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베르탱 경순양함
1. 제원
2. 개요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까지 최대한 빠른 속력, 강력한 함포 화력에 집중적으로 계획 및 설계하여 1931년 기공, 1933년 진수, 1935년에 취역한 경순양함이다. 국제 조약에 따라 배수량이 작고 장갑을 최소한으로 배치하였다.
함명은 청년학파를 지지했던 조선 설계사 에밀 루이 베르탱(Emil Louis Bertin)으로부터 유래했다.
3. 상세
놀랍게도(?) 기뢰함의 개량형 중 하나로 화력의 부족으로 인해 대대적인 개량을 통해 독자적인 별도 함으로 편성되었다. 152 mm 3연장포 3문과 550mm의 3연장 어뢰발사관 2기를 가지고 있었다.
4. 함생
대전기 이전에는 대서양에서 르 팡타스크급들과 보클랑급들로 이루어진 12척의 구축함 전대의 기함으로 운용되었다. 1939년 초에는 툴롱으로 재배치되었다. 1939년 9월 23일 레바논의 금괴 57톤을 툴롱으로 수송하는 비밀임무를 수행했고, 임무는 성공적으로 마쳐졌다. 이후 1940년 초, 툴롱에서 개장을 받고 카나리아 제도로 향해 정찰임무를 수행했다.
1940년 4월, 브레스트로 돌아와 조선소 작업을 도운 후 노르웨이 전역에 투입되어 Z전단의 대형구축함 타르투, 슈발리에 폴, 마일레제 브레제, 밀랑, 비종, 에페르바어, 그리고 1500톤급의 브레스토아, 볼로네, 포드로앙을 이끌었다.
4월 19일 에밀 베르탱은 루프트바페의 폭격때문에 손상을 입고브레스트로 복귀하여 5월 21일까지 수리를 받았다. 에밀 베르탱이 복귀하고 이후의 임무에는 경순양함 몽칼름이 투입되었다.
수리를 마친 에밀 베르탱은 브레스트에서 헬리팩스와 노바스코샤까지의 여정을 마치고 순양함 잔 다르크, 항공모함 베아른과 함께 프랑스 은행의 금괴를 수송하는 임무를 맡았다.
1943년 6월 에밀 베르탱은 연합국에 합류했고, 필라델피아 해군 조선소에서 대규모 현대화 개장을 거쳤다. 이후 지중해 전선에 투입되었으며, 남부 프랑스에서의 용기병 작전을 마치고 이탈리아 리비에라 공격임무를 수행했다.
종전 후에도 지중해에서 다양한 임무를 수행했고, 1945년 10월까지 수리를 위해 툴롱에 정박했다. 이후 1947년 7월 2일까지 순양함 투르빌과 인도차이나에 배치되었고, 1959년까지 프랑스 해군의 주력함으로 운용되었다. 2년 후인 1961년, 마침내 스크랩되며 함생을 마무리했다.
참조
5. 매체에서
- 월드 오브 워쉽에서 프랑스의 5티어 정규 순양함으로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