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즈 반란
'''ثورة الزنج''' [1]
Zanj Rebellion
869년 ~ 883년간 이라크 남부에서 벌어진 흑인 노예들과 일부 아랍/베두인들의 반 아바스 반란. 비록 진압되었지만, 한때 바스라와 와시트를 점령하며 바그다드를 위협하였고 아바스 왕조의 쇠퇴와 이슬람 세계의 분열을 가속화시켰다.
동아프리카에서 잡혀온 흑인 노예는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지중해 권역에서 매매되었고, 정통 칼리파들의 정복으로 서아시아의 패권을 잡은 이슬람 왕조들도 흑인 노예를 애용하였다. 특히 아랍 인들은 630년대에 이라크를 정복한 후, 그동안의 전쟁으로 (비잔틴/이란/이슬람) 피폐해진 메소포타미아의 관개 시설을 수리하여 농업 생산력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또한, 늘어나는 인구 부양을 위해 남부 습지 지대에 대한 개간과 염전 산업에도 활성화되었는데, 이러한 사업들의 노동력은 흑인 노예들이 떠받들어야 했다.이에 노예들은 2차 피트나로 우마이야 왕조가 흔들리자 689 ~ 690년, 그리고 694년에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였다. 이후 우마이야, 그리고 그를 이은 아바스 정부는 노예들에 대한 당근과 채찍 정책을 쓰며 이라크 남부를 개간해 나갔다.
863년부터 바레인 일대에서 시아파 반란을 꾀하던 알리 이븐 무함마드라는 이가 있었다. 스스로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의 후손을 자처하며 주민들을 규합하던 그는 868년, 지역 유지들의 반발에 바레인을 포기하고 북상하여 바스라로 거점을 옮겼다. 그는 바스라의 두 파벌이 대립하는 틈에 재차 반란을 시도했으나 양 파벌 모두 그를 외면하였고, 결국 알리 이븐 무함마드는 이라크 남부 습지대로 도주하였지만 사로잡혀 와시트로 압송되었다. 이후 뛰어난 처세술로 석방된 알리는 바그다드로 향하여, 이번엔 자이드 이븐 알리의 후손임을 자처하며 지지자들을 모았다. 그리고 869년, 재차 바스라로 향한 그는 습지대에서 일하던 노예들에게 자유와 부를 약속하며 인원을 모았다. 카와리지 사상의 '아비시니아 노예도 출중하다면 칼리파가 될 수 있다'는 평등주의를 강조한 결과 알리는 많은 흑인 노예들을 휘하에 두었고, 사히브 앗 잔즈 (흑인들의 수장)이라 알려지게 되었다. 다만 기존의 자이드 사상 역시 유지되었다. 흑인 노예들 외에 일대의 베두인들 역시 합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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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기 후반 이라크 일대
869년 9월,
Zanj Rebellion
1. 개요
869년 ~ 883년간 이라크 남부에서 벌어진 흑인 노예들과 일부 아랍/베두인들의 반 아바스 반란. 비록 진압되었지만, 한때 바스라와 와시트를 점령하며 바그다드를 위협하였고 아바스 왕조의 쇠퇴와 이슬람 세계의 분열을 가속화시켰다.
2. 배경
동아프리카에서 잡혀온 흑인 노예는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지중해 권역에서 매매되었고, 정통 칼리파들의 정복으로 서아시아의 패권을 잡은 이슬람 왕조들도 흑인 노예를 애용하였다. 특히 아랍 인들은 630년대에 이라크를 정복한 후, 그동안의 전쟁으로 (비잔틴/이란/이슬람) 피폐해진 메소포타미아의 관개 시설을 수리하여 농업 생산력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또한, 늘어나는 인구 부양을 위해 남부 습지 지대에 대한 개간과 염전 산업에도 활성화되었는데, 이러한 사업들의 노동력은 흑인 노예들이 떠받들어야 했다.이에 노예들은 2차 피트나로 우마이야 왕조가 흔들리자 689 ~ 690년, 그리고 694년에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였다. 이후 우마이야, 그리고 그를 이은 아바스 정부는 노예들에 대한 당근과 채찍 정책을 쓰며 이라크 남부를 개간해 나갔다.
863년부터 바레인 일대에서 시아파 반란을 꾀하던 알리 이븐 무함마드라는 이가 있었다. 스스로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의 후손을 자처하며 주민들을 규합하던 그는 868년, 지역 유지들의 반발에 바레인을 포기하고 북상하여 바스라로 거점을 옮겼다. 그는 바스라의 두 파벌이 대립하는 틈에 재차 반란을 시도했으나 양 파벌 모두 그를 외면하였고, 결국 알리 이븐 무함마드는 이라크 남부 습지대로 도주하였지만 사로잡혀 와시트로 압송되었다. 이후 뛰어난 처세술로 석방된 알리는 바그다드로 향하여, 이번엔 자이드 이븐 알리의 후손임을 자처하며 지지자들을 모았다. 그리고 869년, 재차 바스라로 향한 그는 습지대에서 일하던 노예들에게 자유와 부를 약속하며 인원을 모았다. 카와리지 사상의 '아비시니아 노예도 출중하다면 칼리파가 될 수 있다'는 평등주의를 강조한 결과 알리는 많은 흑인 노예들을 휘하에 두었고, 사히브 앗 잔즈 (흑인들의 수장)이라 알려지게 되었다. 다만 기존의 자이드 사상 역시 유지되었다. 흑인 노예들 외에 일대의 베두인들 역시 합류하였다.
3. 반란의 시작
[image]
9세기 후반 이라크 일대
869년 9월,
[1] Thawrat al-Zanj 로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