다.
사형되기 하루 전에 남겨진 그녀의 마지막 인터뷰.(보는 사람에 따라 혐오 또는 공포를 느낄 수 있으니 주의.)
마지막 식사는 커피 한잔이었다. 2002년 10월 9일, 에일린은 약물주사형으로 사형에 처해졌다. 사후 시신은 화장하여 재를 미시건 주 고향에 있는 한 나무 밑에 묻었다. 장례에는 에일린의 어린시절 친구가 참석했다.
어린 시절부터 매우 비정상적인 환경에서 학대받았기에 사형은 너무했다는 동정 여론이 있다. 하지만 아일린은 PCL-R 검사에서 40점 만점에 32점을 받은 심각한 사이코패스이며 7명이나 되는 사람을 계획적으로 살해했으며 그녀 자신이 그동안 많은 범죄를 저지르고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혔는데도 전혀 반성하지 않았기에 사형을 선고하고 집행한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어린 시절부터 마약, 매춘과 같은 불량한 환경에 노출되고 성폭력, 가정폭력의 피해를 받지 않았다면 적어도 이렇게까지 반사회적인 사람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범죄 자체는 당연히 100% 그녀의 책임이며 사형으로 비참하게 죽은것도 자업자득이지만 이런 사람으로 전락한 것은 환경적 요인도 어느정도 있다고 볼 수 있다.
4. 여담
- 6살 때 오빠와 기름으로 불장난을 하다가 얼굴에 화상을 입었다. 이 화상 흉터는 죽을때까지 남았다고 한다.
- 그녀의 죽음 이후를 다룬 닉 브룸필드의 "연쇄살인범 팔아먹기" 라는 다큐가 있다. 여기 나오는 사람들의 태도는 정말 가관인데, 어린 시절 이웃, 경찰, 심지어는 에일린의 어머니 조차도 그녀에 대한 정보를 주는 대가로 돈을 챙기려고 시도한다.
- 범죄자들의 물건을 파는 사이트에서 그녀의 친필 편지, 친필 사인이 적힌 사진, 사형 집행 당시(또는 이후) 입었던 가운 까지 팔리고 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식으로 범죄자들의 물건이 비싼 가격에 팔리는 경우는 흔하다(...) 원한다면 한국인도 구매할 수 있다.
- 인터넷 등지에 마지막 유언으로 "나는 다시 돌아온다." 라는 말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실제로는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는 바위와 함께 항해하다가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처럼 모두와 커다란 모선을 타고 6월 6일 예수와 함께 돌아올 것이다. 나는 돌아올 것이다." 라고 하였다. "나는 다시 돌아온다." 라는 문장만 놓고 보면 굉장히 섬뜩하게 느껴지지만 유언 전체를 보면 그냥 사망 직전 하고싶은 말을 실컷 한 것에 가깝다.
- 인터뷰에서 자신이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많은 사람들이 피해자들에 의해 강간 당하거나 사망했을테니 자신은 많은 사람들을 구했다는 소리를 한다.[5] 또 자신의 범죄가 사회 탓이라는, 전형적인 범죄자들의 논리를 펼치기도 했는데 실제로 아일린의 경우 그녀가 저지른 죄와는 별개로 어느 정도 사회가 만든 구조적 피해자였던 부분은 있다. 그것으로 에일린의 범죄를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에일린이 유년기에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하며 죽기 전까지 비참하고 불행한 인생을 살았던 것은 사실이다.
5. 대중매체
한편 2003년에는 에일린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몬스터가 개봉했는데, 샤를리즈 테론이 열연을 해 당당히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같은 해에 에일린: 연쇄살인범의 삶과 죽음(Aileen: Life And Death Of A Serial Killer)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도 만들어졌으며, 이 역시 좋은 평가를 받았다.
[1] 에일린 본인의 증언에 의하면 외할아버지에게 성적인 학대도 당했다고 한다.[2] 또한 청소년기가 되기 전까지 그들이 자신의 부모라고 믿고 살았다.[3] 이후 외할머니는 간질환으로 1971년에, 외할아버지는 1976년에 사망한다.[4] 결혼해서도 막장인 성격이 여전했는데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시비가 붙은 손님을 구타하는 것은 물론 바텐더와 언쟁하다 그의 뒤통수에 당구공을 던져 중상을 입히는 바람에 체포되거나 남편을 함부로 대하여 남편과 관계가 매우 나빴다.[5] 실제로 에일린에게 살해당한 리처드 말로리는 강간 전과가 있었다. 다만 피해자들이 자신을 강간했다는 것은 에일린의 일방적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