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노벨상
The Nobel Pri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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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1]
상금
1,000만 SEK
114만 달러[2]
(2020년 기준)
설립
1895년 스웨덴
시상 분야
노벨물리학상
노벨화학상
노벨문학상
노벨경제학상
노벨생리학·의학상
노벨평화상
링크

1. 개요
2. 탄생 배경
3. 시상 분야
4. 수상자
5. 시상 장소 및 시간
6. 세계각국의 노벨상 수상 현황
6.1. 1위 [image] 미국
6.2. 2위 [image] 영국
6.3. 3위 [image] 독일
6.6. 6위 [image] 일본
6.10. 23위 [image] 중국
6.11.1. 한국인의 수상 가능성
6.11.1.1. 문학상
6.11.1.2. 과학상
6.11.1.3. 경제학상
6.12. 기타 국가
7. 기록
8. 논란
9. 상금
10. 기타
11. 관련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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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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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유산에서 발생하는) 이자는 다섯 등분하여 물리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나 발명을 한 사람, 화학 분야에서 중요한 발견이나 개발을 한 사람, 생리학 또는 의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을 한 사람, 문학 분야에서 이상주의적인 가장 뛰어난 작품을 쓴 사람, 국가간의 우호와 군대의 폐지 또는 삭감과 평화 회의의 개최 혹은 추진을 위해 가장 헌신한 사람에게 준다.

알프레드 노벨유언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물리학, 화학, 경제학), 스웨덴 아카데미[4](문학), 카롤린스카 의학연구소(생리학/의학), 노르웨이 노벨위원회(평화)에서 매년 인류의 문명 발달에 기여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이다.[5]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으로 만들어졌다.

2. 탄생 배경


1888년 노벨의 형 루드비그 노벨(Ludvig Emmanuel Nobel/Лю́двиг Эммануи́лович Нобе́ль)[6]이 사망했을 때 한 신문에서 실수로 알프레드 노벨이 사망했다고 기사를 실었는데, 그 기사에 노벨을 '죽음의 상인'이라 지칭했다. 안 그래도 다이너마이트가 군사적으로 이용되는 걸 싫어했던 알프레드 노벨[7]은 후에 유언으로 유산의 94%(약 440만 달러[8])를 기부, 노벨상을 설립하게 되었다.
어마어마한 알프레드 노벨의 재산을 대부분 기부하려하자 친척들[9]이 죽기살기로 반대하며 서로 먹으려고 발악했다. 게다가 노벨은 유언장에서 국적에 상관없이 이 상을 줄 것을 당부했는데, 이것 때문에 세기말국수주의에 휩싸여있던 스웨덴 내 여론과 스웨덴 국왕까지도 노벨을 비난했다고 한다. 게다가 평화상 수상을 당시 스웨덴 식민지노르웨이에 넘겼으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유언 집행인 랑나르 솔만(Ragnar Sohlman,1870~1948)의 결단으로 노벨의 재산은 안전한 유가증권으로 남게 되었다. 지금의 노벨상의 위상을 봤을 때 훈훈하게 탄생했을 것 같은 상이지만 실제로는 우여곡절 끝에 탄생된 상이다. 솔만은 상을 제정하며 가진 인터뷰에서 '욕을 그리 많이 먹어보는 것도 재미있더군요'라며 노벨의 친척들이 벌인 온갖 방해공작이나 욕설, 명예훼손을 비아냥거렸다고 한다.
노벨경제학상의 경우 1968년, 즉 노벨상이 제정되고 난 뒤로도 한참 후에, 노벨의 유언과는 상관없이 따로 생긴 상이다. 노벨 경제학상은 노벨재단에서 수상하는 상이 아니므로 노벨 재단에서 상금을 주지는 않는다. 스웨덴 중앙은행 설립 300주년을 기념해 제정한 상으로서, 상의 정식 명칭은 '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하는 경제학 분야의 스웨덴 중앙은행상'(The Sveriges Riksbank Prize in Economic Sciences in Memory of Alfred Nobel)이다. 노벨의 유언에 의해 제정된 나머지 5개 분야 노벨상은 정식 명칭은 Nobel Prize[10]로 시작되는 데 반해, 노벨 경제학상은 The Sveriges Riksbank Prize로 시작된다.
즉, 노벨경제학상은 사실 진짜 노벨상은 아니고 노벨 기념상이다. 하지만 경제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스웨덴 왕립 아카데미는 물리학상, 화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곳이며, 수상식에 다른 분야의 수상자들과 함께 참석하고 상금 또한 동일하다. 스웨덴에서 달리 할 이유가 없기 때문.[11]
시상 초기에는 지금처럼 권위있게 여겨지지 않았다고 하지만, 곧 세계적인 명성을 갖춘 상이 되었다. 상의 수준을 높여가려는 지속적인 노력이 지금의 노벨상을 있게 했다.

3. 시상 분야



노벨상의 시상 분야는 '물리학', '화학', '생리학 또는 의학', '문학', '평화', '경제학'이다. 다만, 노벨 경제학상은 스웨덴중앙은행상이다. 상의 영문 정식 명칭도 다른 분야 노벨상이 Nobel Prize로 표기되는 데 반해, 노벨 경제학상은 The Sveriges Riksbank Prize로 표기된다.
'생리학 또는 의학' 분야에 시상되는 노벨상의 정식 명칭은 Nobel Prize in Physiology or Medicine인데[12], 이에 대한 한국어 번역은 <노벨 생리학 또는 의학상>, <노벨 생리학 및 의학상>, <노벨 생리학·의학상>, <노벨 생리의학상>, <노벨 의학상> 등 각양각색이다. 이 많은 용어 중에서 과거 우리 언론에선 노벨 의학상이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하였다. 그 때문인지 의학뿐만 아니라 생리학도 이 상의 시상 분야라는 사실을 아는 일반인들은 드물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생리학은 사전적 의미의 생리학뿐만 아니라, 노벨이 유언을 남길 당시의 시대적 이유로 인하여 사실상 생물학의 여러 분야를 통칭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어서[13], 이 상은 사실상 노벨 생물학·의학처럼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 역시 일반인들은 잘 모른다. 한편 최근 언론에서는 노벨 의학상이라는 용어보다는 노벨 생리의학상이라는 용어를 주로 쓰는 편인데, 이 용어 역시 일반인들로서는 "<생리의학>이라는 의학 분야가 있나보다. 그리고 그 분야에 대한 상인가보다."라고 생각할 수 있어, 이 상의 시상 분야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도와줄 수 있는 번역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수학상은 없는데 이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노벨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예스타 미타그레플레르라는 수학자가 노벨 수학상을 받는 꼴을 보기 싫었기 때문이라는 설[14], 미타그레플레르와 사이가 나쁜 건 아니었는데 그가 워낙 수학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보니 수상의 공정성이 떨어질까봐 제외했다는 설, 흠모했던 여인이 수학자를 선택하는 바람에 사랑이 쫑나서라는 설 등. 근데 다 별 근거는 없는 이야기다(관련 반론). 가장 신빙성 있는 설은 공학도 출신 실업가였던 노벨이 수학은 실용학문이 아니라서 노벨상의 취지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만들지 않았고 이에 분노한 수학자들이 앞에서 언급된 소문들을 꾸며냈다는 해석도 있다. 한편 수학과 관련된 상은 필즈상아벨상이 존재하는데, 이 상의 권위는 노벨상에 준할 정도로 높다.
자연과학의 5가지 분야(물리학/화학/생물학/지구과학/천문학) 중 물리학과 화학을 제외한 나머지 분야와 노벨상의 관계를 살펴보면, 우선 생물학은 노벨 생리학·의학상에서 말하는 생리학이 사실상 생물학의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15] 시상 분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생태학의 경우는 생물학의 한 분야이기는 하나, 생리학에는 포함된다고 보기는 어려워, 생태학 연구로는 노벨상을 받을 가능성이 적다. 하지만 넓은 의미의 생태학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는 동물행동학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한 사례가 있다. 즉, 꿀벌의 춤을 연구한 카를 폰 프리슈와 거위오리의 각인[16]을 밝혀낸 콘라트 로렌츠, 리차드 도킨스의 스승인 조류학자 겸 동물행동학자 니콜라스 틴베르헌 등이 1973년에 동물행동학에 대한 연구로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한 바가 있다. 그리고 식물학의 경우엔, 먼저 리하르트 마르틴 빌슈테터가 엽록소를 비롯한 식물 색소의 연구로 1915년 노벨화학상을 수상, 한스 피셔도 엽록소 연구로 1930년에 노벨화학상을 수상했고 1947년엔 로버트 로빈슨 경이 알칼로이드 연구로 역시 노벨화학상 수상, 옥수수 유전학에 대한 독보적 존재인 여성 생물학자 바버라 매클린톡이 1983년도에 '이동성 유전 요소의 발견'에 관한 식물유전학 연구로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했다.
또한 천문학은 물리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천문학 분야의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은 물리학상을 수상할 가능성이 있으며 2019년을 비롯하여 이미 수상한 사례가 존재한다. 또한 천체물리학은 물리학의 한 분야이지만, 천문학의 한 분야이기도 하므로, 천체물리학 관련 업적으로 인한 노벨 물리학상 수상은 천문학 분야의 업적으로 수상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반면 지구과학(지질학, 기상학, 해양학)은 노벨상의 시상 분야에서 빠져 있다. 더욱이 지구과학 분야는 수학의 필즈상이나 아벨상처럼 노벨상과 동급의 권위를 가진 상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지구과학이 노벨상 시상 분야에서 빠져 있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 특히 지질학은 지구과학의 근본 학문으로서 물리학, 화학, 생물학 & 의학 등에 비해 결코 중요성이 떨어지지 않는 분야이기에 권위있는 상을 신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다만, 지질학의 세부 분야인 지구물리학, 지구화학 그리고 기상학의 세부 분야인 대기역학, 대기화학, 해양학의 세부 분야인 해양물리학 분야의 업적으로 물리학상이나 화학상을 수상할 가능성은 있다. 다만 지구온난화•환경에 관련된 인물이 평화상을 받은 전례가 있는 만큼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과학분야의 경우 초창기에는 실용과학에 더 비중을 두었다. 특히 노벨물리학상은 초창기엔 실험물리학자나 발명가가 수상했으며 1918년 막스 플랑크가 양자론으로 상을 받기까지 이론물리학은 찬밥신세였다. 현대에 들어서도 청색 LED를 발명한 팀이 물리학상을 수상하고 각종 현미경이나 리튬이온전지 등을 발명한 팀이 화학상을 수상하는 등 발명 분야에서 완전히 손을 떼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것은 노벨의 유언과 관련이 있다. 노벨은 물리학상은 물리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나 발명을 한 사람에게 수여하라고 유언하였기 때문에, 발명도 중요하게 취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벨상의 시상 분야들은 노벨이 생전에 몸담았던 분야와 직, 간접적으로 관계가 있다. 폭약을 합성, 제조하는 과정은 화학이, 폭발의 반응 에너지를 연구하는 것에서 물리학이, 그가 제조했었던 폭약인 니트로글리세린이 약으로써 사용된다는 점에서 생리 의학이, 노벨이 말년에 평화를 바라며 문학 저술 활동을 했다는 점에서 문학과 평화상이 관련되어 있고, 후대에 새로 제창된 분야이긴 하지만 노벨 역시 성공한 사업가였다는 점에서 경제학상도 연관이 있다고 보는 여지도 있으나, 경제학과 경영학은 다른 학문이고 상의 정식 명칭이 스웨덴 중앙은행상이므로 노벨과의 연관성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4. 수상자


