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유격대
1. 개요
부산 영도[2] 에 본부와 훈련장을 두었고 한국전쟁에서 활약했던 영도유격대는 휴전 후에도 문서가 공개되지 않아서 여러 소문만 종종 있었지 어느 기관 소속이었는지조차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베일에 가린 유격대였다.
먼 훗날에야 밝혀진 바로는, 미국의 정보기관인 CIA가 한국인들을 훈련시켜서 북쪽으로 침투시켜 각종 비정규전을 수행하게 했던 게릴라/유격부대였음이 드러났다. 즉 KLO와 마찬가지로, 한국군 소속도 아니고 그렇다고 미군 군인 신분도 아닌 군번 없는 용사들이었던 것이다.
자원자 1,200여 명을 중심으로 1951년 3월 극비리에 창설했다. 이들은 3~4개월 동안 특수훈련을 받고 강원도 일대와 함경남·북도까지 공중·해상 침투해 비정규전 임무를 수행했다. '''Y부대''', '''파라슈트 부대''' 등으로도 불렸으며 적 사살 4,800여 명, 무기류 노획 1,100여 건, 군사통신 시설 파괴 855곳 등의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1952년 12월 정전협상 분위기가 무르익자 부대를 해체했다.
2. 활약상
美 CIA는 두 개의 외견상 독립적인 조직을 갖고 있었는데, 하나가 조지 오웰(George Aurell)이 지휘한 '''OSO'''(Office of Special Operartion)와 한스 토프(Hans Tofte)가 이끄는 '''OPC'''(Office of Policy Coordination)가 그것이다. '''OSO'''가 스파이에 의한 '''첩보활동'''을 주로 담당하였고, '''OPC'''는 '''비밀공작활동'''을 주로 담당하였다. 이 두 개의 조직은 이후 JACK으로 통합되었다. JACK부대의 명칭은 '''주한 합동 고문단'''(Joint Advisory Commission in Korea)이며, 북파요원들의 거점은 부산 영도, 본부는 부산 동래에 있던 베이커 캠프였다. JACK부대는 아주 잘 훈련된 게릴라 부대로 더치 크래머(Dutch Kramer), 톰 커티스(Tom Curtis), 조지 애치슨(George Atcheson), 조 파그넬라(Joe Pagnella)라는 CIA의 선임 CO(Case Officer. 담당관)들이 훈련과 작전수립, 지휘 등을 맡았다고한다. 북파공작원들은 이 JACK을 '''한·미합동고문첩보부대'''라고 이야기 한다.
OSO는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한국인 공작원을 모집하였는데, OSO팀들은 '''남과 북에 모두 존재'''했었다. 토프(Tofte)는 그 당시 부산 영도에 있는 CIA OPC 캠프를 지휘하기 위해 한철민을 기용하고, 이 영도부대의 주 임무는 적진 후방에서 적을 교란하는 유격대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를 위해 주로 이북 출신 피난민들을 공작원으로 양성하게 된다. 기밀관계로 영도부대는 이후 '''Y부대'''로 불리었으며 약 1,200명의 대원으로 구성되었다. Y부대는 북한작전지역별로 4개의 소부대로 나뉘어졌는데, 강원북부와 함경남도 남부를 맡은 '''Yellow Dragon''', 함경남도 중부를 맡은 '''Blue Dragon''', 함경남도 북부와 함경북도 남부를 맡은 '''White Tiger''', 함경북도 북부를 담당한 '''Owl'''부대가 바로 그것이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이후 영도에 있던 CIA OPC기지는 폐쇄되었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첩보활동이 계속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휴전협정 후 무력충돌이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CIA는 한국인 공작원을 훈련시켜 인민해방군 해군 함정 나포, 왕가도에 있는 수송저장소 폭파, 상하이와 진남포를 연결하는 해저케이블 절단 등 주로 해상작전을 수행했다.
영도유격대와 비슷하게 미국 기관이 한국인들을 활용해서 비정규전을 수행하게 했던 KLO부대, 즉 제8240부대는 그나마 6.25 전쟁 휴전 후에는 한국군으로 이관되어서 KLO대원들 중 상당수가 대한민국 육군의 정식 군인 신분을 얻었고 원하는 이들은 그 뒤로 계속 육군에서 군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영도유격대는 6.25 전쟁 휴전 후 대한민국 국군으로의 이관이나 편입 조치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채 방치되어버려서, 병적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심지어 병역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국군으로 다시 신병으로 입대를 해야하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개별명단 기록 자료같은 것도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유공자 지정 등의 혜택을 받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영도유격대는 한국 민간인 청년들로 이루어지긴 했지만 애초에 한국군하고는 무관한 부대였고, 영도유격대를 만들고 운용한 미국측에서도 휴전 후 아무런 보장도 해 주지 않았으며, 사실상 용도 폐기 해 버렸기 때문에 영도유격대 대원들은 고스란히 버림받은 희생자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