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휘상
Aktionsart(독일어) / Lexical aspect(영어) / 語彙相
어떤 용언(넓은 의미의 '동사')이 기본적으로 의미 속에 내재하고 있는 상(aspect)적 속성.
흔히 동사는 어떤 행동을 가리키고, 그 행동의 시간적 속성은 문법적 시제와 상을 통해서 표현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해당 동사의 의미적 속성에 의해서 특정 시간적 속성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러한 것들을 어휘상이라고 한다.
가령 '깨닫다'와 같은 동사의 경우 '깨닫는' 행위는 서서히 일어나는 작용이 아니기 때문에, 흔히 만화적 표현으로 백열전구에 불이 들어오는 것처럼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을 가리킬 수밖에 없다. '3시간 동안 깨달았다'와 같은 표현은 분명 잘 쓰이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깨닫다'라는 단어는 아무 문법적 표현 없이 '깨닫다'라고만 써도 그 행동이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것으로 사용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반면 '운동하다'의 경우 (체육적인 이해에 따라 다르긴 해도) 몇 분 이상은 지속해야 '운동하다'라고 여겨지는 만큼, '깨닫다'와는 다른 시간적 속성을 가질 것이다.
언뜻 보기엔 생소한 개념이지만 영어에서 현재진행형을 배우면서 "상태동사는 진행형이 불가능하다"와 같은 말은 익히 들어본 바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상태동사'라는 개념이 바로 어휘상의 일종이다. 영어를 배울 때에는 상태동사 이외의 것들은 주로 동작동사로 한데 묶어서 배우는데, 이 개념들을 좀 더 세분화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Telicity
이 때 상태동사는 사실 [+완성성]과 [-완성성] 중 어디에도 넣기 어려운 면이 있다. '닮다'와 같은 상태동사는 이 동사가 사용된 순간 이미 완성되어 지속되기 때문이다. 많은 형용사들이 넓은 의미의 동사에서 상태동사에 들어가는데, '예쁘다'의 경우 '예쁘다'라고 하면 '예쁨'이 완성되어있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의 [완성성]이란 '완성이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완성을 하는 것이 가능한가'의 여부를 따지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여담으로 서구에서 이 개념을 나타내는 'telicity'는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온 말로, 언어학이 정립되기 훨씬 이전부터 쓰였다. 철학 개념으로 쓰일 때에는 한자 문화권에서 주로 '목적론'으로 번역된다.
[+완성성]의 측면에서 의미가 비슷한 달성동사와 완성동사를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도착하다'(달성동사)와 '집을 짓다'(완성동사)는 모두 행위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도착한 상태', '집을 지은 상태'로 이동하는 것이지만 '도착하다'의 경우 순간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도착하기 직전의 상태는 '도착하지 않은'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도착하기 전의 상황을 '도착하고 있다'라고 말할 수 없다. 한편 '집을 짓다'는 집을 짓고 있는 중간 행위 역시 '집을 짓다'에 포함되기 때문에 '집이 다 지어진 상태' 이전의 상황을 '집을 짓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순간동사(semelfactive)는 [순간성]을 지니면서도 [완성성]을 지니지 않는다는 면에서 달성동사와 차별화된다. 이들 동사들은 '깜빡이다', '재채기하다', '노크하다' 등 동작의 시작과 끝을 파악할 수조차 없는 단발적인 행위들을 주로 포함한다. 이들 순간동사들은 짧고 단발적이라는 속성에 힘입어 반복적이기 쉽다는 특성을 가진다.
[-완성성, -순간성]인 것들 가운데 [지속성]을 좀 더 면밀하게 판단해서, '높다, 낮다'와 같이 조금 더 지속성이 확고한 형용사에 가까운 것들만 상태동사로 부류하고 '알다, 믿다'와 같이 지속성이 조금 더 낮은 것에 대해서는 '심리동사'라는 부류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언제나 지속되어 오랜 시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시간의 양을 드러내는 문법 상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진행]상의 경우 상태동사는 애초에 진행되고 있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의미 중복으로 사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현재와 단절되는 [완료]상은 더더욱 쓰이기 어렵다. 영어에서도 현재완료형 가운데 유일하게 완결상이 아닌 [지속]([계속])의 용법일 때에 한해서만 상태동사를 현재완료형으로 사용할 수 있다.
