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쇼다라

 

  • 산스크리트어: Yaśodharā
  • 한역: 耶輸陀羅 , 耶輸多羅 또는 지칭(持稱)ㆍ구칭(具稱)ㆍ지예(持譽)ㆍ명문(名聞)

1. 생애


이름의 뜻은 '소문이 널리 퍼졌다'는 뜻으로, 석가모니가 출가하기 전 왕자 시절에 맞이한 부인이다.[1]
아버지는 싯다르타에게는 외삼촌이 되는 콜리 성의 성주 선각왕(수프라붓다)인데, 수프라붓다의 누이가 바로 마야부인(마하마야)과 마하파자파티로 야쇼다라는 싯다르타에게 외사촌이 된다. 일설에는 수프라붓다의 아들이 바로 '''석가모니를 죽이려 했던 데바닷타'''라고도 한다.
슈도다나 왕이 태자의 의향을 떠보려고 많은 여인들을 성 안으로 초대하고, 태자에게 초대받은 여인들에게 보석이 든 꽃바구니를 나누어주게 했는데, 야쇼다라만은 받지 않고 빈손으로 들어왔고, 아버지 수프라붓다가 가서 다시 받아오라고 권하자 "보석이라면 집에도 많은데 뭐하러 밖에 나가서 받아오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 수프라붓다가 딸에게 슈도다나 왕이 그런 모임을 연 이유를 말해주었고, 야쇼다라는 이때 다시 싯다르타에게 갈 생각을 했는데, 야쇼다라가 갔을 때는 이미 싯다르타는 가지고 있던 보석 바구니를 다 다른 여인에게 나누어주고 하나도 남은 것이 없었다. 야쇼다라는 "저를 창피를 주시나요?"라고 따졌고, 싯다르타가 몸에 달았던 보석 장식을 하나하나 벗어 야쇼다라에게 주려 하자 이를 사양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는 태자가 차고 있는 것을 벗길 생각이 없습니다. 제 몸으로 태자의 몸을 장식해드리고 싶습니다.

이 일이 있은 뒤에 슈도다나 왕은 정식으로 수프라붓다 왕에게 청혼을 했는데, 태자비로써 입궐하는 첫날에도 관례대로 얼굴을 베일로 가려야 함에도 "흠도 없는 얼굴 가릴 필요가 어디 있느냐"는 이유로 맨 얼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입궐했다고 한다.
싯다르타 태자와는 19살 때에 결혼하여 아들 라훌라를 낳았으며[2] 출가 전에는 꿈으로 20가지 두려운 일을 보았는데,
1) 천지가 진동하고
2) 제석당이 부러지고
3) 하늘의 별들이 떨어지고
4) 일산이 찢어지고
5) 머리가 깎여지고
6) 몸 위의 장식이 모두 떨어지고
7) 몸이 추해지고
8) 손과 발이 저절로 떨어지고
9) 온몸이 나체로 드러나고
10) 앉았던 상좌가 부서지고
11) 침대의 네 다리가 부러지고
12) 궁전의 지붕이 바람에 날려 가고
13) 큰 나무가 바람에 뽑히고
14) 해와 달이 어두워지고
15) 세상이 캄캄해지고
16) 성이 무너지고
17) 호법선신들이 통곡을 하고
18) 카필라 국이 텅 비고
19) 꽃과 숲이 모두 마르고
20) 장사들이 모두 흩어져 떠나는
등의 꿈이었다. 꿈에서 깨어 놀라고 두려워하는 야쇼다라에게 싯다르타는 "내가 여기 있고 집도 궁전도 모두 그대로 있다. 무엇을 두려워하는가"라고 위로하면서도 이 꿈은 자신이 출가할 것을 예지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고 한다.[3]
남편이 기어이 출가하자 "이런 못난 지아비가 있단 말인가, 내가 아내로써 못한 것이 뭐가 있다고. 옛날에 부부가 함께 수행해서 깨달음을 얻은 선인들도 얼마나 많았는데, 처자를 데리고 간들 수도 생활에 아무 방해도 되지 않았다는데, 수행이 그토록 좋은 일이라면 부부끼리 같이 하면 둘 다 좋은 과보를 얻을 것을 자기 혼자만 수도해 좋은 과보를 얻겠다고 이렇게 나와 제 아들까지 두고 가버렸단 말인가."라고 남편을 원망하면서도 출가해 사문이 된 그와 똑같은 생활을 하겠다고 맹세하고, 침상에 누워 쉬지도 않고, 화장을 하거나 좋은 옷을 입지도 않았으며, 맛난 음식도 먹지 않았다고 한다.
남편이 성도하고 5년 뒤에 시계모[4] 마하파자파티를 비롯한 석가족의 여인 5백 명과 함께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었다고 하며, 시계모와 함께 비구니 사미니 교단을 이끌어 존경받았다고 전해진다.

