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아귈라드 재판
1. 개요
Edwards v. Aguillard
1986년 12월 10일 부터 1987년 6월 19일까지 진행된 재판이다.
'''미국 연방 대법원에서 창조설은 과학 이론이 아님을 결정한''' 판례이며, 이 판례로 미국의 공립학교에서 '''창조설을 가르치는 것이 금지되었다.'''
2. 아귈라드의 소송
재판의 계기가 된 것은 바로 루이지애나 주(州)법으로, 재판 이전까지 루이지애나 주에서는 창조설과 진화론은 공립학교에서 '동등하게 교육할 기회를 제공하도록' 되어 있었다.(동등기회법) 이에 대해 루이지애나 주 라파이예트의 고등학교 생물 교사였던 도날드 아귈라드(Donald Aguillard)는 해당 법 조항이 미국 수정 헌법 1조인 '종교 설립에 대한 규정'에 위반됨을 주장하였고, 당시 루이지애나 주지사인 에드워드를 상대로 지방 법원에 소송을 걸었다.
지방 법원의 듀플랜티에 판사는 창조설이 수정 헌법 조항에 위배된다고 판결하였고, 루이지애나 주에서는 항소를 걸었으나 상소된 순회 항소 법원에서도 역시 위헌 판결이 나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해당 법률이 연방 대법원에서 심리할 필요성이 생겼고, 결국 해당 소송은 연방대법원에서 결정나게 되었다.
연방 대법원에서의 심리에서 진화론 측의 대표자는 제이 톱키스와 ACLU[1] , 창조설 측에서는 예일대 출신의 저명한 창조설자인 웬델 버드가 대표를 맡았다.
처음에 진화론측 대표인 톱키스는 창조설이 과학 이론이 아닌 종교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법원장인 윌리엄 렌키스트와 대법관 안토닌 스칼리아[2] 는 종교적인 의도 없이도 창조설을 주장할 수 있다고 보았고, 창조설자가 주장하는 '균등한 교육 시간의 할당'에 창조설의 종교적인 의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는 사실상 창조설자들의 주장을 편들어 준 것과 같았다.
3. 과학계의 반격
재판이 창조설에게 유리하게 진행되자, 진화론 측에서는 '''비상이 걸렸다.''' 당시 진화론 측의 주요 증인으로 참석했던 스티븐 제이 굴드는 ACLU의 잭 노빅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완전히 당했다. 옛날에 창조설자들이 당한 것 마냥 조롱을 당하고 말았다. 저 머저리들이 우리보다 더 변론을 잘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라고 썼을 정도였다. 따라서 진화론 측에선 변론의 방향을 돌리기로 했다. 창조설의 종교적 동기의 유무가 아니라 창조설의 과학적인 내용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증명이었다.
이를 위해 중도에 재판에 참가한 제프리 레먼 변호사가 기초를 잡고, 기타 과학자들이 의견을 보충한 법정 조언자 의견서가 제출되어 있었다. 이 의견서에는 '''72명의 노벨상 수상자, 17개 주 과학 협회, 그 밖에 7개 과학 단체 소속의 과학자들'''이 명단에 올라와 있었다. 의견서 자체는 1986년 3월에 작성하기 시작하여 8월 16일에 이미 제출하였다. 하지만 스티븐 제이 굴드를 비롯한 진화론 측 인사들은 의견서 보다는 창조설의 종교적 의도를 지적하는 한 구두 변론에 더 열중하고 있었고, 창조설자들에게 변론에서 밀리자 의견서의 내용으로 밀고 나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 의견서에서 과학자들은 과학과 과학적 방법을 정의하고, 시험 불가능하며 초자연적인 설명이 과학에 속하지 않음을 증명했다. 그리고 창조설은 이러한 과학적 탐구 및 방법을 적용하지 않으며, 루이지애나의 '동등기회법'은 다른 과학 이론과 달리 진화론 만을 공격하므로 일관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는 특정 종교를 옹호하는 목적을 수행한다고 주장했다.