국적은 일체 불문하고 가장 적합한 수상자를 선정한다. 한 상에 대해서 최대 3명에게 수상하고,[17] 생존자만이 수상할 수 있다. 노벨상의 수상 가능성이 있었으나 받지 못한 채 사망한 대표적인 사례는 주기율표를 만드는 데 큰 공로를 한 드미트리 멘델레예프, 제1차 세계 대전 갈리폴리 전투에서 사망한 헨리 귄 제프리스 모즐리, 한국 관계자로는 이휘소 박사가 있다. 예외로는 1961년 콩고 내전을 중재하러 가던 도중에 북로디지아(현재 잠비아)에서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고, 같은 해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제2대 UN 사무총장 다그 함마르셸드가 있다.
예외적으로 사후 수상한 사례가 있는데 2011년 노벨 생리학·의학상 수상자 가운데 한 명인 랠프 스타인먼 박사가 수상자 발표 3일 전에 사망한 걸 노벨위원회가 알지 못하고 명단에 올리는 바람에 문제가 생겼으나 수상자 목록은 그대로 유지시키기로 했다. 이유는 수상자 명단에 올리고 내리고 하는 기준은 심사위원회가 수상자가 사망했음을 확인한 것이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즉, 심사가 끝나고 수상자가 결정된 이후 사망 확인은 수상자 변동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는 판단.#
또한 수상자로 결정되고 나서 시상식까지 수상자가 사망한다고 해서 무효처리되진 않지만, 1년 이내에 상을 받지 않으면 수상을 거절한 걸로 간주한다고 한다. 그리고 수상자는 6개월 이내에 수락 강연을 해야 한다. 즉, 노벨상 시상일이 매년 12월 10일이므로 다음해 6월 10일까지가 기한. 수락 강연을 하지 않으면 상금이 수여되지 않는다. 강연 형태는 정해진 게 없으므로 일반적인 형태의 강연은 물론이고, 연설, 동영상이나 녹음, 공연, 노래 등의 형태도 가능하다고 한다.
해마다 노벨상 시즌이 되면 누가 후보인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는데, 노벨상 최종 후보자와 수상 과정에 대한 정보는 무조건 50년이 지난 후 적합한 심사를 거친 다음에 공개 가능하다. 흔히 언론에서 누가 후보라 카더라는 영국의 도박사이트 래드브록스의 배당률을 참고한 것. 또한 후보는 선정자를 정해서 투표하는 게 아니라 심사위원들이 올해는 누가 받을 만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적어내는 형식으로 결정된다. 래드브록스는 2006년 터키 소설가 오르한 파무크와 2015년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수상을 맞힌 이력이 있다. 2011년 스웨덴 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의 수상이 발표되기 직전 래드브록스에서 그의 배당률이 급격히 떨어져 수상자 정보가 유출됐다는 의혹도 있었으나, 의혹제기 직후 스웨덴 검찰이 수사에 나설 정도로 후보나 수상자 정보에 대해서는 철통 보안이 이뤄지고 있다.

5. 시상 장소 및 시간


매년 12월 10일, 노벨의 기일에 수상한다. 수상자들은 수상식 약 두 달 전인 10월 초에 스톡홀름/오슬로에서 공식적으로 발표된다. 평화상만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수상식이 열리며, 나머지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다. 노벨이 살던 당시 노르웨이와 스웨덴은 병합된 상태였기에 노벨 사후 스웨덴과 노르웨이가 분리되며 평화상만이 노르웨이에서 수상식을 열게 된 것. 수상자들은 스웨덴/노르웨이 국왕에게 메달과 상패를 수여받는다.
수상식이 끝나면 기념 만찬이 열리며 스웨덴에선 TV로 중계된다. 수상자들은 왕과 왕비를 대면하는 자리를 가지며, 왕은 대화마다 먼저 말을 건낼 특권이 있다.
12월 11일에는 수상자들이 스톡홀름 콘서트 홀에 모여 각자의 연구 성과와 앞으로의 발전에 대해 토론하는 "Nobel Minds"가 있으며 이 역시 TV로 중계된다. 이 자리는 당해의 노벨상 수상자들이 한데 모이는 유일한 기회라는 의의가 있다.
공식적인 자리가 끝나면 수상자들은 각자의 수상 분야 주관처에서 여는 성녀 루치아 축일(12월 13일) 행사에 참석하게 된다. 이 행사는 수상식과 만찬에 비하면 많이 풀린 분위기라는 모양.
모든 행사가 완료되면 수상자들은 고국으로 돌아가서 노벨상 수상 강연을 하고 정부, 기업, 학계 등 각계각층에서 몰려오는 초청을 받으며 인류 학문과 평화 발전의 최전선에 서 있는 자로서의 책임을 다하며 살게 된다.
2020년에는 코로나 19 유행으로 시상식과 연회 등 상기의 행사들이 모두 취소되고 TV 중계로 대체하며, 수상자들은 각국 주재 스웨덴 대사관이나 근무 기관에서 상을 받는다. 노르웨이에서 시상하는 평화상 역시 시상 행사 규모가 대폭 축소되고 연회는 열리지 않으며 역시 온라인 시상을 할 수도 있다.관련기사

6. 세계각국의 노벨상 수상 현황



6.1. 1위 [image] 미국


세계 최선진강대국의 위상에 걸맞게 미국은 명실상부 세계 최다의 노벨상 수상자를 보유한 국가로서, 2020년 현재 노벨상을 수상한 미국인은 385명[18]. 2위인 영국의 132명과 비교하여도 단연 압도적인 차이이다.
세계의 과학계를 선도하는 나라답게, 미국은 과학 분야 노벨상들을 매년 휩쓸다시피 하는 걸로 유명하다. 어느 한 과학 분야 노벨상 시상에서 수상자 3명 모두가 미국인인 경우도 허다할 정도로 미국인의 비율이 높기 때문에 지금은 미국인이 아무리 대단한 업적으로 과학 노벨상을 받는다고 해도 다른 나라 언론에서는 특별히 별다른 주목을 하지 않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냥 미국이기 때문에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별로 놀랍게 여기지 않는다는 얘기. 달리 말하면 그만큼 미국은 노벨상 수상이 일상화되어 있다는 소리다.
1943년 이래로 미국은 매년 1명 이상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있으며, 문학상을 제외한 모든 시상 분야에서 수상자 수 1위를 달리고 있다.[19] 과학상 뿐만 아니라 평화상 수상자도 22명으로 제일 많고, 노벨 경제학상의 경우, 수상자의 90% 이상이 미국인으로, 독점에 가까운 수상 비율을 보여준다.
유일하게 1위가 아닌 노벨문학상 분야는 13명으로, 국가별 순위 2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노벨 문학상 분야에서 미국은 상당히 대놓고 박대받는다. 마크 트웨인은 후보에 열 번 가량 올랐으나 수상에 실패했고 로버트 프로스트와 필립 로스도 못받았으며 토머스 핀천코맥 매카시, 돈 드릴로, 조이스 캐럴 오츠도 모두 이미 80을 넘겨 못받을 분위기다.
그래도 13명으로 영국과 같이 2위니까 제법 받은거 아니냐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 허수가 많다. 1948년 수상자인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은 영국문학과 문화에 매료되어 본격적으로 활동한 곳도 유럽이고, 상받기 한참 전인 1927년 영국에 귀화했는데 성인 때까지 미국인이라고 미국작가로 끼어넣어 계산내는 경우가 많다. 실제론 12명인데 1978년 수상자인 폴란드계 유대인 작가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는 망명와서 미국인이 되었을 뿐 이디시어로 글을 썼다. 1980년 수상자인 체스와프 미워시는 수상 당시 미국/폴란드 이중국적으로 폴란드어로 작품 활동을 했다. 1987년 수상자인 조지프 브로드스키는 소련 망명작가로 그의 대표시들은 모두 러시아어[20]로 쓰여졌다. 정작 작품의 절반 이상이 영어고 러시아어 작품들의 영어 번역도 직접했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같은 작가는 빠졌다.
즉, 이 허수들을 모두 빼고 나면[21] 그 방대한 미국 문학에서 겨우 9명을 준 셈. 참고로 유럽문학에서 주류였던 적이 한 번도 없는 스웨덴이 독일계 유대인으로 독일어로 집필한 1966년 수상자 넬리 작스를 제외하고도 7명인 것을 보면 북유럽 편향이 뚜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벨상 수상자들을 대학별로 분류할 경우에도 당연히 상위권은 미국의 대학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수상자수 순 대학 순위 2020년 기준으로 161명의 수상자를 배출한 하버드 대학교가 당연히 1위.[22]
세계에서 유일하게 과학상과 평화상을 모두 받은 인물인 라이너스 폴링 역시 미국인. 그런데 최상의 시나리오의 경우 3회 수상까지 가능했을지도... 반핵 운동 때문에 당시 매카시즘 광풍이 불고 있던 미국 정부에 출국 금지 조치를 받는 바람에 DNAX선 사진을 보지 못했고 DNA의 잘못된 구조를 내놓는 바람에 제임스 왓슨-프랜시스 크릭에게 생리의학상을 내줬기 때문.

6.2. 2위 [image] 영국


세계 표준어인 영어의 기원이자 산업혁명 시절 세계의 과학 발전을 이끌었던 나라답게 영국의 수상자 수는 2020년 기준 모두 134명[23]으로 국적별 수상자 수 순으로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대학별로 분류할 때 2위와 9위가 각각 케임브리지 대학교(120명)와 옥스퍼드 대학교(72명)[24]로 영국 대학이 차지하고 있어 대학별 수상자 수 순으로도 상위권에 속한다.

6.3. 3위 [image] 독일


독일의 노벨상 수상자 수는 전체 109명[25]으로 세계 3위이자 미국, 영국과 함께 현재 수상자 수가 3자리 수 이상인 단 세 개 뿐인 나라 중 하나이다. 과학력이 세계 제일인 나라답게 과학 분야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으며, 세계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인 빌헬름 콘라트 뢴트겐 역시 독일인이다.

6.4. 4위 [image] 프랑스


프랑스의 노벨상 수상자 수는 70명[26]으로 세계 4위이다. 전통적인 과학 강국답게 과학 분야에서 많은 수상자들을 배출하고 있으며, 문학상의 경우, 문학의 나라답게 15명이나 되는 수상자들을 보유하고 있어 1위를 기록하고 있다. [27]
유럽의 라이벌인 영국프랑스의 경우 경제-과학분야 노벨상에서 영국이 거의 3배로 앞서고 있다. 참고로 노벨상에 관한 내용은 아니지만 수학 분야에 대해 시상하는 필즈상의 수상자는 노벨상과는 반대로 프랑스가 미국에 이어 전체 2위를 자치해 영국, 독일보다 더 앞선다. 한편, 수상자들의 대부분이 파리대학교 출신이다.

