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아일랜드-북아일랜드 관계
1. 개요
영국, 아일랜드, 북아일랜드의 관계를 정리한 문서.
2. 역사
2.1. 고대~중세
북아일랜드는 그레이트브리튼, 스코틀랜드에 무척 가까워서 예로부터 인적 교류가 있었다. 고대에 아일랜드가 팽창했을 때는 아일랜드인들이 여기를 통해 스코틀랜드로 건너가 정착하기도 했는데 후대에 잉글랜드가 팽창해 아일랜드가 복속되자 개신교인들이 대거 이주해 이 지역에 정착했다.[1] 아일랜드인들은 여전히 가톨릭을 믿고 있었고 개신교도들이 가톨릭교도들을 박해하면서 분쟁이 일어났다.
2.2. 아일랜드 독립 이후
20세기 들어 아일랜드는 투쟁 끝에 독립을 쟁취했으나 개신교도 수가 가톨릭교도보다 많은 이 지역은 개신교도를 중심으로 영국에 잔류하기를 원해 반독립 운동을 벌였던 곳이었다. 아일랜드의 독립 운동을 주도한 세력들도 북아일랜드 문제로 분열되어 1922년 아일랜드 내전이 일어났고 결국 북아일랜드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을 국토로 아일랜드 자유국이 수립된다. 신생 독립국의 안정을 원한 아일랜드 정부에 의해 북아일랜드는 버려졌고 이후 북아일랜드는 끝없는 분쟁이 일어났다.
2.3. 북아일랜드 분쟁
보다 못한 영국에서 군대를 보내 치안을 유지했으나 1972년 피의 일요일 사건을 터트리는 등 30년 동안 IRA와 소모적이고 성과 없는 분쟁 이후 철수했다. 공식적으로는 보그사이드 전투라 불리는 데리/런던데리[2] 에서 일어난 1969년의 대대적인 시위 이후 1998년 굿 프라이데이 협정으로 분쟁에 관련된 대부분의 무장 단체가 종전 선언을 했을 때까지의 기간을 북아일랜드 분쟁 혹은 영어로는 The Troubles라고 부른다.
2.4. 현대
2019년 브렉시트로 인해 EU 회원국으로 남는 아일랜드 국경에서 이른바 '하드 보더(Hard Border)'로 발생할 수 있는 소요 등의 문제에 대한 긴장도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2019년 4월 데리에서 IRA계가 주도한 시위를 취재하던 벨파스트 출신 기자가 총격을 받아 사망하는 등의 일이 일어나 영국 정부에서도 긴장하고 상황을 바라보고 있다.
2017년 총선 이후 3년 가까이 내각 출범을 못하자 아일랜드와 영국이 공동으로 나섰다.# 그리고 북아일랜드 내에서 수용하면서 다시 자치수반을 뽑는다.#
3. 관련 문서
[1] 그 중에서는 잉글랜드인으로 동화된 아일랜드 출신이나, 개신교도인 아일랜드 출신도 있었다.[2] 아일랜드의 가톨릭 주민들은 데리(Derry), 북아일랜드의 개신교 주민들과 친영 세력들은 런던데리(Londonderry)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