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원(1984)
1. 소개
前 한화 이글스, SK 와이번스의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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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수 경력
2.1. 한화 이글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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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안산공고를 졸업하고 안산공고에서 처음으로 프로에 입단한 선수가 되었지만,[4]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2군을 전전하면서 공익근무를 마쳤다.
2군 시절 개밥을 줘야 한다며 자진강판하고 경기 중 집에 가 버린 사건 때문에[5] '''개밥신'''이라는 별명밖에 알려진 것이 없었던, 그저 그런 투수였지만 공익근무를 마친 2010년 한용덕 당시 2군 투수코치가 그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제구를 가다듬는 데 성공하면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었다. 그 결과 2011시즌 KBO 시범경기에서 인상적인 투구를 선보이며 1군에 합류했다. 정민철 투수코치가 주력해 키우는 안승민과 함께 2011시즌 한화 이글스 투수진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선수였다.
2.1.1. 2011 시즌
2011년 4월 3일 개막전 롯데와의 경기에서 조기강판당한 류현진을 구원등판해 1⅔이닝 무안타 무실점 1K를, 4월 5일 홈개막전인 KIA전에서도 훌리오 데폴라를 구원등판하여 역시 1⅔이닝동안 무안타 무실점 1K를 기록하여 2011년 필승계투조 진입이 멀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2011년 4월 6일, 406 대첩에서는 팀의 미칠듯한 추격전이 이여상의 병살로 엎어지자 연장 10회에 나서는 KIA 타자들을 탈삼진 2개 포함 삼자범퇴로 돌려세우는 무시무시한 포스를 뽐냈다. 이후 10회 말 이대수의 끝내기 솔로홈런으로 승리투수의 영광을 안았다. 이게 본인의 프로 데뷔 8년만에 얻은 첫 승이다. 이대로 가면 2007년부터 팀에서 1명씩 나타나는 핵심 불펜 2011년 버전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였으나...
안타는 안 맞는데 볼넷을 미친 듯이 내주며 제구력이 이전으로 돌아가더니 점점 출전 기회가 줄고 있다. 게다가 그의 제구력을 잡는 데 기여했던 한용덕 투수코치가 2군으로 내려가면서 더욱 정신줄을 놓은 정재원은 결국 5월 17일 두산과의 경기에서 대형사고를 터뜨리고 말았다. 선발투수 양훈이 5실점후 내려가고 5회에 등판했는데, 첫 타자부터 볼넷으로 내보내 버리더니 연속 사사구로 순식간에 만루를 채워버리고 만다. 그것도 김현수에겐 2구째에, 손시헌에겐 초구에 몸에 맞는 볼을 선사한다. 그것도 둘 다 위험한 부위인 등의 척추 부분을 맞췄다. MLB였다면 고의성 여부에 관계 없이 퇴장[6] 을 당할 수도 있었을 만큼 위험한 투구였다. 후에 타자 양의지에게도 초구에 또 양의지의 등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는 폭투를 범해 결국 주자 1명이 홈을 밟고 주자는 2, 3루가 되었다. 오죽하면 경기에서 가장 중립적이어야 할 심판이 주의라는 명분으로 진정시키고 있었으니... 김현수는 꽤나 분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후에 바로 데폴라로 교체되었고, 데폴라가 분식회계함으로써 안타는 하나도 맞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3실점을 기록하여 경기를 중계하던 해설진이 정재원의 마인드가 걱정되는 듯한 이야기를 했다.
이후 제구력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2군으로 강등, 2군 경기에서도 140이상의 공을 던지기 시작하면 자신의 공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폭투와 볼질을 일삼았다. 비교적 느린 구속의 공을 던질 때는 컨트롤에 이상이 없으나 시속 140km를 넘기면 극단적으로[7] 제구를 잃어버렸으며, 시즌 초에는 이 정도 수준까지는 아니었다는 걸 고려해 보면 시즌을 치르면서 정신적인 문제가 생긴 것 같다.
허리근육통으로 내려간 양훈을 대신하여 오랜만에 1군에 올라와 8월 20일 불펜으로 등판했으나 김경언#s-1의 삽질에 힘입어 1⅓이닝 5피안타 6실점을 기록하고 다음 날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시즌이 끝난 후 한화에서 운영팀 멘탈코치를 고용한다고 각종 사이트에 영입공고가 실렸는데 이 멘탈코치 영입의 계기가 아닐까 하는 의혹도 든다. 그만큼 시즌 초반과 멘탈붕괴후의 차이가 심각했다. 어쨌든 또 다음 해를 기약해야 하는 상황에서 시즌을 마쳤다.