6.5. 5위 [image] 스웨덴


2020년 현재 32명[28]의 노벨상 수상자를 보유하고 있어 5위를 차지하고 있다. 과학 분야에서만 17명이 수상했으며, 특이한 점이라면 노벨문학상의 비율이 상당히 높다.
노벨상을 수여하는 나라가 스웨덴이다 보니 노벨 위원회가 무슨 노벨상 쿼터제라도 실시해서 이렇게 자국 수상자들이 많은 건지하는 의심을 간혹 받고 있는데 스웨덴은 우수한 학술적 성과를 많이 낸 나라이므로 이러한 의심을 갖는 건 적절치 않다. 스웨덴은 이미 모든 시상 분야에서 수상자를 배출해 전관왕을 달성한 나라다.
다만 노벨문학상의 경우, 스웨덴어를 쓰는 것에 대한 큰 메리트를 받았음은 부정하기 어렵다는 반론도 존재하고[29], 특히 노벨문학상 자체가 스웨덴이나 북유럽 출신들을 암암리에 밀어주는 경향이 뚜렷하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유럽 문학에서 주류였던 적이 한 번도 없는 스웨덴이 독일계 유대인으로 독일어로 집필한 1966년 수상자 넬리 작스를 제외하고도 7명이다.
이렇게 암암리에 스웨덴을 밀어주는 경향의 예로, 마크 트웨인셀마 라게를뢰프에게 물 먹었고, 포스트 모더니즘의 산파이자 롤리타로 영미문학계에 일대 파란을 몰고 온 망명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세계 문학사에 남을 거장 중 하나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그리고 영국의 대문호 그레이엄 그린 등의 각국 국가대표급 작가들은, 스웨덴인이자 노벨위원회 위원이었던 에위빈드 욘손과 하뤼 마르틴손[30]에게 밀려 수상하지 못했다.
결국 욘손과 마르틴손 모두 스웨덴 아카데미 회원으로 '셀프 추천'과 '셀프 수상'을 했다는 비평가들의 신랄한 비판과 냉대속에 잊혀져 욘손은 노벨문학상 수상 후 별다른 활동 없이 1976년 사망했고, 마르틴손은 심적인 고통과 문단 및 평단의 냉대를 이기지 못하고 1978년 가위로 자살해 수상 후 가장 비참한 최후를 맞은 작가로 노벨문학상 역사에 오명을 남겼다.
스웨덴 우대의 끝판왕은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영국의 시인 위스턴 휴 오든의 사례. 오든은 누가 봐도 노벨문학상을 받을 만한 사람이었음에도 못받았는데, 가장 유력한 이유가 '스웨덴 출신 노벨평화상 수상자' 다그 함마르셸드의 책을 번역할 때 일부 오역을 범했기 때문이다.[31]

6.6. 6위 [image] 일본


일본은 1949년 유카와 히데키가 물리학상을 수상한 이래 총 28명[32]의 노벨상 수상자들 배출하여, 노벨상 수상자 수 순위는 2020년 현재 세계 6위이다. 과학 분야만 25명[33]의 수상자가 나왔고, 경제학상을 제외한 모든 시상 분야에서 상을 받았다.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 수는 아시아에선 단연 1위로 독보적인 수준이며[34] 과학 분야만 따질 경우, 스웨덴을 제치고 세계 5위에 오르고, 21세기 들어서부터는 수상 빈도가 늘어나서[35]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받은 나라로 집계될 정도이다. 일본 과학계는 자국의 과학기술이 쇠퇴해가고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는데도 이 정도이니 일본이 얼마나 기초과학이 발달한 나라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런 배경으로, 노벨상 수상자가 1명 뿐인 한국의 상황과 비교되어, 일본의 노벨상 수상 소식은 한국인들에게 자격지심을 안겨주는 소재 중 하나로 작용하기도 한다. 일본이 노벨상을 탈 때마다 바로 국내 언론들은 일본과 한국의 노벨상 수상 현황을 비교해대기 바쁘다. 물론 60년대까지도 먹고 살 여유조차 없었던 한국의 사정상 일찍부터 근대화를 시작하여 그동안 쌓아온 학문의 깊이가 차원이 다른 일본에 비빌 수준이 아니긴 하지만,[36] 그래도 국내인들 입장에서는 배가 아픈 게 사실이다.
일본의 특이한 수상 기록 중 하나는, 다나카 고이치라는 회사원이 모든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 가운데 유일하게 학사 학력인 상태로 수상을 하는 진기록을 세웠다는 것. 그리고 다음과 같이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었는데 안타깝게 놓친 사례가 상당히 많다.
  • 야마기와 가쓰사부로(山極 勝三郎)와 이치카와 고이치(市川 厚一)은 1915년에 토끼 귀에 콜타르를 지속적으로 발라 인공적으로 을 유발해내는 데 성공하며 그 과정을 해명했다. 당시에 둘 다 노벨상 후보였으나, 1926년 노벨생리학·의학상은 암의 기원에 관한 주제에서 기생충의 원인임을 주장한 덴마크 과학자 요하네스 피비게르에게 넘어갔다. 하지만 현재 피비게르의 연구는 틀린 것으로 판명났다. 어쨌든 상을 한 번 줬다가 다시 뺏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피비게르의 수상 실적은 박탈되지 않고 유지되었고, 이후 야마기와와 이치카와가 그 연구로 노벨상 후보로 다시 내세워지는 일은 없었다.[37] 만약 이 둘이 1926년에 노벨상을 받았으면 이들은 일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가 되었을 것이며, 유카와 히데키보다 23년은 더 이른 최초의 수상자가 되었을 것이다.
  • 스즈키 우메타로(鈴木 梅太郞)는 1910년에 세계 최초로 비타민B1을 발견했는데, 심사위에 제출된 해당 논문의 독일어 역본에서 "세계 최초"로 발견했다는 사실이 기술되지 않아 노벨 위원회의 주목을 끄는 데 실패했고, 결국 나중에 크리스티안 에이크만에게 비타민 B1의 최초 발견자로 타이틀이 넘어가 1929년 노벨생리학·의학상을 빼앗겼다.
  • 구레 겐(呉 建)은 척수 부교감 신경의 발견으로 1930년대에 6번이나 유력한 수상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되지 않았는데, 이에 대해 나중에 유엔 대사가 밝힌 바에 의하면 당시 일본이 추축국이었다는 이유로 노벨 위원회장이 수상자로 선정하기를 거부하였다고 한다. [38]
  • 오사와 에이지(大澤 映二)는 풀러렌의 존재를 세계 최초로 이론적으로 구성했지만 해당 논문을 영어가 아닌 일본어로만 작성하는 바람에 주목받지 못해, 1996년 풀러렌 개발 공적으로 스몰리와 크로토가 노벨상을 받을 때 수상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 이 사건의 전말에 대해서는 네이처 저널 제384호에도 소개되어 있다.
  • 도쓰카 요지(戸塚 洋二)는 중성미자 진동을 세계 최초로 관측했으나 2008년 사망하여 2015년 노벨물리학상은 그의 제자인 가지타 다카아키와 아서 B. 맥도널드만 받았다. 살아 있었다면 확실하게 공동수상할 수 있었던 셈.[39][40]

6.7. 7위 [image] 스위스


스위스의 수상자 수는 2019년 기준 27명[41]으로, 국가 별 수상자 수 순으로 7위를 기록하고 있다.
역시 호프만 라 로슈, 노바티스 등의 세계 최고의 제약회사를 보유한 나라답게, 노벨 생리의학상을 8개로 가장 많이 받았고, 노벨 경제학상을 제외한 모든 시상 분야에서 상을 받았다.
물리학상을 받은 대표적인 인물로는 역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사실 태생은 독일이지만 후에 독일 국적을 포기하고 스위스 국적을 얻어서 죽을 때는 스위스-미국 이중국적이었다.[42]

6.8. 8위 [image] 러시아


냉전 시절 제2세계의 선두 국가로 과학 발전을 이끌었던 소련인 만큼, 러시아의 수상자 수는 2019년 기준 26명[43]으로, 국가별 수상자 수 순으로 8위를 기록하고 있다.
과학분야 상뿐만 아니라 노벨 문학상도 5명이 있는 등, 모든 분야 전관왕을 달성한 국가이다.

6.9. 9위 [image] 캐나다


미국과 함께 부유한 북아메리카 대륙권을 대표하는 나라 답게, 캐나다의 수상자 수는 2019년 기준 25명[44]으로, 국가 별 수상자 수 순으로 9위를 기록하고 있다.
모든 분야 전관왕을 달성한 국가이기도 하다.

6.10. 23위 [image] 중국


중국의 노벨상 수상자 수는 8명으로, 국가별 수상자 수 순으로 23위이다.[45]
8명이라는 수는 다른 많은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결코 적은 수는 아니지만, 14억 인구와 세계 2위인 경제규모를 보유한 나라임을 생각해보면 수상자 수가 굉장히 적은 편에 속한다. 게다가 그마저도 중국계 외국인이거나 수상 시점에서는 중국인이었지만 나중에 국적을 바꾼 사람들만 4명이고 중국 정부가 스스로 수상을 인정하지 않는 케이스도 2명이나 있어서(달라이 라마 14세, 류샤오보) 순수하게 중국 국적에 국내외 상관없이 온전하게 수상을 인정받는 수상자는 현재 2명(모옌, 투유유) 밖에 없는 상황이다.
류사오보처럼 중국 정부 스스로가 수상을 하지 못 하게 막은 사례도 있다. 류샤오보는 201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나, 중국 정부에 의해 수상을 거부당했다. 심지어 중국 정부는 류샤오보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그의 가족들도 가택 연금 조치하여 수상하지 못하게 막았다. 노벨위원회는 그를 위해 마련된 빈 의자에 공석으로 직접 상을 수여함으로써 중국 정부의 독재적 행태에 엿을 먹였다.[46] 그리고 중국 정부는 노르웨이산 연어 수입을 금지하는 치졸한 보복을 했다.

