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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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전 프로야구 선수.
전체 83순위라는 순번에서도 알 수 있듯이 팀에서도 큰 기대를 걸지 않았었고,[3] 북일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에 진학한 이후 프로에 입단하고 나서도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투수였다. 아마 이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은 같은 팀 소속의 투수 '''안영명의 친형'''으로 기억할 것이다.[4] 하지만 동생과 함께 1군에서 활동한 시즌은 2011년 한 해밖에 없다.
한화 이글스의 1차 지명을 받아 제대로 성장해 두각을 드러냈 던 동생과는 다르게 2006년 입단 이후로도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으며, 2008년부터 2009년까지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를 마치고 팀에 복귀했지만 '''단 한 번도''' 1군 등판 기록이 없었다.(아....)
기사에 따르면 동생이 선발로 등판한 경기에서 자기가 불펜으로 나와 동생의 승을 지켜 주는 게 꿈이라고 하는데 꼭 본인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빈다.
2011년 6월 30일 1군에서 말소된 류현진을 대신하여 1군에 처음으로 등록됐고, 2011년 7월 1일 광주 KIA전 7회 말에 등판하여 드디어 1군 빛을 보았다. 경기 내용은 그다지 좋지 않은 편이었으나 어차피 크게 진 경기라 신경쓰지 않았다.
2011년 8월 21일 2번째로 1군 빛을 보게 되었다. 전날 1.1이닝 동안 5피안타 6실점을 허용한 정재원이 2군으로 내려갔고 그 대타로 올라온 것.
그리고 8월 24일에 등판하여 1이닝을 소화했다. 피칭스타일은 사이드암과 쓰리쿼터의 중간형태인데 이러한 팔각도임에도 불구하고 142km이 나온 걸 보면 구속'''만큼'''은 좋은 모양.
최근 등판 경기에선 패전상황에 3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는 등 좋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5]
그리고 9월 14일 경기에서 첫 피홈런을 허용했다.(...)
2012 시즌 종료 후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어 방출되었다.
안영명의 말에 따르면 한화 이글스에서 방출된 뒤 은퇴하고 야구용품점을 차렸다고 한다. 2013년에는 한화 이글스에서 운영하는 유소년 야구교실의 전담 코치로 활동했다.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프로야구 선수.
2. 경력
전체 83순위라는 순번에서도 알 수 있듯이 팀에서도 큰 기대를 걸지 않았었고,[3] 북일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에 진학한 이후 프로에 입단하고 나서도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투수였다. 아마 이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은 같은 팀 소속의 투수 '''안영명의 친형'''으로 기억할 것이다.[4] 하지만 동생과 함께 1군에서 활동한 시즌은 2011년 한 해밖에 없다.
한화 이글스의 1차 지명을 받아 제대로 성장해 두각을 드러냈 던 동생과는 다르게 2006년 입단 이후로도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으며, 2008년부터 2009년까지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를 마치고 팀에 복귀했지만 '''단 한 번도''' 1군 등판 기록이 없었다.(아....)
기사에 따르면 동생이 선발로 등판한 경기에서 자기가 불펜으로 나와 동생의 승을 지켜 주는 게 꿈이라고 하는데 꼭 본인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빈다.
2011년 6월 30일 1군에서 말소된 류현진을 대신하여 1군에 처음으로 등록됐고, 2011년 7월 1일 광주 KIA전 7회 말에 등판하여 드디어 1군 빛을 보았다. 경기 내용은 그다지 좋지 않은 편이었으나 어차피 크게 진 경기라 신경쓰지 않았다.
2011년 8월 21일 2번째로 1군 빛을 보게 되었다. 전날 1.1이닝 동안 5피안타 6실점을 허용한 정재원이 2군으로 내려갔고 그 대타로 올라온 것.
그리고 8월 24일에 등판하여 1이닝을 소화했다. 피칭스타일은 사이드암과 쓰리쿼터의 중간형태인데 이러한 팔각도임에도 불구하고 142km이 나온 걸 보면 구속'''만큼'''은 좋은 모양.
최근 등판 경기에선 패전상황에 3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는 등 좋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5]
그리고 9월 14일 경기에서 첫 피홈런을 허용했다.(...)
2012 시즌 종료 후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어 방출되었다.
안영명의 말에 따르면 한화 이글스에서 방출된 뒤 은퇴하고 야구용품점을 차렸다고 한다. 2013년에는 한화 이글스에서 운영하는 유소년 야구교실의 전담 코치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