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카트라즈(밴드)
미국의 헤비메탈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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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부터 게리 시어(베이스), 지미 월도(키보드), 잉베이 말름스틴(기타), 그레이엄 보넷(보컬), 잰 유버나(드럼)'''
1. 결성
1982년,그룹 뉴잉글랜드(New England)(동영상참조)[1] 가 해산되자 멤버였던 베이스 게리 시어(Gary Shea)와 키보드 지미 월도(Jimmy Waldo)는 새 밴드를 결성하기로 맘 먹는다. 이들은 마침 마이클 솅커(Michael Schenker) 그룹에서 해고된 보컬리스트 그레이엄 보넷(Graham Bonnet)과 만나 본격적으로 밴드 결성을 추진하게 된다. 아이언 메이든에서 명성을 날렸던 드러머 클라이브 버가 참가하면서 밝은 미래가 예고되었지만 1주일만에 탈퇴해버렸다.
이들은 후임으로 Iron Butterfly에 재직했다가 지금은 앨리스 쿠퍼(Alice Cooper)의 밴드에 있던 잰 유버나(Jan Uvena)를 영입했다. 그리고 오디션 끝에 기타는 잉베이 말름스틴이 결정되었다. 잉베이는 이미 스틸러의 기타리스트로 프로 데뷔한 뒤였지만, 엄밀히 말해 애초 완성된 트랙에 기타를 덧입힌 것에 불과했다. 실제로 스틸러의 데뷔앨범을 잘 들어보면 기타와 곡이 따로 놀고 있다. 스틸러의 음반을 재생한 순간 보넷이 '바로 이 친구야!' 라는 탄성을 질렀다는 일본발 자작냄새 나는 루머도 있다. 잉베이의 말에 따르자면, 이 시기에 UFO[2] 에서도 러브콜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보넷과 곡을 만들어나가는 게 더 맘에 끌렸다고. 사실 레인보우에서 리치 블랙모어와 호흡을 맞췄던 보넷의 전력을 생각해보면 잉베이가 맘에 든 건 당연할지도. 그러나 이 둘이 얼마나 강한 개성의 소유자인가를 생각해 보면 훗날의 파국은 이미 예정된 일이나 다름없었다. 잉베이의 반대로 클라이브 버가 쫓겨났다는 루머마저 나돌았다.
이리하여 1983년, 미국의 유명한 감옥에서 이름을 따 온 알카트라즈(Alcatrazz)가 출범했다(스펠링에 Z가 하나 더 많다 ). 미국의 소규모 레이블인 록셔(Rocshire)레코드에서 발매된 데뷔 앨범 No parole from Rock'n'roll이 특히 일본에서 대박을 치면서 일본 공연을 추진하게 되는 계기를 만든 것은 익히 유명한 이야기.(한국에서는 1집과 Live Sentence앨범을 한소리 레코드에서 발매했다. 참고사항은 1집앨범의 한소리 레코드 발매반에는 General Hospital이 삭제되어 있다. ) 사실 알카트라즈 역사상 가장 완성도 높은 앨범이 본작이다. 멤버 간에 적절한 긴장감이 감돌면서도 밸런스를 무너뜨리지 않고 호흡이 잘 맞는다. 일본 공연 때의 라이브를 수록한 2집 Live Sentence를 들어보면 이미 호흡이 무너지고(연주가 무너졌다는 것은 아니다) 경쟁심이 노골적으로 느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84년 Metallic Live로 비디오로 발매가 되었으며 2000년 후반 DVD로 복각이 되었다.(84년 메탈릭 라이브 Hiroshima Mon Amour)
- 현재 음반사이트에 Live 83'이라는 음반이 재발매되어있는데 이 앨범은 원래는 1983년 10월 21일에 캘리포니아 Reseda의 컨트리 클럽에서 공연한 비공식 부틀렉앨범이었는데 그래험 보넷의 라이브중 최상의 라이브를 뽐내고 있고 레코딩상태도 무척이나 양호한 편이다. 이전에는 4~5만 원 선에서 해적판이 거래가되었는데 현재는 정식발매로 인해 훨신 싼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 혹여나 Live Sentence를 듣고 실망하셨으면 꼭 이 앨범을 구해서 들어보길 필히 간곡히 권하는 바이다.외부링크 참조,(이 앨범역시 향뮤직 등 국내사이트에도 간간히 보인다.)