동사에 내재된 속성을 크게 세 가지의 기준으로 나누어, 현 시점에서는 동작(active), 상태(state), 달성(achivement), 완성(accomplishment), 순간(semelfactive) 다섯 개의 어휘상을 상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semelfactive'는 비교적 최근인 Comrie(1976)에서 새로 부각된 어휘상이다. 그 전까지 순간동사는 주로 달성동사와 같은 범주로 묶였다.
이 다섯 부류에 대한 일례는 다음과 같다. 이것은 한국어를 기준으로 한 것으로, 언어에 따라서 약간씩 어휘상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음에 유의. 앞서 슬쩍 말한 것처럼 형용사는 대체로 상태동사에 들어간다.
어휘상은 일종의 상이기 때문에 동일한 기능을 하는 문법적 상과 결합하였을 때, 같은 문법 형태여도 의미가 다르게 나타나는 모습을 보인다. 국어에서 나타나는 문법적 상의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가령 '운동하다'의 경우 동작동사이므로 '운동했어'와 같이 '-었-'을 사용하면 '운동하다'의 행위가 끝난 완료상을 나타내어 지금은 운동하지 않는 상황을 가리킨다. 하지만 '알다'의 경우 상태동사이므로 '알았어'라고 '-었-'을 사용한다 해도 [-완성성]인 '알다'가 '완료'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알게 되었고 지금도 아는 상태가 지속된다'라는 지속상의 의미를 나타내게 된다. 이처럼 어휘상과 '-었-'과의 결합에 대해서는 근래에 김천학(2017), "어휘상 유형에 따른 ‘-었-’의 결합 양상 고찰"에서도 다룬 바가 있다.
영어 현재완료형 역시 상을 다루는 어형이기 때문에 어휘상에 따른 의미 분화가 나타난다.
한국어에서 '젊다'와 '늙다'는 반대어 관계에 있지만 어휘상이 서로 다르다. 상태동사 '젊다'는 그냥 써도 '(지금) 젊다'이지만 동작동사 '늙다'는 '늙었다'라고 써야 '(지금) 늙었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한국어의 '찾다'는 두 가지의 어휘상을 가진 것이 특이하다. [끝끝내 물건을 발견해냄]이라는 완성동사도 되고, [물건을 발견하려고 함]이라는 동작동사도 된다. 이러한 의미는 과거형 '-었-'을 붙였을 때 극대화되는데 '찾았다'라는 말은 [발견해냈다]라는 뜻도 되고 [과거에 발견하려고 시도하였음]이라는 뜻도 된다. 그래서 부사 없이 '찾았다'라고 쓰면 결국 발견했다는 건지 못했다는 건지 알 수가 없게 된다.
'깨닫다'와 같은 동사처럼 동사의 발생 양상의 근본적인 이유로 언어에 따라 어휘상이 같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언어에 따라 어휘상이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예컨대 '누군가를 좋아한다'라는 상황에 대해서도 어떤 언어에서는 '좋아하는 감정에 빠진 상태'를 한 동사로 표현할 수 있는 반면, 다른 언어에서는 '좋아하는 동작'을 동사로 표현할 수도 있다. 영어의 'like'와 한국어의 '좋아하다'가 이에 해당한다. 영어의 'like'는 상태동사로 진행상을 보여줄 수 없지만, 한국어의 '좋아하다'는 동작동사로 진행상이 가능하다.
상태동사는 형용사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으므로, 같은 의미의 단어에 대해서 어떤 언어에서는 동사, 어떤 언어에서는 형용사로 나타날 경우 이 역시 언어에 따른 어휘상의 차이로 볼 수 있다. 가령 한국어의 '배고프다'는 형용사이므로 상태동사이지만, 일본어의 お腹空く는 '배가 비다'라는 뜻으로 동작동사이다. 따라서 한국어에서는 '배가 고프다'라고 따로 시제나 상을 붙이지 않아도 '지금 배가 고픈 상황'을 의미하지만, 일본어에서는 'お腹空いた/空いてる'와 같은 [완료] 혹은 [지속]상의 문법 표현을 덧붙여야지만 '지금 배가 고픈 상황'을 의미하게 된다. 이는 한국어에서 '젊다'는 상태동사라서 그 자체로 [젊음]이라는 [상태]를 나타내는 한편 '늙다'는 동작동사라서 '늙었다'라고 [완료]의 '-었-'을 결합시켜야지만 [늙음]이라는 [상태]를 나타내는 것과 양상이 비슷하다.
