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히르 왕조
821 ~ 873년까지 메르브, 니샤푸르를 거점으로 호라산과 이란 중부를 다스린 토후국. 페르시아 문화의 부흥을 이끈 첫 이란계 왕조라는 점에서 의미있다.
1. 배경
아라비안 나이트의 배경이기도 한 하룬 알 라시드 시기의 태평성대 이후 두 아들의 내전은 아바스 왕조의 국력을 약화시켜 놓았다. 알 마문의 통치로 어느정도 회복되긴 했지만 지방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되었다.
광대한 제국 통치의 어려움을 느낀 하룬은 제국을 양분하여 이라크, 시리아, 이집트의 서부는 알 아민에게, 이란과 호라산의 동부는 알 마문에게 나누어 주었다. 사이가 안좋았던 형제는 하룬이 죽은 809년부터 싸웠고 813년에는 바그다드를 포위한 후 알 아민이 암살되자 칼리프 직위에 올랐다.
내전은 서부의 아랍 세력과 동부의 페르시아 세력 간의 알력다툼이기도 하였는데 페르시아의 전통 귀족 출신의 타히르는 마문을 도운 전과로 이란(호라산)의 에미르로 임명되었고, 연공만 납부하는 자치권을 부여받아 타히르 왕조의 초석이 되었다.
2. 이란 르네상스
수도 니샤푸르는 페르시아 문화의 부흥을 이끌며 번영하였다.
3. 멸망
타히르 왕조는 862년, 타히르 2세의 어린 아들 무함마드가 즉위하며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864년에 타바리스탄에 쉬아파인 자이디 세력이 봉기하여 알라비 왕조를 세웠고 867년에는 시스탄의 아미르이자 사파르 왕조의 개창자인 야쿠브 알 사파르가 타히르 조의 주요 거점인 헤라트를 점령하였다. 무함마드는 속국인 사만 왕조로 하여금 반격하게 하였지만 그들마저 실패하자 사파르 조와 평화 조약을 맺었다. 하지만 결국 873년에 사파르 군대가 니샤푸르를 함락하며 타히르 왕조는 멸망하였다.
이후 사파르 측에 포로 신세로 지내던 무함마드 이븐 타히르는 876년, 사파르 군대가 바그다드 정복을 시도하다가 다이르 알 아쿨 전투에서 아바스 왕조군에 패배하자 석방되었다. 칼리파 알 무타미드는 무함마드에게 재차 호라산 총독 직위를 하사하였으나 명목상에 그쳤고 사파르 조에 반란을 일으킨 세력들이 쿠트바에서 그의 이름을 언급하는 정도에 그쳤다. 879년에 야쿠브가 죽고 사파르 조의 군주가 된 아므르 이븐 라이스는 칼리파와 협상하여 호라산 총독으로 임명되며 무함마드는 명목상의 권위도 상실하였다.
하지만 884년에 사파르 조와 압바스 칼리파와의 관계는 재차 악화되었고 무함마드는 호라산 (명목상)과 바그다드의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885년) 다만 5년 후 바그다드 총독위는 숙부인 압둘라에게 넘어갔다가 891년에 그마저도 맘루크 출신의 바드르 알 무타디디에게 빼앗기며 타히르 가문은 더이상 역사에 등장하지 않게 되었다. 무함마드는 910년에 쓸쓸히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