재판의 진행 추이를 보고 경악한 모든 과학자들이 모여서 일관된 의견을 주장했다는 것은 과학사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과학자 공동체(그리고 과학자 개인들)은 일반적으로 매우 독립적인 성향을 지녔으며 서로 논쟁을 통해 접촉하는 경우가 잦은데, 이런 이들이 한데 모여서 한 목소리를 냈다는 것이다. 과학자 자신들도 과학이 뭔지 물어보면 잘 대답하지 못했던 경우가 잦았지만[3] 이런 조금 이상한 동기 덕에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축적되는 지식 체계로서의 과학을 정의하는 움직임도 활기를 찾게 되었다. 그렇게 과학자들이 집결해 대항한 이유는 다름아니라, 창조설이 진화론뿐 아니라 과학 전체를 무너뜨리려고 시도했던 탓에 과학자들 자신이 공격받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열역학 제2법칙을 들먹이며 정신나간 시도를 했던 것이나 뉴턴 드립 쳤던 것 등을 떠올려 보자. 물리학자나 화학자들에게는 충분한 모욕으로 보였을 것이다.
4. 창조설자들의 반응
의견서의 내용이 공개되자 창조설자들은 '진화론이 무너질 위기에 처해서 허장성세를 부린다'고 주장하며 과학계가 '겁에 질렸다'고 선전했다. 물론 이전까지 계속해 오던 망언 또한 등장했다. 헨리 모리스는 "노벨상 수상자라고 해서 진화론/창조설 문제를 더 잘 알고 있는건 아니다.", "과학자의 자격이 있는 사람 중 창조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수천명이나 있다."는 발언을 했으며, 익명의 창조설자는 진화론 측의 머레이 겔만에게 "예수님에게 구원해 달라고 요청하라. 열역학 2법칙은 진화가 불가능함을 증명한다.[4] 왜 창조설의 진리를 두려워 하는가?"는 편지를 보낼 정도였다. '''그러나...'''
5. 과학자들의 승소
1987년 6월 19일에 판결이 내려졌다. 표결은 7:2로 진화론 측의 승리였다. 판결문에서는 루이지애나 주의 '동등기회법'이 종교적 목적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으며, 이는 수정헌법의 종교에 대한 규정을 위반했으므로 무효라는 결정을 내렸다. 안토닌 스칼리아와 윌리엄 렌키스트는 "순수하게 비종교적인 목적으로 진화론에 대한 비판을 가할 수는 있다."며 법령이 합헌이라는 소수 의견을 냈으나 전체적인 판결의 방향을 바꾸진 못하였다.
이 판결의 결과로 창조설은 분명히 종교적 의도를 가진 주장이며, 이를 진화론과 함께 가르치려는 시도 또한 종교적 의도에 기반한 것이라는 판례가 등장함으로서 창조설은 공식적인 위치에서 완전히 쫓겨나게 되었다.
그러나 공립학교에서 쫓겨난 것이지, 창조설을 신봉하는 무리들은 홈스쿨링 등지로 기어들어가 암암리에 창조설을 자녀에게 가르치고 있다.
6. 관련항목
- 스콥스 재판 - 진화론과 창조설이 최초로 맞붙은 재판.
[1] 미국 시민자유 연합. 진보 세력의 의견을 주장하는 시민단체이다. 진화론과 창조설이 처음으로 충돌한 스코프스 재판에서 존 스콥스와 함께 진화론을 변호한 단체이기도 하다.[2] 미국 연방 대법관 중에서 가장 보수적이면서도 가장 유능한 판사로 꼽힌다. 금태섭 변호사는 저서인 디케의 눈에서 스칼리아를 가리켜 미국 법조계의 최종보스로 지칭할 정도. 1986년 12월은 렌키스트가 막 대법관에서 대법원장으로 막 승진하고 그 자리를 스칼리아가 채운 참이었다. 2016년에 사망했다.[3] 과학을 정의하는 것은 오랜 세월 논의되었고, 과학철학도 거기서 나왔다.[4] 이 논리대로라면 열역학 제2법칙은 영생이 불가능함을 증명한다. 게다가 사실 이는 완전히 틀린 주장이다.해당 내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