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제1공화국

 


'''에스파냐 공화국'''
'''República Españo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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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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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년 ~ 1874년
국가
리에고의 노래(El Himno de Riego)
위치
오늘날의 스페인, 식민지
수도
마드리드
정치체제
공화정
국가원수
대통령
주요 지도자
프란시스코 세라노
언어
스페인어
종교
가톨릭
민족
스페인인
통화
에스파냐 페세타
성립 이전
스페인 왕국
멸망 이후
스페인 왕정복고
1. 개요
2. 설립
3. 혼돈의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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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873년 아마데오 1세의 퇴위 이후 급진 공화주의자들의 주도하에 선포된 스페인 역사상 최초의 공화정 체제다. 11개월이라는 기간동안 무려 4명(...)의 대통령이 재임하면서 극도의 정치적 혼란을 보여주었고 결국 마르티네스 캄포스가 이끄는 군부 세력이 1874년 12월에 쿠데타를 일으켜 이사벨라 2세의 아들 알폰소 12세를 왕위로 추대하면서 스페인 왕정 복고가 이루어졌다.

2. 설립


1868년 이사벨라 2세가 퇴위된 이후 정권을 잡은 것은 급진 자유주의 정치가들이었다. 이들 급진 자유주의자들은 전국에 혁명 위원회를 결성하고 주권재민, 보통선거, 노조 허용과 같은 당시로서는 급진적이었던 정치 이념들을 현실로 구현시키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혁명 위원회에는 급진 자유주의자뿐만이 아니라 통합주의자, 민족주의자들까지도 상당수가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스페인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둘러싸고 심각한 대립이 빚어진다. 일부 정파는 공화정을 요구하는가 하면 다른 정파는 새로운 군주를 추대해 군주정을 지속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런 혼란의 와중에 정국의 주도권은 프란시스코 세라노 장군에게 넘어간다. 임시정부를 수립한 세라노 장군은 선거를 실시해 제헌 의회를 선출했고 무수한 토론 끝에 주권재민, 입헌군주제, 집회의 자유, 신앙의 자유 등을 명시한 헌법이 통과된다.[1] 이후 세라노 장군은 후안 프림에게 정부 수반직을 물려주었고 새로 수상이 된 프림에게 주어진 과제는 바로 새로운 군주를 물색하는 것이었다. 이사벨라 2세의 아들 알폰소를 지지하는 목소리도 있었고 영국 측은 빅토리아 여왕의 시가(媤家)였던 작센코부르크고타 가문을 은근슬쩍 밀어 주기도 했다. 또한 프로이센의 왕실이었던 호엔촐레른이 물망에 오르기도 했고[2] 카를로스파는 또 자기 나름대로 이때다 싶어서 열심히 로비 활동을 벌였다. 1년에 걸친 옥석 고르기 끝에 프림은 사보이 왕실의 아마데오를 왕으로 임명하면서 아마데오 1세가 새로운 국왕으로 즉위하게 된다.
하지만 아마데오 1세는 즉위하자마자 심각한 문제에 부딪혀야만 했다. 그를 왕으로 점찍은 프림은 아마데오가 즉위하기도 전에 암살당해 버렸고(...) 의회는 대놓고 외국인이었던 국왕을 무시했다. 알폰소의 즉위를 주장하는 세력은 그들 나름대로 아마데오 1세의 즉위를 반대했고 카를로스파들은 세번째(...) 내란을 일으킨다.[3] 노동자들은 노동자들대로 외국인 출신의 왕에게 물러갈 것을 요구하면서 소요 사태를 일으켰다. 이탈리아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정치가 불안정한 스페인의 상황에 질릴 대로 질려 버린 아마데오 1세는 1873년 스스로 퇴위를 선언하고 고향 이탈리아로 돌아가 버린다. 아마데오 1세의 자진 퇴위 이후 의회가 투표를 거쳐 공화정을 수립할 것을 결의하면서 스페인 제1공화국이 수립된다.

3. 혼돈의 공화국


하지만 어렵게 세워진 1공화국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1874년 2월 초대 대통령에 오른 에스타니슬라오 피게로는 '하나의 스페인'을 지향했지만 왕당파들이 일으킨 반란으로 인해 출발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이 상황에서 식민지 쿠바에서도 독립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3월에는 급기야 카탈루냐가 독립을 선언한다. 결국 혼란을 감당하지 못한 피게로 대통령은 하야한다. 피게로의 뒤를 이어 프란시스코 마르갈이 2대 대통령으로 지명되지만 그 역시 각 지역의 독립 운동을 억누르는데 급급하다가 불과 한 달만에 대통령직에서 사임하고 만다. 그 뒤를 이어서 니콜라스 살메론이 3대 대통령에 취임하지만 그 또한 마찬가지로 각 지역의 분리 독립 움직임을 억누르다가 두 달만에 사임하고 만다. 이후 대통령에 취임한 에밀리오 카스텔라르는 기존의 의회를 해산하고 군부의 힘을 빌려서 분리주의 운동을 억누르는 한편 스페인을 중앙 집권 국가로 재편성하기 위한 시도를 펼쳤지만 이번에는 군부가 의회와 손을 합쳐서 카스텔라를 탄핵시켜 버린다(...).
이후 아마데오 1세 즉위 이전 임시 정부를 맡았던 세라노 장군은 자신이 종신 독재자가 되어 버리고 정국 안정을 도모하려고 했지만 여전히 분리 운동은 진압되지 않았고 카를로스파들은 소요 사태를 일으키는 상황이었다. 결국 마르티네스 캄포스가 이끄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이사벨라 2세의 아들 알폰소를 국왕으로 추대할 것을 요구하였고 세라노 정부가 이를 승인하면서 스페인 제1공화국은 폐지되고 보르본 왕조가 스페인의 왕좌를 다시 차지하게 된다.

[1] 세라노 장군은 사적으로는 열렬한 공화주의자였지만 제헌 의회에서 여러 이해 집단들이 토론을 거친 끝에 군주제를 유지할 것을 결정한다. 공화주의자들 역시도 몇몇 급진 세력을 제외하면 '헌법만 준수한다면 아무래도 좋다'라는 심정으로 입헌 군주제를 승인했다.[2] 호엔촐레른 가문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에 발끈해서 나폴레옹 3세빌헬름 1세에게 항의했던 것이 보불전쟁으로 이어지는 엠스 전보 사건이었다.[3] 이전의 내란 두번은 이사벨 2세 때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