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2002년/신인드래프트
1. 개요
2002년 KBO 신인 드래프트 (공식 명칭: '''2002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는 1차 지명과 2차 지명으로 진행되었다.
2. 1차 지명
2001년 6월 5일까지 각 팀에서 팀별 연고지 고교 출신 선수 중 1명을 뽑았다.
3. 2차 지명
2001년 6월 15일 서울특별시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개최되었다.
고등학교 및 대학교 졸업 예정자, 상무 소속 선수들 등 총 663명이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했다.[1]
3.1. 지명방식
1라운드부터 12라운드까지 진행되며 각 팀은 최대 12명의 선수를 지명할 수 있다. 단, 지명을 원치 않는 팀의 경우 해당 라운드에서 패스할 수 있다.
지명방식은 각 라운드마다 1명의 선수를 전년도 순위의 역순대로 지명하는 방식이다. 예외로, SK는 신생팀 혜택을 받아 1라운드에서 3명의 선수를 지명할 수 있다. 대신 11, 12라운드에는 참여할 수 없다[2]
3.2. 지명 결과
※표시는 지명권 포기나 대학 진학으로 인한 지명권 소멸 등으로 지명팀에 입단하지 않은 선수.
@표시는 고졸로 지명받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거나 대학 진학 후 중도하차한 선수.
'''볼드''' 표시는 통산 war이 스탯티즈 기준 war 2 이상 되는 선수한테 부탁드립니다.
4. 드래프트 평가
- LG 트윈스: 요약하면 망했다. 1차 지명으로 뽑은 성남고 좌완 김광희는 계약금을 3억 2000만원이나 받았지만, 부상으로 인해 타자로 전향하였고, 결정적으로 병역비리에 연루되어 야구인생이 끝났다. 2차 1번으로는 실업야구단 포스틸 야구단을 거쳐 상무 야구단에서 군복무중이던 내야수 김우석을 지명하였는데[6] 2차 1라운드에서 뽑기 위해 거른 선수가 바로 고영민과 조동찬이라는 것. 정작 김우석은 데뷔 첫 해인 2002년 백업으로 기회를 몇 번 받은걸 제외하면 2군에나 머물렀고, 무엇보다도 팬들의 기억 속에는 2007년 9월 7일에 있었던 SK와 경기에서의 포구 실책뿐.[7] 그리고 그 해 방출당했고 2014년 코치로 돌아왔다. 지명자 중 이시몬은 미국에 진출하려고 했지만 결과는...
- 삼성 라이온즈: 2010년대 초반 삼성 왕조의 주역들이 대거 지명된 역대급 대성공. 1차 지명 권혁부터 성공 사례에 포함되었고, 1라운드 조동찬 역시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하였다. 상위픽도 괜찮은데 안지만과 최형우가 포함된 하위픽이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최형우는 나중에 방출 후 재입단하기 때문에 애매한 케이스이긴 하지만, 연고 팀이었던 기아 등 많은 팀에서 러브콜이 왔음에도 연고가 없는 삼성을 택한 것은 한 번 몸담았던 팀이라는 것이 크게 작용했다. 3라운드 손주인도 백업으로 쏠쏠한 활약을 했다. 참고로 권혁은 지명 전까지만 해도 대구고 윤길현에 비해 지명 확률이 낮았는데, 소문에 의하면 김응용 당시 감독이 가장 좋아하는 덩치 크고 공 빠른 왼손잡이라 뽑혔다고 한다.
- SK 와이번스: 삼성 못지않게 이 해 드래프트에서 재미를 본 팀. 불펜의 핵심이 된 윤길현과 박희수, 그리고 군 입대 전 에이스로 활약한 제춘모와 왕조시절 불펜 요원으로 모습을 드러낸 이한진을 얻었다. 그 중 이한진과 박희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입단했다.
이현승도 중간에 야구를 쉰 것을 감안하면 예상보다 높은 픽이었다. 그리고 현대 프런트는 미미한 성적을 내던 마산상고 장원삼의 투구폼과 유연성을 보고선 대학을 갔다 오라고 하면서 후순위에 지명을 해 줬고, 경성대를 졸업한 후 그렇게 대박이 났다. 그런데.... 혀갤의 아이콘과 같은 배힘찬도 2차 1픽으로 지명받았다.
- 한화 이글스: 이 해에 뽑은 야수인 김태완, 송광민, 연경흠은 대학교에 우선 진학한 후 2006년에 입단해 나름 활약했다. 김태완과 송광민은 공익근무요원 소집해제 후 2013년에 차례로 팀에 복귀하여 약해져 있던 팀 전력에 나름대로 힘을 보탰지만, 앞서 경찰 야구단에서 제대한 연경흠은 고질적인 무릎과 팔꿈치 부상 때문에 결국 이른 나이에 은퇴했다. 신주영은 잠깐이나마 프로에서 활약하다 부상과 부진으로 2012 시즌 후 방출되었다. 정병희는 2005년 혹사를 당한 후 돌아오지 못했고, 김민재의 보상선수로 SK에 이적하였다.