1. 개요
어떤 용언(넓은 의미의 '동사')이 기본적으로 의미 속에 내재하고 있는 상(aspect)적 속성.
흔히 동사는 어떤 행동을 가리키고, 그 행동의 시간적 속성은 문법적 시제와 상을 통해서 표현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해당 동사의 의미적 속성에 의해서 특정 시간적 속성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러한 것들을 어휘상이라고 한다.
가령 '깨닫다'와 같은 동사의 경우 '깨닫는' 행위는 서서히 일어나는 작용이 아니기 때문에, 흔히 만화적 표현으로 백열전구에 불이 들어오는 것처럼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을 가리킬 수밖에 없다. '3시간 동안 깨달았다'와 같은 표현은 분명 잘 쓰이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깨닫다'라는 단어는 아무 문법적 표현 없이 '깨닫다'라고만 써도 그 행동이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것으로 사용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반면 '운동하다'의 경우 (체육적인 이해에 따라 다르긴 해도) 몇 분 이상은 지속해야 '운동하다'라고 여겨지는 만큼, '깨닫다'와는 다른 시간적 속성을 가질 것이다.
언뜻 보기엔 생소한 개념이지만 영어에서 현재진행형을 배우면서 "상태동사는 진행형이 불가능하다"와 같은 말은 익히 들어본 바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상태동사'라는 개념이 바로 어휘상의 일종이다. 영어를 배울 때에는 상태동사 이외의 것들은 주로 동작동사로 한데 묶어서 배우는데, 이 개념들을 좀 더 세분화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2. 분류 기준
2.1. 완성성 (완성가능성)
Telicity
- [+완성성](telic): 달성동사, 완성동사
- [-완성성](atelic): 상태동사, 동작동사, 순간동사
이 때 상태동사는 사실 [+완성성]과 [-완성성] 중 어디에도 넣기 어려운 면이 있다. '닮다'와 같은 상태동사는 이 동사가 사용된 순간 이미 완성되어 지속되기 때문이다. 많은 형용사들이 넓은 의미의 동사에서 상태동사에 들어가는데, '예쁘다'의 경우 '예쁘다'라고 하면 '예쁨'이 완성되어있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의 [완성성]이란 '완성이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완성을 하는 것이 가능한가'의 여부를 따지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여담으로 서구에서 이 개념을 나타내는 'telicity'는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온 말로, 언어학이 정립되기 훨씬 이전부터 쓰였다. 철학 개념으로 쓰일 때에는 한자 문화권에서 주로 '목적론'으로 번역된다.
2.2. 순간성
- [+순간성]: 달성동사, 순간동사
- [-순간성]: 동작동사, 상태동사, 완성동사
[+완성성]의 측면에서 의미가 비슷한 달성동사와 완성동사를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도착하다'(달성동사)와 '집을 짓다'(완성동사)는 모두 행위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도착한 상태', '집을 지은 상태'로 이동하는 것이지만 '도착하다'의 경우 순간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도착하기 직전의 상태는 '도착하지 않은'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도착하기 전의 상황을 '도착하고 있다'라고 말할 수 없다. 한편 '집을 짓다'는 집을 짓고 있는 중간 행위 역시 '집을 짓다'에 포함되기 때문에 '집이 다 지어진 상태' 이전의 상황을 '집을 짓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순간동사(semelfactive)는 [순간성]을 지니면서도 [완성성]을 지니지 않는다는 면에서 달성동사와 차별화된다. 이들 동사들은 '깜빡이다', '재채기하다', '노크하다' 등 동작의 시작과 끝을 파악할 수조차 없는 단발적인 행위들을 주로 포함한다. 이들 순간동사들은 짧고 단발적이라는 속성에 힘입어 반복적이기 쉽다는 특성을 가진다.
