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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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중심부의 시타델
1. 개요
2. 역사
2.1. 고대
2.2. 사산 왕조 하의 번영
2.3. 중세
2.4. 호라산의 진주
2.5. 몽골의 침략과 재건
2.6. 제 2의 번영기
2.7. 근대
2.8. 현대

페르시아어/다리어, 파슈토어 هرات‎
영어 Herat

1. 개요


이란의 관문으로 불리는 곳으로, 고대부터 인도와 이란 간의 교통로가 지나갔다. 현재는 아프가니스탄 서부의 요충지이자 제 3의 도시로 인구는 대략 27만 8000명이다.

2. 역사



2.1. 고대


아케메네스 제국 시절에는 하라이바라는 도시가 있었는데, 알렉산드로스 3세의 정복 이후에는 알렉산드리아 아리아나라고 개명되었다.[1]
이후로 셀레우코스 왕조의 지배를 받다가 BC 167년에 파르티아에게 지배권이 넘어갔고 BC 127년에는 쿠샨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2.2. 사산 왕조 하의 번영


서기 226년부터 시작된 사산 제국의 지배 하에서, 헤라트는 비단길의 주요 도시로 성장하였고, 박해를 피해온 네스토리우스 파 기독교가 번성, 주교구가 설치되기도 하였다.
사산 제국은 에프탈 등의 유목민족과의 전쟁에서 헤라트를 사령부로 삼고 요새화 하였다. 이때가 12세기 이전까지 헤라트가 가장 번성하던 시기이다. 제국의 동쪽 영토 중 헤라트는 발흐, 메르브와 함께 주요 거점이었다.

2.3. 중세


헤라트는 652년에 정통 칼리파 군대에게 함락되며 이슬람 화가 시작되었다. 다만 660년 경에는 당나라의 영향권에 들기도 하였다. 그러다 665년에 투르기쉬 부족이 헤라트를 지배하였다.
이후 702년에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파 아브드 알 말리크의 군대가 헤라트를 점령하였다. 그 후 압바스 왕조의 지배를 거쳤으나 이슬람 화는 별 진전이 없었다. 870년에 도시를 점령한 사파르 왕조에 의해 본격적인 이슬람 화가 시작되었다.

2.4. 호라산의 진주


10세기부터 사만 왕조, 가즈니 왕조 등 이란계 제국들의 지배를 받은 헤라트는1042년에 셀주크 제국에게 지배권이 넘어갔다.
호라산 지역이 점점 안정을 찾아가고 중국과의 교역이 늘며 도시는 번성하였다. 1102년에 지진이 도시를 덥쳤지만 빠르게 재건되었다. 1175년에 구르 왕조가 헤라트를 지배하게 되었다. 기야스 웃딘 고리는 1201년에 헤라트 대모스크를 지었다.
12세기 말의 헤라트는 359개의 대학과 12,000개의 큰 상점, 6,000개의 목욕탕과 44만개의 집이 있는, 인구 백만이 넘는 대도시였다고 묘사된다. 헤라트는 당시 세계에서 콘스탄티노플, 니샤푸르, 임안 (항저우), 앙코르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제적 대도시였다.

2.5. 몽골의 침략과 재건


번영하던 헤라트는 1214년에 호라즘 왕조로 지배권이 넘어갔는데, 1221년에 쳐들어온 몽골군에 의하여 대대적으로 파괴되었다. 이후 10년 이상 도시는 폐허로 남아있었다.
1236년에 도시 재건이 시작되었고, 1244년에는 일 칸국의 속국 카르트 왕조가 헤라트를 수도로 삼으며 부흥을 시작하였다. 1335년에 카르트 왕조는 완전 독립하였고, 티무르의 망명을 받아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1380년, 티무르 제국에게 도시는 평화적으로 함락되었고, 학자들은 사마르칸트로 보내져 티무르 르네상스의 기반이 되었다.

2.6. 제 2의 번영기


티무르 사후 15세기 동안 헤라트는 티무르 제국의 수도 역할을 하며 번영하였다. 이때에 많은 사원들이
지어졌다. 1458 - 1459년간 잠깐 흑양 왕조에게 도시가 넘어가기도 하였다.
헤라트는 1507년에 우즈벡 칸국에게 점령되었지만 1510년, 사파비 왕조에게 통치권이 넘어갔다. 다만 1524 - 28년까지 우즈벡 족에게 다시 점령당하기도 했다. 명군 아바스 1세의 출생지이기도 한 헤라트는, 이란의 가장 위대한 도시 중 하나라고 불렸다.

2.7. 근대


18세기 들어 호타키 왕조, 나디르 샤아프샤르 왕조의 지배를 받은 후 1747년에 아프가니스탄의 전신인 두라니 왕조의 지배 하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란의 카자르 왕조는 헤라트를 자주 공격하였다.
1816년에 이란이 일시적으로 도시를 점령했고 1818년에 재침했으나 카피르 칼라 전투에서 아프간 군대에게 패하였고, 두라니 왕조가 와해된 후인 1838년과 1856년에 다시 침공하였으나 영국의 도움을 받은 아프간 군대가 이를 격퇴하였다. (그레이트 게임의 일환)

2.8. 현대


헤라트는 근대 시기의 전쟁으로 쇠퇴하였고, 소련아프간 침공 시에 크게 파괴되었다. 이후 탈레반의 점거와 아프간 전쟁을 겪으며 현재에 이른다.
헤라트 주변의 마을에는 모골어 화자들이 소수 존재한다.[2]

[1] 그리스어로는 Ἀλεξάνδρεια ἡ ἐν Ἀρίοις, 즉 Alexándreia hē en Aríois 라는 의미로 불렸다. 라틴어로는 Alexandria Ariorum)[2] 2003년 조사에선 모골어 화자가 200명이라고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