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안
楊大眼
(?~518년)
1. 개요
중국 남북조시대 북위의 명장.
2. 생애
고향은 무도(武都)로 저족(氐族)의 수령이었던 양난당(楊難當)의 자손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호랑이를 잡아죽일 정도로 용맹하고 달리기를 잘 하는 것으로 유명했지만, 집안의 장자가 아니라서 일족의 보살핌을 받지 못해 배고픔과 추위에 떨면서 살았다.
후에 효문제 탁발굉(拓跋宏)이 남정을 시도했는데, 탁발굉은 상서 이충에게 같이 출정할 장교를 선발하라고 했다. 기회는 이때다 싶은 양대안이 스스로 나서서 자신을 추천했다.
물론 이충이 본 적도 없는 양대안을 추천할 리는 없었고, 애가 탄 양대안은 스스로 재주를 보여주겠다 말하며 말이 달리는 것처럼 빨리 달리며 이충에게 재주를 인정받아서 등용받게 된다.
그리고 출정하기 전, 양대안은 그동안 같이 지내던 동료들에게 말했다.
여기서 비롯된 말이 '''교룡득수'''(蛟龍得水).'''"내가 쓰일 곳을 찾았으니, 이건 실로 교룡이 물을 만난 것과 같다. 이제부터 그대들과는 같은 대열에서 서 있지 않을 것이다."'''
이후 효문제 탁발굉을 따라 따라 완(宛), 섭(葉), 양(穰), 등(鄧), 구강(九江), 종리(鍾離) 등을 전전(轉戰)하였는데 용맹함이 따를 상대가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벼슬도 덩달아 높아져 직합장군, 보급장군, 유격장군, 정로장군, 동형주자사 등을 겸임하면서 만족의 수장 번수안의 반란을 진압하기도 한다.
이후 남조의 양무제 소연이 왕무선에게 수만명의 군사를 주어 보내자, 바로 가서 때려부수고 또다시 벼슬을 받았다.
이후 숙예 전투에서도 승리를 거두고 진격을 하던 찰나에, 507년 '''종리 전투'''에서 그만 대패를 당하고 만다. 사실 부하들 잘못이 컸지만 연좌제 때문에 양대안까지 벼슬이 깎였는데, 일반병으로 강등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양무제 소연이 다시 공격할까 두려워진 조정은 510년 양대안을 다시 등용하였고, 회수와 비수 방어를 위해 파견했으며, 당시 사람들은 양대안의 웅장한 모습을 보고 감탄하며 기뻐하였다고 한다. 이후 수차례 소연의 공격을 방어해냈다.
양대안은 병사들을 돌보면서 자신의 아들처럼 여겼고, 다치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더구나 전투에서는 항상 선두에 서서 싸웠다고 하니, 그 용맹이 너무나 대단해 당시 사람들은 '''그(양대안)의 용맹함과 과감함을 헤아리니, 모두 관우, 장비도 이를 넘지 못할 것이라 하였다.'''[1]
얼마나 무서웠으면 당시 어린이들이 "양대안이 온다!"라는 말만 들어도 울음을 그쳤다고 한다.
왕평, 석륵과 마찬가지로 글자는 모르는지라 책을 보고 싶으면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기억해야 했다. 나중에는 이해가 높아져 포고문 발령도 말로 요령있게 했지만 끝까지 문맹이었다고 한다.
양대안에겐 반씨라는 미인(이라고 기록돼있다.)에 총명하고 남자 못지 않게 담력있는 부인이 있었는데, 말을 잘 타는 지라 양대안을 만나러 전쟁터까지 오곤 했다. 그럼 양대안은 완전 무장을 시키고 부부가 같이 말을 타고 함께 전장을 누비기도 했다고 하는데, 부대로 돌아오면 부인을 가리키면서 장난스럽게 "반장군님!"이라고 하기까지도.
그런데 이 여자, 워낙 자유분방한 여인이었는지 나중에 바람을 피다 남편에게 걸려버리고, 화가 머리끝까지 난 양대안이 자결을 명령하자 반씨는 자살하였다.
또 본래는 병사들을 자식처럼 여기며 자주 위문하고, 다치면 눈물을 흘리며 슬퍼해줄 정도로 친절하고 관대했는데, 일반병으로 강등되었다 복귀한 회수-비수 전투 때쯤부터 성격이 잔인해져서 별다른 이유도 없이 병사들에게 채찍질을 가하는 일이 자주 있어 병사들이 그를 두려워하고 증오하게 되었다고 한다. 양대안을 알던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성격의 변화를 의아해 했다고 할 정도. 아내 반씨가 바람을 폈다 자결한게 그가 일반병으로 강등되었던 시기라고 하는데, 장군에서 일반병으로 강등이라는 굴욕에 아내까지 바람을 피니 심적 충격을 연달아 받아 성격이 변한 듯 싶다.
그러나 양대안을 알던 사람들은 변해버린 그의 모습을 보고도 오히려 화를 내기보다는 안타까워 했다고 한다.
양대안이 죽자 반씨 소생이던 그의 새 아들은 계모와 불화하여 모두 남쪽의 양나라로 망명했으나 이렇다 할 사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리고 양대안의 서자라고 자칭하던 양화는 양나라에서 꽤 공을 세웠으나, 후경의 난 때에 죽었고 이후 그의 후손에 대한 기록은 없다.
3. 창작물에서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고대무장으로 등장한다.[2] 통솔력이 비교적 높고 무력은 최강자급의 맹장형이다. 지력과 정치는 60대, 50대이며 매력도 무장치고 높다. 대체적으로 기마술에 능해서 기병적성이 높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90/무력 97/지력 70/정치력 59이고 특기로 돌진, 비사, 연사를 가지고 있다.
삼국지 10에서는 통솔력 90/무력 97/지력 68/정치력 55/매력 81으로 전작에 비해 지력과 정치력이 떨어졌지만 무장치고 낮지 않은 편이라 딱히 손해가 없다. 특기수는 14개에 그 중 일기토 특기는 기합 빼고 다 가지고 있다. 주호가 있어서 인맥을 맺기도 쉽다.
삼국지11에서는 통솔력 88/무력 98/지력 65/정치력 52/매력 79. 전작에 비해 무력을 제외하고 다른 능력치들이 너프를 먹었으나 여전히 강하다. 특기는 질주#s-2. 무력은 '''98'''로 비견되었다는 삼국지 무장인 관우보다 높고 장비와 똑같다. 또 다른 능력치들도 비교하자면 관우보다는 낮지만 장비보다는 '''월등하게''' 높다. 다른 질주(조창, 여령기, 관색) 보유자들의 단명크리 속성이 없다는 것도 특징. 오호상장에 결코 뒤지지 않는 S급 장수다. 관우, 장비에 비견되었던 것을 감안했는지 친애무장이 관우, 장비다.
[image]
삼국지조조전 Online에서는 무목악왕의 패라는 계보의 미등장 데이터로 남았다. 병과는 창병. 능력치는 무력 96, 지력 43, 통솔 81, 민첩 84, 행운 71.
[1] 當世推其驍果,皆以為關張弗之過也。위서 권73 양대안전 中[2] 그런데 양대안이 살고 있는 시대가 삼국지 이후의 남북조시대이다. 양대안이 삼국지 시리즈에서 고대무장으로 등장하지만 사실은 미래무장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