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겸 감독
1. 개요
스포츠에서 선수와 감독 직책을 모두 겸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 영어로는 플레잉 매니저(Playing Manager)라고 한다.
보통 프로스포츠 구단에서는 선수와 코치, 감독으로 역할이 세분화되어 있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드물게도 고참 선수들 중 코치와 선수 역할을 병행하는 플레잉 코치가 생길 수 있으며 이들 중에서도 가장 드문 사례로 선수단을 지휘하는 역할을 맡는 감독이 직접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 역할까지 겸해가며 활약을 펼치는, 선수 겸 감독이 나타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체로 프로스포츠에서는 시즌 종료 후 감독직이 비어 있을 시 마땅한 선택지가 없을 경우, 선수단 사이에서 인망이 높은 선수를 감독으로 선출하는 게 일반적이다. 아마추어 스포츠에서는 명감독을 영입하기에는 자본이 부족하거나 스포츠단의 투자 부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스포츠 업계와 관련 없는 인물을 감독으로 고용하거나 감독을 바지사장으로 두고 한 선수가 감독을 대신해서 선수단을 통솔하는 안습한(...) 케이스도 있다.
옛날에는 선수층이 얇고 감독감도 적어서, 가장 유서깊은 프로스포츠 리그 중 하나인 메이저리그에서조차 선수 겸 감독이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하는 경우도 1901년 이후 5번 있었다. 가장 최근의 경우는 1948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유격수 겸 감독 루 보드로[1] 이다.
그러나 현대에는 선수 겸 감독으로 성공을 거둔 사례는 거의 없다시피하다. 일단, 학원스포츠를 거친 수많은 유망주들 중에서 명선수로서의 자질이 있는 몇몇 선수만이 프로에서 살아남는 게 프로스포츠의 법칙인데, 더욱이 명선수의 조건에 부합하는 뛰어난 운동신경과 자기관리, 그리고 명감독의 조건에 부합하는 선수단 통솔 능력이나 작전 수행능력 등을 모두 갖추는 선수는 좀처럼 나오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 예로 KBO 리그만 해도 선수 겸 감독은 프로 원년 MBC 청룡을 지휘했던 백인천이 유일무이한 사례이며, 일본프로야구에서조차 선수 겸 감독으로 양 뱡면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둔 인물은 난카이 호크스의 노무라 카츠야 말고는[2] 전혀 없다시피하다. 20세기에는 스포츠 의학 그런 거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선수들을 관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선수 겸 감독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으나, 스포츠 의학과 각종 훈련, 분석기법이 고도로 발달된 21세기로 가면서 선수, 코치, 감독 외에도 트레이너라든가, 전력분석원 같은 프로스포츠와 관련된 직업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운동능력과 판단력 두 가지를 모두 신경써야 하는 선수 겸 감독은 갈수록 사라져 가는 게 현실이다.
2. 실존하는 선수 겸 감독
이름 - 선수 겸 감독으로 재직했던 팀(재직년도) 순으로 기재바란다.
