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양

 


豫讓
생년 미상 ~ 기원전 451년
춘추시대 말기, 전국시대 초기에 유명한 협객. 형가와 더불어 협객의 시초로 분류되는 인물로, 사마천사기(역사책) 중 자객열전에 수록되어 있는 인물이다.
(晉)나라에서 여섯 가문[1]이 싸웠는데 그는 맨처음에 범씨, 순씨를 섬기다가 지씨를 섬기게 된다. 후에 그가 밝히기로는 범길사, 순인[2]은 그를 보통 사람으로 대하였고, 반면에 지백(智伯)[3]은 심복으로 놔두어 자신을 알아주었다는 이유로 지백을 섬기게 된다.
조, 위, 한 세 가문을 멸하려한 지씨의 수장인 지백이 역관광좆망테크를 타고 그 두개골이 옻칠, 금칠되어 조씨의 수장인 조양자(趙襄子)의 술잔[4]으로 만들어졌다는 말에 분개하여 그를 암살할 계획을 세운다.
예양은 죄인으로 가장해 변소의 벽을 칠하는 일을 하며 조양자를 암살할 기회를 노렸으나,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조양자가 예양을 수색하자 곧 붙잡히고 말았다. 조양자는 그 충성심에 감탄하며 주위 가신이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예양을 풀어줬다.
풀려난 예양은 포기하지 않고 숯을 먹어 목소리를 바꿨으며, 얼굴엔 옻칠을 하여 얼굴을 변형시켰다. 이러한 차림으로 구걸하는 그를 아내조차 알아보지 못했다. 우연히 그를 알아보게된 친우가 그렇게까지 행동하는 이유를 묻자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고, 여자는 자신을 기쁘게 해주는 남자를 위해 화장을 한다."(士爲知己者死 女爲悅己者容)'''라고 답했다. 또, 이로 인해 복수를 위해서 자신의 몸을 괴롭게 함을 칠신탄탄 (漆身呑炭)이라고 하게 되었다.
또한 당신의 재주면 능히 조양자의 총애를 받으며 심복이 될 수 있으니 조양자의 심복이 되어 가까이 모시다가 조양자를 죽이는 것이 더 쉬운 길인데 왜 어려운 방법을 고집하느냐는 친구의 물음에 '이미 그의 신하가 되었으면서 또 그를 죽이고자 하면 이는 두 마음을 품는 것이고, 내가 극히 어려운 일을 하고자 하는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장차 천하 후세의 다른 사람의 신하가 되어서 두 마음을 품은 자를 부끄럽게 하기 위함이다!'라고 하였다.
조의 수도 한단에 새롭게 지어지는 다리를 조양자가 첫번째로 지나가게 되어 있었는데 이를 안 예양은 시체로 분장하고 다리 밑에 숨어 조양자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살기를 느낀 조양자의 말은 다리를 지나가지 않고 멈추어섰다. 이에 이상한 낌새를 느낀 조양자는 다리 밑을 수색하게 되고 새로 지어진 다리 밑에 시체가 있음을 수상하게 여긴 조양자에 의해 두번째로 포박당해 조양자 앞에 끌려오게 되었다.
두번이나 암살 위협을 겪자 분노한 조양자는 "너는 옛날에 다른 중신들도 섬기지 않았느냐? 그들을 죽인 것은 다름 아닌 지백이었다. 그런데 너는 그 원수를 갚기는커녕 도리어 원수의 신하가 되어 나를 노리니 이야말로 어불성설이 아닌가?" 라고 예양을 꾸짖었다[5]. 그러자 예양은 "저는 범씨와 중항씨를 섬긴 일이 있습니다. 범씨와 중항씨는 모두 저를 보통 사람으로 대접하였으므로 저 역시 보통 사람으로서 그들에게 보답하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지백은 저를 선비로 대우하였기에 저도 마땅히 선비의 예로 그에게 보답하려는 것입니다(國士遇之國士報之)" 라고 답하였다.