2.3. (항상) 지속성
- [+지속성]: 상태동사
- [-지속성]: 동작동사, 달성동사, 완성동사, 순간동사
[-완성성, -순간성]인 것들 가운데 [지속성]을 좀 더 면밀하게 판단해서, '높다, 낮다'와 같이 조금 더 지속성이 확고한 형용사에 가까운 것들만 상태동사로 부류하고 '알다, 믿다'와 같이 지속성이 조금 더 낮은 것에 대해서는 '심리동사'라는 부류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언제나 지속되어 오랜 시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시간의 양을 드러내는 문법 상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진행]상의 경우 상태동사는 애초에 진행되고 있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의미 중복으로 사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현재와 단절되는 [완료]상은 더더욱 쓰이기 어렵다. 영어에서도 현재완료형 가운데 유일하게 완결상이 아닌 [지속]([계속])의 용법일 때에 한해서만 상태동사를 현재완료형으로 사용할 수 있다.
3. 5가지 어휘상
동사에 내재된 속성을 크게 세 가지의 기준으로 나누어, 현 시점에서는 동작(active), 상태(state), 달성(achivement), 완성(accomplishment), 순간(semelfactive) 다섯 개의 어휘상을 상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semelfactive'는 비교적 최근인 Comrie(1976)에서 새로 부각된 어휘상이다. 그 전까지 순간동사는 주로 달성동사와 같은 범주로 묶였다.
이 다섯 부류에 대한 일례는 다음과 같다. 이것은 한국어를 기준으로 한 것으로, 언어에 따라서 약간씩 어휘상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음에 유의. 앞서 슬쩍 말한 것처럼 형용사는 대체로 상태동사에 들어간다.
- 동작동사: '걷다'와 같이 끝 점이 정해지지 않은(완성이 정해지지 않은 = [-완성성]) 동사.
<[-지속성, -순간성, -완성성]>
- 상태동사: '알다', '닮다'와 같이 한 번 시작하면 반영구적으로 계속되는([+지속성]) 동사.
<[+지속성, -순간성, -완성성]>
- 달성동사: 동사의 끝점이 정해져 있으나([+완성성]), '깨닫다', '눈치채다', '도착하다'와 같이 예비동작 없이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동사. 완성동사와 구분하기 어려운데 [진행]을 나타내는 '-고 있다'가 가능한지를 살펴보면 된다. 가령 산 꼭대기에 이르면 '산 정상에 도착했다'이지만, 그 순간 바로 직전까지는 '도착하지 않은' 상태이므로 '도착하고 있다'와 같은 표현은 불가능하다.
<[-지속성, +순간성, +완성성]>
- 완성동사: 동사의 끝점이 정해져 있고([+완성성]) '집을 짓다'와 같이 특정한 기간을 가지고 이루어지는 동사. [순간성]의 속성이 없으므로
진행형을 사용할 수 있다. '집을 짓다'의 중간 단계인 상태에도 '집을 짓고 있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지속성, -순간성, +완성성]>
<[-지속성, -순간성, +완성성]>
- 순간동사: '노크하다', '깜빡이다'와 같이, 달성동사처럼 순간적으로 이루어지기는 하나 이후의 현상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동사.