6.11. 52위 [image] 대한민국


현재 대한민국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 12월에 노벨 평화상을 받은 게 유일하며, 가나, 에티오피아, 케냐, 콩고민주공화국, 아제르바이잔, 미얀마, 베네수엘라, 페루, 예멘, 팔레스타인 등의 여러 나라와 함께 공동 52위를 달리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수상한 게 유일하며, 그마저도 권위가 상대적으로 가장 낮다고 여겨지는 평화상이고 국가적 역량을 평가할 수 있는 지표가 될만한 과학 분야의 노벨상은 아직 단 한 개도 받지 못했다. 매년 노벨상 발표 시즌만 되면 언론에서는 한국인 유력 수상 후보들을 거론하며 설레발이나 치다가 수상자가 나오지 않으면 '왜 우리는 노벨상을 받지 못하나' 등의 우는 소리나 지겹게 늘어놓는 게 일상이다. 하지만 그렇게 자성의 목소리를 내는 것도 그 때뿐이고, 그 뒤로도 딱히 기초과학을 더 적극적으로 육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거나 하지는 않는다.
대한민국이 왜 이토록 노벨과학상 수상 성적이 저조한지에 관해서는 대한민국은 응용과학만 발달했고 기초과학은 초라하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일본 항목에서의 사례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노벨상은 응용과학의 범주에 포함되는 발명도 수상 대상이므로 이같은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발명에 관한 노벨상의 수상 기준은 기초 기술(Fundamental technology)을 개발했는가가 중요한데, 유감스럽게도 대한민국은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평가해보자면 기초 기술 역시 다른 나라에 비하면 많이 미흡한 국가이다. 삼성전자LG전자가 아무리 좋은 반도체나 디스플레이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그건 그냥 이미 있는 기술을 얼마나 더 개선시켰는지의 문제이지, 새로운 기술을 원천적으로 고안해낸 것이 아니다. 애당초 기초 기술 역시 기초 과학으로부터 발생하기 때문에 기초 과학이 먼저 발달해 있지 않은 이상 대한민국의 노벨 과학상의 전망은 어둡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한국이 기초 과학에 대해서 성과가 아예 없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상술했듯이 한국은 과학에 대한 역사가 매우 짧기에 내공이 부족하여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대한민국/과학기술력 문서에도 나와 있듯이 자연 과학 논문 기여도가 세계 9위이며 GDP 대비 R&D 투자 비용 비율도 OECD 2위이다.[47]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는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다. 때문에 그 이유로 짧은 과학 역사 탓만을 할 수는 없다. 유튜버 에스오디의 발언에 따르면 한국은 짧은 기간 안에 성과가 나는 부분에만 집중적으로 투자하기 때문에 높은 R&D 투자 비용 비율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과학 기술력은 낮다. 이는 과거 고속 성장 진행 시기의 잔재라고 할 수 있다. 즉, R&D 투자 비용 비율만 높지 기초 과학에는 제대로 투자하지 않기 때문에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과학 분야 노벨상 뿐만 아니라 노벨문학상도 마찬가지다. 문학은 과학과는 달리 대단한 시설이나 투자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문학상은 노벨 위원회가 지역안배를 위해 일정 주기로 동양권에 수상자를 의도적으로 배출시킨다는 루머가 있을 정도로 과학상보다 비교적 조건이 널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없는 게 한국 문학계의 현실이다. 단, 노벨문학상은 유럽제 언어 외의 언어로 작품을 쓰는 문학인들에게 굉장히 짜다는 비판이 있는만큼[48] 한국인에게 불리하다는 점은 감안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한국인 수상자가 없는 건 서글픈 일.
노벨문학상이 없는 이유로는 낮은 독서량을 드는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 나라들은 연령대가 높을 수록 독서량이 높은데, 한국은 연령대가 높을 수록 독서량이 낮은 기이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 사실 한국의 젊은 층의 독서율은 평균 수준은 된다. 동아시아권 국가에서 젊은 층의 독서량은 한국은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있는 일본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다만 상술했듯이 한국의 중장년층의 독서율이 매우 낮기 때문에 총 독서율이 하위권이 된 것이다. 그리고 노벨상 수상자들의 대부분이 중장년층임을 고려한다면 독서율이 낮아서 노벨문학상이 없다는 주장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김대중 외에도 노벨상 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수상자 중 출생지대한민국으로 된 수상자[49]는 한 명 더 존재하는데, 1904년에 부산에서 태어난 찰스 피더슨이라는 미국인이 그이다. 그는 8살 때 일본 본토로 건너갔고 그 후 1922년에 데이턴 대학교, MIT를 거친 다음 42년간 연구에 전념하다가, 1987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물론 태어난 곳만 한반도일 뿐, 엄연히 미국 국적 사람이고, 한국계도 아니고[50], 노벨상을 받은 연구도 전부 미국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피더슨은 한국인 수상자라고 하기는 어렵다.

6.11.1. 한국인의 수상 가능성



6.11.1.1. 문학상

2000년대 중반부터 한국에선 매년 문학상 후보로 언론에서 주도적으로 설레발만 치면서 고은을 거론했는데, 그 이유로 드는 게 한국어권(수상자 없음)/비주류 언어권/한자 문화권 출신자인 점 그리고 그동안 시인 수상자가 많지 않았던 점, 노벨 위원회의 성격과 민주화운동 경력이 있는 고은의 행적이 부합하며, 알베르 카뮈 이후 문학상이 일단 '환갑은 넘겨야 받는 상'이 되어버렸는데 동아시아권의 권위있는 원로는 많지 않으니 지역안배 차원에서 수상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이유였다. 객관적인 업적으로 냉정하게 평가하는 과학, 경제학상과 달리 달리 문학상과 평화상은 지역 안배를 해왔기 때문이다.
만인보 중 아무 작품이나 탁 펴서 읽어보거나, 아니면 그나마 괜찮은 작품들 위주로 올라와있는 나무위키 인물 문서의 만인보 작품들을 읽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수능 연계교재에 단골로 실렸던 대표작 '머슴 대길이'조차도 고은이란 시인의 영향력과 약자인 '머슴'을 조명하는 내용이 아니었다면 실리기 어려웠을 정도로 단어의 아름다움이나 시적 기교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나마 만인보 중에서 잘 썼더고 평가받는 머슴 대길이가 이 정도니 뭐... 다른 작품들도 그냥 산문의 형식에서 문체를 예스럽게 바꾸고 연을 띄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고은이 오랫동안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었던 것에도 이것과 큰 관련이 있는데, 미투 사건이 터지기 전 한국에서도 그는 서구권에서 다른 한국 시인들에 비해 고평가되었다는 인식이 강했다. 노벨상 심사위원들은 서양인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동양권 언어로 쓰인 작품들은 번역본으로 읽어보게 되고 시라는 장르의 특성상 번역을 거치는 과정에서 시적 아름다움이 매우 빛바랠 수 밖에 없다. 동양권 노벨문학상 작가가 별로 나오지 않는 원인이 근본적으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고은의 만인보는 애초에 시적 아름다움이 거의 존재하지 않고 그 엄청난 양에서 특색이 나타나기에, 번역을 거치더라도 빛바랠 건덕지가 없어 페널티가 없다는 것.
하지만 2011년에 스웨덴 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2012년중국의 소설가 모옌이 수상하면서 향후 10년 안으로 다시 한자 문화권 시인에게 상이 돌아갈 가능성이 낮아졌다.[51] 그 이전에 과연 고은이 노벨상을 받을 만한 능력이 있는 작가인가 하는 질문도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그러다가 2018년 그가 그동안의 행실로 인해 평가가 나락으로 떨어졌고, 문학과 행실을 별개로 보려고 해도 도저히 노벨 문학상 후보에 들 만한 작가라곤 할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80년대 3S 정책 중 하나로 노벨문학상을 노려 군부 정권 독재에 대한 불만을 덮고 정권 찬양에 쓰고자 당시 한국소설들을 마구잡이로 번역하여 내놓던 적도 있었다. 이때 언론이 엄청 설레발을 떨었기에 김동리 작가는 살아 생전 자신의 소설 사반의 십자가가 노벨문학상에 근접했다느니 뭐니라는 말을 지겹게 듣어서 늘그막에 이걸 비판했다.
최근에는 2016년에 소설가 한강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맨부커상을 수상하면서 노벨 문학상 수상에 대한 기대를 모으고 있지만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상은 2005년에 생겼으며 역사도 매우 짧고 권위도 상대적으로 부족해서 노벨 문학상 가능성은 고은보다도 더 떨어지는 현실이다. 특히 옆 동네의 진짜배기 문학계 거성인 무라카미 하루키도 번번히 물먹는 현실을 보면...