2.1.2. 2012 시즌
3월 5일 KIA 타이거즈와의 연습경기에서 제구가 안 되어 김선빈에게 헤드샷을 날려버리는 대형사고를 터뜨렸다.
7월 26일 롯데 자이언츠전에 선발등판하여 홈런 3개 포함 5이닝 9실점을 기록하였다. 우려했던 몸에 맞는 볼은 나오지 않았지만 제구를 잡기 위해 구속을 많이 낮춘 느낌으로 최고구속이 140 중반대에도 미치지 못했다.
2004년과 2009년~2011년까지 순서대로 평균자책점이 9,69, 9.26, 8.79, 8.00으로 해가 지날수록 낮아졌는데, 2012년에 평균자책점 8.55를 기록하여 그 징크스가 깨졌다. 그렇다고 운이 지지리도 없어서 기록한 평균자책점은 아니며 WHIP도 꾸준히 2점대 초반을 찍는 기록상으로만 보면 최악의 투수 중 한 명. 2012년까지 통산 평균자책점이 8.81이면 말 다했다. 한 때 한화팬들을 속썩인 2009년 김혁민의 평균자책점이 7.87인걸 감안하면...
그래도 빠른 공이 제구만 잡히면 잘 꺾이는 슬라이더와 함께 불펜 요원으로 활약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서 아직 프로에 잔류하고 있으나,[8] 이미 1984년생인걸 감안하면 포텐이 터져도 좀 늦은 감이 있으며 '''2004년'''부터 프로에서 뛴 걸 감안하면... 이 역시 한화의 열악한 투수진을 증명하는 산 증인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젊은 투수들이 한두명씩 발굴되고 정대훈이나 임기영 등이 발굴되는 속에서 사실상 한화팬들은 마일영, 정민혁과 함께 정재원에 대한 기대를 거의 접다시피 했다. 당장 2군 성적만 봐도 61이닝 던지면서 사구 19개를 포함해 사사구가 41개이니...
2.1.3. 2013 시즌
3월 9일 KIA 타이거즈와의 시범 경기에서 8회말에 올라와 신나게 불질하며 ⅓이닝 2피안타 2볼넷 4자책점[9] 으로 평균자책점 108.00이라는 처참한 기록을 남겼다.
2.1.4. 2014 시즌
1군 등판이 단 5차례뿐이었다. 5월에 2경기를 던지고 내려가 7월 29일 넥센전 패전상황에서 올라왔는데, 3이닝 3피안타 3실점, '''6사사구 6K'''라는 그다운 투구내용을 보여주고 10월까지 1군 무대에서 종적을 감췄다.
10월 3일 사직 롯데전에서는 큰 점수차로 지고 있는 상황에 등판하여 ⅓이닝 2실점을 기록했다. 그리고 팀의 홈 최종전이었던 10월 13일 삼성전에서는 15:0 상황에서 5회초 2사후 등판, 김상수에게 삼진을 잡아 이닝을 마무리했지만, 6회초에는 삼성 타자들을 공포에 휩싸이게 하는 예의 헬 오브 지옥의 제구를 과시하며 야마이코 나바로에게 2루타 - 박한이에게 초구 몸에 맞는 볼 - 김헌곤에게 초구 폭투, 2구 몸에 맞는 볼 - 최형우에게 2타점 적시타 - 우동균에게 1타점 적시타로 3실점 후 강판되고 말았다. 최형우의 100타점을 완성해 준 것은 덤. 이날 한화는 22:1의 그야말로 비참한 패배를 당했다.
2.1.5. 2015 시즌
2015년 1월 페이스북에 김성근 감독을 디스하는 듯한 글을 남겨 물의를 빚었고 결국 해외 전훈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선수 자신은 뒤늦게 아니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한화 팬들의 반응은 당연히 매우 좋지 않다. 감독 디스 건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육성선수로 밀려났다가 시즌 중 등록되었다.[10]
후반기 9월달에 1군에 등록돼서 3경기를 던졌지만 너무나 당연하듯이 방어율 11점대의 방화를 지르고 2군으로 내려가 시즌 마감.