2. 본생담


석가모니의 전생을 다루는 본생담(자타카)에는 석가모니와 야쇼다라 둘의 전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5]
석가모니가 과거 무마성(無魔城)이라는 도시에서 수메다(Sumedha, 선혜善慧)라는 이름의 바라문으로 수행하던 시절에, 연등불이 오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공양하기 위해 일곱 송이의 연꽃을 구하려 했는데, 하필 연등불이 온다는 소문이 온 성내에 퍼져서 국왕은 물론이고 성내의 주민 모두가 너도 나도 연꽃을 사 가고 따 가져가 버려 남은 것이 없었다. 연꽃을 구하러 돌아다니던 수메다는 고삐(Gopi, 구리俱夷)라는 이름의 여성이 일곱 송이의 푸른 연꽃을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금을 다 내주면서 그 연꽃을 제발 자신에게 팔아달라고 부탁했는데, 수메다 바라문을 보고 반한 고삐는 "나도 연등불에게 공양하기 위해 남겨둔 꽃이라서 팔 수 없다. 정 사고 싶다면 나랑 부부의 연을 맺어달라"고 조건을 제시했다. 수메다 바라문은 난 수행자라서 지금 당장 당신과 결혼할 수는 없지만, '''미래세에 자신이 태어나고 살아갈 모든 생에서 당신과 부부가 될 것이다'''고 맹세하고, 꽃을 팔겠다는 고삐에게 "혹시라도 다음 생에서 부부의 연을 맺더라도 내가 언제든 수행을 위해 집을 떠나게 된다면, 그걸 반대하거나 붙잡지 말아달라"는 조건을 제시했다. 고삐는 이에 일곱 송이 대신 다섯 송이만 팔겠다고 내 주었고, 나머지 두 송이는 "당신한테 맡길 테니까 당신이 나 대신 연등불께 공양해 달라"고 내어주었다.
이렇게 해서 연등불이 지나가는 길에 사람들이 좌우로 서서 연꽃을 뿌리는 산화공양을 행하는 와중에 수메다가 던진 푸른 연꽃만이 땅에 떨어지지 않고 연등불의 머리 위에 그대로 떠 있는 기적이 일어났으며, 또한 수메다는 연등불이 지나가는 길에 진흙탕이 있는 걸 보고 입었던 사슴가죽 옷을 벗어 깔고 그것도 부족하자 머리를 풀어 진흙 위를 덮고 “부처님, 진흙을 밟지 마시고 부디 제 머리털과 몸을 마치 마니보주의 판자로 된 다리를 밟는다 생각하시고 지나가십시오. 그러면 그것은 저에게 영원한 이익이 되고 즐거움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연등불은 “장하다 수메다여! 그대의 보리심은 참으로 갸륵하구나. 이같이 지극한 공덕으로 그대는 오는 세상에 결정코 부처가 되리니, 그 이름을 석가모니라 부르리라.”라며 수메다가 장차 석가모니로써 성불할 것을 예고하였다고 한다.#
이때 수메다 바라문과 고삐 선녀가 환생한 것이 각각 싯다르타와 야쇼다라였으며, 불교의 결혼식인 화혼식(華婚式)의 유래가 되었다. 화혼식에서는 결혼하는 신혼부부가 부처 앞에서 꽃을 공양하는 절차가 있는데, 이때 신랑은 다섯 송이의 꽃을 들고 신부는 두 송이의 꽃을 들며, 신랑이 신부로부터 꽃을 건네받아 부처에게 올린다. 또한 이때 부처에게 올리는 고불문(告佛文)에서도 “'''두 사람은 부처님의 옛 고사를 본받아 위없는 도를 성취하기를 다짐하였고, 일곱 송이 꽃을 바쳐 영원한 인연을 약속하였습니다.'''”라는 내용이 들어 간다.[6]
또한 본생경에는 이러한 일화도 있다. 바라나시 국의 어느 왕자가 폭군인 아버지에게 쫓겨났는데, 왕자의 아내도 따랐다. 왕자가 하루아침에 들판에 나앉은 처지에서 곤궁한 삶을 하루하루 꾸리느라 여간 버거운 것이 아니었는데, 어느 날 부부가 도마뱀 한 마리를 잡아 껍질을 벗기고 삶던 것을 왕자비가 물 길으러 간 사이에 왕자가 다 먹어버렸고, 왕자비가 돌아와서 도마뱀 어쨌냐고 물으니 "'''되살아나 달아났다'''"고 거짓말을 했다. 당연히 왕자비는 믿지 않았고, 몇 년 뒤 폭군인 아버지가 죽고 왕자는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와 왕이 되어 왕비가 된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에 이것저것 값진 선물을 해주었으나 왕비는 무엇을 받아도 기뻐하지 않았더라고. 이들 부부가 싯다르타와 야쇼다라의 전생이며, 전생에 한 번 호되게 속은 아내는 남편에게 어떤 진귀한 보물을 받아도 기뻐하지 않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와타나베 쇼코는 야쇼다라 태자비의 비통한 체험을 청혼 장면으로 바꿔놓은 것이, 전생 이야기에서 그녀의 불만 형식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3. 대중 매체에서