6.11.1.2. 과학상

노벨상이 세계적으로도 높은 권위와 가치가 있다고 인정받으니만큼 당연히 한국에서도 노벨상 수상자 발표 시즌이 되면, 늘 우리는 언제쯤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나올지를 얘기하는 특집 기사가 나오곤 한다.
그런데 한국은 기초과학으로의 투자를 198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수준으로 그 역사가 아주 일천하다. 이런 연구일수록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드는데, 투자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누적 투자 총액이 크지 않고, 노벨상을 수상할 만한 큰 결과물도 아직 충분히 나오지 않은 것이다.[52]
한국이 과학 연구를 할 만한 상황이 된 지가 그나마 1990년대 중후반이고, 학문의 발전 양상을 보면 1세대는 교육, 2세대는 연구를, 3세대는 세계 수준의 연구를 하는데 한국은 주류 교수들이 아직 2세대 ~ 2.5세대 정도다. 따라서 노벨상 수상자가 아직 나오기 힘든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런 기억들을 고스란히 가진 중노년층이 아직은 사회 전반에 있어 많은 영향력을 지니다 보니, 당장의 결과에 집착하게 되고, 전반적인 교육 방향도 그런 가시적 결과를 내놓을 수 있는 쪽으로 이루어지는 편이다(이는 빨리빨리 문화의 영향이 크다). 노벨상을 받기 위해 필요한 가치관과는 아직 거리가 먼 셈. 한국이 과학 분야의 노벨상을 받기 위해서는 경제성장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좀 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진 여유로운 사고가 먼저 사회 전반에 확산되어야 할 것이다. 그나마 몇몇 경우에 있어 조금씩 성과가 나타나고 있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국내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몇 년 안에 수상이 가능한지 물어본 설문조사 결과, 6~10년 안에 수상할 것이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 그리고 가장 유력한 한국인 후보로 김빛내리 서울대 생명과학부 석좌교수(겸 IBS 연구단장)가 선정됐다.
물리학상의 경우는 최근 몇 년 수상 경향을 보면 대형 물리학 실험(ex: LHC, 라이고 등)이나 신분야 개척자에 수상이 많은데 한국은 그런 연구를 주도해서 한 경험이 적다. 다만, 그런 대형 연구 프로젝트는 여러 나라의 정부, 단체들이 공동으로 지원하고, 다양한 국적의 학자들이 협동하여 진행하는 경우가 많고, 우리나라 학자들도 국제적 공동 대형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으므로[53], 꼭 한국이 연구를 주도해야하는 것만은 아니다. 김필립 교수 이전에 노벨물리학상에 가장 가까웠던 한국인 과학자는 이휘소 박사[54] 였는데 너무 일찍 요절하는 바람에...
한때 그래핀 분야의 권위자인 김필립# 교수가 수상후보로 언급되었지만 2010년에 김 교수가 업적을 남긴 그래핀 연구로 러시아 출신의 두 과학자가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고, 상을 받은 업적에 노벨상을 다시 줄 가능성은 드물기 때문에 앞으로 새로운 업적을 발견하지 않는 한 현재로선 수상과는 거리가 먼 상황이다. 이 당시 네이처에 그의 수상 실패 문제를 비롯해, 보도자료의 허술함 등을 신랄하게 디스하는 기고문이 올라왔다.
화학상 분야 후보로는 2014년부터 톰슨로이터에서 노벨상 후보자로 예측한 기능성 메조나노다공성 탄소물질과 제올라이트 분야의 개척자인 유룡# 카이스트 교수가 노벨화학상 후보로 거론된 적이 있으며, 이 분야는 아직 연구 중이고 해당 분야의 업적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는 없어서 현재 수상 가능성이 있기는 있다. 2017년에는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Clarivate Analytics·구 톰슨로이터) 에서 화학공학자 박남규 성균관대 교수를 노벨 화학상 후보 중의 한 명으로 꼽기도 하였다. 페로브스카이트(perovskite)를 태양전지에 적용한 업적을 인정받았다. # 2020년에는 나노결정 합성분야의 권위자인 현택환 서울대 교수가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화학상의 경우, 기업 연구원 출신이자, 역사상 유일한 학사 출신 수상자인 다나카 고이치와 같은 수상 사례도 있고, 화학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전자,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제약,[55] 방산 등 우리나라의 주력산업과도 연관성이 높아[56] 정부와 기업 차원에서도 많은 지원을 받고 있기에, 한국 출신 수상자가 배출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과학 분야라고 볼 수 있다. 톰슨로이터에서 주관하는 수상자 예측에서 다른 과학상에서는 한국 출신 후보자가 나온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나 화학상에서는 벌써 세 명이나[57] 나왔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생리의학상 분야는 CT, MRI, PET의 대가로 인정받는 세계적 전자공학자 조장희 교수가 양전자 단층촬영기(PET)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업적으로 유력한 노벨상 후보로 거론된다. 그는 1975-76년 원형 (circular type) PET을 세계최초로 개발하였고 이듬해 BGO 양전자 검출기를 개발하였다. 이를 토대로 1980년 스칸디트로닉(Skanditronik)과 1985년 GE에서 최초로 상업적인 양산형 원형PET을 개발하게 되었으며 현재 모든 PET은 그가 개발한 원형의 형태를 따르고 있다. CT와 MRI에서 이미 노벨상이 수여된 것으로 보아 PET 분야에 대한 노벨상 수여도 기대할 수 있으며 PET 노벨상은 PET의 최초 개발자이자 현재 PET의 표준을 만든 조장희 교수가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된다. 그리고 microRNA 연구의 권위자인 김빛내리 교수(서울대 생명과학부), tRNA의 구조를 밝혀낸 김성호 교수(UC 버클리 화학과) 등 생각보다 많은 한국출신의 과학자가 생물학 분야에 우수한 업적을 남기고 있어, 이 분야의 후보자로 거론되고 있다.
한국인은 아니지만 한국계 출신으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을게 거의 확실시 되었던 물리학자는 핵물리학의 재규격화와 게이지 이론 등을 연구한 벤저민. W. 리(이휘소) 박사가 있다. 미국 국적을 취득한 이후 노벨상 후보로 강력하게 지목되던 도중 불의의 교통사고로 인해 생을 마감했다.
그와 같은 연구를 함께 진행한 스티븐 와인버그셸던 그래쇼, 헤라르뒤스 엇호프트 같은 인물이 훗날 해당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는 것을 보았을 때 리 박사가 사고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인류의 물리학 발전에 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었을 것뿐만 아니라 노벨상 수상 가능성이 있었을 것으로 보아 과학계의 많은 아쉬움을 자아냈다. 애당초 그는 한국인이 아니라 미국인이기 때문에 수상했더라도 그게 한국에 있어서 별 의미는 없지만... 다만 중국 양전닝의 사례처럼 정부가 이휘소 박사로 하여금 다시 한국 국적을 회복하도록 애를 써서 성공했다면 노벨상 수상자 보유국은 될 수 있었을지도.
출생지 때문에 일본인 수상자가 될 가능성이 높았겠지만, 우장춘도 종의 합성 이론으로 수상할 가능성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대한민국 출신 과학자가 이룬 노벨상을 받을 만한 업적을 하나 더 꼽으면 무함마드 아탈라와 강대원 박사가 공동 개발한 MOSFET이 있다. 하지만 MOSFET은 전자공학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발명품 중 하나이며 MOSFET의 존재 덕분에 가능했던 발견들에게는 노벨상이 몇 개 주어졌는데도, 희한하게도 MOSFET 자체는 수상한 적이 없다. 설령 수상했더라고 해도 강대원 박사는 비교적 일찍 사망했기에 아마 아탈라 박사만이 수상했을 것이다.
한때 십수년 전 황우석이 노벨 생리의학상 후보단십고 한참 떠들어 대다가 실상이 드러나자 팍 수그러들은 적이 있는 사례에 비추어 보면 진짜 가능성이 있기 이전에 그냥 노벨상이란답시고 설레발치는 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반응도 제법 있다. 심지어 이 양반은 노벨메달을 본뜬 초콜릿을 이미테이션 메달이랍시고 사기를 친 사람이다.

6.11.1.3. 경제학상

서서히 수상 후보가 나오기 시작하는 과학계와는 달리 경제학계에서는 그나마 수상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후보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 현재까지 동아시아에서의 경제학상 수상자는 전무하고 인도 출신의 아마르티야 센이 아시아 출신으로는 유일하다. 아시아에서 노벨상을 가장 많이 받은 일본 역시 수상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이는 분야가 바로 경제학상이다.[58]
현재 세계 경제의 중심인 미국 등 서방 선진 국가에서는 국가 발전을 위해 새로운 시스템을 연구하게 되고 이것이 새로운 경제학의 발견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반면 과학 분야와 마찬가지로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경제 성장을 통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에 급급했던 한국에서는 선진국의 경제 시스템을 도입해 경제 성장에 초점을 맞춰왔으며, 자연스럽게 서방 선진 국가들처럼 새로운 경제학을 연구할 만한 여건이 되기 어렵다.
2001년 경, 한국 국적의 경제학자 중 가장 업적이 뛰어난 사람이 누구냐고 여론 조사를 한 결과, 전국 경제학과 교수들은 일리노이대 ( UIUC ) 조인구 석좌 교수를 뽑았으며 2013년에도 꾸준히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

6.12. 기타 국가


수상자 수가 두 자리 수 이상인 나라들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제외하고 전부 선진국 아니면 강대국이다.
인구가 어느 정도 있고 IMF 기준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나라들은 대부분 최소 1회 이상의 노벨 과학상을 수상한 기록이 있다.[60] 그 덕분에 노벨 과학상 수상 여부는 그 나라의 국가적 역량과 선진국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로써 인식되기도 한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대한민국은 상당한 인구와 경제 규모를 보유하여 충분히 강한 국력을 가진 선진국이라 평가할 만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유난히 노벨 과학상과 거리가 멀다. 심지어 이집트, 인도, 멕시코, 파키스탄, 남아프리카 공화국, 베네수엘라 같은 나라들은 반대로 기초 과학 수준이 낮고 연구 환경이 열악한 개발도상국들임에도 과학 분야 노벨상을 받은 적이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상황과 비교되기도 한다.[61]