<[-지속성, +순간성, -완성성]>
동사에 부착되는 논항에 따라서 어휘상이 달라질 수 있음에도 유의해야 한다. '걷다'의 경우 'A가 산책길을 걷다' 식으로 걷는 위치만을 나타낼 경우에는 동작동사이다. 하지만 'A가 10km를 걷다'와 같이 '10km를'이라는 끝점을 제시할 경우에는 [+완성성]으로 되어 완성동사가 된다. 이 때의 특정 의미를 강요하는 부사어를 같이 썼을 때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가령 (현재로부터 완료 시간이 얼마 되지 않은) [완료]의 의미를 나타내는 '다'와 같은 부사를 사용해보면, '10km를 다 걸었다'는 가능하지만 '산책길을 다 걸었다'라는 것은 다소 어색하다. 4. 문법적 상과의 관계
어휘상은 일종의 상이기 때문에 동일한 기능을 하는 문법적 상과 결합하였을 때, 같은 문법 형태여도 의미가 다르게 나타나는 모습을 보인다. 국어에서 나타나는 문법적 상의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가령 '운동하다'의 경우 동작동사이므로 '운동했어'와 같이 '-었-'을 사용하면 '운동하다'의 행위가 끝난 완료상을 나타내어 지금은 운동하지 않는 상황을 가리킨다. 하지만 '알다'의 경우 상태동사이므로 '알았어'라고 '-었-'을 사용한다 해도 [-완성성]인 '알다'가 '완료'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알게 되었고 지금도 아는 상태가 지속된다'라는 지속상의 의미를 나타내게 된다. 이처럼 어휘상과 '-었-'과의 결합에 대해서는 근래에 김천학(2017), "어휘상 유형에 따른 ‘-었-’의 결합 양상 고찰"에서도 다룬 바가 있다.
영어 현재완료형 역시 상을 다루는 어형이기 때문에 어휘상에 따른 의미 분화가 나타난다.
5. 한국어 어휘 가운데 특이한 어휘상
한국어에서 '젊다'와 '늙다'는 반대어 관계에 있지만 어휘상이 서로 다르다. 상태동사 '젊다'는 그냥 써도 '(지금) 젊다'이지만 동작동사 '늙다'는 '늙었다'라고 써야 '(지금) 늙었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한국어의 '찾다'는 두 가지의 어휘상을 가진 것이 특이하다. [끝끝내 물건을 발견해냄]이라는 완성동사도 되고, [물건을 발견하려고 함]이라는 동작동사도 된다. 이러한 의미는 과거형 '-었-'을 붙였을 때 극대화되는데 '찾았다'라는 말은 [발견해냈다]라는 뜻도 되고 [과거에 발견하려고 시도하였음]이라는 뜻도 된다. 그래서 부사 없이 '찾았다'라고 쓰면 결국 발견했다는 건지 못했다는 건지 알 수가 없게 된다.
- 부모가 아이를 애타게 찾았습니다. (못 찾아냈다)
- 부모가 아이를 끝끝내 찾았습니다. (찾아냈다)
6. 언어에 따른 어휘상의 차이
'깨닫다'와 같은 동사처럼 동사의 발생 양상의 근본적인 이유로 언어에 따라 어휘상이 같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언어에 따라 어휘상이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예컨대 '누군가를 좋아한다'라는 상황에 대해서도 어떤 언어에서는 '좋아하는 감정에 빠진 상태'를 한 동사로 표현할 수 있는 반면, 다른 언어에서는 '좋아하는 동작'을 동사로 표현할 수도 있다. 영어의 'like'와 한국어의 '좋아하다'가 이에 해당한다. 영어의 'like'는 상태동사로 진행상을 보여줄 수 없지만, 한국어의 '좋아하다'는 동작동사로 진행상이 가능하다.
상태동사는 형용사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으므로, 같은 의미의 단어에 대해서 어떤 언어에서는 동사, 어떤 언어에서는 형용사로 나타날 경우 이 역시 언어에 따른 어휘상의 차이로 볼 수 있다. 가령 한국어의 '배고프다'는 형용사이므로 상태동사이지만, 일본어의 お腹空く는 '배가 비다'라는 뜻으로 동작동사이다. 따라서 한국어에서는 '배가 고프다'라고 따로 시제나 상을 붙이지 않아도 '지금 배가 고픈 상황'을 의미하지만, 일본어에서는 'お腹空いた/空いてる'와 같은 [완료] 혹은 [지속]상의 문법 표현을 덧붙여야지만 '지금 배가 고픈 상황'을 의미하게 된다. 이는 한국어에서 '젊다'는 상태동사라서 그 자체로 [젊음]이라는 [상태]를 나타내는 한편 '늙다'는 동작동사라서 '늙었다'라고 [완료]의 '-었-'을 결합시켜야지만 [늙음]이라는 [상태]를 나타내는 것과 양상이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