1984년도 일본 공연에서 Hiroshima Mon'amour 를 부른 뒤 "히로시마를 잊지말고, 전쟁은 더 이상 있으면 안된다!(Don't forget Hiroshima! No more war!)"라고 했는데. 원폭 때문에 히로시마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그전에 2차대전의 상황이나 일본군이 저지른 만행을 생각하면 경솔했던 발언이다. 큰 고민 없이 그저 립서비스 차원에서 말한 것일수도 있지만, 2차대전때 일본군에게 많은 피해를 입었던 아시아권 국가들이 보기엔 다소 불편한 상황이다.
2. 스티브 바이의 영입
잉베이를 내보낸 보넷은 프랭크 자파 밴드에서 뛴 경험이 있는 스티브 바이를 후임 기타리스트로 낙점했고, 1985년 캐피톨 레코드에서 3집 앨범인 Disturbing the Peace를 발매했다. 유감스럽게도 이 앨범은 전작들만큼의 히트를 거두진 못했지만 스티브 바이의 기타 솜씨는 대중들의 인정을 받고, 그는 이후 데이비드 리 로스 밴드와 화이트스네이크를 거치면서 기타 명인의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스티브 바이 재적시절은 Power Live 85로 비디오로 발매가 되었다. (스티브 바이가 연주하는 Jet to Jet영상).
스티브가 떠난 이후 다시 공석이 된 기타리스트 자리는 다소 엉뚱하게도 로드 스튜어트밑에서 연주하던 대니 존슨[3] 이 영입되었다. 그리고 1986년 앨범 Dangerous Games이 발매되었는데, 이 앨범은 한국에 처음으로 공식발매된 알카트라즈의 앨범이기도 했다. 그러나 본작의 성향은 록이라기보다 뉴 뮤직에 가까웠다. 그리고 이 앨범 이후 베스트 앨범을 내는 것을 끝으로 알카트라즈는 '죽어버린다'. 그리고 그레이엄은 임펠리테리나 포스필드 등의 밴드를 떠돌게 된다.
3. 현재
2006년 그레이엄 보넷은 자신의 백밴드 형식으로 알카트라즈를 되살렸다. 멤버는 예전 Talisman에서 제프 스콧 소토(Jeff Scott soto)[4] 와 함께 뛰었던 하위 사이먼(Howie Simon, 기타), 크리스 임펠리테리나 토니 맥켈파인등과 협연했던 글렌 소블(Glen Sobel, 드럼), 그리고 팀 루스(Tim Luce, 베이스)였다. 그리고 레인보우와 라이징 포스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던 조 린 터너(Joe Lynn Turner)까지 끌어들여 2007년에 일본 투어를 가졌다. 그리고 글렌 소블이 2009년에 떠나고 데이브 지얼랙(Dave Dzialak)이 가입했으나, 역시 1년 만에 떠나고 제프 바우더스(Jeff Bowders)가 후임 드러머가 되었다.
2017년에는 원년멤버 지미 왈도와 게리 시어가 다시 돌아왔으며, 2019년에 기타리스트로 잠깐 죠 스텀프를 받아들이기도 했다. 또 지미 왈도를 통하여 베이시스트 베스-에이미 헤븐스톤이 가담하였는데, 밴드 최초의 여성멤버이다.
4. 디스코그라피
1집 1983 No Parole from Rock 'n' Roll (Rocshire)[5]
2집 Live앨범 1984 Live Sentence (Rocshire)
3집 1985 Disturbing the Peace (Capitol)
4집 1986 Dangerous Games (Capitol)[6]
[1] 79년 발표곡 Don't Ever Wanna Lose Ya가 유명하다.[2] 마이클 솅커가 재직했던 바로 그 밴드[3] 대니 존슨은 이후에 그레이엄 보넷의 솔로앨범 Underground에 기타리스트로 다시 활동한 경력이 있다. 이 앨범은 그레이엄이 직접 한국의 삼성뮤직과 계약을 하고 97년경에 발매를 하였다.[4] Yngwie Malmsteen's Rising Force 1집과 2집 보컬. 그 후에는 Talisman 이나 Kuni 등의 밴드에서 활약.[5] 현재 STORE FOR MUSIC이라는 레이블에서 보너스트랙을 추가하여 3집을 제외한 나머지 앨범들을 재발매하여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6] 이 앨범은 한국에서는 LP로 발매된 적이 있었다. 그리고 CD는 재발매 되었던 적이 없었던 듯하다. 현재 중고사이트에서 일판 사이드라벨 동봉시 한화로 10만원선 거래가격형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