2.1. 야구
- 타이 콥 -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1921~1926)
- 마츠키 겐지로 - 오사카 타이거즈 (1940~1941, 1950)
- 츠루오카 카즈토 - 난카이 호크스 (1946~1952)
- 벳토 카오루 - 마이니치 오리온즈 (1954~1957)
- 나카니시 후토시 - 니시테츠 라이온즈 (1962~1969)
- 무라야마 미노루 - 한신 타이거스 (1970~1972)
- 프랭크 로빈슨 -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1975~1976)[3]
- 노무라 카츠야 - 난카이 호크스 (1970~1977)
- 피트 로즈 - 신시내티 레즈 (1984~1986)[4]
- 백인천 - MBC 청룡 (1982~1983)[5]
- 후루타 아츠야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2006~2007)
- 다니시게 모토노부 - 주니치 드래곤즈 (2014~2015)
- 구대성 - 질롱 코리아 (2018~2019)
2.2. 축구
-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 미들즈브러 FC (2006~2007)[6]
- 글렌 호들 - 스윈던 타운 FC(1991~1993), 첼시 FC (1993~1996)
- 기예르모 고로스티사 - 로그로녜스(1948~1949)
- 네쿠 - SC 코린치안스(1920, 1927)
- 뉘마 앙드와 - FC 앙티브(1945~1946)
- 니콜라 아넬카 - 상하이 선화(2012~2013), 뭄바이 시티 FC(2015)
- 돈 레비 : 리즈 유나이티드 FC (1961~1962)
- 라몬 무티스 - 알마그로(1937)
- 라인홀트 뮌첸베르크 - 알레마니아 아헨 (1946~1949, 1950)
- 레오폴트 킬홀츠 - 스타드 드 랭스 (1936~1937)
- 렌초 데베키 - 제노아 CFC (1927~1929)
- 로버트 밀라 - 인디애나 플로어링, 뉴욕 내셔널스(1925-1928)
- 로제 쿠르투아 - AS 트루아사비니엔 (1952-1957)
- 루돌프 웨트체르 - ILSA 티미쇼아라(1934-1936), 로빈 그리비차 크라요바(1936-1937), 엘렉트리카 티미쇼아라(1937-1939)
- 루이 가브리야르게 - 님 올랭피크(1942~1943, 1944~1946)
- 루이스 레게이로 - 클루브 아메리카(1942~1944)
- 루이지 베르톨리니 - 라팔로(1937~1940)
- 루이지 알레만디 - SS 라치오(1939)
- 뤼트 굴리트 - 첼시 FC(1996~1998)
- 마누엘 플레이타스 - 파라과이(1922~1929)
- 마르틴 마르쿨레타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1935)
- 마리오 바를리엔 - 산레메세(1942~1943)
- 마티아스 신델라 - FK 아우스트리아 빈(1937~1938)
- 뱅상 콩파니 - RSC 안데를레흐트 (2019) [7]
- 베프 바크하위스 - FC 메스 (1945~1946)
- 빌리발트 크레스 - FSV 프랑크푸르트 (1947~1949)
- 세베리노 미넬리 - FC 취리히(1943~1946)
- 슈테판 도바이 - 플라커라 메디아슈 (1945~1948)
- 슈테판 아우어 - 라피드 부쿠레슈티 (1937~1939)
- 아미우카르 바르부이 - SS 라치오(1931-1932)
- 아틸리오 데마리아 - AC 레냐노(1945-1946), 코센사 칼초(1946-1948)
- 안젤로 스키아비오 - 볼로냐 FC 1909(1933-1934)
- 알프레드 아스통 - CA 파리(1948-1949), CS 퐁텐느블뢰 (1949-1950), AC 앙브와즈 (1950-1951), 투르 FC (1951-1956)
- 앙드레 아베글렁 - FC 소쇼몽벨리아르(1936), 세르베트 FC(1937-1942), FC 라쇼드퐁드(1942-1944)
- 앨런 커비쉴리 - 찰턴 애슬레틱 FC(1991~1993)[8]
- 에드몽 델푸르 - FC 루앙(1940-1945), 레드 스타 파리(1945-1946)
- 에드문트 코넨 - 슈투트가르트 키커스(1950), FC 영 펠로우스 취리히(1950~1952)
- 에른스트 알브레흐트
- 에른스트 후프슈미트 - FC 바젤(1947~1950)
- 에티엔 마틀레르 - FC 소쇼(1944~1946)
- 엣하르 다비츠 - 바넷 FC(2012~2014)
- 요제프 라셀른베르크 - 아인트라흐트 바트 크라인츠나힘(1950~1956)
