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녕공
王綧
(1223 ~ 1283)
1. 개요
고려시대의 왕족으로 작위는 영녕공(永寧公)이다. 삼별초가 강제로 왕으로 옹립한 승화후 왕온의 동생이다. 직계 조상은 고려의 8대 왕인 현종(고려)의 넷째 아들인 평양공 왕기이다. 평양공의 6세손인 청화후(淸化侯) 왕경이 왕온과 왕준의 아버지이다.
2. 생애
제3차 여몽전쟁때 고려가 항복하면서 고종의 동생으로 속여서 인질로 보냈다.
제5차 여몽전쟁때는 고려가 왕자 안경공 창(安慶公淐, 혹은 안경공 강)을 몽골에 보내어 항복을 표시함으로써 몽골이 완전히 철병하였다. 안경공 창은 1254년 8월에 귀국했다.
그런데 몽케 칸(원 헌종)은 안경공 창을 만났는데 처음에는 안경공이 그 전에 인질로 간 영녕공 준의 동생이라고 여겨서 후하게 대접하였다 그런데 민칭(閔偁)이란 자가 사실을 고발해서 영녕공이 고려의 왕자가 아니라 친척임을 알았다. 물론 영녕공은 자기가 국왕의 친자가 아닌 줄은 몰랐다고 박박 우겼으며(...) , 그와 함께 온 참지정사 최린도 '왕의 친자(親子)는 아니지만 왕의 사랑하는 자식(愛子)이니 그게 왕의 아들이라는 뜻임'이라며 콤비로 우겼다(...). 당연히 몽케 칸은 증거를 가져오라며 그 전에 고려에서 몽골에게 보낸 표문을 읽어 보았는데 정말로 표문에도 친자식(親子)이 아니라 사랑하는 자식(愛子)라고 쓰여져 있었다. 즉 거짓말은 하지 않은 것. 몽케 칸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서 불문에 부친 채 넘어가야 했다.[출처:]
삼별초의 난 당시 왕준의 두 아들은 삼별초 진압작전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왕준은 형인 승화후 왕온의 안위가 걱정되었는지 그들에게 숙부를 죽이지 말고 살려서 데리고 오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하지만 이러한 왕준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그의 형 승화후는 역적 홍다구에게 살해당했다.
그런데 왕준은 이 홍다구 집안과도 악연이 있다. 홍다구의 아버지인 홍복원은 볼모 시절의 왕준과 사이가 매우 나빴다. 몽골 영토 내의 고려인들을 통치하는 문제를 두고 세력 다툼이 벌어진 것. 그래서 홍복원은 다투다 못해 인형에 못을 박아 땅에 묻는 저주를 부리고, '기르던 개가 주인을 무는 격'이라며 왕준에게 막말을 하기도 했다. 이를 듣다 못한 왕준의 아내(몽골의 황실 출신이었다)가 몽케 칸에게 이를 고발하고, 몽케 칸이 사람을 보내서 홍복원을 죽였다. 이후 홍다구는 이런 원한을 품고 이후 왕준을 모함해서 실각시키고, 앞서 말한 것처럼 승화후를 죽인 것.
원사(元史)에서 왕준에 대한 기록과 고려사, 고려사절요에서 조휘의 기록이 겹친다는 점을 들어 왕준과 조휘가 동일인물이라는 설이 있다. 이 글 참조.
[출처:] 고려사 열전 12권 최유청 중 부 최린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