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른스트 후프슈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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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애[3]
1.1. 선수 생활
1.1.1. 클럽
후프슈미트는 1929년부터 고향팀 FC 바젤에서 활동했다. 1932-33 시즌에 바젤은 클럽 역사상 첫 메이저 타이틀을 차지했는데 후프슈미트는 로잔 스포르트와의 스위스 컵 준결승전에서 득점을 기록했다. 바젤은 이 골을 포함해 로잔을 5대3으로 꺾었고 결승전에서도 그라스호퍼 클럽 취리히를 4대3으로 제압했다. 이 시즌에 후프슈미트는 하프백 포지션의 선수임에도 10골을 기록해 득점면에서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1938-39 시즌의 강등 이후 바젤이 다시 나시오날리그에 올라가는 데에는 3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와 같은 시즌에 열린 스위스 컵 결승에서는 그라스호퍼에 하프 타임까지 2대0으로 이기고 있다 후반에 3골을 허용하며 아깝게 준우승에 머물렀다.
선수 생활 말기에 후프슈미트는 풀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했고 1947년, 바젤 소속으로 두 번째 스위스 컵 우승을 맛보았다. 하지만 감독이었던 토니 샬이 희귀 심장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자 주장에서 선수 겸 감독으로 팀을 이끌게 되었다.
선수 겸 감독으로 후프슈미트는 1950년까지 팀을 이끌었고 1950년에 선수 생활을 마친 이후엔 1952년까지 감독으로 바젤을 지휘했다.
후프슈미트의 리그 마지막 경기는 1950년 4월 23일의 생갈랭(St. Gallen)전이었고, 그는 1950-51 시즌의 그의 은퇴 경기에서 골키퍼로 출전했다. 또한 바젤은 1950년 8월에 바젤 아이스하키 팀과 축구 시합을 갖기도 했는데 이것은 1949년 12월에 있었던 바젤 아이스하키팀과의 아이스하키 경기 후에 치러진 리턴 매치였다. 바젤은 아이스하키팀에 14대5로 승리했고 골키퍼였던 발터 뮐러는 스트라이커로 출전해서 6골을 넣었다.
바젤에서 후프슈미트는 총 402경기에 출전, 83골을 기록했다.
1.1.2. 국가대표
후프슈미트의 A매치 데뷔전은 1932년 6월 19일의 헝가리전이었고 스위스의 3대1 승리로 경기가 끝났다.
후프슈미트는 1934년 월드컵에서 스위스의 2경기에 모두 출전했고 스위스는 체코슬로바키아에 2대3으로 역전패하며 8강에서 대회를 마무리했다.
후프슈미트의 마지막 A매치는 1934년 11월의 네덜란드전이었고 스위스는 네덜란드에 2대4로 패했다.
그는 대표팀에서 11경기에서 1골을 기록했다.
2. 수상
2.1. 클럽[4]
- 스위스 컵 우승 2회: 1932–33, 1946–47
- 스위스 컵 준우승 2회: 1941-42, 1943-44
2.2. 감독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 바젤 홈페이지[2] 후프슈미트는 FC 바젤의 원 클럽 플레이어인 관계로 클럽팀 이름 기입은 생략했다.[3] 출처: 위키피디아, 11v11, 바젤 홈페이지[4] 후프슈미트는 FC 바젤의 원 클럽 플레이어인 관계로 클럽팀 이름 기입은 생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