7. 기록


  • 2회 이상 수상한 단체
    •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 평화상 3회: 제1차 세계대전 구호 업적, 제2차 세계대전 구호 업적, 전 세계 재난 구호 업적으로 각각 1917년, 1944년, 1963년에 수상한 최다 수상 단체이다. ICRC의 창설 100주년이기도 한 1963년에는 ICRC의 산하 단체인 국제적십자.적신월연맹도 함께 받았다. 또한 1901년에 장 앙리 뒤낭이 적십자 창립과 제네바 협약에 대한 공로로 초대 노벨평화상을 수상해서 실질적으로는 4번 받은 것으로 간주해도 무방하다. 실제로 ICRC에서는 본인들의 노벨상 수상을 기념할 때 창립자 뒤낭의 수상도 포함한다.
    • 유엔난민기구 (UNHCR) - 평화상 2회: 1954년에는 난민들에 대한 정지적 법적 보호, 1981년에는 난민들의 이주와 정착 및 처우 개선에 이바지한 공로로 수상했다.
  • 2회 이상 수상한 사람
    • 라이너스 폴링(미국) - 화학상, 평화상: 세계에서 유일하게 과학상과 평화상을 모두 받은 인물이다. 반핵 운동 때문에 당시 매카시즘 광풍이 불고 있던 미국 정부에 출국 금지 조치를 받는 바람에 DNA의 X선 사진을 보지 못했고 DNA의 잘못된 구조를 내놓는 바람에 왓슨-크릭에게 생리의학상을 내줬다. 최상의 시나리오의 경우 3회 수상까지 가능했을지도... 타 복수 수상자와 달리 그는 2회 모두 단독 수상했다.
    • 마리 퀴리(프랑스) - 물리학상, 화학상: 사상 최초로 2번이나 노벨상을 받은 인물이자 유일하게 여러 분야의 과학상을 받은 인물이다. 남편 피에르 퀴리 역시 1903년에 그녀와 공동으로 물리학상을 받았고, 첫째 딸과 사위는 1935년에 화학상을 받았으며, 둘째 사위는 1965년에 유니세프를 대표하여 평화상을 받았다. 둘째 딸인 이브는 이에 대해 "저는 우리 집안의 수치입니다."라는 농담을 했는데, 이는 아버지, 어머니, 언니, 형부, 그리고 그녀의 남편까지도 노벨상을 탔는데 자신만 못 탔다는 이유라고. 사실 그녀도 베스트셀러 작가로 여러 상과 훈장을 받았으니 그야말로 가족들 모두가 능력자.
    • 존 바딘(미국) - 물리학상 2회: 1956년에는 반도체 연구와 트랜지스터의 발명, 1972년에는 초전도 현상의 연구 공로로 수상했다.
    • 프레더릭 생어(영국) - 화학상 2회: 1958년에는 인슐린의 염기서열, 1980년에는 핵산의 염기 서열 해독에 대한 연구 공로로 수상했다.
  • 가족 수상
    • 부부
      • 피에르 퀴리·마리 퀴리 부부(1903년 물리학상 공동 수상)
      • 프레데리크 졸리오퀴리·이렌 졸리오퀴리 부부(1935년 화학상 공동 수상) - 위의 퀴리 부부의 사위·딸이다.
      • 칼 퍼디낸드 코리·거티 테리사 코리 부부 (1947년 생리의학상 공동 수상)
      • 군다르 뮈르달(1974년 노벨 경제학상)와 알바 뮈르달(1982년 노벨 평화상) 부부
      • 에드바르드 모세르·마이브리트 모세르 부부(2014년 생리의학상 공동 수상)
    • 부자
      • 조지프 존 톰슨 (아버지, 1906년 물리학상)과 조지 패짓 톰슨(아들, 1937년 물리학상)
      • 윌리엄 헨리 브래그(아버지)와 윌리엄 로런스 브래그(아들), 1915년 물리학상 공동 수상: 수상 당시 아들 브래그의 나이는 겨우 25세로 말랄라 유사프자이가 노벨상을 딸 때까지 최연소 노벨상 수상자였다. 그리고 현재까지 유일한 부자 공동 수상이다.
      • 닐스 보어(아버지, 1922년 물리학상)와 오게 닐스 보어(아들, 1975년 물리학상)
      • 칼 만네 예오리 시그반(아버지, 1924년 물리학상)과 카이 만네 뵈리에 시그반(아들, 1981년 물리학상)
      • 한스 폰 오일러켈핀 (아버지, 1929년 화학상)과 울프 폰 오일러(아들, 1970년 생리의학상)
      • 아서 콘버그(아버지, 1959년 생리의학상), 로저 콘버그(아들, 2006년 화학상)
    • 형제
      • 얀 틴베르헌(형, 1969년 경제학상), 니콜라스 틴베르헌(동생, 1973년 생리의학상)
  • 최고령/최연소 수상자[62]
    • 최고령 수상자: 존 B. 구디너프 (97세 4개월 17일, 2019년 화학상)
    • 최연소 수상자: 말랄라 유사프자이 (17세 5개월 1일, 2014년 평화상)
  • 수상을 거부한 사람들[63]
    • 장폴 사르트르 - 1964년 문학상. 그런데 이후에 생활고가 와서 상금이라도 받고 싶다며 받으러 갔다가 나가라는 대답을 받았다고...
    • 레득토 - 1973년 평화상. 북베트남 외교부장. 베트남 전쟁 종전에 기여한 공로로 헨리 키신저 당시 미국 국무장관과 함께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공동 선정되었으나 수상을 거부했다.
  • 수상을 거부하려다 결국 받은 사람들
    • 조지 버나드 쇼 - 1925년 문학상. 본인은 처음엔 받지 않으려고 했다가 받은 뒤 '인간의 탈을 쓴 악마만이 노벨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고 비꼬았다. 상금을 기부해 달라, 입양해 달라 같은 구걸에 가까운 편지들을 계속 받다보니 쇼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 리처드 파인만 - 1965년 물리학상. 유명해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아 수상을 거부하려 했으나 "그런 짓(=노벨상 수상을 거절하는 것)을 하면 더 유명해질걸요."라는 기자의 말을 듣고 받기로 결정했다.
    • 밥 딜런 - 2016년 문학상. 가수로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는데 수상자 발표가 난 이후로 한동안 그는 전혀 이에 대해서 연락을 받지도 않았고, 별다른 의견을 발표하지도 않았다. 이 때문에 수상을 거부하는 게 아니냐는 논란이 나왔다. 그러다가, 침묵을 깨고 노벨상을 수락한다고 발표했다. 다만, 본인이 시상식에 직접 참석하지는 않았으며 주스웨덴 미국 대사가 참석해 밥 딜런의 수락 연설문을 대독한 다음 노벨상을 대리 수상했다.
  • 수상을 거부당했으나 결국 받은 사람들
    • 리하르트 요한 쿤 - 1938년 화학상
    • 아돌프 프리드리히 요한 부테난트 - 1939년 화학상
    • 게르하르트 도마크 - 1939년 생리 · 의학상
      • 나치 독일 정부는 1935년 평화상 수상자로 카를 폰 오시에츠키를 선정한 것에 대해 강력히 비난하면서 독일인의 노벨상 수상을 금지하였기 때문에 위의 사람들은 상을 받고 싶어도 당시에는 받을 수 없었다. 물론 이 금지령은 2차대전이 끝나자마자 해제되었으며, 이들은 모두 1946년에 상을 받았다.
    •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 1958년 문학상. 닥터 지바고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나, 러시아 혁명을 비판한 내용이 들어 있다는 이유로 소련 정부와 작가 동맹으로부터 압력을 받게 되자 수상을 거부했다. 하지만, 노벨상 주최 측에서는 이를 거부한 것이라 판단하지 않아서 수상 보류로 남겨 두었다. 결국 그의 사후 소련에서도 닥터 지바고가 출판되는 등 그 업적이 공식적으로 인정 받고 난 뒤, 그의 아들이 대리 수상을 했다. 고로 받긴 받았다.
  • 수상을 거부당했으며 결국 받지 못한 사람들
    • 카를 폰 오시에츠키 - 1935년 평화상. 선정 당시 나치 독일 정부에 의해 투옥 중이었던 터라 수상이 불가능했으며, 결국 상을 받지 못하고 1938년 강제수용소에서 사망했다.
    • 류샤오보 - 2010년 평화상.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나, 중국 정부에 의해 수상을 거부당했다. 심지어 중국 정부는 류샤오보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그의 가족들도 가택연금 조치하여 수상하지 못하게 막았다. 노벨위원회는 그를 위해 마련된 빈 의자에 공석으로 직접 상을 수여함으로써 중국 정부의 독재적 행태에 엿을 먹였다. 이렇게 수상을 강제로 거부당하고 빈 의자에 수상을 해준 사례는 1935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였던 나치 독일 시대의 카를 폰 오시에츠키 이후 처음이다. 달리 말하면 나치 독일에나 있었을 사태가 현대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뜻.[64]
  • 국가별 수상자 수 기록 (2017년 12월 기준)
[image]
▲ 국가별 노벨 과학상 수상자 수 순위
  • 전관왕 달성 국가(총 11개국): 노르웨이, 독일, 러시아, 미국, 스웨덴, 영국,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폴란드, 프랑스, 캐나다
  • 전관왕 후보 국가(5분야 수상, 총 9개국) - 이하는 해당 국가가 아직 수상하지 못한 분야.
  • 총 수상자 수 1위 국가: 미국(362명) - 1943년부터 매년 미국인이 노벨상을 수상하고 있다.
  • 실질적으로 인구당 수상자 수가 가장 많은 나라: 세인트루시아(2명)[65] 그 다음으로 룩셈부르크, 스위스, 오스트리아 순이다.
  • 문학상 최다 수상국: 프랑스(15명)
    • 차석: 미국(12명) - 2017년 12월 기준으로는 영국과 공동차석.
  • 문학상 최다 수상 언어: 영어(30명) - 2017년 12월 기준으로 31명
    • 언어 차석: 프랑스어(15명) - 3위는 독일어(13명) , 4위는 스페인어(11명).[66]
  • 물리학상 최다 수상국: 미국(104명)
  • 화학상 최다 수상국: 미국(70명)
  • 생리학·의학상 최다 수상국: 미국(104명)
  • 경제학상 최다 수상국: 미국(50명)
  • 평화상 최다 수상국: 미국(24명)
  • 성비
분야
남자
여자
성비[67]
평화상
87
16
5.44:1
문학상
99
13
7.62:1
생리의학상
200
11
17.91:1
화학상
168
5[68]
42:1
물리학상
201
4[69]
50.25:1
경제학상
74
1
74:1
전체
829
48
17.21:1

8. 논란


노벨상은 모든 나라에 공정한 것이 아니라 제1세계 등에 속한 국가들이 더 받기 쉬웠다는 주장이 있다. 그 예를 들어, 냉전 기간이었던 1950~1990년 기간 사이에 제2세계(공산권) 인물이 수상한 노벨상과 제1세계 수상을 비교하면 제1세계가 수십 배 더 많다. 하지만, 이는 냉전 시기의 제1세계와 제2세계의 과학 기술 격차를 고려하면 이상할 것도 없다는 반박이 있다. 사실 제2세계가 상대적으로 열세였던 것 자체는 누구나 인정하는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정말로 실제 각종 과학 발전이 노벨상 수상 횟수에 비례해 수십 배까지 차이났다면 두 세력의 대결 구도란 것 자체가 성립할 수 없었다고 봐야 하고, 결국 어느 정도는 과학 연구 시설, 자금 문제, 홍보 등 여러 가지로 제1세계에 속한 출신 인물들에 당연히 유리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
반면 평화상이나 문학상은 일부러 좀 더 지역 안배/배려를 하는 경향이 있어서 또 논란이 되기도 한다. 특히 평화상은 다른 노벨상들과는 달리 논란이 매우 많은 상이다. 근본적으로 '평화'라는 주제로 상을 주는 것은 각 국가의 이해관계와 정치적 문제와 연관되기 때문에 다른 노벨상과는 달리 수상자의 업적의 평가가 각 구성원의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다.[70]
문학상의 경우, 실제로 동아시아 지역의 문학상의 경우 10년 정도 주기로 준다는 속설도 있다. 또한 문학상도 국적과 사용 언어에 따라 불리한 점이 있다는 데에는 어느 정도 동의가 있는 편이다. 한편, 작가의 국적이나 정치적 성향을 문제삼아 상을 안 주는 경우도 있는데 1회의 최유력후보였던 톨스토이는 스웨덴과 역사적으로 불편한 관계인 러시아인에 기독교적 무정부주의를 표방했다는 이유로 탈락하였고, 남미의 대문호 보르헤스는 파시스트와 독재 정권을 지지했다는 논란 때문에 수상하지 못했다.
게다가 2018년에는 노벨문학상의 심사를 담당하는 스웨덴 한림원의 종신 위원 중 한 명인 카타리나 프로스텐손의 남편이자 한림원과 끈끈한 네트워크를 유지하던 장클로드 아르노가 여성 18명을 성폭행한 의혹을 받은 것으로 한림원 파문이 시작되었으며,[71] 한림원의 미온적 대응에 항의한 종신위원들이 여럿 사퇴했다. 이로 인해 한림원이 내부 심사를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마비되어 문학상 시상이 취소되는 대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관련 기사 시상 취소는 제2차 세계 대전 같은 전 인류의 위기상황에서나 일어나던 일인데, 이를 성추문 때문에 일으켜버리는 극심한 추태를 보여주는 바람에 노벨 문학상의 위상이 땅으로 수직낙하하는 중. 다만 수상자 선정은 해뒀는지 2019년에 공동 수상하는 식으로 공란은 면했다.