- 요제프 비찬 - SK 슬라비아 프라하(1954~1955)
- 요제프 실니 - 하나츠카 슬라비아 크로메르지시(1935-1940)
- 요제프 우리딜 - AS 바리(1929~1930)
- 요제프 코슈탈레크 - 스파르타 포바주스카 비스트리카(1945-1946), SK 라코브니크(1946-1951)
- 웨인 루니 - 더비 카운티 FC(2021~)
- 이르지 소보트카 - HNK 하이두크 스플리트(1940-1941), FC 라쇼드퐁(1946-1951)
- 잔 클라선스 - R.A.E.C. Mons(1945-1946)
- 잔루카 비알리 - 첼시 FC(1998~1999)
- 조르주 보쿠르 - RC 랑스(1940-1942)
- 조제프 곤살레스 -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1942-1943, 1944), EF 마르세유프로벵스(1943-1944)
- 존 토샥 - 스완지 시티 AFC(1978~1984)
- 주세페 카반나 - 베네벤토 칼초 (1936~1937), 아베차노 (1945~1946)
- 쥘 반도렌 - 스타드 드 랭스(1941-1943), 아라고 스포르트 오를레앙(1943-1948), SM 캉(1949-1952)
- 차초 - 데포르티보 라코루냐(1941-1942)
- 케니 달글리시 - 리버풀 FC(1985~1990)
- 케빈 놀란 - 레이튼 오리엔트(2016), 노츠 카운티 FC(2017~2018)
- 콘라트 하이트캄프 - FC 바이에른 뮌헨 (1943~1945)
- 펠리체 보렐 - 유벤투스 FC (1942~1946), 알레산드리아 (1946~1948), SSC 나폴리 (1948~1949)
- 파울 지엘린스키 - SV 유니온 함본 (1946~1948)
- 페르낭 자카르 - FC 바젤(1937-1939), FC 로카르노(1939-1943), 세르베트 FC(1943-1945)
- 피터 리드 - 맨체스터 시티 FC (1990-1993)
- 호르헤 사르미엔토 - 알리안사 리마 (1935~1936)
- 후안 노게스 - FC 바르셀로나(1942)
- 훌리오 리보나티 - 리미니 칼초(1937-1938)
2.3. 기타 종목
- 빌 러셀 - 보스턴 셀틱스(1966~1969)[9]
- 레니 윌킨스 - 시애틀 슈퍼소닉스(1970-1972),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1974-1975)
- 송병구[10] - 삼성 갤럭시 칸(스타크래프트 2)(2015~2016)
- 강광배 - 2010 벤쿠버 동계올림픽 봅슬레이 프론트맨 겸 감독(2010)
- 이형섭 - FXO.KR(스타크래프트 2(2012 ~ 2013)
- 박상익 - oGs(스타크래프트 2)
3. 창작물에서의 선수 겸 감독
[1] 그것의 인디언스의 마지막 우승이다. 이 공적으로 그는 영구결번까지 되었다. 더우기 선수로서도 뛰어나서 리그 MVP까지 된, 우승감독 겸 MVP라는 영원히 다시 나올 수 없는 기록을 세웠다.[2] 그마저도 말년엔 구단과의 불화로 팀을 떠나 롯데 오리온즈, 세이부 라이온즈를 떠돌며 보내야 했다. [3]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감독[4] 메이저리그 최후의 선수겸 감독.[5] 그냥 그런 정도의 활약이 아닌, 4할 타자다.[6] 이후 전임 감독으로 계약[7] 이후 다음 시즌부터 은퇴후 정식 감독으로 부임[8] 1990년에는 선수로만/ 91년부터 93년까지 선수 겸 감독으로, 94년부턴 선수 은퇴 이후 감독으로 활약했다.[9] 1968, 1969년에 선수 겸 감독으로 우승한 후 은퇴했다. 사상 최초의 흑인 감독이자 최초의 흑인 감독 우승자이기도 한데, 첫 시즌인 66-67시즌에만 당시 최고전력을 자랑하던 필라델피아와 라이벌 윌트 체임벌린에게 패했을 뿐, 그 다음해에는 같은 식서스에게 1승3패로 뒤지다가 역전해서 업셋, 그 다음해에도 압도적인 전력의 레이커스 (체임벌린이 여기로 이적했다)를 상대로 7차전 만에 원정에서 승리, 역사상 최초로 파이널 7차전에서 원정팀이 승리한 케이스를 만들었다. 여러모로 극적이었던 시절. 69년에 우승 후 러셀은 이전 우승과는 비교도 안된다며 눈물을 흘렸다.[10] 직함은 코치이지만 수행하는 역할은 감독의 역할이다.[11] 창작물에서 가장 유명한 케이스. 로컬라이징 이름부터 선수 겸 감독에서 따왔다고 한다.[12] 감독, 코치, 트레이너를 혼자 다 하는 괴물[13] 후반부부터,이쪽은 선수겸 구단주에 가깝지만 감독대신 감독역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