- 두산 베어스: 전체적으로 재미를 보지 못했지만, 1차 지명으로 뽑은 이재영, 2차 1번으로 뽑은 고영민 정도가 활약한 케이스. 이 해 서울권 지역에 1차 지명감이 없었던지라 1차 지명으로는 선린상고-영남대를 졸업한 이재영을 뽑았는데, 데뷔 초기만 해도 김인식과 김경문에 의해 전천후 노예로 굴려지며 두산의 차기 마무리 후보로도 주목받았으나 2004년 말 병역 비리에 연루되어 구속된 후 실형을 살며 선수 생활이 꼬였다. 군 복무를 마쳤으나 예전의 모습을 보이지 못했고 2008년 LG 트윈스로 트레이드, 그나마 남아 있는 고영민도 한때는 골든글러브도 받고 국가대표팀 2루수도 맡았으나 2008년 이후 쭈욱 하락세를 타다 은퇴하고 KT 위즈 코치가 되었다.
- 해태 타이거즈: 해태라는 이름으로 참여한 마지막 신인 드래프트여서 입단한 선수들은 모두 KIA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제2의 선동열' 로 불리며 1차 지명으로 입단한 김진우가 데뷔 첫 해부터 180이닝을 소화해주며 고졸신인 최초로 탈삼진왕을 차지했고, 2차 1번으로 지명된 신용운이 불펜에서 잘 던져주는 등 재미를 보았다. 다만 김진우는 부상과 사생활 문제로 임의탈퇴 공시됐다가 조범현 감독이 다잡아 준 끝에 2011년에 복귀했으며, 신용운도 2002년~2004년 3년 간 무자비한 혹사로 인한 부상으로 인해 팔꿈치가 아예 망가졌고, 여기에 서정환 감독의 당겨쓰기 등으로 인해 재기불능 판정을 받고 2차 드래프트로 2012년에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하여 겨우 재기에 성공했을 정도로 모두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 밖에 문현정은 좌완 불펜 기대주로 꼽히다가 방출당한 후 삼성을 거쳐 NC 다이노스로 이적했고 이후에 은퇴했다. 조태수는 기아의 추격조로 그런대로 뛰었지만 2012년 말 방출되었다.
- 롯데 자이언츠: 문규현과 이명우, 이정민 정도가 활약했다. 허일상은 병역비리로 내리막길을 걷다가 방출당했고, 신종길은 1년만에 한화로 간 뒤 묻힐 뻔하다가 KIA로 가서 자리를 잡았고, 고효준은 백인천 감독이 내치면서 2003년부터 SK 와이번스에서 뛰다 KIA 타이거즈로 트레이드 되었다가 2차 드래프트로 다시 롯데로 돌아왔다.
5. 이모저모
- 해태 타이거즈라는 이름을 달고 마지막으로 참여한 신인 드래프트기도 하다. 2001년 신인 지명은 그해 6월에 열렸고, 그해 7월 해태 구단이 현대기아차그룹에 인수되어 KIA 타이거즈로 구단명이 바뀌었다.
- 2001 신인 지명 때는 지명된 대졸 선수가 불과 5명뿐이었지만, 2002 신인지명 때는 그의 2배나 되는 10명이 지명되었다.
- 2001년은 상무 피닉스 야구단이 2군 리그에 참여한지 첫 해가 되는 해였는데, 프로에 3명을 진출시켰다.
- 지명을 받은 후 대학에 진학한 고졸 선수 45명 중 제대로 입단한 선수는 21명이었다.
- 두산 지명자 중 박종섭은 한양대학교에 진학했다가 3학년 때인 2004년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었다. 출소한 후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를 마쳤으며, 소집 해제된 후 한양대학교를 중퇴하고 두산에 입단했으나 2010년에 방출되었다. 그 후 KIA 타이거즈에 신고선수로 들어가 재기를 노렸으나 결국 1군에 오르지 못해 현역 생활은 완전히 실패했고 KIA에서도 방출당한 후 2012년 두산 베어스의 프런트(전력분석관)에 합류했다.
[1] 주의해야 할 것은 고교, 대학 졸업 예정자들은 전원 자동 지명 대상이다.[2] 최대 지명 가능 선수가 12명이므로, 10라운드에서 이미 12명의 선수가 차 버린다.[3] 나중에 박도현으로 개명.[4] 후에 문규현으로 개명함.[5] 각 팀마다 12명을 지명할 수 있기에 SK의 11, 12라운드 지명은 없었다.[6] 2001년 초까지 LG 2군 감독이었던 김성근 감독이 김우석을 지켜보고 2차 지명에서 김우석을 뽑아달라 했다고 한다. 상무 복무 시절 김우석은 수비를 잘 하기로 유명한 선수였지만, 문제는 나이도 서른을 코앞에 둔 데다가 2군 리그에서도 타격이 약한 편이어서 2차 1라운드에서 뽑힐 감은 아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7] 9회 초 2사 3루 1:2로 앞선 상태에서 2루수 내야플라이를 놓쳐서 동점을 허용하였다. 결국 이 경기를 이긴 SK는 기세를 얻어 1위를 굳혔고, 반대로 삼성과 한창 4위 자리를 놓고 경쟁 중이던 LG는 이 경기를 기점으로 연패에 빠져버리며 포스트시즌 탈락이라는 고배를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