이 말을 들은 조양자는 예양의 충의에 감탄하며 눈물을 흘리며 "예자(豫子)[6]여! 그대가 지백을 위해 충절을 다한 명예는 이미 이루어졌고, 내가 그대를 용서함도 충분하였으니 응당 각오해야 할 것이다. 이제 나는 너를 놓아주지 않으리라!"[7][8][9]라며 병사들로 하여금 그를 포위했다. 그러자 예양은 "당신은 저를 이미 관대히 용서하셨고,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당신의 어지심을 칭송합니다. 이제 저는 죽어 마땅하나 당신의 옷이라도 벨 수 있게 해주시길 간청합니다."라고 하였다[10]. 이에 조양자가 그의 옷을 벨 기회를 주자 세 번 뛰어 그 옷을 베었으며 "내가 비로소 지하에 계신 지백께 보답할 수 있게 되었노라!"란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칼에 엎어져 목숨을 끊었다. 예양이 죽자 삼진의 식자들은 애통해하였다고 한다[11].
옷에 맺힌 선혈에 충격을 받은 조양자는 얼마 되지 않아 병사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사기와 자치통감에는 '''그런 기록이 없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면 <여태후본기>에서 여후의 옆구리를 치고 간 개의 이야기나 <위기후, 무안후 열전>에서 귀신이 씌어 비참하게 죽은 이야기까지 적었던 사마천이 굳이 조양자의 이야기를 누락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놀란 조양자가 시름시름 앓다 죽었다는 기술은 후대의 소설인 열국지에만 등장한다. 한편 열국지에선 위에 언급한 다리의 이름을 조양자가 예양을 기리기 위해 '예양교'라고 붙였다는 내용도 나온다.
참고로 이문열은 삼국지를 평역하면서 예양의 고사를 인용한 것을 '''예와 양 땅의 사람들'''이라는 희대의 오역을 저질렀다. 개정판에서는 수정되었다.[12]
[1] 육경이라고도 한다. 진나라의 유력 가문으로 범씨(范氏), 위씨(魏氏), 한씨(韓氏), 조씨(趙氏), 중항씨(中行氏)=순씨(荀氏), 지씨(智氏).[2] 중항인이라고도 한다.[3] 본명은 지요. 성은 불명이며 씨가 지, 명은 요(瑤)다. 백작이라 백이라 부른다. 지양자(智襄子)로 부르기도 한다.[4] 간혹 요강으로 전해지기도 하지만 초기 기록에는 전부 술잔으로 기록되어 있다. 좀 더 모욕적인 상황을 만들어 위해 뒤에 요강으로 바뀌어 전해진 듯.[5] 또는 "너는 옛날에 다른 중신들도 섬기지 않았느냐? 그들을 죽인 것은 다름 아닌 지백이었다. 그런데 예전에는 도리어 지백을 섬겼으면서도 이제는 나를 죽여 지백의 원수를 갚으려 하니, 왜 원수를 갚으려 함이 내게만 가혹하냐" 고 물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6] 예양을 존중하는 의미로 성 뒤에 '子'를 붙인 것이다.[7] 또는 "얘자여! 그대가 지백을 위해 충절을 다한 명예는 이미 알려졌다. 그리고 내가 그대를 용서함도 이제는 족하여(충분하여) 더 할 수 없으니 그대는 이제 스스로 살 길을 구하라!" 라고 해석하기도 한다.[8] 현대어로 풀이하면 "네 충성이 참 대단하다. 하지만 나도 너 봐줄만큼 봐줬으니 이제 각오는 됐겠지?" 정도의 의미. 더 진지하고 꼼꼼하게 풀이하자면 "(최종적인 임무 완수에는 실패했지만) 넌 지백에게 충성을 다하겠다는 네 책임을 충직하게 수행했어. 그래서 이젠 세상 사람들도 네가 충절을 다했다는 것을 알고 널 존경해. 그러니 이제 죽어도 여한은 없겠지? 난 지난번에 널 한번 살려줬고, 내게도 (군주로써의) 책임이 있으니 널 또 살려주고 싶긴 해도 그렇게 할 수는 없어. 그러니까 (내가 널 살려주는 대신) 너 스스로 살아서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야 할거야." 정도의 의미가 된다.[9] 물론 <스스로 살 길을 찾으라>고 해봤자 조양자의 호위병들에게 포박당하고 포위당한 상항에서는 현실성이 없다. 