그런데 시즌 후 나온 기사에서 언급하고 있는 A선수가 정재원이라는 추측이 팬들 사이에서 유력하다. SNS에 글을 올린 시점은 1월 10일이지만, 이 때부터 프런트하고 마찰이 있었다고 한다면 선수 입장에선 그런 글을 올릴 만도 했었던 심정이었던 셈이다. 실제로 1월 7일에 한화가 임경완, 오윤, 권용관을 등록하면서 정재원에게 육성선수 전환을 권했고, 그래서 선수가 10일에 SNS에 글을 올렸다고 하면 앞뒤가 맞는다. 또한 시즌 중에 등록선수로 등록되었다가 9월에나 1군에 올라올 수 있었던 점이 모두 정재원과 일치한다. 기사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한화 프런트는 정재원이 어중간한 선수라는 이유로 도를 넘은 갑질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
2.1.6. 2016 시즌
2016년도 육성선수로 한화에서 뛰게 된다. 2군의 안습한 뎁스속에 3일 휴식후 선발으로 미친듯이 굴려지고 있다. 4월 5일 53개, 9일 93개, 13일 117개, 17일 43개, 22일 74개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5월 13일 1군에 승격되었고, 15일 기아전에 나와서 1⅓이닝 1실점을 기록한다.
5월 18일 삼성전 2이닝 3실점으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활약 후 2군으로 내려갔다. 그 후 등판이 없다.
8월 2일 콜업됐다.
8월 6일 4이닝 무실점 3피안타 1볼넷 투구수 60개로 큰점수차를 치더라도 안정적인 호투룰 보여줬다. 볼넷이 하나라는 점에서 제구가 어느 정도 잡힌 것으로 보인다.
8월 16일 4⅔이닝을 던진 선발 윤규진의 뒤를 이어 제대로 불을 질러버린 송은범[11] 의 뒤를 이어 등판하여 4⅓이닝동안 79구 6피안타 2피홈런 4실점으로 마지막 투수가 가장 공을 많이 던진 이례적인 피칭을 보여줬다.[12][13] 고무적인 것은 사사구가 없고 삼진을 8개나 잡아낸 것. 채팅창은 '차라리 일부러 태업해서 선발로까지 굴려지지만 말아라'는 반응이 다수일 정도로 잘하는데도 걱정을 하는 안습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8월 24일 넥센전에서는 1이닝 동안 2피안타 1사사구 2실점(2자책)을 하며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8월 25일 NC전에 나와 1⅔이닝 동안 1K 무실점으로 잘 던지나 했더니 30일 두산전에서는 ⅓이닝 동안 3피안타 1사사구 3실점(3자책)을 하며 또 무너졌다.
이후로는 원포인트로 쓰이다가, 9월 22일 NC전에 올라와 2이닝 동안 3피안타 2사사구 3K 2실점(2자책)을 하며 패전조로 나름 쏠쏠한 모습을 보이는 중.
9월 25일 SK전에 나와 1이닝 동안 1피안타 무실점으로 이닝을 마무리 지었다.
9월 27일 두산전에 올라와 ⅓이닝 동안 1볼넷으로 피칭을 마무리 한다.
9월 28일 두산전에 올라와 1이닝 11구 3실점(3자책)으로 무너졌다.
2.1.7. 2017 시즌
믿을만한 사이드암인 정대훈이 공을 던지지 못하고 있고, 대졸신인 김재영도 재활조에 속해있는지라 어쩔 수 없이 17시즌 한화의 옆구리 노예를 맡을 것으로 보인다.
17년 3월 14일 LG와의 첫 시범경기 카를로스 비야누에바의 후속 투수로 4회 말에 등판했다. 여지없이 140km 속구는 제구가 안돼서 볼이고 120km 언저리의 직구는 모두 상대 클린업 트리오의 먹이가 되었다. 그 와중에 리드와 정반대 방향이다 못해 타자 등 뒤로 날라가는 70km 대의 투구를 튀어올라 간신히 잡아내는 조인성의 모습은 유일한 하이라이트. 선두타자 박용택 홈런 이후 모두 안타 볼넷 볼넷 사사구 볼넷으로 적시타 없이 점수를 퍼주었다.
2군에서도 방어율 7점대의 아름다운 스탯을 찍다가 24일 포수 박상언과 함께 뜬금없이 1군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기아전의 3번째 투수로 등판해 2이닝 2볼넷 1탈삼진 4피안타 2실점을 기록했다.
꼴갤에서 가끔 이재곤(...)을 팔러 칰갤에 오면서 구매 요청을 하는 투수였다.
7월 후반기, 이태양이 부상으로 시즌아웃 되면서 추격조로 올라와 의문의 호투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시즌 종료 시점에서 보면 21이닝을 소화하면서 ERA 3.43, FIP 5.17을(STATIZ 기준) 기록하며 그야말로 인생투를 보여준 셈이 되었다. 이는 올시즌 송은범보다 휠씬 더 잘 던진 것이며, 커리어 상 처음으로 WAR가 소수점 한자리 수 까지 올라 +0.34가 되었다. 참고로 이게 '''커리어 하이'''(...)다. 허나 투수 순수자책점이 실제 자책점보다 크게 높은 것으로 보아 17년도는 플루크였을 가능성이 크다.
