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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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
(Алексе́й Миха́йлович)
'''출생'''
1629년 3월 19일
루스 차르국 모스크바
'''사망'''
1676년 1월 29일 (46세)
루스 차르국 모스크바
'''재위'''
루스 차르국의 황제
1645년 7월 12일 ~ 1676년 1월 29일
'''배우자'''
마리아 일리니츠나 밀로슬랍스카야 (1648년 결혼 / 1669년 사망)
나탈리야 키릴로브나 나리시키나 (1671년 결혼)
'''자녀'''
소피아 알렉세예브나, 표도르 3세, 이반 5세, 표트르 1세, 나탈랴 알렉세예브나 등
'''아버지'''
미하일
'''어머니'''
에우독시아 스트레시네바
'''형제'''
이리나 미하일로브나
1. 개요
2. 생애
3. 자손


1. 개요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2대 차르. 표트르 대제의 아버지.
로마노프 왕조의 기초를 다진 차르였으나 상당히 온화했고 몸이 약해서 전체적으로 통치가 안정적이지 못했다.

2. 생애


아버지 미하일 1세의 뒤를 이어 16세의 나이로 제위에 올랐다.
매부이자 가정교사였던 '보리스 이바노비치 모조로프'의 섭정을 받았으나 1648년 모스크바에서 민중봉기가 일어나자 그를 추방하게 되었다.
반란군을 달래기 위해 '젬스키 소보르'를 소집했는데 이 젬스키 소보르에서 1649년 새로운 러시아 법전을 만들고 농노제를 합법화 하게 된다.
러시아 정교회 총대주교 니콘과의 분쟁에서 승리하여 제권을 확립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후 정교회 총대주교들이 차르의 개인고문이 되어, 차르의 통치를 돕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폴란드와의 북방전쟁에 개입하여 대홍수 시기 대승을 거두고 많은 영토를 확보했다.
같은 시기에 니콘은 토착화된 러시아 정교회의 전례를 콘스탄티노플 양식으로 바꿨지만, 옛 전례 유지를 주장하던 세력이 반발하여 러시아 정교회는 구전례파와 신전례파로 나뉘어 다투었다.
한편 시베리아 진출이 끝에 다다라가면서 1654년~1658년에 나선정벌이 발발했다. 또한 1670년~1671년에는 카자크 지도자 스테판 라진의 반란도 일어났다.

3. 자손


두 번 결혼해 첫 번째 아내 마리아 일리니슈나로부터 표도르 3세이반 5세, 소피아 알렉세예브나 공주를 얻었고, 두 번째 아내 나탈리아 키릴로프나 나리슈키나로부터 표트르 1세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