하지만 <처형> 보다는 <자결>이나 <전사>을 명예롭게 여기던 고대의 사고방식에서 "널 죽이겠다" 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대신 병사들로 하여금 포위하게 하고 "너 스스로 살 길을 찾으라"고 말한다는 것은 <범죄자로써 처형당하는 대신 너 스스로 자결하거나, 아니면 최후의 저항을 선택하여 싸우다 죽을 기회를 주겠다> 는 의미가 된다.(또는 좀 더 급진적으로 접근해보면 조양자에게 귀순하여 섬기는 것도 '살 길'이 될 수 있다. 방금 전까지 죽이려던 상대를 섬기는 것은 우스워보이지만, 예양이 지백에게 지극히 충성을 다한 것으 결국 지백이 예양을 인정해주었기 때문인데, 후술된 것처럼 조양자 역시 지백 못지 않게 예양을 인정해 준 인물인 것.) 즉, 조양자의 발언은 예양의 충성을 높게 평가하는 입장에서 예양의 입장에 공감하여 최대한 배려하는 관점을 유지하고 있다.[10] 원문에서 예양은 자신을 단순히 낮추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臣)이라고 칭한다. 즉, "제가 업무상 님을 죽여야 하긴 하는데요, 님 역시 저 같은 사람이 섬길 가치가 있는 군주의 품격을 갖춘 인물인거 인정합니다" 라는 의미가 함축된 것. 또한 옷이라도 벨 수 있게 청하는 말 역시 "이는 바랄 수 있는 것이 아니나, 그럼에도 감히 청합니다" 라고 공손하게 요청하고 있다. 이 역시 여러 의미를 함축적으로 내포하는데, 예양은 지백이 자신을 선비로 대우했기에 지백을 위해 목숨까지 다하는 충성으로 보답하였다. 하지만 조양자 역시 (자신을 죽이려는 적인데도 불구하고) 지백 못지 않게 예양을 인정하고 그에 걸맞게 대우한 것이고, 예양은 이에도 보답해야 한다. 물론 충성은 변하면 안 되는 것이므로 지백을 위해 조양자를 죽이겠다는 입장 자체는 바꿀 수 없지만, 그래도 자신을 인정해 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스스로를 신하(臣)라고 칭한 것이다. 예양의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당신의 어지심을 칭송합니다" 라는 발언 역시, 신하에게 최고의 덕목은 충성이고 "세상사람들이 네 충성스러움을 이미 알고 있다" 고 예양을 인정한 조양자에 대해 군주에게 최고의 덕복은 어짊이므로 예양 역시 "세상 사람들이 님의 어짊을 이미 알고 있다" 고 화답한 셈. 따라서 예양이 "감히 청할 수 없는 일임을 알고 있으나 그럼에도 청합니다" 라며 조양자의 겉옷을 베게 해 달라고 공손하게 부탁한 것 역시 나름의 의미가 있다. 조양자는 이미 예양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대의 인정과 존중, 배려를 보여주었고 도리로 따졌을 때 그 이상의 무언가는 도저히 요구할 수 없었다. 그러나 자신의 최종적 목적을 이루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쉬웠던 예양은 "님이 이렇게까지 해 줄 의무도 책임도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제가 이걸 요청하는 것이 무례하다는 것도 잘 압니다만... 순수한 호의로써 마지막 부탁 딱 하나만 더 들어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라고 정중히 요청하자 조양자가 그 요청을 수락하여 겉옷을 내준 것이다.[11] 상기된 것처럼 이 에피소드 자체가 거의 단어 하나하나에 특별한 의마가 있다고 할 정도로 강렬한 함축성을 가지고 있다. 사기는 결국 사마천이 자신이 취합한 사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므로 사마천 자신이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문장을 재구성했을 것이라 예측되는 부분.[12] 더 웃기는 것은 이를 고치지 않던 시절에 참조한 판본의 오류 때문인지 교묘하게 고쳤기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예(豫)는 그대로 써놓고서는 양(讓)은 양(襄)이라 써놓기 까지 했다.