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폰소 1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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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알폰소 프란시스코 데 아시스 페르난도 피오 후안 마리아 데 라 콘쳅시온 그레고리오 펠라요 데 보르본 이 보르본
(Alfonso Francisco de Asís Fernando Pío Juan María de la Concepción Gregorio Pelayo de Borbón y Borbón)
'''출생'''
1857년 11월 28일
스페인 왕국 마드리드 마드리드 왕궁
'''사망'''
1885년 11월 25일 (27세)
스페인 왕국 마드리드 엘 파르도 왕궁
'''재위'''
스페인의 왕
1874년 12월 29일 ~ 1885년 11월 25일
'''배우자'''
오를레앙의 메르세데스 (1878년 결혼 / 1878년 사망)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크리스티나 (1879년 결혼)
'''자녀'''
마리아 데 라 메르세데스, 마리아 테레사, 알폰소 13세
'''아버지'''
카디스 공작 프란시스코
'''어머니'''
이사벨 2세
'''형제'''
이사벨, 마리아 델 필라르, 마리아 데 라 파즈, 에우랄리아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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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기생애
2. 재위기간
3. 평가


1. 초기생애


스페인의 여왕 이사벨 2세와 카디스 공작 프란시스코의 장남으로 태어났다.[1]
1866년 혁명이 일어나자 어머니와 함께 망명했고 1870년 어머니로부터 명목상이지만 왕위를 이어받았다.
아마데오 1세가 물러나고 제1공화국이 세워졌지만 제1공화국은 대통령이 쿠데타 등으로 끊임없이 바뀌었고 정치는 혼란이 가중되었다. 이에 다시 한 번 보르본 왕조를 재건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고 1875년 1월 14일 마드리드에 입성. 입헌군주국의 국왕으로다시 보르본 왕조를 재건한다.

2. 재위기간


1876년 스페인은 입헌군주국임을 확실하게 하기 위한 헌법을 제정하게 되는데, 이 법의 골자는 주권이 의회와 왕에게 있음을 명시하여 입헌군주국을 명확히 제시했고, 그 외에도 왕의 입법권 및 의회 소집 및 해산권 부여, 상하원 의원의 선출, 국교는 가톨릭, 표현과 결사의 자유를 허락하는 등 당시로서는 상당히 진보적인 법이었다.
또한 왕은 카를리스타의 반란을 진압했고, 쿠바 사태에 대해서도 상당한 자치권을 부여하고 본토의 1개 주로 승격시키기로 합의를 보았다.[2] 그 외에도 카롤린 제도 점유를 놓고 독일과의 분쟁에서 독일의 항해 및 교역권을 인정해주며 원만하게 해결을 보았다.
1878년 외사촌인 마리아 데 메르세데스(Maria de las Mercedes)와 결혼했지만 6개월 만에 왕비가 사망했고, 1879년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리아 크리스티나와 재혼하여 1남 2녀를 두었다. 두 딸에 이어 태어난 아들은 유복자로 태어나 알폰소 13세로 왕위를 계승하게 된다.
1885년 결핵으로 인해 28세의 젊은 나이로 알폰소 12세는 임종을 맞았다. 한참 젊은 나이였고 입헌군주로서 자유주의자들의 불만을 들어주고 개혁을 실시하던 명군이었기에 갑작스러운 사망(좀 앓다가 죽긴 했지만)에 대하여 암살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2018년 현재, 역대 스페인 국왕 중 마지막으로 재위중에 승하한 국왕이다. 아들 알폰소 13세는 망명으로 퇴위했고, 증손자 후안 카를로스 1세는 양위했다.
그만큼 20세기 스페인은 혼란스러웠다는 것을 증명한다.[3]

3. 평가


'''스페인의 혼란스러운 근현대사 속에서 가장 뛰어난 정치능력을 보여준 왕이었다.'''
심심찮게 일어났던 쿠데타도 그의 집권기간에는 일어나지 않았다. 내치의 안정으로 부가 축적되고 왕실 재정까지 풍족하게 되었다. 여러모로 요절한 것이 안타까운 왕. 후임인 알폰소 13세의 시기는 이사벨 2세 시기처럼 혼란스러웠던 데다가 둘 다 결국 왕위를 내놓고 물러나야 했음을 생각해보면 참...

[1] 이 부부의 관계는 썩 좋은 편이 아니어서 알폰소 12세의 진짜 아버지는 따로 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물론 소문이니 판단은 알아서.[2] 그러나 나중에 약속이 안 지켜지며 문제가 생겼다.[3] 1931년 스페인 내전, 1939년부터 1975년까지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독재가 있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