세인트☆영멘에서는 붓다가 자신과 자식을 두고 출가한 일로 정신공격을 받을 때마다 회상으로 등장하는데, 발렌타인 데이마다 남편 붓다에게 초콜릿을 강제적으로 주고 있다. 안 받으면 모공으로 집어넣어서라도 먹게 한다.
2019년 9월 5일부터 29일까지 서울 올림픽공원 내 우리금융아트홀에서 상연되는 뮤지컬 ‘싯다르타'에서는 최은미노을이 야쇼다라 역으로 분했다.#

[1] 《불본행집경》권14나 《수행본기경》에는 싯다르타 태자는 야쇼다라를 포함해 세 명의 부인이 있었다고 적고 있다. 첫 번째 태자비는 샤카족의 부호 단다파니의 딸 고피카로, 고피카로부터 몇 년 동안 자식을 얻지 못하자 다시 야쇼다라를 아내로 맞았으며, 야쇼다라에게 자식이 없자(나중에 야쇼다라가 자식을 낳기는 하지만) 샤카족 사람 카라스셰마의 딸을 세 번째 부인으로 들였는데, 책에 따라서 이름이 마노라타(또는 마노다라) 또는 므리가자 등으로 되어 있는 데다 자세한 기록도 없다.[2] 19세 때에 출가하려 했으나, 대를 이을 아들 하나만 낳아주고 가라는 부왕의 요청으로 10년을 더 머무르고 출가하였다고 한다.[3] 출처: 불본행집경[4] 시부 정반왕의 정처이자 남편의 생모인 마야부인의 동생으로, 언니가 석가모니를 낳고 산욕열로 죽자 형부의 후처가 되었다. 고로 석가모니에게는 이모이자 계모인 셈.[5] 다만 와타나베 쇼코의 <불타 석가모니>에는 이 이야기를 싯다르타와 야쇼다라 부부의 이야기가 아니라 싯다르타가 맞은 또 한 명의 아내인 고피카의 이야기라고 설명하고 있다.[6] 출처: 네이버 한국일생의례사전 불교화혼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