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무타미드

 


1. 개요
2. 즉위 이전
3. 치세
3.1. 연이은 반란
3.1.1. 팔레스타인 & 시리아 & 자지라
3.2. 안정의 시기


1. 개요


المعتمد على الله
알 무타미드 알랄라[1]
재위 870년 6월 19일 ~ 892년 10월 14일
생몰 842년 ~ 892년 10월 14일
아바스 왕조의 15대 칼리파. 알 무타와킬의 막내 아들이며 사촌인 알 무흐타디가 튀르크 군인들에게 살해당한 이후 추대되었다. 형이자 섭정이던 아흐마드 알 무와파크가 튀르크 군대를 장악하는데 성공하며 사마라의 혼란기가 종식되었다. 또한 잔즈 반란사파르 왕조의 침공이 진압되는 등 압바스 조는 중흥기라 평가될만한 시기를 보냈다.
하지만 치세 대부분의 기간 동안 무타미드는 형 무와파크의 꼭두각시였으며 882년에 툴룬 왕조로 망명하려다 실패한 후에는 가택연금되어 정치에 전혀 간섭하지 못하게 되었다. 891년에 무와파크가 사망하자 무타미드는 실권을 장악하려 하였으나 조카이자 무와파크의 아들인 알 무타디드에게 패한 후 이듬해 사망하였다.

2. 즉위 이전


[image]
9세기 후반 칼리파 가계도 (알 무타심 ~ 알 무타미드)
아흐마드는 칼리파 알 무타와킬과 쿠파 출신의 하렘 여성인 피트얀 사이에 태어났다.[2] 그는 무타와킬의 다섯 아들 중 막내였고 두 형 (문타시르, 무타즈)과 두 사촌 (무스타인, 무흐타디)가 칼리파를 지내는 동안 별 존재감 없이 지냈다. 그동안 권력 다툼 속에서 둘째 형 무타즈에 의해 셋째 형 무아야드가 살해되고 넷째 형 탈하 (무와파크)가 감금되는 혼란 속에서도 그는 별 간섭을 받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3. 치세


870년 6월, 사마라의 혼란기가 막판으로 치닫던 때에 튀르크 군대에 의해 그의 사촌인 칼리파 알 무흐타디가 폐위되었다. 무신들은 새 칼리파로 생존하는 무타와킬의 두 아들 중에 고민하였는데, 군대와 밀접한 탈하 (무와파크) 대신 유약한 막내 아흐마드를 알 무타미드로 추대하였다. (6월 19일) 이틀 후 무흐타디는 살해되었고 23일에 실권자인 무사 이븐 부가가 사마라에 입성하여 무타미드에게 충성을 서약하였다. 25일에 무타미드는 광장에 모인 시민들 앞에서 칼리파로 선포되었다.
861년 이후 10여년간 이어지던 '사마라의 혼란'은 알 무타미드 대에 이르러 실권은 무사를 비롯한 튀르크 무신들이 장악하고 무타미드의 형인 탈하가 그들과 칼리파 사이에 중재자 역할을 맡으며 권력의 균형이 맞춰졌다. 혼란의 종식을 상징하듯, 무타와킬 시절 와지르였다가 바르카로 유배되었던[3] 우바이둘라 이븐 야흐야가 복귀하여 재차 와지르로 선임되었다. (7월 5일) 비록 사마라는 안정되었지만 혼란기 동안 중앙집권이 약해진 각 지역들은 여전히 불안하였다.
서쪽의 이집트 총독 아흐마드 이븐 툴룬이 사실상 자립한 상태였고 다마스쿠스와 팔레스타인 총독 이사 역시 세금을 사마라로 보내지 않고 독점하였다. 동쪽에선 이란의 부흥을 외친 사파르 왕조가 흥기하여 아바스 왕조의 속국 타히르 왕조를 패배시키고 호라산 대부분을 수중에 넣은 상태였다. 북쪽의 타바리스탄에선 자이디 시아파인 알라비 왕조가 들어섰고 남쪽에선 잔즈 반란과 이스마일리 시아파인 카라마트가 극성이었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으로, 바그다드 마저 위태로웠던 형국이었다.

3.1. 연이은 반란


우선 무타미드의 즉위와 동시에 쿠파에선 알리 이븐 자이드가 이끄는 자이디 (다섯이맘파)의 반란이 일어났다. 그를 진압하러 간 샤흐 알 미칼은 대패하여 간신히 목숨만 부지하였다. 8월, 알리의 형제인 하산 이븐 자이드의 군대는 이란의 라이를 점령하며 압바스 조는 남쪽과 동쪽에서 시아파의 위협을 받게 되었다. 또한 이란 남부의 파르스 지방에서도 지역민들이 쿠르드 인들과 봉기하여 압바스 측 총독인 알 하리스를 전사시켰다. 이라크 남부의 잔즈 반란 역시 계속되었다.
튀르크 지도부는 급한 불인 이라크 내부의 반란부터 대처하기로 하였다. 무필흐가 잔즈 반란군과 싸우기 위해 남파되었고 칸주르가 쿠파로 파견되었다. 이전에 하마단에 주둔하며 하산과 자주 싸워본 무사가 무타미드의 배웅을 받으며 라이로 출정하였다. (9월 11일)

3.1.1. 팔레스타인 & 시리아 & 자지라



3.2. 안정의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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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0년 경 압바스 왕조
877년 와지르 압둘라 사망 후 무와파크의 비서 술레이만 이븐 와하브가 선임됨. 마지막 실권마저 상실. 술레이만은 곧 실각, 이스마일 이븐 불불로 교체되었으나 실권은 무와파크의 또다른 비서 사이드 이븐 마클라드로 교체됨. 885년 사이드가 해임된 후에야 이스마일이 내각 장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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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르 알 아쿨 전투

[1] 신에게 의존하는 자. 본명은 أبو العباس أحمد بن جعفر‎ (아불 아바스 아흐마드 이븐 자파르) [2] 따라서 이븐 피트얀이라 불리기도 한다. 어머니 이름까지 포함한 풀네임은 너무 길어지니 생략[3] 유배 자체는 867년 알 무타즈 시절에 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