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른스트 마흐

 


1. 개요
2. 상세


1. 개요


에른스트 마흐(Ernst Mach, 1838-1916).
오스트리아 출신의 물리학자이며 철학자. 1855년 빈 대학교에 진학해 물리학을 공부했다. 1860년에 도플러 효과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그라츠, 프라하 대학교를 거쳐 빈 대학교의 교수로 재직했다. 유럽 19세기 일부의 실증주의(positivism)와 극단적인 주관주의를 주도했던 인물 중 하나이며, 과학보다는 철학적인 쪽에 더 관심이 많았다고. 그의 극단적인 주관주의는 그의 과학 이론에서 드러나며, 아인슈타인이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2. 상세


그의 주관주의는 '우주에 떠있는 원통' 논쟁으로 대표되는데,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물이 찬 원통이 회전한다면 관측자는 이것이 '무엇에 대해 회전하는지' 알 수 없어서 흔히 말하는 구심력에 의한 효과(물의 가운데가 움푹 패임)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게 된다. 알기쉽게 풀면, '''주변에 운동을 비교할 대상이 없다면 운동을 느낄 수 없다'''는 것(원통을 관측자로 생각하라). 이는 아이작 뉴턴의 관점과는 반대로, 뉴턴은 모든 운동의 기준이 되는 절대 공간이 존재하기 때문에 공간에 아무것도 없더라도 구심력이 작용한다고 여겼다. 이 논쟁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의해 관성운동을 하는 모든 관측자가 기준계가 된다는 것을 통해 마하의 이론을 폐기하며 끝났다.
한때 초음파지진파 등을 연구한 적이 있다. 총알이 만든 충격파 사진을 실험을 통해 직접 찍은, 충격파 현상을 최초로 확인한 사람이다. 초고속 카메라도 연속촬영도 없던 시절에 날아가는 총알의 사진을 찍은 엄청난 인물. '''물체가 음속보다 빠르면 어떻게 될까?''' 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해서 실험을 시작했다고 한다. 음속과 비교하는 단위인 mach(마하)는 그가 생각해낸 개념이다. 그래서 명칭을 그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우리나라에선 원래 이 인물의 이름을 마하로 불러서 단위의 이름도 마하로 불렀는데 인물의 이름은 마흐로 변경되었다. 다만 단위는 관행을 존중하여 마하로 고정되었다.
오귀스트 콩트실증주의적 과학철학을 더욱 발전시켜 엄격한 검증 연구방법을 과학연구에 도입하였다. 실증주의적 입장에서 칸트물자체를 비판하고 부정하였는데, 이는 뉴턴역학의 가상적 절대공간에 토대한 좌표계를 비판하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마흐는 루트비히 볼츠만과는 평생동안 학문적으로 대립했으며, 경험으로 입증되지 않은 원자라는 존재의 실재성이 확인되지 않았으므로 그 존재에 대해서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여 그가 우울증에 걸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