2.1.8. 2018 시즌
서균이나 여타 사이드암 유망주들이 성장할 때까지는 어떻게든 나올 듯 하다. 그간 수많은 잠수함 투수들이 짤리는 와중에도 꾸역꾸역 살아남아왔으니 이쯤되면 이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인 듯.
정대훈이나 김기현 등 정재원과 비교해봤을때 나이, 실력면에서 모두 우위인 투수들이 방출되는 와중에도 살아남은 걸 보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가 참 의문스러울 정도. [14]
한용덕 감독으로부터 총애를 받는지 결혼 버프인 건지 몰라도 연습경기 1.1이닝 무사사구 무실점으로 또 '한 번만 더 속아볼까?' 하고 낚이는 팬들이 속출하고 있다. 그러나 기대를 살만하면 다시 실점하고 있으니...
4월 4일, 1군으로 등록됐다. 그리고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하고 4월 6일 1군에서 말소됐다(...).
2군에서 김성훈, 장민재, 문동욱 등과 선발 로테이션을 돌고 있다. 하지만 구속이 원래대로 돌아보며 불펜에서 제몫을 해주기 시작한 이태양, 안영명, 투심을 익혀 각성한 송은범, 신인 필승조 박상원, 서균 등이 자리를 꽉 잡고 있어 기회가 돌아갈지는 미지수.[15]
6월 들어서 좌완 불펜 한 자리를 제외하면 필승 셋업맨 안영명, 마무리 정우람, 필승조와 추격조의 경계에 있는 송은범, 박상원, 추격조/롱릴리프를 맡은 이태양과 장민재, 5월 후반까지 미스터 제로였던 사이드암 서균까지 7~8명의 불펜이 그야말로 더욱 철벽이 되어가면서 갈수록 설 자리가 줄어드는 중이다. 다만 송창식과 함께 2군에서 그나마 선발로 제 역할을 하는 중이고, 계속 상태가 좋아진다고 보고받는다는 감독의 언급으로 보아 투수진에 과부하가 걸릴 경우 한번쯤은 올라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8월 8일 드디어 콜업이 되었다. 하지만 2이닝 5실점으로 박살나면서 평균자책점이 무려 22.50(...)이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1군에서 말소되었고, 8월 29일자로 심수창과 함께 웨이버 공시가 되었다.
2.2. SK 와이번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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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5일, SK 와이번스가 웨이버 공시된 정재원을 영입했다. # 염경엽 단장의 말에 따르면 즉전감 사이드암 투수가 부족[16] 해서 영입했다고. SK 팬덤에서는 정재원이 한화에서 거뒀던 성적 때문에 다소 당황스러워하는 분위기지만, 그래도 손혁 투수 코치의 영입을 통해 상당히 득을 보기도 했던 만큼 기대해보자는 여론도 있다. 향후 실전에서의 모습을 봐야 이 영입의 흥망을 알 수 있을 듯.
2.2.1. 2018 시즌
10월 11일 김광현, 김태훈, 메릴 켈리가 말소되며 조성훈, 최민준과 함께 콜업되었다. SK 이적 후 첫 1군 콜업.
콜업 당일 두산전 8회말에 등판해 0⅓이닝 동안 2점을 주고 강판되며 패전 투수가 되었다. 그리고 평균자책점은 '''30.86'''까지 치솟았다. 다만 어차피 2위를 확정지어놓은 시즌인데다가 정규 시즌도 10월 13일 경기를 마지막으로 끝나는만큼, 이 1경기에서의 모습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아직 시기가 아닐 것이다. 비시즌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생명 연장과 은퇴의 기로를 결정지을 것으로 보인다.
2.2.2. 2019 시즌
가고시마에서 열리는 퓨처스팀 스프링캠프에 참가했다.
3월 26일 한화와의 퓨처스리그 개막전에 나와 2.1이닝 동안 2실점을 허용했다.
이후 퓨처스에서 호투를 펼치다가 5월 4일 1군에 콜업되었다. 2군에서 정재원을 강력 추천했다고.#
5월 7일 한화전, 11대 2로 크게 앞선 9회초에 등판해 공 10개로 1이닝을 깔끔하게 막았다.
5월 11일 기아전 9회 나와서 1이닝 2피안타 무실점으로 깔끔하게 막았다.
5월 18일 두산전 11회초 2아웃 상황에 등판해 오재일에게 만루홈런을 허용했다.
5월 19일 이승진과 함께 말소됐다.