9. 상금


아무리 노벨이 많은 돈을 남겼다지만, 상금을 계속 지급하기에 그 예산이 영원할 수는 없는 법이다. 노벨재단에서는 노벨의 유산을 토대로 여러 사업[72]을 진행하고 있다. 다행히도 노벨상 위원회는 지속적으로 투자를 하여 상금 줄 예산을 확보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노벨상 위원회의 투자도 경기 불황을 비켜갈 수 없는지, 1949년에 인당 지급하는 상금을 한번 줄였다가 그 이후 지속적으로 상금을 높여서 인당 140만 달러(2015년 기준으로 약 16억 원)까지 지급했으며 2012년 글로벌 경기 불황으로 다시 인당 110만 달러(2015년 기준으로 약 13억 원)로 줄였다고 한다. 관련 기사
그래도 노벨상만 받아도 엄청난 명예와 각계 각층의 각종 지원이 따르기 때문에 상금은 부가적이라고 할 수 있다. 노벨상을 딸 정도의 업적을 달성하면 과학/문학 분야는 이미 대학 교수로 재직중인 사람일 가능성이 높아 의미가 없지만 어떤 분야던 간에 노벨상을 따기만 하면 전 세계의 온갖 명문 대학에서 제발 우리 대학 교수 좀 해달라고 러브콜이 밀려온다. 물론 그것도 조교수나 부교수 따위가 아닌 테뉴어 받는 정식교수로. 우스갯소리로 노벨상의 가장 큰 장점은 '돈 걱정 안하고 연구할 수 있는 것'이라는 말도 있는데 과학, 기술에 많은 돈을 투자하는 선진국의 경우에도 기초 과학을 다루는 대다수의 교수와 연구원이 비용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예를 들어, 관측천문학이나 전파천문학 같은 학문은 관측 장비가 대학은커녕 정부 차원에서도 제작하고 운영하기 힘들 정도로 비싸기 때문에 학자들은 항상 연구비에 목말라 있는데 노벨상을 수상하면 정부, 학교, 기업의 지원이 따라오고 상대적으로 연구 분야도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
노벨상 상금은 대한민국 국적자가 받으면 소득세법 시행령 18조 2항에 따라 세금 없이 실수령할 수 있다. 그것도 법 조항 자체에 노벨상이라고 정확하게 적혀 있다. 정확히는 소득세법시행령 제18조 2항 노벨상 또는 외국정부·국제기관·국제단체 기타 외국의 단체나 기금으로부터 받는 상의 수상자가 받는 상금과 부상이다.(국가법령정보센터 출처) 노벨경제학상은 노벨상인지 아닌지 논란이 있으나 스웨덴 중앙은행이 외국 정부 내지는 기타 외국의 단체에 포함되기에 마찬가지다.# 그 외에도 올림픽 메달, FIFA 월드컵 참가비(32강에서 1분만 뛰어도 지급됨)도 같은 법령에 의해 실물에 대한 소득세가 면제된다. IOC, FIFA가 국제기관이기 때문. 관세와 체육연금은 각각 타 법령에 의해 소득세 면제.

10. 기타


  • 한편 노벨상 수상자의 공식 기록에선 수상자의 출생지와 (사망했을 경우) 사망지만 기록한다. 이는 국적 문제가 상당히 복잡하기 때문이다. 국가마다 국적을 결정하는 원칙이 속지주의/속인주의부터 시작해서 제각기 다르고, 수상자가 활동 기간 동안 국적이 바뀌는 사례도 빈번하다. 이중국적, 미승인국 문제, 수상자 본인의 국가 정체성, 종주국-식민지 관계 문제까지 들어가면 정말 카오스가 따로 없다.[77] 그래서 출생지로 구분을 하는 것.
    • 아주 쉬운 예가 바로 마리 스크워도프스카 퀴리이다. 마리가 노벨상을 수상할 당시(1903년 노벨물리학상, 1911년 노벨화학상) 국적은 프랑스였다. 프랑스 출신인 피에르 퀴리와 결혼을 하면서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리 본인은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태어났고 마리 자신이 폴란드인임을 결코 부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당시 폴란드는 독립 국가가 아니라 제정 러시아의 점령 하에 있었다.[73] 이런 상황에서는 제3자의 입장인 노벨위원회가 함부로 국적을 결정하기도 어렵다.
    • 이 출생지의 원칙 때문에 한국이 출생지로 등록된 한국인이 아닌 노벨상 수상자가 있다. 해양 엔지니어로 부산세관에서 근무했던 노르웨이인 아버지와 콩,누에를 재배하던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1904년 부산에서 태어난 찰스 피더슨이라는 미국인이 그 예이다. 8살때 일본으로 건너갔고 그 후 1922년에 데이턴 대학교, MIT를 거친 다음 42년간 연구에 전념하다가,1987년 노벨 화학상을 받고 뉴저지주에서 사망했다.[74]
    • 한편, 영토 변경으로 인해 출생지가 속한 국가가 달라진 경우에는 당시 해당 지역의 지명과 해당 지역을 통치한 국가의 명칭을 먼저 기재하고 현재의 지명과 해당 지역을 통치하는 국가를 괄호로 병기한다.[75] 가령 상술한 마리 퀴리는 출생지를 Warsaw, Russian Empire (now Poland)로 표기하고, 출생 당시에는 독일 제국령이었지만 현재는 프랑스 영토인 스트라스부르가 고향인 한스 베테의 경우는 출생지를 Strassburg[76] (now Strasbourg), Germany (now France)로 표기한다.
  • 1965년에 학술인용분석 및 과학계량학의 기초를 닦은 유진 가필드(E.Garfield)는 초기 노벨상 수상자들이 동료 연구자들에 비해 5배 더 많은 논문을 출판했고, 피인용수는 30~50배 가량 더 높으며, 그 분야에서의 피인용수 상위 0.1%에 속하는 걸작급의 논문을 한 편 이상 저술한 바 있음을 발견하였다. 오늘날에도 2,000회 이상 인용된 논문의 저자들을 중심으로 노벨상 수상을 예측하기 위한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
  • 노벨상 수상자들의 상당수는 민간기업이 아닌 대학 소속의 학자들이지만, IBM만이 거의 유일하게 민간 기업으로 노벨상 수상자를 계속 배출해오고 있다. 2020년 기준으로 IBM 소속의 노벨상 수상자는 6명이며, 이들의 업적은 하나같이 현대 과학을 대표하는 것들이다. 한편으로, 민간기업에서 배출한 노벨상 수상자 중 끝판왕은 시마즈 제작소에 소속된 다나카 고이치. 그는 과학 분야 모든 노벨상 수상자 가운데 유일하게 학사 학력으로 수상했다.
  • 2020.01.11~2020.05.31 제주항공우주박물관에서 노벨상 특별전시회를 개최한 적이 있다. # 다만 코로나19 바이러스 범유행의 여파로 생각만큼 많이 다녀가지는 않은 모양.
  • 영화 뷰티풀 마인드를 보면, 젊은 시절 정신이 오락가락했던 수학자 존 내시에게 노벨상(경제학상)을 줄 것인가를 두고서 미리 존 내시를 찾아가서 사전 인터뷰 혹은 사정청취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무슨 얘기인고 하니, 후보의 인격이나 정상적인 판단력 등이 실은 고려대상이라는 것이다! 단 어디까지나 참조사항에 불과하고, 업적이 지대하면 인성이 문제있어도 상은 주는 것 같다. 프리츠 하버 참조.
  • 2020년에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시상식이 취소되고 스웨덴 대사관 혹은 자신이 다니는 곳에서 온라인으로 가진다. #

11. 관련 상


  • 이공 계열 분야[78]
  • 인문학 및 예체능 분야
    • 폴라음악상 - 스웨덴 왕립음악원에서 주관하는 음악상. 음악계의 노벨상이라 불린다.[79]
    • 휴고상 - 세계 SF 회의에서 주관하는 사이언스 픽션상. SF계의 노벨상이라 불린다.
    • 템플턴상 - 존 템플턴 재단에서 주관하는 종교상. 종교계의 노벨상이라 불린다.
    • 요한 쉬테 정치학상: 스웨덴 요한 쉬테 재단에서 주관하는 정치학상. 정치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린다.
    • 황금종려상 - 칸영화제에서 주관하는 영화상. 영화계의 노벨상이라 불린다.
  • 기타 버금가는 상
    • 래스커상 - 래스커 재단에서 주관하는 의학상. 미국의 노벨상이라 불린다.
    • 울프상 - 울프 재단에서 주관하는 농학, 화학, 수학, 의학, 물리학, 예술 분야 상. 이스라엘의 노벨상이라 불린다.
  • 노벨상을 패러디한 상
    • 공자평화상 - 중국의 중국국제평화연구센터라는 단체가 만든 정체불명의 상
    • 다윈상 - 어이없이 죽거나 생식능력을 상실한 사람에게 주는 상
    • 이그노벨상 - 웃기거나 잉여스러운 연구에 수여하는 상

