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일랜드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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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어 : '''The Troubles''', '''Northern Ireland conflict'''[4]
아일랜드어 : '''Na Trioblóidí'''
아일랜드가 독립했지만 북아일랜드가 영국 땅으로 남자 북아일랜드 내 가톨릭-아일랜드 민족주의 진영과 개신교-친영국 진영이 일으킨 분쟁이다.
The Troubles라는 용어는 북아일랜드 독립전쟁 때도 쓰였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이 단어는 사회 혹은 정치적 충돌을 뜻하는 의미로 확대됐다고 한다.
유래는 조의를 표할 때 쓰는 말인 "sorry for your troubles".
2. 설명
기본적인 대립 구도는 이주 영국인 VS 토착 아일랜드인의 구도로 개신교도들을 중심으로 한 이주민은 영국 잔류를 희망하고 영국 국기를 걸어놓는 반면 반대로 아일랜드인은 독립국 아일랜드와의 통일을 바라고 아일랜드 국기를 걸어놓고 있다. 영국은 개신교도 VS 가톨릭교도의 종교 분쟁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아일랜드인들은 식민 VS 반식민의 이념 분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영국 본토[5] -아일랜드의 민족 구분은 혈통이 아니라 출신 지역별로 구분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20세기까지만 해도 잉글랜드 출신 부모를 가진 아이가 아일랜드에서 태어나면 이 아이는 Irish로 분류했고 지금도 어느정도는 마찬가지다. 아일랜드 독립 운동의 거두였던 찰스 스튜어트 파넬(Charles Stewart Parnell) 같은 경우 Irish로 분류되고 본인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족보나 가문을 따라가 보면 잉글랜드계(Anglo-Irish)였다.[6] 때문에 오늘날 북아일랜드의 갈등은 Irish vs English, Irish vs Scottish의 민족 갈등보다는 신교 vs 구교, 왕당파 vs 공화파, 연합주의 vs 아일랜드 민족주의 사이의 다양한 종교, 이념, 사상 갈등으로 봐야 할 것이다. 수도인 벨파스트는 개신교 지역과 가톨릭 지역이 벽으로 확연히 나뉘어 있는 분단된 듯한 도시로 거리 곳곳에 지지 정파를 드러내는 벽화가 그려져 있어 영국의 다른 지역과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중세부터 아일랜드의 농민들은 영국의 지주로부터 큰 수탈을 당해왔고 산업 사회가 되어서는 영국의 산업 자본 밑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노동자가 되었다. 영국은 북아일랜드를 버리지 못하는 근원적인 이유로 영국군이 물러날 경우 이주 영국인과 개신교도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이주를 강권하자니 죽어도 이주는 안 하겠다고 하고(사실 영국 본토 이주 지원 대책도 엄청난 자금이 소요된다) 막대한 지원비만 타내고 쓸 만한 산업 기반도 노동력도 없는 북아일랜드는 엄청난 짐이라는게 영국의 설명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의 독립으로 스코틀랜드까지 떨어져나가면 '연합 왕국'이라는 체제 자체가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때문도 있다.
이 지역 무장 단체로는 IRA가 유명하고 영국 충성파가 만든 UDA 등 반 IRA폭력 단체도 극성을 부렸다. 일단은 IRA는 2005년 무장 해제를 선언해 극소수 원칙주의자를 제외한 IRA의 무장은 공식적으로 해체된 상태다. 그래도 산발적으로 무력 테러가 일어나기도 하고 있다. 일단은 북아일랜드는 다른 영국의 지역에 비해 광범위한 자치를 보장받고 있는 편이기는 하다.
좌우 이념도 있어서 대개 영국 충성파는 우익이고 반대로 독립파는 좌익이다. 1920~60년대 사이 IRA는 노골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 노선을 주장했고 IRA가 이것에 집착해 실제로 가톨릭 주민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것에 반발해서 60년대 후반에 분리해 나간 다수파 PIRA 또한 반민족주의적 극좌 성향을 배격하긴 했지만 최종적인 슬로건은 여전히 '''통일된 (united), 민주적인 (democratic), 사회주의 (socialist) 아일랜드 공화국(Irish Republic) 성립'''을 유지하고 조직 내에도 단순한 반영 민족주의를 넘어 이런 성향이 있다. 현재 정당인 신페인 또한 사민주의적 정책을 많이 미는 등 아일랜드 민족주의 운동은 예나 지금이나 좌익 성향이 있다.
3. 피의 일요일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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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mhnach na Fola(아일랜드어) 혹은 Bogside Massacre
1972년 1월 30일 북아일랜드의 런던데리(혹은 데리)[7] 에서 아일랜드계의 시위를 진압하러 온 영국군이 시위 중이던 비무장 시민에게 발포하여 14명이 죽고 13명이 다친 사건이다.
무차별 사격으로 무고한 시민들을 살상한 부대는 마켓 가든 작전 등으로 유명한 영국 육군 공수연대 제1대대(1 PARA)다. 즉 나치 독일군의 공포와 증오의 대상이 되었던 레드 데블스가, 이젠 북아일랜드인의 공포와 증오의 대상이 되었던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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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당시 북아일랜드에 파병된 영국 육군 공수부대원.
4. 아일랜드 단식투쟁
5. 벨파스트 협정
6. 외부 링크
7. 기타
- 아일랜드의 록밴드 U2가 부른 동명의 곡이 있다. 북아일랜드 분쟁을 모티브로 한 것으로 보인다.
[1] https://cain.ulster.ac.uk/sutton/tables/Status_Summary.html[2] https://cain.ulster.ac.uk/ni/security.htm#05 2003년까지 집계하면 47,541명[3] 참고자료. 여기 적힌 사건들은 북아일랜드 분쟁의 일부로 영어 위키피디아에 문서화된 관련 사건 수는 엄청 많다.[4] 영미권에서는 The Troubles를 그 외 국가에서는 주로 북아일랜드 분쟁을 쓴다.[5]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6] 이런 구분이 못마땅했던 조지 버나드 쇼는 "아일랜드에서 태어났다고 Irish라니! 그럼 공기 중에서 태어나면 Airish겠군!"이라고 비꼬았던 적도 있다. 참고로 조지 버나드 쇼는 영국계 아일랜드인으로 두 국가 국적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7] 원래는 '''데리'''라는 게일어에서 비롯된 현지 지명이다. 그런데 북아일랜드를 영국이 지배하면서 아일랜드 지명 앞에 런던을 붙인 것. 현지인 중 아일랜드인으로서의 자부심이 강한 사람들은 런던데리라고 부르지 않고 데리라고만 부른다. 요즘은 잉글랜드를 위시한 영국 내 타 지역에서도 이곳을 Derry / Londonderry라고 병기하여 "데리 / 런던데리"라고 아예 한 덩어리로 읽고 쓰는 경우가 많다.[8] 이미지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