5월 26일 NC 다이노스 2군과의 경기에 선발로 나와 6이닝 동안 1피안타 1볼넷 무실점으로 호투를 펼치며 승리를 거뒀다.
이후 방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3. 플레이 스타일
사이드암 투수지만 최고 시속 150km까지 나오는 빠른 강속구가 주무기로 구속과 구위 모두 뛰어나며 볼끝도 지저분해 패스트볼이 코너웍이 되면 롤모델인 임창용 못지 않은 파워피칭을 보여준다. 제구력도 이전보다 훨씬 끌어올린 덕에 결정구인 슬라이더 구사도 잘 되고 있으며 어느 정도 연투 능력도 생겼다. 약점은 아직까지 하체 활용이 완벽하지 않아 연투가 늘어날 경우 어깨에 무리가 올 수 있다는 점.
4. 여담
- 등번호는 37번을 달다가 안영진이 제대한 후 39번으로 바꿨는데, 둘 다 임창용의 등번호였다. 본인이 임창용을 닮고 싶어 한다고. 이후 한화에서 방출 후 SK로 이적한 뒤, 2019년에는 등번호를 12번으로 바꿔 달았는데 이마저도 임창용의 등번호다.
5. 연도별 주요 성적
6. 관련 문서
[1] 입단 당시의 이름은 정종민(鄭鍾敏)으로, 2009년 정재원으로 개명했다.[2] 광주일고에서 전학.[3] 다른 사이드암 투수들이 하나둘씩 방출되고 있지만 생존중이었는데 2018년 8월말을 끝으로 방출. 근데 얼마 안 가 새 팀을 찾고 2019년 방출되었다. 보여준 것에 비해 15년씩이나 프로에 남아있었으니 생존왕이라는 칭호는 맞다.[4] 같이 졸업한 박권수도 SK에 1차지명을 받고 입단했다. 여담으로 그 외에 같이 졸업한 선수로 배우 이태성(본명 이성덕)이 있었다. 이태성은 배우로 데뷔하면서 야구 선수 이력이 알려졌지만, 소속사의 청소년대표 드립 때문에 이미지가 깎이기도 했다.[5] 하지만 본인 曰 이 별명에 대해 직접 물어본 결과, "아직도 그런 소문이 돌아??"라며 강력하게 부인했다. 또한 "개밥 때문에 그랬으면 진작에 난 짤렸겠지, 서산에 개 키울데가 어딨냐?" 라며 개밥에 관련된 소문이 없어지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근데 2013년 이전이면 서산 2군구장이 없었던 시절인데...[6] 공두오 참조. 대표적인 빈볼 중 하나가 바로 상대 등에다 던지는 투구다.[7] 단순히 존에서 벗어나거나 코너웍이 안 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하늘로 날아갔다가 타자를 향해 가는 등 전혀 제어가 되지 않는다.[8] 실제로 2012년 기준 20이닝 동안 18탈삼진은 기록했다.[9] 1자책점은 뒤에 올라온 조지훈이 분식회계했으나 조지훈이 1사 만루를 1실점만하고 막은 거라...[10] 대신 윤기호가 임의탈퇴되었다.[11] 아웃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한채 1스트레이트 볼넷에 이어 만루포를 맞아버렸다.[12] 라인업 상의 투수가 필승조 송창식, 권혁, 정우람, 필승조와 추격조를 오가는 심수창, 정대훈, 박정진, 선발투수 송은범뿐이었음을 감안한다면 투수 3명으로 지는 경기를 마무리지었으니 썩 나쁘지는 않다.[13] 문제는 선발투수를 또 불펜으로 보내 핵실험을 해버려서(...) 로테이션이 꼬였다는 것.[14] 정작 당사자는 육성전환(...)되었다. 그리고 시즌 중에 결국 은퇴.[15] 6월 13일 경기 종료 시점에서 한화 불펜의 ERA는 '''10개 구단 중 유일하게 3점대로 18시즌 전체 1위다.''' [16] SK의 다른 사이드암 투수들 중 김주한은 미필에 수술을 받았고, 백인식은 유리몸에, 박민호는 1군 경험이 아직 부족하며 김성호는 SK 입단 후 소식이 없다. 게다가 박민호는 상무 피닉스 야구단 전역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전역 후에 등록하지 않는다면 FA 보호명단에 자동으로 포함된다는 점도 노린 듯 하다. 즉 즉전감을 영입하면서 유망주까지 보호명단 포함이라는 일타쌍피를 노린 셈. 그러나 박민호는 재대 후 등록되었댜.[17] 정확히는 2006년 시즌 도중 군복무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