[1] 노벨평화상 한정.[2] 한화 기준 약 12억 원.[3] 노벨상 시상식이 열리는 스톡홀름 콘서트홀. 스웨덴 국왕이 직접 수여한다.[4] 여러 왕립 아카데미 중의 하나이나 과학과 달리 공식명칭은 Svenska Akademien로 왕립의 의미인 Kungliga(Royal)가 없다[5] 언론에서는 보통 스웨덴 한림원이 수상자를 결정했다고 하는데 이는 잘못된 사실이다. 위의 설명처럼 각 분야마다 수상자를 선정하는 기관이 다르기 때문이다.[6] 다이너마이트의 발명자이자 노벨상의 창시자인 동생에게 밀려서 그렇지 이 양반도 대단한 사람인데 젊은 시절 러시아로 건너가 공장 사업을 벌여 크게 성공을 거두었고 후에는 블루 오션인 석유 사업에 뛰어들어 아제르바이잔 바쿠에 브라노벨(Branobel)이라는 석유 회사를 설립했다. 브라노벨은 한때 전세계 석유 생산량의 50%를 차지했다고 한다.[7] 강한 무기가 있어야 평화가 유지된다고 말했다는 설도 있다.[8] 19세기 말에는 엄청난 돈이었다. 2000년대 초반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 당시, 국내 방송에서 현재 값어치를 원화로 추정했더니 약 2,215억 원이라고 한다.[9] 반평생 넘게 독신으로 살다가 생을 마감했기에 노벨의 직손은 없었다.[10] 예: Nobel Prize in physics[11] 참고로 노벨이 노벨상에 대한 유언을 남길 당시에는 경제학이 체계적인 분과 학문으로 발전하기 전이어서 노벨이 경제학을 시상 분야의 하나로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했던 때였다. 물론 노벨의 생전에 경제학이 하나의 체계적인 학문으로 성장해서 존재하고 있었더라도, 노벨이 경제학을 시상 분야로 지정했을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12] 스웨덴어로는 Nobelpriset i fysiologi eller medicin이다. 이를 직역하자면, '생리학 또는 의학 분야에 대한 노벨상'이 될 것이다.[13] 이에 대해서는 노벨생리학·의학상 문서 참조바람.[14] 2018학년도 7월 전국연합학력평가 30번 지문에 이 설이 등장한다.[15] 노벨이 유언을 남길 당시 생리학은 생물학의 여러 분야를 통칭하는 용어였다. 이에 대해서는 노벨 생리학·의학상 문서를 참조바람.[16] 태어나서 처음 본 움직이는 물체를 어미로 인식하고 따르는 현상[17] 어떨 때는 한 업적으로 4명의 수상자가 나오는 바람에 1명이 수상자에서 제외되었을 때 3명이 상금을 나눠서 그 1명에게 주었다고 한다.[18] 수상자 중 2명은 두번 수상하였기 때문에 개수로 따지면 387개이다. 또한 출신은 다른 나라이지만 후에 미국 시민권을 가진 사람 109명을 포함한 수이다. [19] 노벨문학상은 프랑스가 최다 수상했다.[20] 산문은 영어로 쓰긴 했는데 이 사람은 파스테르나크, 만델스탐과 어깨를 나란히 한 명시인 안나 아흐마토바가 옆에두고 키운 후배작가로 시쪽이 본업이다.[21] 1976년 수상자 솔 벨로우도 퀘벡 출신의 귀화 캐나다인이지만, 9살때 미국으로 이주해서 쭉 미국에서 수학하고 활동했기 때문에 사실상 미국 문단이 키운 작가다.[22] 학, 석, 박, 교수, 객원연구원 등 통합. 참고로 그 아래로도 케임브리지 대학교(2위)와 옥스퍼드 대학교(9위)를 제외하면 12위까지 미국 대학교들이다.[23] 프레더릭 생어가 2번을 수상하여 개수로는 135개이다. 또한 출신은 다른 나라이지만 후에 영국 시민권을 가진 사람 32명을 포함한 수이다.[24] 학, 석, 박, 교수, 객원연구원 등 통합.[25] 출신은 다른 나라이지만 후에 독일 시민권을 가진 사람 10명을 포함한 수이다.[26] 마리 퀴리가 2회 수상하여 개수로는 71개이다. 또한 출신은 다른 나라이지만 후에 프랑스 시민권을 가진 사람 11명을 포함한 수이다.[27] 다만 수상 대상 작품에서 쓰인 언어 순으로는 프랑스어가 아닌 영어가 1위이다. 프랑스어는 2위. 이유는 당연히 미국과 영국이 합쳐지기 때문. [28] 출신은 다른 나라이지만 후에 스웨덴 시민권을 가진 사람 3명을 포함한 수이다.[29] 특히 스웨덴과 언어 체계가 상이하여 문학상을 거의 못 받는 동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해보면 이러한 점이 더욱 두드러진다.[30] 그의 를 낭송한 게 골든 레코드에 실렸지만, 심지어 골든레코드를 만든 칼 세이건 등은 이 사람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사실조차 몰랐다.[31] 스웨덴인은 아니더라도 정 북유럽 작가에게 상을 주고 싶으면 헨리크 입센, 스트린드베리 등 받을 만한 사람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닌데도 이들을 제외함으로써 스스로의 권위에 흠집을 내버렸다.[32] 출신은 다른 나라(만주국. 다만 만주국은 일본 제국의 괴뢰국이기에 다른 나라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인 사람 1명(네기시 에이이치)을 포함한 수이다.[33] 과학 분야 상 중에서 수상 내역이 발명인 경우의 비율이 높다. 원래 발명을 사유로 노벨상을 수상하는 경우는 비교적 적은데 일본인 수상자들 중에서는 발명을 이유로 수상한 사람들이 비교적 많아서 자연히 공과대학 출신 수상자가 많다.[34]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노벨상 수상자가 많은 인도와 이스라엘(12명)보다도 2배 이상 더 많다.[35] 그 전까지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 수는 고작 9명뿐으로, 경제 규모에 비해서는 상당히 적은 수준이었다. 2000년대 이후로 노벨상 수상자가 급격히 늘어나 지금에 이른 것이다.[36] 일본은 에도 시대(18세기) 때부터 근대 과학 연구를 시작하여 200년 넘게 기초학문을 쌓아온 나라이다. 한국과 비교하면 넘사벽인 게 당연하다.[37] 그런데 당시 노벨위원회였던 폴케 헨셴(Folke Henschen)의 증언에 따르면, 노벨상 선고위원회에서 이 연구를 심사할 때 동양인에게 노벨상은 아직 너무 이르다라는 등의 발언이 있었다고 한다.[38] 그런데 같은 추축국이었던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는 당시에도 잘만 받았기 때문에 추축국이기 때문에라는 말은 그냥 핑계고 다른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39] 2002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고시바 마사토시의 애제자 가운데 한 명이다.[40] 통상적으로 높은 수준인 자연과학 연구에는 다수의 학자가 멤버로 참가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노벨상의 자연과학 부문에서는 하나의 주제에 대해 대표자 3명까지 수상이 인정되곤 있지만, 2015년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선택된 것은 위에서 말한 가지타 다카아키와 아서 B. 맥도널드의 두 사람 뿐이었다. 이는 본래대로라면 수상자 가운데 한 명으로 선택될 것이었던 도쓰카를 위해서 스웨덴 왕립 과학원의 노벨상 선정위원회가 세 번째 수상자 자리를 일부러 공석으로 해둔 것이라는 견해도 있으며 가지타 다카아키도 그처럼 생각하고 있다고 NHK의 특별 프로그램에서 밝힌 적이 있다.[41] 출신은 다른 나라이지만 후에 스위스 시민권을 가진 사람 4명을 포함한 수이다. 한편, 거주지 기준으로는 스위스에서 8년간 일한 1984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게오르게스 쾰러를 포함하는 경우도 있음.[42] 북미, 유럽 쪽에는 나라들이 다 붙어 있어서 그런지 이렇게 출신이 복잡한 수상자가 매우 많다. 그래서 이 문서의 순위에 들어간 수상자 숫자도 중복 카운팅이 상당히 많다.[43] 사실 러시아의 근현대 역사는 아주 복잡하기에 단순히 몇 명이라고 단정짓는 건 무리가 있다. 소련에 포함되어 있었어도 현재 러시아와 전혀 관련이 없는 지역 출신으로 있다가 해외를 나갔거나, 소련 혈통으로 독일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살았지만 소련 시민권은 가지고 있다던 등... 심지어 세는 방법에 따라서는 러시아 제국 점령 하 폴란드프리비슬린스키 크라이 등 여러가지를 집어넣어 32명까지도 말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건 좀... 기본적으로 24명은 확실히 러시아의 수상자라고 인정되는 편이며, 일반적으로는 수상 시점의 국적으로 26명이라고 본다.[44] 출신은 다른 나라이지만 후에 캐나다 시민권을 가진 사람 4명을 포함한 수이다. 한편, 업적 기준으로는 1908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어니스트 러더퍼드와 1923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존 제임스 리카드 매클라우드를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45] 중국 본토에서는 중화민국(대만) 출신의 2명을 포함하기도 한다.[46] 이렇게 수상을 강제로 거부당하고 빈 의자에 수상을 해준 사례는 1935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였던 나치 독일 시대의 카를 폰 오시에츠키 이후 처음이다.[47] 1위는 이스라엘이다.[48]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작품에 사용한 언어는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 스웨덴어, 이탈리아어와 같은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언어들이 대부분이며 한자문화권 언어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우리나라는 둘째 치더라도 일본 수상자가 3명, 중국 수상자도 2명 밖에 없다.[49] 노벨상 위원회에서는 출생지를 기준으로 수상자의 나라를 분류한다.[50] 노르웨이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51] 사실 2017년 가즈오 이시구로라는 일본인 소설가가 수상한 적은 있는데 어릴 때부터 영국에서 자라고 영국에서 활동해서인지 대개 일본계 영국인으로 본다.[52] 아시아에서 제일 많이 수상한 일본조차도 거의 60년 가까이 걸렸는데. 1949년의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인 유카와 히데키의 모교이자 교수로 있던 교토대학 이공학부 설립년도가 1897년이었고. 일본 최고(最古)의 이학부인 도쿄대도 1877년에 설립했다.[53] 가령 2017년에 노벨물리학상이 수여된 중력파 관측실험에도 한국의 여러 물리학자/천문학자들이 참여했다.[54] 미국으로 건너 간 후 국적을 바꿨다.[55] 이쪽은 생리의학상과도 연관성이 있음.[56] 특히 반도체디스플레이, 이차전지는 화학과의 연관성이 아주 높다.[57] 위에 써진 유룡 교수와 박남규 교수, 그리고 현택환 교수.[58]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 기준으로 기요타키 노부히로 프린스턴 대학 교수만이 후보에 있다. 그런데 영미권 후보는 수십 명에 이르니 받을 가능성은 낮다.[59] 마리 퀴리가 2회 수상하여 개수로는 19개[60] IMF 기준으로 선진국으로 분류되고 인구가 500만 명 이상인 나라들 중에서 노벨 과학상이 없는 나라들은 싱가포르, 그리스, 대한민국 이 세 나라밖에 없다.[61] 다만 개발도상국의 경우에는 과학 분야 노벨상의 경우 국적만 개발도상국이고 연구는 선진국에서 한 경우가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62] 날짜는 시상식이 진행되는 12월 10일 기준.[63] 당사자가 거부는 했지만 일단 공식적으로는 역대 선정자 명단에 포함되어있다. 니콜라 테슬라의 경우 1915년 당시 로이터 통신 주장에 따르면 토머스 에디슨(?)과 공동으로 받을 수 있었으나 '공동으로 받을 바에는 받지 않겠다'고 밝혀 다른 물리학자들이 수상을 했다고는 하나 노벨 재단에서 "본인이 상을 받기 싫다고 해서 수상자에서 제외하는 것이 말이 되냐"며 강하게 부인했고 실제로 근거로 뒷받침된 바가 없다.[64] 그리고 중국 정부는 노르웨이산 연어 수입을 금지하는 치졸한 보복을 했다.[65] 경제학상, 문학상에서 각각 1명씩 배출했으며, 인구91900명당 1명으로 미국이 같은 수치가 나오려면 3550명이 나와야 한다.[66] 수상지 모국어인 스웨덴어만 해도 6명으로 이탈리아어와 동일하다. 즉, 사실상 년당 1명만 배출하는 문학상의 특성상 문학상은 반 초과가 영어 및 유럽어에 몰려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67] 소수점 아래 셋째 자리에서 반올림.[68] 마리 퀴리(1911), 이렌 졸리오퀴리(1935), 도러시 호지킨(1964), 아다 요나트(2009), 프랜시스 아널드(2018)[69] 마리 퀴리(1903), 마리아 괴퍼트 메이어(1963), 도나 스트리클런드(2018), 앤드리아 게즈(2020)[70] 이오시프 스탈린제2차 세계 대전 종식에 기여했다는 내용으로 1945년과 1948년 노벨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심지어 아돌프 히틀러도 후보에 오른 바 있다...[71] 스웨덴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빅토리아 공주를 성추행하고 노벨 문학상 수상자 명단을 외부로 유출했다는 의혹까지 있다.[72] 근데 여기에는 무기회사도 있는데, 노벨이 무엇으로 돈을 벌었는지를 생각하면 이상한 일은 아니다.[73] 폴란드의 독립한 시기는 1918년이다.[74] 관련 기사[75] 독일인 수상자 중에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오데르-나이세 선 동쪽이나 알자스-로렌같은 지역이 고향인 경우... 물론 이런 경우에 걸리는 사람이 모두 독일인인 것은 아니다.[76] '슈트라스부르크', 스트라스부르의 독일어 명칭[77] 실제로 노벨상 수상자 중에는 이중국적자나 한 번 이상 국적을 바꾼 사람, 출생 국가가 식민지었던 시기에 출생하거나 활동한 사람도 여럿 있다.[78] 이 상들은 특히 노벨상에 버금가는 권위를 자랑하는 상이다.[79] 노벨상처럼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스웨덴 국왕이 직접 시상한다는 상징성과 권위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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